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4 14:45:43

낙안군


낙안군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보성군 벌교읍 일대이다. 그리고 이곳이 해체 됨으로써 보성과 벌교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벌교읍 문서 참조.

1. 낙안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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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래 보성군과 낙안군의 영역을 현재의 읍면 경계를 참고하여 그린 지도. 큰 변동은 없었으며 이 영역이 1908년 낙안 폐군 이전까지 유지되었다.[1]

원래 현재의 벌교읍 일대는 낙안읍성으로 잘 알려진 낙안군(樂安郡)이라는 독립된 고을에 속해 있었으며, 조선시대 이래로 낙안군의 최대 중심지는 낙안읍성 일대였고 벌교는 고을의 남쪽 변두리의 작은 포구 겸 장터 마을이었다.

낙안군은 백제 때는 분차군(分嵯郡)이라고 불렸다. 757년에 분령군(分嶺郡)으로 개칭하고 충렬현(忠烈縣)[2], 조양현(兆陽縣)[3], 강원현(薑原縣)[4], 백주현(栢舟縣)[5] 4개의 속현을 관할했다. 940년에 낙안으로 개칭되었고 나주의 속현이 되었으며, 이전에 관할하던 4개의 속현은 보성군으로 이관되었다. 동시에 충렬현, 강원현, 백주현은 남양현(南陽縣), 두원현(荳原縣), 태강현(泰江縣)으로 개칭되었다. 후에 다시 낙안군으로 승격하였다. 원래는 현 벌교읍 고읍리에 관아가 있었으나, 조선 초에 왜구가 들끓자 더 내륙인 낙안읍성 자리로 이전했다. 고을 사람이 자기 어머니를 죽이는 등 범죄를 저질러 현으로 강등된 적도 몇 번 있지만 그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으로 복구되었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나주부 낙안군이 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 낙안군이 되었다. 장도(獐島), 여자도(汝自島) 등 낙안군이 관할하던 섬들은 신설된 돌산군으로 전부 이관되었다.

낙안군은 읍내면, 내서면, 외서면, 동상면, 동하면, 초상면, 초하면, 고상면, 고하면, 남상면, 남하면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지금의 벌교읍 지역은 옛 낙안군 고상면, 고하면, 남상면, 남하면(일부), 동하면, 초하면(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이 낙안군 시절의 5개 면 이름 중 일부는 지금도 '남상조경', '남상향우회', '남하로', '남하향우회', '고상 백이동우회', '고상 이장협의회' 등 관습적 지명으로 남아 상호명, 도로명, 주민 단체명 등에 쓰이고 있다. 고상, 남상, 남하가 특히 잘 쓰이는 편. 현재 법정리와 옛 낙안군 면을 대응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 고상면 - 고읍리, 낙성리, 지동리, 추동리, 징광리
  • 고하면 - 전동리
  • 남상면 - 척령리, 칠동리, 옥전리, 마동리
  • 남하면 - 장좌리, 영등리, 장암리, 대포리
  • 동하면 - 연산리, 봉림리, 회정리, 장양리
  • 초하면 - 호동리
  • 불명 : 벌교리, 장도리

[1] 웅치면, 회천면이 장흥도호부 영역으로 그려진 게 보이는데, 1914년 이전까지는 장흥 소속이 맞았다. 하지만 장흥 내에서 돌출된 지역이고 장흥읍내보다 보성읍내가 더 가까웠기에 부군면 통폐합 때 보성으로 이관되었다. [2] 고흥군 남양면 일대. [3] 현 보성군 조성면 일대. [4] 현 고흥군 두원면 일대. [5] 현 고흥군 동강면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