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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면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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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52년에 추진한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내용은 군면리 대폐합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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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이후 현재까지 폐지된 대한민국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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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1=본 틀에 대한제국 선포(1897년 10월 12일) 이후 폐지된 행정구역만 등재한다.,
토론주소2=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2=대한제국 선포부터 광복(1945년 8월 15일) 전까지 폐지된 행정구역 가운데 현재 휴전선 이남에 위치했던 행정구역만 등재한다.,
토론주소3=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3=휴전선 이북에 위치한 행정구역을 원칙적으로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4=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4=단 광복 이후 6.25 전쟁 전까지 38선 이남에 위치했으나 휴전 후 북한 치하에 들어간 경우와 일부 영역을 수복했으나 인접 시군에 편입시켜 휴전선 이남에 실효지배하는 영역이 없어진 경우에 한해 등재한다.,
토론주소5=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5=명칭 변경 사례를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6=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6=폐지된 행정구역의 소속 도(道)는 폐지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단 제주도에 소재했던 행정구역에 한해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으로 표기한다.,
토론주소7=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7=폐지된 행정구역이 행정구역 명칭과 단위가 같은 행정구역으로 다시 설치된 경우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8=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8=단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뒤에 폐지된 동명의 행정구역은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9=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9=폐지된 동·읍·면은 원칙적으로 등재할 수 없다. 단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뒤에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읍·면은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10=YouthfulTangibleDryClam, 합의사항10=1995년 이전에 폐지된 읍·면이라도 2개 이상의 행정구역에 분할 편입되어 폐지된 경우는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11=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11=1995년 후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읍·면이라도 군 전체가 시로 승격하면서 관할 읍·면이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경우는 등재할 수 없다.,
토론주소12=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12=1995년 이후에 군이 폐지되고 해당 지역에 동명의 새로운 시를 설치한 경우 이전의 군을 틀에 등재하지 않는다.(따라서 틀에서 경기도 광주군을 제외한다.),
)]

1. 개요2. 의도3. 개편 전까지 상황4. 개편 사항5. 개편 후 변천6. 문제점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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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dministrative Map of Chōsen (1913).svg
파일:Administrative Map of Chōsen (1914).svg
부군면 통폐합 이전 조선 행정구역[1] 부군면 통폐합 이후 조선 행정구역
부군면 통폐합(府郡面統廢合)은 일제강점기 1914년 3월 1일 4월 1일 식민지 조선에서 실시된 대규모 행정구역 개편을 일컫는다. 조선총독부가 주도했다. 백과사전 등에 주로 군면 통폐합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이하급 행정구역 명칭과 영역, 경계선이 부군면 통폐합으로 틀이 잡혔다.

2. 의도

1914년 3월 1일 4월 1일자로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조선 전국 행정구역 개편의 목적은 최대군과 최소군 군역 차이를 최대한 줄여 식민지 수탈을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기존 행정체계 및 행정방식인 군현제와 향촌자치제를 파괴하고 일본 본토 행정구역 체제인 시정촌제를 형태로 이식하고, 일본인 거류민(영주권자와 비슷)단 자치를 공고히 하여 영원한 식민지배를 획책함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1912~1918)을 벌여 얻은 방대한 조선 국토 자료가 바탕이 되었다.

조선 시대 고을들은 이미 일본 한국통감부가 내정 간섭의 일환으로 1906년 9월 24일에 크게 월경지 땅거스러미를 정리했음에도 넓이와 인구 편차가 심하게 났기 때문에 각 고을의 규모를 최대한 동등하게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통합 조치가 필요했을 수 있다. 예컨대 서로 인접한 포항시 경주시는 둘 다 넓이가 넓은 편인데, 포항시/역사 항목에서도 보이듯이 포항은 4개 고을(연일 / 흥해 / 청하 / 장기)이 통합되어 생겼기 때문에 그 정도 넓이가 나오지만, 경주는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도 경주라는 고을 한 개였는데 고을 네 개 합친 포항보다 더 넓다. 더욱 후덜덜한 것은, 1906년까지 흥해군 기계면(+기북면)과 신광면, 청하군 죽남면·죽북면(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도 모두 경주 땅이었다는 점이다. 그림을 보면 확실한 느낌이 올 것이다. 더욱 극단적으로 보자면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갑산군(대략 7,758.01㎢), 강계군(5,403.63㎢), 무산군(6,163.91㎢, 1906년 9월 이후), 장진군(5,947.08㎢), 함흥군(2,513.13㎢, 1906년 9월 이후) 등 괴물 같은 군들도 있었지만, 평택군(現 평택시 팽성읍)이나 용안군(現 익산시 용안·용동면)처럼 면적이 40~50㎢대에 불과한 군도 있던 상황이었다. 너무 작은 고을이 많으니 통폐합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97년 전에 다산 정약용 경세유표에서 주장했을 정도로 오래된 문제였다.[2][3][4] 또한 조선시대까지 행정 기능이 없는 단순한 지역 구분이었던 면(面) 면사무소 주재소(현재의 파출소)를 설치하고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과 군이 아닌 개별 읍면을 시로 승격시키는 '도농 분리제'( 1995년 도농복합시 제도가 도입될 때까지 계속 사용)는 미국에서 시행되는 City-Town-Village 제도나 일본에서 시행되는 시정촌제와 비슷하게 ·· 자치 제도를 시행하고자 만든 밑천이라 볼 수 있고, 실제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한민국 제2공화국 시기에는 1949년에 시행한 지방자치법으로 기존 모든 부를 일괄 시로 개칭하여 시·읍·면을 기초자치단체로 두었으며, 오히려 이러한 시읍면 체제가 외국 지방자치에서 흔한 경우다.

당시 행정구역을 변경한 법적 근거는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구역 변경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 (1913년 12월 29일 공포)이다.

3. 개편 전까지 상황

일본은 1869년에 내부식민지인 홋카이도를 설치하면서 아이누어 지명을 음차하거나 일본어 의역했고, 1872년에 일본 본토에서 폐번치현해 전국 261개 으로 전환하여 대폭 늘린 302개 현을 몇번 통폐합해 43개 현으로 통폐합하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해 기존 행정구역 체계인 고키시치도(五畿七道, 오기칠도)를 효력 정지시켰다. 폐번치현 이후인 1902년 율령국 경계를 조정한 바 있어 공식적으로 폐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원래 독립국인 유구국 19세기 말인 1869년에 병탄하고 1878년에 개편한 오키나와현을 쉽게 수탈하기 위해 1908년에 마지리(間切, 일본어로 마기리)·도(島)를 폐지하고 본토 부속도서와 같은 시기에 도서정촌제를 실시하면서 행정구역 통폐합을 단행했는데, 이를 조선에 적용한 것이었다.

일본 한국통감부가 내정 간섭의 일환으로 1906년 9월 24일 월경지 땅거스러미를 정리했다. 1908년, 1909년, 1910년에 소규모 군면 통폐합이 몇번 있었다. 13도의 2.1번 단락을 보라. 다른 도와 달리 황해도는 이 시기에 부군면 통폐합보다 군이 더 많이 통폐합되었다.

1910년 한국 병탄 직후에 급인 한성부 경기도 산하 경성부로 바꾸고 일본인 인구(밀도)를 기준으로 부를 군으로 격하하고, 군을 부로 승격한 뒤에 인천부를 제외한 개항장 부명을 기존 지명에서 개항장 지명으로 바꾸었다. 동래부를 부산부로, 창원부를 마산부로, 옥구부를 군산부로, 무안부를 목포부로, 덕원부를 원산부로, 삼화부를 진남포부로, 부령군에서 승격한 부령부를 청진부로 개칭했다. 즉 인천부만 제물포부로 개칭되지 않았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기존 의 이름을 신시가지 지명으로 바꾸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남시, 고양시, 안양시, 군포시, 부천시, 화성시를 각각 분당시, 일산시, 평촌시, 산본시, 중동시, 동탄시로 바꿔버린 격이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 부는 8.15 광복 이후에도 해당 명칭이 그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1911년부터 다시 동리(洞里) 통폐합이 진행되어 1911년에 시흥군(서울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오리지널 시흥)에서, 1912년에 안산군 양천군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동리 통폐합이 되었다. 예 : [ruby(潘大方里, ruby=번대방리)]([ruby(潘塘里, ruby=번당리)], 번댕이) + [ruby(牛臥陂里, ruby=우와피리)](쇠눕) → 번대방리).

4. 개편 사항

하위 문서로 분리된 행정구역 개편 사항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비교적 인구가 많고 면적이 작은 군이 많았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 군이 많이 통폐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으면서 면적이 넓은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통폐합된 군이 적다.

파일:19140401bymapminer.png
부군면 통폐합 직후 1914년 4월 1일의 행정구역도. 대도시 인접 지역과 휴전선 이북( 북한 행정구역 기준)을 제외하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계선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4.1. 관련 자료

통폐합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으면 내고향 역사 알기 참조.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중 지도를 참조해도 좋다. 또한 보다 자세한 변동 사항을 알고 싶으면 1917년에 발행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과 조선총독부 관보 호외(1913년 12월 29일 발행), 제430호(1914년 1월 8일 발행), 제434호(1914년 1월 13일 발행), 제444호(1914년 1월 24일 발행), 제470호(1914년 2월 25일 발행), 호외(1914년 3월 1일 발행), 제474호(1914년 3월 2일 발행), 제478호(1914년 3월 6일 발행), 제480호(1914년 3월 9일 발행), 제482호(1914년 3월 11일 발행), 호외(1914년 3월 13일 발행), 제485호(1914년 3월 14일 발행), 제486호 (1914년 3월 16일 발행), 호외(1914년 3월 16일 발행), 제488호(1914년 3월 18일 발행), 제490호(1914년 3월 20일 발행), 제492호(1914년 3월 24일 발행), 제496호(1914년 3월 28일 발행), 제498호(1914년 3월 31일 발행), 제499호(1914년 4월 1일 발행), 제501호(1914년 4월 4일 발행), 제503호(1914년 4월 7일 발행), 제504호(1914년 4월 8일 발행), 제512호(1914년 4월 7일 발행), 제516호(1914년 4월 22일 발행), 제539호(1914년 5월 19일 발행), 제543호(1914년 5월 23일 발행), 제563호(1914년 6월 18일 발행)를 참조해도 좋다. 위키문헌에 이 관보에서 대정 2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대정 3년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3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충청북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충청남도령 제3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전라북도령 제2호 및 제5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전라남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경상북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강원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황해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평안남도령 제2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평안북도령 제5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함경남도령 제4호(면의 명칭과 구역), 대정 3년 조선총독부 함경북도령 제1호(면의 명칭과 구역) 부분이 번역되어 있다. 원문 관보를 해독하기 어렵다면 이들 번역문을 참고하면 된다.

관련된 학술논문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박혜진의 박사학위논문 '20세기 초 한국의 면(面) 경계 복원'이 있다. 해당 논문에는 부군면 통폐합 전후의 면 위치 지도가 있다. 비전공자의 연구결과 내지는 독자연구가 아닌 박사학위 논문이기에 타 출처에 비해서는 학술적 권위가 있는 자료. 이후 박혜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1914년의 군 폐합이 한국의 초기 도시화 과정에 미친 영향'이라는 석사학위논문이 나왔다. 계량경제학의 연구방법론인 '이중차분법'(DID)를 사용해 인구를 분석했다.

4.2. 개편 방향

1914년 3월 1일에 중·남부 지방에 존재한 수많은 군을 2~4개씩 합쳐 군 하나로 통합했다. 북부지방인 평안도 함경도, 중부지방인 강원도는 대부분 산간 지방이라 인구 밀도가 적어 면적이 방대한 군들이 많아서, 통폐합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함경남도 함흥군 동북부과 홍원군 서부를 분리해 신흥군이, 북청군 개마고원 지역과 갑산군 남부를 분리하여 풍산군이 신설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 군뿐만 아니라 면도, 1914년 4월 1일부터 1916년까지 동·리(洞里)도 몇 개씩 통합하여 한 면, 동·리로 바꿨다. 통합지명을 정하는 규칙이 있다.
  • 통합된 2~3개 군 중 중심지 군명을 통합군명으로 정했다. 통합될 군이 군세(면적, 인구, 자산, 생산력)가 전부 대등했거나, 일부 군만 동등해 중심지가 어디인지 애매한 경우에는 두 군 명칭에서 하나씩 따서 합성하거나, 아예 새로 지었다. 전자 예로 부천군( 평군 + 인부), 연백군( 안군 + 천군-白川郡(백천군)-), 후자 예로 평안남도 평원군(영유군 + 숙천군 + 순안군) 등이 있다.
    • 일본어 발음상 혼동의 우려가 있어 새로 짓기도 했다. 주군(洪州郡)군(結城郡)을 합한 곳은 홍주가 중심이었으므로 ' 홍주군'이 되어야 했으나, 같은 충남 내에 일본어 발음이 'こうしゅう'로 동일한 공주군(公州郡)이 있어서, 결국 두 군에서 한 글자씩 따서 홍성군이 되었다. 강원도 고성군([ruby(高, ruby=こう)][ruby(城, ruby=じょう)]郡), 금성군([ruby(金, ruby=こん)][ruby(城, ruby=じょう)]郡)은 일본어 발음이 유사하여 면적이 비교적 협소한 간성군, 김화군(金化郡)에 각각 통폐합되었다. 통합 시의 경우는 아니나 전라남도 광양군 흥양군 역시 일본어 발음 상 모두 こうよう(고:요:)로 발음되어 흥양을 옛 명칭인 '고흥'으로 개칭했다.
    • 우리말 독음마저도 같은 곳이 있어서 새로 짓기도 했다. 영천(榮川) + 풍기군 + 순흥군에서는 영천이 중심이었으므로 ' 영천군'이 되어야 했으나, 하필이면 경북에 영천(永川)군이 또 있었기 때문에 영천(榮川)군을 영주(榮州)군으로 바꾸었다.
    • 원래 명칭이 약간 변하거나 역사적 명칭을 끌어와 쓴 경우도 있는데, 연일군 + 장기군 + 흥해군 + 청하군에서는 연일이 중심이었으므로 '연일군'이 되어야 했으나, 연일의 역사적 이칭(異稱)인 '영일'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 영일군'이 되었다.
    • 철도 부설 등 교통이 발달로 인해 새로운 시가지가 발달한 지역은 해당 철도역 및 신시가지 명칭을 전체 고을 이름으로 채택했다. 대전군(회덕군 + 진잠군)[5], 논산군( 은진군 + 연산군 + 노성군)[6], 김천군(김산군 + 개령군 + 지례군)[7] 등이 그 예다.
    • 개항장 지명으로 바뀌어 사라진 기존 부명 대부분이 도농분리(부군분리) 정책으로 신설된 군명이 되었다. '삼화'는 진남포부 개항장 (증남포) 이외 지역을 '삼화군'으로 분리하지 않고 용강군에 편입하면서 유일하게 사라졌다.
  • 면이나 동·리 명칭도 대부분 한자어로 바꾼, 통합되기 전 면이나 동리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 많다. 의왕면('의'곡면 + '왕'륜면), 신갈동('신'촌리 + '갈'천리) 같은 예가 있다.

해당 지역 중심지를 철도나 도로, 수운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중심지를 이전하고 기존 중심지를 쇠락시키는 일도 동시에 진행했다. 경기도 광주군청 남한산성에서 경안(현 광주시내)으로(1917년)[8], 용인군청이 구성에서 김량장(현 용인시내)으로 이전한 것(1911년)도 이 시기다. 두 지역은 모두 광복 이후에도 읍을 거쳐 분동될 정도로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기존에 군청이 있었던 곳은 당연히 쇠락을 면치 못했는데 구성은 그래도 도시화가 이루어져 중흥한 반면, 남한산성은 그 길로 완전히 쇠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市)인 부(府) 영역을 시가지(또는 개항장)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별개 군(郡)으로 분리하거나 인접 군과 병합하는 이른바 도농(都農)분리제 역시 이때 도입되었다.

부와 군이 분리될 때에 부명과 군명을 다르게 부여했다. 이때 명칭을 짓는 규칙이 있었다. 정명규칙 중 ④, ⑤는 1930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① 해당 지역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
* 경성부 경성부 + 고양군
* 군산부 군산부 + 옥구군 (임피군 편입)
* 마산부 마산부 + 창원군
* 목포부 목포부 + 무안군 ( 지도군 편입)
* 부산부 부산부 + 동래군 ( 기장군 편입)
* 원산부 원산부 + 덕원군
* 진남포부 진남포부 + 용강군 (진남포를 제외한 삼화부 편입)
* 청진부 청진부 + 부령군
② 해당 지역에서 유명한 것의 이름을 준용.
* 대구부 대구부 + 달성군 (읍성 달성에서)
* 평양부 평양부 + 대동군 (평양 한가운데를 흐르는 대동강에서)
③ 기존 지명에 신(新)자를 붙임.
* 의주부 신의주부 + 의주군
④ 해당 지역의 옛 지명을 차용.
* 인천부 인천부 + 부천군 (과거 행정구역인 '부평'에서 '부'자를, '인천'에서 '천'자를 따서)
* 개성군 개성부 + 개풍군 ('개성'에서 '개'자를, 과거 행정구역인 '풍덕'에서 '풍'자를 따서)
* 광주군 광주부 + 광산군 (광주의 옛 이름인 '광산'에서 차용)
* 대전군 대전부 + 대덕군 ('대전'에서 '대'자를, 과거 행정구역인 '회덕'에서 '덕'자를 따서)
* 성진군 성진부 + 학성군 (과거 행정구역인 '학성면'에서 차용)
* 전주군 전주부 + 완주군 (전주의 옛 이름인 ' 완산주'에서 차용)
* 진주군 진주부 + 진양군 (조선 초기 진양대도호부에서)
* 해주군 해주부 + 벽성군 (해주의 옛 지명 '벽성'에서 차용)
⑤ 해당 지역 이름의 일부에 성(城), 주(州), 원(原) 등을 붙여 변형. 이 글자들은 지명에 예부터 많이 쓰여온 글자들이다.
* 함흥군 함흥부 + 함주군 (고려 중기 동계 함주대도독부에서)

단, 분리되는 부가 원래 군의 중심지가 아닌 경우(개항장, 신흥 교통취락 등)에는 분리되는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부(시)명으로 쓰고, 군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 경흥군 나진읍 → 나진부, 함주군 흥남읍 → 흥남부)

수원군, 광주군(廣州郡), 강릉군, 충주군, 공주군, 안동군 등 당시 도내에서 면적이 비정상적으로 넓은 고을의 월경지 땅거스러미, 기타 원래 소속 중심지보다 인근 군이 더 가까운 지역들을 인근 군으로 편입되었다. 경술국치 이전인 1906년에 이루어진 월경지 정리 때 정리되지 못한 곳을 마저 정리했다. ( 양산군 웅상면, 현 양산시 웅상지구 등을 또 빼먹었다.) 수많은 고을을 실제 생활권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강제 통합인 부군면 통폐합이었으나, 비정상적으로 넓은 군의 땅을 이관하는 이 조항만 매우 합리적이었다.

4.3. 각 도 개편사항

4.3.1.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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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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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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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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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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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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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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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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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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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0. 평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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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1. 평안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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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2. 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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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3. 함경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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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편 후 변천

1915년에는 울도군 제주군에서 행정구역 단위명을 '군'에서 '도(島)'로 바꾸고( 경상북도 울릉도, 전라남도 제주도), 군수(郡守)를 도사(島司)로 개칭했다. 이 행정구역 단위명인 '도(島)'는 해방 이후인 1949년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며 도제가 폐지되어 다시 군(郡)으로(도사 역시 군수로) 명칭을 바꾸면서 사라졌다.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1946년에 미군정이 제주도 북제주군, 남제주군 2개 군으로 분할되면서 먼저 폐지되었다.

1917년 10월 지정면(指定面)과 보통면으로 분류해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후 1931년 4월 1일에 지정면 중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개성부 승격),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함흥부 승격),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1939년 읍 승격)을 제외한 모든 지정면이 읍(邑)이 되었다.

군에 속한 (읍이나 면)이 인구 5만 명을 넘으면 부(1949년 8월 15일부터 시, 단 경성부는 1946년 8월 11일부터 시)로 승격시켜 원래 군과 별개 행정구역으로 신설되고 부(시), 군 중 한쪽이 개칭되도록 했다. 이 제도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적용되(다 1980년에 개칭 부분만 제외하게 변경)면서, 1995년까지 역사적으로 원래 같은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지역인 '시'와 농촌 지역인 '군'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된 곳이 매우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농복합시 제도를 만들고 1995년 대대적인 시군통합(도농 통합)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부(시) 설치로 인해 개칭한 경우를 정리한 목록이다.
1920년부터 일본식 행정구역이 없던 다른 지정면(읍)에 일본식 행정구역이 신설되거나 추가 설치되었다. 해방 당시에 흥남부(1944.10.01. 설치)를 제외한 모든 수원군 수원읍, 안성군 안성읍(이상 경기도), 청주군 청주읍, 충주군 충주읍, 제천군 제천읍(이상 충청북도), 공주군 공주읍, 연기군 조치원읍, 논산군 논산읍· 강경읍, 서천군 장항읍, 천안군 천안읍(이상 충청남도), 익산군 이리읍(이상 전라북도), 여수군 여수읍, 순천군 순천읍, 해남군 해남읍(이상 전라남도), 안동군 안동읍, 영일군 포항읍, 김천군 김천읍(이상 경상북도), 밀양군 밀양읍, 김해군 김해읍, 창원군 진해읍, 통영군 통영읍(이상 경상남도), 춘천군 춘천읍, 강릉군 강릉읍, 원주군 원주읍(이상 강원도), 황주군 겸이포읍(이상 황해도), 선천군 선천읍, 강계군 강계읍(이상 평안북도)에 동리단위 일본식 행정구역이 있었다. 1946년~1949년에 일본식 동명을 청산했다.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이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내 읍면이 아닌 군을 기초자치단체로 두었고, 이후 1995년에 이대로 지방자치제가 재실시했다.

6. 문제점

폐지되는 고을의 중심지가 몰락하거나 소외되는 데 대한 해결책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아 나름대로 각자의 지역 정체성을 갖췄던 곳들이 무시당하며 여러 곳에서 문제가 되었다. 읍(행정구역)/목록 면(행정구역)/목록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통합 이후 폐지되어 사라진 군의 중심지였던 지역들은 거의 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하여 대개 인구 만 명 이하의 면으로 남아 있다. 예외로 수도권 지역에서 과천군과 안산군은 과천시, 안산시로 부활했고[9], 양천군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구로 부활했다.[10] 부평군 역시 인천광역시 부평구, 계양구, 서구[11], 경기도 부천시로 부활했다.[12] 화성시도 사실상 구 남양군을 계승했고, 구 양성군, 통진군의 경우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각각 안성 시가지 인구를 추월한 공도읍, 옛 통진군 일대의 새 중심지가 되어 인구 3만을 바라보는 통진읍과 먼저 양촌읍에서 분동된 구래동과 마산동이 있긴 하다. 충청도에서는 괴산군과 합쳐졌다가 일부만 다시 독립한 증평군이 있으며[13], 구 목천군과 직산군의 중심지인 목천읍, 직산읍은 천안시 내에서 모두 2만 명이 넘어가 읍으로 승격했으며[14] 구 온양군의 경우는 1920년대에 이미 아산의 중심지 역할을 뺏어왔을 뿐만 아니라 과천, 안산과 비슷한 시기부터 9년간 한시적으로 중심지가 온양시로 부활한 적도 있다. 경상도의 경우 인구는 비록 만 명 이하이지만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을 제치고 군 인구 1위를 줄곧 고수하고 있는 청송군의 진보면도 있고, 비록 혼자만 선산으로 떨어져나와 구미시의 강동 시가지를 이루긴 했지만 중심 시가지가 잘 발달해 칠곡에 남은 구 인동군 읍면 일부에도 생활권이 뻗어 있는 구 인동면, 달성 남부의 행정 중심지로서 인구 2만을 돌파한 현풍읍, 울주 서북부의 중심지인 언양읍[15], 마산의 배후지로서 중심지인 가야읍을 추월하고 군 인구 1위로 올라선 함안군의 칠원읍도 있다. 파주군에 병합되었던 교하군 지역은 6.25 전쟁 이전까지는 군의 외곽에 불과했으나, 원래 중심지였던 문산읍이 전쟁 이후 군사분계선과 가까워지면서 군청 및 기관들을 교하의 중심 지역이었던 아동면 금촌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후 신도시 개발 등을 통해 파주시의 인구 60~70%가 거주하는 중심 지역으로 바뀌었다.[16][17]

반면 양지군, 적성군, 죽산군처럼 완전히 폐지되어 하위 단위로 명맥을 이어나가는 행정구역도 있다.[18]

남한에서는 1914년 이전에 존재했던 군이 부활한 사례는 거제군(1953년)[19], 신안군(1969년)[20], 태안군(1989년), 기장군(1995년)[21], 과천시, 안산시(이상 1986년)다.[22] 과천시 안산시는 원래의 과천군, 안산군의 영역을 온전히 부활시킨 것은 아니긴 하지만, 원래 각 군의 중심지에 해당되던 곳은 현재 각 시가 모두 점유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이런 사례가 극히 드물었던 반면, 북한에서는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사라졌던 군이 상당수 부활되었는데[23] 물론 1914년 이전의 경계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24]

실제 생활권을 헤아리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고을들을 통합한 부분이 있었고, 도시화된 지역과 농어촌 지역을 분리하는 '도농분리제'를 도입했다. 이 도농 분리제는 81년 동안 새로 생기는 시는 기존 군과 분리되도록 행정구역을 설정했기 때문에 한동안 문제가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일본식 지명이 여러 생겼으며, 고유어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본래 지명이 많이 사라졌다. 도농 분리제는 1995년 도농복합시 제도가 도입되면서, 일본식 지명은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바로잡고 본래 지명으로 되돌리거나 새로운 지명을 짓는 노력이 계속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25] 하지만 아직도 부군면 통폐합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어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7. 관련 문서



[1]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지역이다. [2] # [3] 아카라이브 도시·지리 채널에서 만든 정약용의 행정구역 개편안과 유형원의 한성부 확장안을 반영한 지도 [4] 정약용이 주장한 행정구역 개편안은 후대에 일부 실현되었는데, 그 예로 전라도 평안도, 함경도의 남북 분도(이후 평안북도 함경북도에서 량강도 자강도가 분도), 해미를 합병한 서산(부군면 통폐합 당시 태안 또한 합병했으나, 1989년에 분리함), 황간을 합병한 영동(개편안에서는 황간이 영동을 합병함), 전의를 합병한 연기(2012년에 세종으로 개편), 회덕과 진잠이 통합된 대전(개편안에서는 회덕이 진잠을 합병함), 전라도 서부의 섬들을 통합해 신설된 신안(부군면 통폐합 당시 무안에 합병되었으나, 1969년에 분리됨. 또한 신안의 전신인 지도 신설 당시 군청이 지도읍에 있었으나, 무안에 합병 후 신안으로 다시 분리될 때 목포 북교동, 현재의 참사랑요양병원자리에 군청이 설치되었으며, 2011년에 압해읍으로 이전했는데, 바로 이 압해가 정약용이 관아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곳임), 영해를 합병한 영덕(개편안에서는 영해가 영덕을 합병), 진보 지역 대부분을 합병한 청송(일부 지역은 영덕 영양에 합병), 안의 절반( 서상면, 서하면, 안의면)를 합병한 함양( 마리면, 북상면, 위천면 거창에 합병), 흡곡을 합병한 통천, 평해를 합병한 울진, 풍덕을 합병한 개성(1930년에 개성부로 승격한 개성군 송도면을 제외한 구역이 개풍군으로 분리되었으나, 개풍구역 판문구역으로 개편되어 개성에 합병됨), 풍천을 합병한 송화(1952년에 군면리 대폐합으로 송화 일부가 분리되어 삼천 신설, 1967년에 구 풍천 지역이 과일로 분리. 개편안에서는 풍천이 송화를 합병), 강령을 합병한 옹진(개편안에서는 강령이 옹진을 합병) 등이 있다. [5]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에 경부선 대전역이 개통되며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고 1906년 월경지 땅거스러미 정리로 회덕군에 편입되면서 새 회덕군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에 회덕군과 진잠군을 통합할 시 '회덕군'이 아닌 '대전군'이란 명칭을 채택하게 되었다. [6] 은진군 화지산면 논산리에 호남선 논산역이 개통되며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새 은진군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에 은진군, 연산군 노성군을 통합할 시 '은진군'이 아닌 '논산군'이란 명칭을 채택했다. [7] 김산군 김천면에 경부선 김천역이 개통되며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새 김산군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에 김산군, 개령군과 지례군을 통합할 시 '김산군'이 아닌 '김천군'이란 명칭을 채택했다. [8] 단, 이 쪽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서울에서 충주를 잇는 영남좌로의 길목이라 역참이 있고 장이 서는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영남좌로는 일제 강점기 때 경충국도라는 이름의 신작로로 정비되어 영남대로 구간과 합쳐졌고, 광주시내에 역동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도 그 흔적. [9] 그나마도 과천은 정부과천청사, 안산은 시화국가산업단지· 반월국가산업단지의 영향이 컸다. 그마저도 시화국가산업단지는 성곡동을 제외한 대부분이 시흥시 소속이다. [10] 양천군의 경우 1963년 김포군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가, 1977년 이 일대가 강서구로 분리된 것을 거쳐 1988년 양천구가 분리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11] 이들 지역은 1968년 인천에서 구제가 실시될 당시 모두 북구에 속했다. 이후 1988년 서구, 1995년 계양구가 차례대로 분리되었고, 계양구가 분리됨과 동시에 남은 지역이 부평구로 바뀌었다. [12] 구 부평군의 경우는 애매하기는 하나 부평군이 명칭을 바꾸면서 인천부 외곽 지역과 남양군 일부 지역을 편입한 것이 아닌, 부평군을 폐지하면서 부천군이라는 신설 행정구역이 구 부평군 지역을 인천부 외곽 지역, 남양군 일부 지역과 함께 편입하여 새롭게 편제되었고 군청도 옛 인천부의 읍치였던 현 미추홀구 관교동에 두었으니 부천군이 부평군의 온전한 후신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연기군 세종특별자치시의 관계와 유사한 면이 있다. 연기군 전역과 주변 도시의 일부 지역을 편입해 새롭게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사례와 유사하다. [13] 중심지였던 청안면은 그대로 괴산군에 남아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청안군 자체가 청당+도안이었기에 옛 도안현 중심지만 독립했다고 보면 된다. [14] 참고로 원래 천안이었던 지역을 빼면 구 목천군은 동남구, 구 직산군은 서북구에 정확히 들어가며 원래 직산이었던 성거읍에는 서북구청도 들어왔다. 다만 천안은 수도권으로의 접근성 덕을 본 것도 없지 않다. [15] 현풍과 언양은 2024년 기준으로 예전 같았으면 각각 현풍+유가, 언양+삼남 지역을 합쳐서 시 승격도 가능했을 인구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과거 군역 기준 전체 인구는 아직 10만을 넘기지 못했다. [16] 만약 신도시 개발이 더 빨랐다면 잠깐 동안 교하시가 되었을 수도 있다. [17] 읍면 단위로 가면 이 시기에 폐지되었던 면들 중 일부는 출장소를 거쳐 거의 다 또는 온전히 복구되기도 했다. 남양주시의 조안면(구 초부면)과 오남읍(구 건천면의 절반), 포천시의 화현면(구 동촌면), 칠곡군의 기산면(약목면에 합쳐졌다가 부활), 울주군의 삼동면 등이 그 예시. 그 외에도 김포시 통진읍, 남양주시 수동면처럼 전에는 완전히 없던 읍면이 새로 조합되기도 했다. 간혹 가다 팔당리처럼 다른 리에 합쳐졌던 동/리가 복구된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18] 예외로 구 음죽군의 경우 과거 중심지가 읍으로 승격할 때 장호원읍으로 이름이 바뀌어 읍면 단위에서 음죽 지명이 없어져 버렸다. [19] 현재는 장승포시가 분리되었다가 통합되면서 거제시가 되었다. [20] 지도군이 명칭만 바뀌어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지도가 군의 중심지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목포에 종속되어 버렸으니 좀 모호하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신안이라는 이름부터가 '새로운(新) 무안(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1] 1963년 부산직할시 출범 이후 동래군이 옛 기장군(+ 울산군 서생면, 이후 서생면은 1983년 반환) 일대만 남다가 1973년 폐지 이후 양산군으로 넘어간 것을 거쳐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바뀌면서 그쪽으로 넘어가 다시 부활했다. [22] 과거에는 온양시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도농통합으로 9년 만에 아산시로 합쳐졌다. [23] 모든 폐지됐던 군이 다 복군된 건 아니어서 흡곡군, 장련군, 함종군 등 거기서도 복군되지 않은 지역은 있다. 또한 북한의 철원군은 이름만 철원이지 사실상 삭녕+안협 지역이고 김화군의 경우 금성권이 대부분이고 오리지널 김화 대부분을 남한에 다 내줬는데도 금성군으로 개칭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요덕군, 명간군처럼 전에 없던 군을 새로 만든 경우도 많았다. [24] 가령 황해도의 경우 기존 군이 비교적 온전히 부활한 경우는 연안군, 배천군, 강령군, 토산군, 풍천군(과일)이 있고 문화군의 경우 송화의 일부와 합쳐 삼천군이 되어 있다. 평안도의 경우는 증산군, 숙천군, 순안군(순안구역), 자산군(평성시), 상원군, 은산군, 곽산군이 부활했다. 함경도는 애초에 1914년 때 폐군된 곳이 없다. [25] 다만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원시 팔달구 영동(법정동)처럼 결국 새 지명으로 못 바꾸고 굳어진 일제 흔적이 별 문제 되지 않는 곳들도 종종 있다. 어감 자체는 나쁘지 않아서 그런 듯. 북한의 경우는 지명이야 다 자기 식으로 뜯어고쳤지만 김책시 같은 예외를 빼면 도농분리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26] 조선시대 때 괴산과 연풍은 충주목, 청안은 청주목 관할에 있었다. [27] 청안의 '안'에 해당하는 구 도안현 일대 [28] 그리고 옛 안산군의 중심지였던 수암동 1994년까지는 안산시가 아닌 시흥시 소속이었다. [29] 이 논의에서는 보통은 광주군의 실질월경지였던 의왕시까지 논의에 넣는 편이다. [30] 원래는 광명시도 서울에 편입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바뀌면서 이렇게 된 것. 이 때문인지 광명은 지금도 서울 편입론이 종종 나온다. [31] 인구는 아직도 5만 이상이라 시 승격 때 분동됐으나 복지 사각지대 문제로 읍으로 돌아간 것이다. 분동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네이버 지도에서 남양읍 내 행정리 센터가 남양n리가 아니라 남양n으로 시작하는 것이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