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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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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동도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이다.

2. 선사시대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으로 섬 3개로 분리되었다.

3. 원삼국시대

마한의 국가 중 하나인 소석삭국으로 비정된다.

4.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원래 교동도의 지명은 대운도 또는 고림, 달을신이라고도 불렸으나, 고구려 강화도를 차지한후로 고목근현이었다.

신라가 강화도를 차지하고 나서 경덕왕대에 교동현[1]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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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려 시대

수도 개경과 가까워, 국제교역의 중간 기척지 역할을 하였다. 한편 한강과 임진강 하구가 만나는 지점을 감제하는 요충지여서 항상 정예병력이 상주하고 있고, 수도와 가까워 감시가 용이한 점 때문에 왕과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하였다.

6.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도 한양과 가까워 강화도와 함께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각광받았던 곳이다. 대표적으로 광해군 제주도로 이배되기 전 여기서 잠시 지냈고, 연산군도 여기 유배되어 사망했다. 그 외에도 임해군, 영창대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화완옹주, 영선군( 고종의 조카 이준용) 등이 여기에 유배되었다.

수군 수영인 경기수영의 본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 말~조선 초 대문호였던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이 매력을 느껴 독서를 하고 시를 쓰며 수양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2]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어 경기수영 예하 함선과 병력이 항시 주둔했으며, 인조 시대에 경기수영, 황해수영, 충청 수영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었다.[3] 남양 도호부에 있던 경기수영을 여기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4]되었다.

이는 1629년의 일로 삼도수군통어영이 교동에 설치될때 교동읍내도 같이 이전하였다. 원래는 고목근현부터 현재 교동면 고구리 고읍마을에 교동읍내가 있었고 현재도 고구리에 가면 옛 구교동읍성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최초의 향교로 알려진 교동향교 또한 고구리 화개산 산기슭에 있다가 현재의 읍내리 교동향교 자리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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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근대 ~ 현대

1894년 1차 갑오개혁 때 경기수영/삼도수군통어영을 폐지하면서 강화부에 흡수되었다.

2차 갑오개혁으로 1895년 23부제를 실시할 때 복구하면서 인천부 교동군[5]이 되었다. 1896년에 23부를 13도로 개편하면서 경기도 교동군[6]이 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정책에 따라 교동군이 강화군에 통합되었다.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섬 북쪽을 따라 흐르는 한강은 남북이 대치하는 중립수역이 되었고 전쟁 이전까지 대한민국령이었던 연백군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이 바라보이는 교동도에 많이 정착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강화버스 18번과 자동차로 교동도를 갈 수 있게 되었다.


[1] 옛 강화부 서쪽에 교동도 석모도를 관할한다. [2] 동국여지승람 [3] 기존에 삼도수군통제사가 지휘하지 않는 경기수영, 황해수영, 평안수영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라고 서술되었으나, 수영 항목에서 보듯이 삼도수군통어영은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수군을 지휘했다. 충청도 수군은 대일 작전에일 때에만 삼도수군통제영을 따랐고, 대중 작전에일 때에 삼도수군통어영을 따랐다. 평안도에 수영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평안도 관찰사가 평안수사를 겸임해 지휘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워낙 유명해서 교동에 있는 것도 삼도수군통제사라고 오인하는 경우[7]도 있지만 삼도수군통어영이 맞고, 지휘관은 삼도수군통어사이다.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라고 잘못 아는 사람 중에는 교동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는 설명만 보고 이순신이 교동에서 근무한 걸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4] 동시에 남양도호부는 남양현으로 강등 [5] 하위 행정구역을 부, 목, 군, 현에서 군으로 통일했다. [6] 23부제를 폐지했지만 부, 목, 군, 현을 군으로 통일한 건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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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동도의 교동읍성 남문지에 설치된 설명문에도 경기, 황해, 충청의 수군을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제사라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