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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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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혁3. 논란4. 트리비아

1. 개요

국제앰네스티 또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은 1961년 영국의 피터 베넨슨 변호사가 시작한 인권운동단체이다. 독재정권의 지배를 받던 포르투갈의 청년이 술자리에서 한 말[1] 때문에 투옥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권운동실천을 위해 결성했다. 한국을 포함한 150여개 나라에 80여 지부와 110여 이상의 지역사무실을 두고 있다. 국제지부, 한국지부. 한국 지부는 서울특별시에 있다.

이름이나 하는 일 때문에 유엔 산하 기구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순수한 민간운동 단체이다. 양심수의 사면을 위해 출발한 단체지만, 공식명칭은 단순 직역한 '국제사면위원회'가 아니다. 가급적이면 '앰네스티'라는 이름을 권장한다.

2. 연혁

국제엠네스티는 해당 보고서에서, 8월 25일의 여성 시위대 공개 알몸수색 건과, 여성 시위대를 홍콩 경찰이 체포하여 경찰서로 압송한 이후, "진술을 거부하면 성고문을 하겠다"며 대놓고 위협한 것이 성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며, 홍콩 경찰이 여성폭력도 저지르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기사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가 발간한 홍콩 경찰 폭동적 시위진압 및 시위대 폭력, 고문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에 대해, 스티븐 로 홍콩 경찰청장은 "홍콩 경찰이 폭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 순수한 거짓말(Pure Lying)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 경찰을 모욕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국제앰네스티를 거세게 비난했다. 기사

3. 논란

사람 사는 곳이면 의례적으로 따라오는 비판과 문제점이 있는데, 국제앰네스티도 예외는 아니다. 앰네스티의 활동 대부분이 제3세계에 집중되어 있고 선진국의 인권침해에는 소극적이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오고 있다. 심지어 같은 사안으로 미국, 이스라엘 등이 비판받을 수 있음에도 아랍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을 유독 문제시하는 경향도 종종 보인다. 물론 이쪽이 선진국보다 아직 인권사각지대인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같은 태형 제도를 놓고도 사우디에게는 강력히 항의하면서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묘하게 침묵한다던지, 남아시아, 아랍 국가들의 여성 중매 문제 등은 까면서 미국, 유럽 부유층들의 강제 정략결혼에는 침묵한다던지...때문에 진보적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앰네스티 역시 (유엔 산하는 아니지만) 제도권화된 단체 특유의 현실안주에 빠져 있으며, 인권단체이면서도 선진국들의 기득권을 자극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주장은 잘하지 않는다는 비판들이 있다.[2]

2007년엔 낙태는 여성의 인권이다라고 결의해서 같은 인권주의자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었는데, 이로 인해 가톨릭 교회가 반발해서 이후로 가톨릭에서는 앰네스티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2015년 8월 11일 앰네스티에서 공식적으로 성매매를 처벌하지 말자고 결의해 국내 여성단체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다만 외국에서는 상당수 여성단체들이 성매매는 도덕적 잘못이 아니며 범죄로 처벌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한국 여성단체가[3] 성매매는 그 자체가 범죄이며 (구매자 위주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여론이 다른 것이다. 때문에 특히 한국의 여성단체들과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메갈리아 같은 경향과도 꽤 우호적인 관계이기 때문에[4]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한겨레 기사, 허핑턴포스트 기사. 그러나 앰네스티 규정상 지부는 본부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기에 대놓고 다른 의견을 펼 수는 없다.

인권단체답지 않게 독재적 운영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인권에 대한 방침이기 때문에 본부에서 인권침해로 규정한 사항에 대해 지부에서 인권침해로 보지 않는다거나 하면 좀 난감해진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60여개국의 지부와의 의견 교환과 무기명 투표로 결정한 방침이기에 존중받아야 할 당위성도 충분하고. 이후 국제앰네스티는 성매수자만 처벌하라고 주장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회원들을 제명했다.

성매매 처벌국가인 스웨덴 외무장관은 이를 여성을 성적 학대에서 보호하는 대신 포주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엠네스티 측의 주장에 따르면, 성판매자는 처벌하지 않고 성매수자만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이나 전면적인 성매매 합법화를 부정한 모델들이 오히려 각종 편법들을 양산하여[5] 양지는 양지대로, 음지에서는 또 음지대로 성매매 시장이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음지에서는 여성 성노동자에 대한 성폭행 등 인권침해가 심해지고 범죄 조직의 활성화 등의 부작용까지 낳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앰네스티 측에서는 이런 모델들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그렇다고 앰네스티가 단지 정책적 합목적성을 위해 성매매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의견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성노동자들의 성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효과적인 정책을 택한 것임은 당연하고, 성인간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한 성매매 자체도 처벌할 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성구매가 인권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성을 구매할 권리가 일종의 복지처럼 남성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마초적 관점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인권에 해당하는 것은 자유로운 조건 합의에 의한 성관계이다. 그리고 엠네스티는 비범죄화 뿐만 아니라 '합법화'(제도화) 역시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만 이 선언에서 주장한 것은 비범죄화이다.

참고할 앰네스티 포스팅 #1 #2 #3
가디언 기사
앰네스티의 자료집
앰네스티의 자료

참고로 성노동자 토니 맥의 테디 강연을 보자. 몇몇 발언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강연.

"사람들은 당신의 딸이 매춘을 한다면 용납하겠는가, 그래서 성매매는 불법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그들은 어떤 여성이 오늘밤 성매매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그녀가 안전하게 일을 할수 있을까를 질문해야 한다."
"성매매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법을 만들면 안된다. 법은 현실을 기반으로 약자를 보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성매매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당장 오늘 저녁 나의 아이가 저녁을 굶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락녀를 폭행하거나 윤락행위를 강요하는 포주를 처벌하지 말라는게 말이 되냐는 쪽으로 왜곡하여 비판한 여성단체 및 여성주의자들이 상당히 있었는데, 전형적인 선동과 날조이다. 애초에 그건 형법상으로도 범죄인데 인권단체인 앰네스티가 처벌하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앰네스티에서는 이 '파격' 발표를 하고 나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오해당할 것이라는 것을 우려하여 반복적으로 성착취와 성착취범(악질포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는데 말이다. 참고로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성매매 금지가 강령에 있었으나, 진보신당 시절엔 성착취 금지로 표현이 바뀌었다.

2017년 9월 21일 앰네스티 한국 지부가 문재인 정부로부터 농산물 세트 선물을 받았는데, 선물 자첸 감사하지만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성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난감하다는 트윗을 올리자, 배송희망 날짜가 있고 미리 거절할 수 있었을텐데 왜 받아놓고서 그러냐는 네티즌들의 지적을 받고 글을 삭제한 적이 있다. 이후 해명글을 올렸으나 이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자 이 글도 연달아 삭제하는 답정너 같은 일이 있었다. 아카이브 링크.

또한 분쟁지역 군인보다 여성이 위험하다는 Patrick Cammaert의 말을 인용했는데 실제 Patrick Cammaert는
It has probably become more dangerous to be a woman than a soldier in armed conflict.
분쟁지역에서는 군인이 되는 것보다 여성이 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이와 같이 말했다.즉 어디까지나 분쟁지역 한정으로 말한 것인데 여기서는 여성은 어디서나 분쟁지역 군인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다소 의미를 잘못 번역하였다.

4. 트리비아

  • 1977년 노벨평화상은 국제앰네스티가 단체 자격으로 수상했다.
  • 1978년 UN 인권상을 수상했다.
  • 개요에 링크되어있는 영상에서도 보이듯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진 70년대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단체의 지원을 꽤 받았으며, 대통령이 된 이후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 50주년엔 이희호 여사와 홍세화 작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축하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영상.

[1] '자유를 위한 건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 물론 급진적이라는 것 역시 상대적이긴 하다. 예를 들어 과거 한국의 국보법 관련 인권 유린 사태에 대해선 국제앰네스티가 줄기차게 권고안을 냈었다. [3] 그나마 2000년 이후 좀 의견이 분화된 것이다. 그 전에는 여성단체고 진보진영이고 보수진영이고 닥치고 성매매 범죄론이었다. [4] 이와 연관해 2017년에는 반발하는 구성원들의 탈퇴를 한국 앰네스티 홈피가 의도적으로 막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한동안 욕을 먹기도 했다.(...) [5] 실제 국내에선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함께 집창촌을 철거하자 이제는 오피방이라 불리는 오피스텔 성매매가 활개를 치고 있다. 감시하기 어려운 음지로 숨어든 것으로, 오히려 과거보다 범죄 위험성이 더 심각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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