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12 16:38:09

공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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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읍
公州市
Gongju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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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cb316><colcolor=#ffffff> 시청 소재지 봉황로 1 (봉황동)
광역자치단체 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 1 9 6[1]
면적 868.24㎢
인구 102,651명[2]
인구밀도 118.88명/㎢
시장
최원철 (초선)
시의회
6석[3]

6석[4]
도의원
2석[5]
국회의원
정진석
상징 <colbgcolor=#fcb316><colcolor=#ffffff> 시화 개나리
시목 느티나무
시조 까치
지역번호 041[6]·042[7]
홈페이지 www.gongju.go.kr
SNS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공주읍 BI.svg
<rowcolor=#fff> BI
파일:공주읍 마스코트.png
<rowcolor=#fff> 마스코트 알밤공주와 고마곰
<rowcolor=#fff> 공주읍청
<rowcolor=#fff> 무령왕릉과 공주읍 시가지[8]
파일:공산성1.jpg
<rowcolor=#fff> 공산성

1. 개요2. 역사
2.1. 지명 유래
3. 지리
3.1. 도시로서의 입지3.2.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3.3. 향후 전망3.4. 인구
4. 교통5. 경제
5.1. 산업5.2. 상권
5.2.1. 대학 관련5.2.2. 전통시장5.2.3. 대형마트
5.3. 금융
6. 관광7. 생활문화
7.1. 교육7.2. 문화시설7.3. 치안7.4. 방송전파환경7.5. 의료기관
8. 정치9. 하위 행정구역10. 기타11. 출신 인물12.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충청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 동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동남으로는 대전광역시 계룡시, 서로는 청양군, 남으로는 논산시 부여군, 북으로는 천안시 아산시, 예산군에 접한다.[9]

면적이 충청남도 1위인 지역이다. 충청남도에서 분리독립한 지자체에게 땅을 연속으로 빼앗겼음에도[10] 이 기록은 변치 않고 남아있다.

2. 역사

원삼국시대 삼한 마한의 독자적인 거수국이 있었는지는 문헌상 확인되지 않지만, 이미 마한 시기부터 고조선계 집단이 있었던 걸로 확인되며 이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 일대에 소재했던 목지국을 비롯한 다른 경기충청전라 내륙부와 마찬가지 흐름이다. 지금이야 백제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되었지만 적어도 개로왕 시기 이전까지의 한성백제에겐 목지국과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직접 지배 지역으로 편제해야 할 다른 마한 주류 집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11]

그러나 이 공주 일대는 삼국시대에 들어서 백제 문주왕 때 처음 백제의 수도 웅진성이 되면서 백제의 핵심지로 떠오른다. 웅진성은 원래 대성팔족 중 백씨(苩氏)의 근거지로 추정되며 백씨는 특히 동성왕대에 적극 등용되었으나 이후 위사좌평 백가의 난으로 몰락하게 된다. 웅진성은 성왕에 의해 천도할 때까지 5대 63년(475~538)간 백제의 중심지였으며, 이후로도 성왕대 개편된 지방구획인 5방 중 북방의 중심지가 바로 웅진성이었다. 의자왕이 660년 백제멸망전에서 사비성을 떠나 웅진성에서 마지막으로 항거했으나 북방령 겸 웅진성주였던 예식진의 배신으로 사로잡혔고[12] 이후 당나라는 사비성 대신 웅진성을 백제 지역의 중심지로 파악해 이곳을 중심으로 웅진도독부를 설치했다.[13]

남북국시대 신라 문무왕 나당전쟁에서 당군을 축출한 이후 신문왕 9주 5소경을 정비하며 웅천주(熊川州)를 설치, 경덕왕 때 웅주(熊州)로 개칭했다. 웅주는 13개 군 29개 현, 5소경 중 서원경( 청주시)을 관할하였다. 또한 청음현(淸音縣, 신풍면), 이산현(尼山縣, 논산시 노성면)의 2개 현을 직속 영현으로 두었다.

이후 후삼국시대에는 900년대 초반에 홍기(후삼국시대)라는 호족(한국사)이 항복하며 궁예의 '고려'에 속하게 되는데, 궁예는 청주 일대를 비롯한 백제계 유민들의 정서를 민감하게 신경썼고 오히려 패서 호족들을 좀 경계했던 편이기에 궁예의 마진-태봉 국호 변경을 통한 고구려 정체성 초월은 공주 일대 호족에겐 나쁠 것 없는 변화였다. 그러나 918년도에 궁예가 쓰러지면서 왕건이 국호를 고려로 되돌리며 고구려 계승성을 분명히 하자 이때부터는 얘기가 좀 달라지게 된다. 왕건도 백제계 호족들을 포용하려고 애쓰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패서 계열 호족들은 궁예에게 받은 탄압이 워낙 막심했기에 궁예에게 아무래도 좀 더 가까웠던 백제계 호족들에게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로 인해 숙청이 끊이지 않게 되자 끝내 918년 말에는 견훤의 후백제로 귀부하게 되어 오랜만에 다시 백제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934년에 운주성 전투의 패배로 견훤의 후백제 패망이 돌이킬 길이 없이 가시권에 들어서자 왕건의 고려에게로 다시 귀부했다.

고려시대에는 동남쪽의 별개의 군현이었던 대전광역시 동북부의 비풍군(比豊郡)[14]이 회덕현(懷德縣)으로 격하돼 공주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여타 대전 일대의 현들인 유성현(儒城縣), 덕진현(德津縣), 진잠현(鎭岑縣) 또한 공주의 속현이 된다. 성종(고려)대에 설치된 10도 체제에서는 하남도에 속했으며 12목 중 하나인 공주목으로 격상되었으나 이후 현종(고려)대 개편된 5도 양계가 적용되며 양광도에 속하게 되었고 그냥 공주로 다시 격하된다. 속현이었던 회덕현과 진잠현은 명종(고려)대에 주현으로 승격되며 공주에서 떨어져나가게 된다. 또한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걸로 유명한 명학소(鳴鶴所)도 공주의 관할 하에 있었다. 충혜왕 2년에는 공주목으로 다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의 공주목은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 감영 관찰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명실상부한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이름이 자주 바뀐 충청도이다 보니 청주, 홍주, 충주와 이름을 같이 쓴 '공충도', '공홍도', '공청도' / '충공도', '청공도' 등으로 쓰인 적도 있다('홍공도'와 '청충도'는 쓰인 적이 없다). 다 잠깐씩만 썼지만 '공홍도', '공청도', '공충도'는 한 30년씩 썼다. 다 공 자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감영 소재지답게 충청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1906년 대대적으로 월경지, 땅거스러미를 정리할 때 구 회덕현 일대는 회덕군으로 넘어갔으나 유성 지역은 계속 공주에 잔류했다. 남은 유성 지역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옆의 진잠군, 회덕군이 통합되어 생긴 대전군에 편입되어 현재의 대전광역시 시역을 형성하게 된다.( 대전광역시/역사 문서로.) 같은 해 명탄면, 양아리면 등의 지역이 연기군에 흡수되었고, 금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이 결정된 직후 공주면이 공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공주읍이 공주읍로 승격되었다.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공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2012년 7월 1일 장기면 일부, 의당면 일부, 반포면 일부 지역이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2.1. 지명 유래

곰나루(고마 나루)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 이곳에 살던 남자가 산[15]에 오르다가 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보고 첫눈에 반해 며칠 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느날 남자는 여자가 귀한 고기를 매일 얻어오는 것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어디서 얻어오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몰래 여자를 뒤쫒아 갔는데, 여자는 곰의 모습으로 변해 산짐승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암컷 곰은 인간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을 알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남자를 동굴에 가두고 남편삼았다.[16]

이후 암컷 곰은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여럿 낳았다. 하루는 암컷 곰이 남자를 가둔 굴을 실수로 바위로 막아 놓지 않았는데,[17]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남자가 도망가자 암곰은 매우 슬퍼하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금강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훗날 이 전설에 따라 그곳은 '곰나루',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했으니 오늘날 공주의 기원이다.

신라의 삼국 통일과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웅천주(熊川州, 웅주)로 개칭되었다가[18] 조선시대 이후로는 쭉 공주라 불렸다. 공주의 '公(공)'은 '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옛날에는 '공주'라 쓰고 '곰주'라고 읽었다. 즉, 지명으로 쓰일 때 '공주'의 '공(公)'은 '곰'에 해당하는 음가로 읽었다는 것이다.

지명 유래에 따라 공주읍의 마스코트도 을 쓰고 있다.

3. 지리

세종실록지리지 공주목

인구는 2022년 3월 기준 약 103,214명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상황이다.

대동강을 낀 평양시, 한강을 낀 서울특별시 등은 모두 굴지의 대도시들로 성장했지만, 정작 이 공주읍의 경우에는 충청도 최대의 금강을 끼고도 오히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부선이 지나가는 일개 촌구석이었던 한밭에게 밀려 주저앉아 버렸다.[19] 비슷한 특징을 가진 도시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경상북도 상주시가 있다. 역시 전통적인 도내 주요 도시였지만( 전라도의 '라'가 바로 나주, 경상도의 '상'이 바로 상주), 바로 옆에 근현대에 새로운 도청소재지( 광주광역시) 또는 신흥 교통요지·산업도시( 김천시· 구미시)가 성장하여 쇠퇴한 경우에 해당된다.

차령산맥이 지나가며, 그러다보니 시 서쪽은 산이 많으며 그 사이를 흐르는 하천들을 따라 좁은 평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원도심 역시 월성산과 일락산 사이에 있는 좁은 평지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가지가 확장되기 어려우며, 따라서 금강 건너 평지가 있는 신관동에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다. 그 외 우성면, 의당면에 평지가 어느 정도 있어 금강 이북은 분지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오히려 계룡면부터 평지가 형성되면서 남쪽 논산시로 연결되는 구조.

지질 구조가 복잡하며 단층도 지나간다. 이에 대해서는 위키백과를 참조

3.1. 도시로서의 입지

전근대에 공주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평지가 없는 대신 강변 수심이 깊어 도강하는 나루터로서 적합했으며, 이 나루터를 활용해 금강 수운의 최대 교두보로 성장하였다. 전근대 시대에는 분명 공주-곰나루는 분명 하삼도와 한양을 잇는 물류이동의 중심지였다. 허나 철도와 교각 건축기술이 발달하고 강을 통한 수운이 없어지면서 두 장점 모두 쓸모없게 된 것이다. 즉 철도가 경유하든 경유하지 않았든 공주읍가 근대화 과정에서 중심지의 지위를 잃고 쇠락한 건 근현대 도시의 입지로 적절하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 구한말 일본 경부선을 건설할 때 공주를 경유하도록 돌아가려고 했으나, 양반 및 유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호남선마저 피해가서 대신 한낱 시골동네에 불과했던 한밭 어부지리로 급성장했다"라는 유생 반대설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문서에서도 보듯 특별한 반대 운동은 없었고 애당초 일본 제국은 그런 걸 그리 신경 쓰지도 않았다. 사실 경부선을 비롯한 간선 철도가 경유함에도 발전 못 한 지역도 있고( 조치원, 옥천군, 영동군, 김천시, 칠곡군, 청도군, 밀양시[20], 논산시, 익산시, 김제시, 정읍시, 장성군, 나주시 등)[21], 빗겨 나갔음에도 대도시로 성장한 지역( 울산광역시, 광주광역시[22], 창원시, 청주시, 전주시)도 있기 때문에 철도 경유의 문제로만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비슷하게 주요 간선철도가 비켜간 도청소재지였던 청주, 전주, 해주, 광주, 춘천은 적절한 타이밍에 사설철도가 공급되어 도청소재지 지위를 지켜낼 동안 유독 공주만 청주와 개싸움 벌여 간신히 관철시킨 사철 부설계획마저 무산된 것을 보면 입지조건에 따른 차이는 명확하다.

호남선이 들어선 나주시의 사례를 보면, 전근대 전남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나주에는 호남선이 경유한다. 그에 반해 광주광역시는 호남선이 10km 이상 떨어진 송정리로 빗겨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6년 전라남도청이 광주로 이전하면서, 나주는 호남 중심지의 지위를 광주에 뺏겼고, 그나마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할 호남선은 2003년 말 완전히 복선화가 되기 전까지 단선으로 운행되었으며, 철도청이 경부선을 중시하느라 다른 노선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주는 호남선 철도가 통해도 오히려 쇠락하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경부선이 공주를 경유했다면 공주가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었으리라 가정하고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공주읍가 나주시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공주읍는 시가지(동 지역)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0,000명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2021년 기준 59,763명), 나주시는 시가지 인구가 30,000명대 초반까지 떨어졌다(2021년 기준 30,520명, 혁신도시 제외).[23]

3.2.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문제 때문에 연기군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사실 이 문제는 공주읍 주민으로서는 충청남도청 다른 곳으로 뺏겨버린 탓에 다른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이 온다는 소식으로 일개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었다. 그런 이유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을 완벽하게 발라버리게 된다.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어 장군면이 된 옛 장기면은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 시절 행정수도 후보지로 선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개발계획 최종안까지 완성했으나, 1970년대 말 경제위기 10.26 사태로 결국 백지화되었다. 지금의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보다 좀 더 공주읍내에 인접한 곳인데다가 행정수도 시가지의 서쪽 지역(현 신관동 일대)이 공주읍내와 연담되는 위치였기에, 행정수도 이전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공주읍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말단 실무자로 참여했던 김진애 의원의 포스팅. 박정희의 수도이전 계획과 현 행정도시의 입지 비교

세종특별자치시는 공주읍민들로서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이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 이후 인접 도시 중 인구가 제일 적은 공주읍의 경우는 더욱 타격이 커서 상생 위기라는 기사도 나왔고, 통합 떡밥도 나왔으며, 도지사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로 옆 세종시에는 새 아파트, 새 시설이 즐비하고 도시의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기존에 공주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유입인구가 적은 관계로 인구 감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3.3. 향후 전망

계속된 인구감소 속에서도 2021년 5월, 도내 시군간 인구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남도가 대전·세종과 접한 지역을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워 공주읍 송선동과 동현동에 신도시를 개발하고 이와 연계하여 공공기관 유치활동도 들어갔다.

동현동/송선동 신도시가 조성이 될 예정에 앞서 공주읍의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한데, 공주대학교 공주교육대학교에 다니기 위해서가 아닌 이상 공주읍에 들어올 만한 이점이 전혀 없다. 우선 젊은층이 먹고 살 만한 마땅한 직장도 없는 관계로 당장 공주대학교나 공주교대를 졸업해도 공주읍에서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게 아닌 이상 공주에 남아서 직장 갖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상권도 처참하며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심지어 대형마트도 없기 때문에 젊은층 입장에서는 굳이 공주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서울이나 기타 수도권에 대한 교통도 버스 뿐이기 때문에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불편하다. 그리고 향로가 나오고 무덤이 나오고 금관이 나온 터라 그렇다는 말이 있다. 다른 부지가 있으면 유적지를 피해 그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면 그만인데[24] 공주는 부지도 좁아터져서 남부 구시가지는 이미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고 강북 신시가지 역시 신관동 인구 2만명도 못 채우고서 벌써 평지란 평지는 다 차버린지라 그냥 언덕 위에 신도시를 만들어 버리거나 아예 산을 밀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며 인근의 세종특별자치시를 배경으로 한 식샤를 합시다 2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인구유입이라도 하려면 대전·세종의 위성도시화를 감수하더라도 인근 도시의 배후지역으로의 개발이라도 해야 한다. 즉 행정복합도시에 근무하는 인력의 베드타운 목적으로 36번 국도변의 주거단지를 개발한다던가[25], 대전광역시의 배후지역 및 관광지로 동학사 인근을 개발한다던가.[26] 물론 이런 개발은 단일한 자족도시화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인근지역이 죄다 충청도에서도 내로라하는 도시들[27]로 둘러싸인 공주가 자족도시로 남기는 매우 어렵다. 공주읍에서는 이 점을 인지하고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3.4. 인구

파일:공주읍 CI.svg 충청남도 공주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202,635명
1970년 184,131명
1975년 183,022명
1980년 167,331명
1985년 152,153명
1986년 공주읍 → 공주읍 승격 분리
1990년 158,030명 (공주읍 65,163명 + 공주군 92,867명)
1995년 공주읍 + 공주군 → 공주읍로 통합
1995년 138,069명
2000년 135,589명
2005년 129,489명
2010년 124,930명
2015년 111,261명
2020년 104,545명
2022년 11월 102,65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0만 명
읍면동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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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동 19,528명
월송동 14,826명
웅진동 8,010명
옥룡동 7,665명
유구읍 7,146명
금학동 5,368명
계룡면 5,306명
우성면 5,107명
정안면 4,740명
중학동 4,526명
의당면 4,522명
반포면 4,224명
이인면 3,128명
신풍면 3,126명
탄천면 2,868명
사곡면 2,827명
}}}}}}}}} ||

4. 교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공주읍/교통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철도는 호남고속철도 공주역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어서 철도를 이용하려면 사실상 논산이나, 천안, 조치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28] 대신 도로교통이 발달했다. 논산천안고속도로,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천공주고속도로가 지나고, 국도 역시 천안, 대전, 세종, 예산, 청양, 부여 등 충남권 각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도로망이 매우 훌륭하다.

5. 경제

5.1. 산업

농업과 양잠‧낙농‧양돈 등의 농업이 성하다. 이 특산물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정안면의 정안 밤이 등록되어 있다. 다만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해 관광쪽으로는 큰 수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29]

게다가 장기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편입되면서 지역에 얼마 안 되는 큰 공장 중 하나였던 남양유업 공주공장까지 함께 세종시로 편입되어버려서 안 그래도 안 좋은 공주읍의 재정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이다.

다만 아예 제조업이 전무한 것은 아닌데 유구읍에 웅진식품, 코웨이, 도레이 첨단소재(구 웅진케미칼), 계룡면에는 CJ제일제당 등 대규모 공장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코웨이는 아예 공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30] 이들 상당수가 웅진그룹 자회사이거나 자회사였던 기업들로 이는 유구읍이 고향이었던 웅진그룹 창립자인 윤석금 회장의 영향이 컸다. 남양유업이 떠난 지금 사실상 공주대학교와 함깨 공주를 먹여살리는 원동력이다. 단지 시내가 아니라 예산과 가까운 유구읍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주읍내에 그다지 파급이 크지 않을뿐이다. 그나마 공주읍내에 가까운 곳이 월미동에 위치한 월미농공단지인데 GS리테일 일일배송센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다.

2000년대 들어서 무려 5방향 고속도로망이 건설된 지금도, 하다못해 연기산업단지가 공주에 있는 어느 산업단지보다도 큰 실정이다. 그나마 2019년 터진 한일 무역 분쟁과 이로 인한 부품·소재 국산화 바람을 타고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인 솔브레인이 검상산업단지에 대대적으로 라인을 증축하는 등의 성과가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애터미가 경찰서 뒤에 본사를 세웠다. 생각보다 규모가 되며, 덕분에 공주읍 지방세 납부 1위다.

5.2. 상권

공주읍 상권은 전적으로 공주대학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공주대학교 대학로는 타 지역의 다른 대학 대학로에 비하여 높은 물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저렴한 대학로를 생각하고 가면 큰코 다칠 수 있다.

금강을 기준으로 남서(아래)쪽의 구 시내는 롯데리아가 패스트푸드 상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이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를 넘어 시민들의 전형적인 외식 장소로도 자리잡았다. 이러한 롯데리아의 위상은 중구난방으로 나 있는 강남의 교통망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은 입지에 있기 때문이다. 해당 지점 바로 옆에 소규모 초등학교가, 길 건너편에 농협이 있으며 500m 반경 안에 학교만 8개가 있고 시내에서도 상업 중심지에 속하는 위치이다. 실제로 롯데리아가 있는 장소는 공주읍내 전 지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다. 반면, 강북의 신관 쪽은 계획 도시로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도로망도 잘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입지 조건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해 딱히 한 업체나 한 업종이 독점하는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2001년 말 중동에 맥도날드가 입점하였으나 롯데리아 햄버거에 익숙한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해서인지 1년여 만에 롯데리아와의 경쟁에서 패퇴하여 다시 롯데리아가 독점 중이다. 2010년 하반기, 신관동에서 롯데리아를 유일하게 견제하던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문을 닫았다. 대신, 롯데리아 근처에 맘스터치가 있고 심지어 서브웨이도 있다.

2010년에는 시내에 던킨도너츠가 입점, 대학교 근방에 까페가 성업하면서 엔제리너스, 까페베네, 탐앤탐스 등이 입점했다. 하지만 배산임수의 지형의 이점을 많이 본다.

공주 요식업 중 가장 성업하는 것은 카페로, 투썸플레이스의 대단한 성업에 이어 마침내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공주의 카페 산업은 정점을 맞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신관초등학교 주변 4차로 이상의 도로와 연결도로 등을 다니다보면 다 보인다. 물론 대학로 방면이 해당되는 거지, 아파트 단지나 법원 일대는 없다.

고등학생들을 타겟으로 한 상권은 강남 중동 부근, 공주고등학교에서 시작해서 웅진로를 따라 쭉 뻗어있는 거리에 대부분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공주사대부고, 공주고, 영명고 등 공주 내 주요 인문계 고등학교가 사이좋게 거의 정삼각형의 구도로 마주보고 있는 곳이고, 도로가 중구난방으로 뻗어있는 강남 중에서그 그나마 직선형으로 뻗어있는 큰 도로이기 때문에 큰 가게들이 들어서기 쉽기 때문이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값싸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이 여럿 있고, 학생들이 자주 찾는 서점, PC방, 노래방, 약국 등의 가게도 밀집해 있는 편이다.

농담 삼아서 공주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사진관, 미용실, 병원이라고 한다. 우선 사진관의 경우 강북 기준으로 단 2군데이며, 학교 후문 근처가 아닌 다른 사진관의 경우 임용고시를 치는 사범대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임용고시 응시용으로 원서 사진을 찍고, 임용고시 원서를 넣고 보니 교육청에서 원서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연락이 올 정도로 일처리가 미숙하다.[31] 그래서 사범대생들은 보통 학교 후문 근처의 사진관만 이용하거나, 대전 혹은 출신 지역에서 찍어온다.

미용실도 상권인 대학교 밀집지역 외에는 매우 적은데다가 이마저도 폐업들을 많이했다.

5.2.1. 대학 관련

공주읍의 주된 부가가치 창출은 단연 '원룸업'에서 이루어진다. 강북의 공주대학교를 중심으로는 수많은 원룸과 여러 상권이 발달해 있으며, 강남의 공주교육대학교를 중심으로도 수많은 원룸이 자리하고 있다. 원룸과 별개로 이들 두 대학교는 공주의 경제를 지지해주는 엄청난 기반으로, 2011년 두 대학교가 통폐합되어 세종시로 이전하려 하자 인근 상인들이 대학교 본부에 난입해서 총장과 면담을 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특히,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강남 지역의 경우 총장을 면담한 상인들이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시청에도 난입하여 시장 면담을 요구하였고, 시장 면담이 불발되자 바로 옆에 있는 시의회 의장실에 들이닥쳐 시의회 의장과 면담을 하기도 하였다.

두 대학교의 재학생이 공주대는 1만여 명이고 공주교대는 2천여 명으로[32] 1인당 하루에 쓰는 금액을 최소 1만 원씩만 잡아도 일일 최소 1억 원의 돈이 공주읍에 풀리는 것이다. 방학을 고려한다면 1년 동안 이 두 대학교로 하여금 공주에 풀리는 돈은 최소한 120억 원 정도인 것이다. 또 이러한 수입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으로 돌아가므로, 웬만한 기업체나 공장이 들어와 있는 것보다도 도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공주읍의 경제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반증이 된다. 공주대 정도 규모의 대학이라면 어느 도시가 되었건 간에 지역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부 타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시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면 문제가 좀 심각하다. 어느 정도나면, 신관동 대학로에서 방학을 버텨내는 가게는 쉽사리 망하지 않는다는 도시 전설도 있을 수준.

옆동네 조치원읍만 해도 이 정도로 대학생 없으면 도시가 굶어죽는다고 할 수준은 아니다. 이러면 해당 주민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 보장될지 모르지만 세금 걷어서 써야 하는 시청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 된다. 기업은 고사하고 해봐야 원룸업이나 식당 같은 저차원 영세 서비스업으로만 도배되니 충분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재정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비도시권 지역의 낙후된 인프라와 창업 또는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남겨보고자 무리한 치킨게임을 하는 안일한 마인드를 가진 지역상인들의 시너지로 일어나는 가장 흔한 지역침체 현상이다. 가게를 꾸리고 장사를 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가계와 지역 모두에 아무런 긍정적 소득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33] 게다가 똑같은 1만 명이라고 해도 공장이나 기업 등 일자리로 인해 유입된 1만 명과 대학생 1만 명은 구매력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5.2.2. 전통시장

산성동에 공주산성시장과 유구읍에 유구전통시장이 있다. 공주산성시장은 그다지 특색이라고 할 것 없는 일반적인 전통시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 곳곳에 유명한 맛집들이 숨어 있다.(예: 잔치국수로 유명한 청양분식) 그리고 매년 야시장이 여기서 열리고 있으니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여담으로, 공주 산성시장의 버스정류장의 영명으로 acid market 이라고 표기하여 시청에 민원이 올라갔던 적이 있다.[34]

5.2.3. 대형마트

결론부터 말하면 전국 시단위 지역 중 대형마트가 없는 2개 시 중 하나다. 하지만 구리시의 경우 롯데마트 구리점이 한때 존재했었고 롯데마트 폐업 이후 대형마트는 없지만 백화점은 있으며 서울시 중랑구, 남양주와 바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 접근성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므로 한번도 대형마트가 있었던 적이 없는 공주와는 경우가 다르다.[35]

공주에 대형마트가 없는 것은 과거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제한하는 조례가 있었던 영향이 크다. 인구 규모 문제라는 의견도 있으나 공주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홍성군, 양평군은 물론 공주읍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태백시 삼척시, 심지어 조치원읍에도 대형 마트가 있으니 별 설득력은 없다. 이러다보니 지역 내에 그나마 이름 있는 유통업체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운영하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유일하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바로 월송동에 들어서는 복합쇼핑센터 계획에 대형마트가 들어가 있으며 시에서 이 계획을 승인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복합쇼핑센터는 현재 공사가 중단 된 상황이며 공주읍의 인구 규모나 지역 사정,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해나가는 유통업계의 상황을 고려하여 사업자 측에서 신규 개장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 공주읍청의 답변으로 볼 때 사실상 계획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애초에 대형마트가 들어설 정도의 상권 규모가 안된다는 이야기.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2018년 10월 25일부로 노브랜드 전문점이 신관파출소 옆 부분에 생기게 되었다. GS슈퍼마켓처럼 노리고 입점했을 수도 있겠지만, 신세계 계열사가 입점한 것은 분명하다.

5.3. 금융

공주읍에 위치한 금융기관 [괄호]
제1금융권 [괄호]
국가기관
공주우체국 (12)
특수은행
농협은행(중앙회) (3)
시중은행
우리은행 (1)
하나은행 (1) 국민은행 (1)
제2금융권(상호금융) [괄호]
농업협동조합
공주농협 (6) 반포농협 (2) 계룡농협 (2) 이인농협 (1)
사곡농협 (2) 유구농협 (2) 의당농협 (1) 우성농협 (2)
정안농협 (2) 세종공주축협 (2) 신풍농협 (1) 탄천농협 (1)
세종공주원예농협 (2) 천안공주낙농농협 (1)
새마을금고
대성새마을금고(1) 유구새마을금고(1) 합동새마을금고(3) 이인새마을금고(1)
신용협동조합
웅진신용협동조합(3) 삼성신용협동조합(2) 백제신용협동조합(3)
산림조합
공주읍산림조합 (1)

6. 관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문화유산이 3곳이나 있다는 것으로 공주의 관광자원을 설명할 수 있다.

1. 백제역사유적지구 - 공산성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옛 송산리 고분군)
2.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 마곡사

이 외에도 백제의 여러 유적지가 있고, 시설로는 국립공주박물관, 휴양지로는 계룡산 국립공원 등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관리소홀과 지자체의 무관심에 관광 산업으로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 몇 안 되는 관광지조차 전반적으로 유적 같은 조용한 분위기의 것들밖에 없다 보니 이런 쪽을 유난히 좋아하는 역사덕후 혹은 가족단위로 조용히 쉬러 온 거라면 모를까, 신나고 재밌는 분위기나 눈이 즐거운 볼거리를 기대하는 일반 관광객 입장에선 갈 만한 데가 딱히 없다. 과거 1990년대에 수도권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도 경주가 최소한 수학여행을 염두에 두는 관광지였다면, 공주는 그냥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소풍 장소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서울, 경주, 제주도, 설악산 만큼의 영향력있는 관광지로서의 입지는 그 당시에도 안 됐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괜찮은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적발굴과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관광도시로 발전하지 못한 도시' 라고 했다. 발로 한 발굴로 유명한 무령왕릉과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인 공산성[39], 시가지에서 참 멀리도 떨어져있는 변두리의 국립공주박물관[40] 등, 유적지 관리 실태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공주읍에 거주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참 씁쓸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공주는 위례성 함락 후 피난온 일종의 임시수도였으며 그 기간도 60년 남짓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흔히들 신라의 고도인 경주시와, 백제의 고도인 공주/부여를 비교하면서 공주를 깎아내리지만 애초에 급이 다른게 경주는 천 년 동안 수도 역할을 했었다.

게다가 대한민국 수립 시까지 남아있거나 일제에 의해 조사라도 된 유적의 절대량부터가 넘사벽이다. 유적지 발굴이나 관리가 잘 되었다고 다 관광도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애당초 일제가 경주에 집중적으로 발굴 및 조사를 한 이유도 경주에 남아있는 문화재와 유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주와 부여는 상술했듯 수도였던 기간도 짧았고 무엇보다 백제 멸망 과정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한 약탈과 방화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다. 반면, 경주는 신라 역사상 침략자에게 무너진 것이 후백제 견훤의 침공 1회 뿐이었고 그나마 그 시기도 짧았다. 신라가 고려에게 얌전히 항복한 바람에 경주는 정복군의 약탈을 면했고 이후로도 동경으로서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 경주가 파괴당한 것은 몽골 제국의 침공때까지는 가야하는데, 어차피 이 시기에는 한반도 전체가 몽골군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한 마디로 애초부터 공주에 관광도시로 발전할 만큼의 괜찮은 유적지가 있지 않다. 부여처럼 국보급 석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익산처럼 넓직한 절터와 왕궁터, 멋진 석탑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공산성도 연지 정도를 제외하면 성곽과 문루가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이고, 송산리 고분군은 발굴 유물의 가치야 높지만 '적석총'도 아니고 고분 자체에 구경거리는 없기 때문이다.[41] 경주는 종합관광개발 이전부터 수많은 불상과 석탑이 남아있던 곳이었지만, 공주에는 그런게 전무하다. 공주에 석굴암이나 불국사같은 세계유산급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백제시대 불상은커녕 석탑조차 없는 것이 공주의 현실이다. 경주나 부여에는 안압지나 궁남지 같은 크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공주에는 기껏해야 공산성 연지 같은 작은 연못밖에 없다.

애초에 유홍준 교수가 공주읍의 문화재 관리에 대해 비판했던 요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해결이 되었다. 예컨대 국립공주박물관의 경우, 위의 문단에서는 과거위치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비판을 하는데, 오히려 송산리고분군과 충청감영공원, 공주한옥마을 등 문화재 밀집공간에 위치한 것으로 매우 탁월한 장소에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유홍준 교수가 가장 크게 비판했던 것이 '무령왕릉이 중요한 이유는 이 곳에서 발굴된 유적들 때문인데, 정작 이 유물들은 엉뚱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국립공주박물관의 위치를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무령왕릉 옆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유홍준의 주장을 긍정한다면 국립공주박물관의 지금의 위치는 매우 적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적발굴도 점진적으로 이뤄지면서, 공산성에서 '백제시대 목곽고'가 발견되기도 했고, 백제시대 관청건물지와 백제 사다리가 발굴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딱히 관광도시로 발전하는데 힘을 얻을 법한 발굴성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대통사터가 발굴된 것은 고무적인 성과라 볼 수 있겠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공주읍가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관리의 문제가 아닌, 그냥 공주읍가 갖고 있는 문화자원의 한계일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주에 볼 게 없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관광도시로 발전한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백제에서 눈을 돌리면, 석장리 고분군이나 마곡사,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의 사찰, 충청감영 등의 관아시설이 있다.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우금치와 고마나루도 있었으며 특히 충청감영공원의 경우 인근의 송산리고분군, 한옥마을과의 연계가 가능하다. 마곡사나 갑사, 동학사는 보물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사찰이기도 하다. 지당자연사박물관이나 충청남도 역사박물관도 관람하기에 좋은 박물관이다. 또한 인접한 부여군과 백제문화제도 매회 개최하기고 하니까 백제 관련 컨텐츠 부분에서 두 지방자치체가 연계하면 더 컨텐츠가 늘 여지가 분명 있다.[42]

7. 생활문화

7.1. 교육





인구가 10만명 정도인 도시치고는 매우 교육열이 높은 교육 도시이다. 전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가 3곳이나 있다. 다만 공주에서 중학교를 나와서 이런 명문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수가 매우 적기에 사실상 공주를 대표하는 명물일 뿐, 모든 공주의 학생들이 공부를 엄청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두 곳의 국립대학이 있으며, 대전세종충남권역 교육대학인 공주교육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유명한 공주대학교[43]가 공주에 있다.[44] 이 같은 특징 때문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 고등교 육기관우리나라에서 모든 유형의 국립학교를 다 갖춘 단둘뿐인 도시 중 하나이기도[45] 하다.

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인 충남과학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46] 한일고등학교가 있다. 한일고는 한 학년이 160명 정도인 비교적 작은 학교이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복이 없이 전교생이 사복 생활을 한다. 2000년대 초반에 거창고 등과 함께 농어촌 자율학교로 선정되었으며 농어촌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아오던 학교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명박정부 때 대두되었던 자율형사립고와는 다른 학교분류에 속하며, 기존에 존재하던 상산고, 해운대고, 민사고 등이 자립형사립고에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 것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종종 언론에 나오는 학교 분석자료 등에는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로 분류되고 있다. 국립 개방형 자율학교인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 거기에 공주고등학교가 소재.

그러나 정작 진짜 공주읍 출신 학생들이 이런 학교들에 들어가는 진학률은 상당히 떨어진다. 충남과학고 같은 경우 몇 되지도 않는 중학교에서 1년에 2~3명 가기 일쑤이다. 한술 더 떠 한일고등학교는 역대 공주 지역에서 진학한 학생 수가 손으로 꼽힐 정도이다. 그나마 공주 학생들이 좀 가던 공주사대부고도 모집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공주읍 중학생의 진학자 수가 현격히 떨어졌다. 단 이 문제는 공주읍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 이하의 지역에 소재한 전국단위로 뽑는 학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우수한 학생들은 많고 소재지역의 학령인구는 얼마없으니 당연히 지역 출신이 적게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47]

공주읍 출신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학교는 인문계의 경우 공주고등학교, 공주영명고등학교, 공주여자고등학교, 공주금성여자고등학교가 있고 전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구 농고), 공주정보고등학교(구 상고)가 있다. 그리고 특성화고인 공주마이스터고등학교(구 공주공업고)가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남학교, 여학교가 깔끔하게 2대2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또한 공주고는 천안북일고나 대전고만큼은 아니지만 충청팜의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며 박찬호, 안승민, 조동찬, 조동화, 오재필, 김광림, 신경식, 김경문 등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금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인 강남에 봉황중학교, 생명과학고등학교, 정보고등학교를 제외한 중/고등학교가 몰려있는 반면 신관동을 비롯한 강북쪽엔 아파트 단지만 조성되고 중,고등학교는 설립되지 않은 탓에 매일 아침 출근 및 등교가 매우 빡세다. 금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다리 중 가장 넓은 다리인 백제큰다리는 약간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대개 공주대교와 금강교 두 곳을 이용하게 되는데, 두 다리를 합해도 3차선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자가용과 버스가 다리를 꽉꽉 메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엔 자식들 걱정에 자가용을 끌고 등교시켜주는 부모님들이 늘어나 어지간한 도심 못지않게 자동차들이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7.2. 문화시설

극장은 메가박스 공주점이 유일하다. 공주대학교 후문 앞에 롯데시네마가 있었으나 단 몇개월 만에 문을 닫은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7.3. 치안

수십 년 전에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사고가 별로 없는 편이다.

7.4. 방송전파환경

대전광역시와 그리 멀지 않아 라디오 양청지역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계룡산 등 각종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지형이라 시내에서 FM 라디오를 수신하기 정말 까다로우며, 오히려 외곽으로 가야 감도가 더 높아진다. 대전 지역 방송의 경우, 계룡산에 송신소를 두는 KBS대전 1라디오, KBS대전 FM, EBS FM은 그나마 잘 들리지만, 나머지 식장산에서 송출하는 방송은 수신 감도가 매우 떨어진다. 오히려 우암산에서 송출하는 청주 지역 방송을 잡는 것이 더 나을 정도다. 그래서 대전극동방송 대전교통방송은 아예 공주에 따로 중계소를 설치했다. 또한 공동체 라디오 금강FM이 공주 시내를 가청권에 두고 방송 중이다.

7.5. 의료기관

병원급으로는 공공병원이자 종합병원인 공주의료원(299병상)이 유일한 정도로 의료기관이 많지 않다. 신관동에 있던 공주현대병원 건물은 과거 예식장과 뷔페로 활용되던 곳이다. 그래서 의외로 건물 자체는 오래되었고, 2022년에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요양병원으로 전환되었다. 관내 응급실은 공주의료원만 유일하며, 상위 단계 의료서비스가 필요할 경우 대부분 대전으로 나간다.

8. 정치

8회 지선 공주읍 개표 결과
충청남도지사 선거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양승조 김태흠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1,615
(43.35%)
28,250
(56.65%)
- 6,635
(▼13.30)
51,461
(56.03%)
구 공주읍
득표율 10,912
(46.32%)
12,648
(53.68%)
- 1,736
(▼7.36)
24,142
(50.36%)
중학동[A] 42.75% 57.25% ▼14.50 52.08
웅진동[B] 42.86% 57.14% ▼14.28 53.41
금학동[C] 46.99% 53.01% ▼6.02 49.33
옥룡동[D] 39.26% 60.74% ▼21.48 50.67
신관동[E] 48.28% 51.72% ▼3.44 46.15
월송동[F] 51.11% 48.89% △2.22 53.84
구 공주군
득표율 7,745
(38.01%)
12,633
(61.99%)
- 4,888
(▼23.98)
21,234
(56.16%)
유구읍 33.34% 66.66% ▼33.32 59.05
이인면 36.52% 63.48% ▼26.96 57.89
탄천면 37.42% 62.58% ▼25.16 55.87
계룡면 37.78% 62.22% ▼24.44 54.16
반포면 37.64% 62.36% ▼24.72 52.67
의당면 45.63% 54.37% ▼7.74 55.27
정안면 38.24% 61.76% ▼23.52 54.44
우성면 41.55% 58.45% ▼16.90 57.54
사곡면 36.57% 63.43% ▼26.86 58.06
신풍면 35.83% 64.17% ▼28.34 56.00
후보 양승조 김태흠 격차
거소투표 42.98% 57.02% ▼14.04
관외사전투표 49.97% 50.03% ▼0.06
국회의원
선거구
양승조 김태흠 격차 투표율
공주·부여·청양[54] 43.05% 56.94% ▼13.89 58.16
후보 양승조 김태흠 격차 투표율
동 지역[G] 46.32% 53.68% ▼7.36 50.36
읍·면 지역[H] 38.01% 61.99% ▼23.98 56.16
공주읍장 선거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김정섭 최원철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2,327
(44.84%)
27,463
(55.15%)
-5,136
(▼10.30)
51,464
(56.03%)
구 공주읍
중학동[A] 44.19% 55.80% ▼11.61 52.08
웅진동[B] 44.04% 55.95% ▼11.91 53.42
금학동[C] 48.91% 51.08% ▼2.16 49.32
옥룡동[D] 40.90% 59.09% ▼18.19 50.68
신관동[E] 49.73% 50.26% ▼0.52 46.14
월송동[F] 52.82% 47.17% △5.65 53.83
구 공주군
유구읍 28.73% 71.26% ▼42.52 59.05
이인면 39.59% 60.40% ▼20.80 57.89
탄천면 41.91% 58.08% ▼16.17 55.94
계룡면 40.09% 59.90% ▼19.80 54.16
반포면 40.61% 59.38% ▼18.76 52.67
의당면 46.23% 53.76% ▼7.52 55.29
정안면 39.71% 60.28% ▼20.57 54.36
우성면 50.02% 49.97% △0.04[63] 57.56
사곡면 37.52% 62.47% ▼24.94 58.05
신풍면 34.93% 65.06% ▼30.13 56.00
후보 김정섭 최원철 격차
거소투표 46.61% 53.38% ▼6.77
관외사전투표 51.34% 48.65% △2.69
20대 대선 공주읍 개표 결과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이재명 윤석열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8,472
(41.71%)
37,339
(54.70%)
- 8,867
(▼12.99)
68,872
(75.11%)
구 공주읍
득표율 14,969
(44.38%)
17,466
(51.79%)
- 2,497
(▼7.40)
33,992
(72.35%)
중학동[A] 41.81% 54.77% ▼12.96 73.16
웅진동[B] 41.46% 55.07% ▼13.61 74.06
금학동[C] 43.81% 51.80% ▼7.99 70.49
옥룡동[D] 38.91% 57.72% ▼18.81 71.25
신관동[E] 45.51% 50.39% ▼4.88 69.41
월송동[F] 49.11% 46.96% △2.15 75.97
구 공주군
득표율 9,741
(36.31%)
16,277
(60.67%)
- 6,536
(▼24.37)
27,075
(73.61%)
유구읍 31.18% 65.92% ▼34.74 73.34
이인면 37.77% 59.79% ▼22.02 73.68
탄천면 35.75% 60.05% ▼24.30 70.84
계룡면 36.53% 61.19% ▼24.66 73.38
반포면 35.15% 61.40% ▼26.25 74.04
의당면 43.97% 52.82% ▼8.85 74.13
정안면 37.60% 59.18% ▼21.57 73.05
우성면 37.17% 59.85% ▼22.68 75.40
사곡면 34.17% 63.00% ▼28.82 73.18
신풍면 34.29% 62.56% ▼28.28 74.08
후보 이재명 윤석열 격차
거소·선상투표 35.58% 60.12% ▼24.54
관외사전투표 48.62% 46.82% △1.80
재외투표 62.69% 34.33% △28.36
후보 이재명 윤석열 격차 투표율
공주·부여·청양[70] 38.84% 57.65% ▼18.81 73.78
후보 이재명 윤석열 격차 투표율
동 지역[G] 44.38% 51.79% ▼7.40 72.35
읍·면 지역[H] 36.31% 60.67% ▼24.37 73.61
21대 총선 공주읍 개표 결과
국회의원 선거 (공주읍·부여군·청양군)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박수현 정진석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9,315
(48.62%)
28,128
(46.65%)
+ 1,187
(△1.97)
61,117
(6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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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공주읍
득표율 15,858
(51.75%)
13,366
(43.61%)
+ 2,492
(△8.13)
30,948
(63.68%)
중학동[A] 48.05% 47.67% △0.39 65.89
웅진동[B] 47.06% 48.17% ▼1.12 65.65
금학동[C] 53.53% 42.16% △11.37 63.07
옥룡동[D] 45.64% 49.03% ▼3.39 61.24
신관동[E] 53.24% 42.10% △11.13 61.00
월송동[F] 57.49% 38.12% △19.38 66.94
구 공주군
득표율 10,265
(42.13%)
12,949
(53.15%)
- 2,684
(▼11.02)
24,785
(63.27%)
유구읍 35.15% 61.10% ▼25.95 62.00
이인면 44.63% 48.31% ▼3.68 65.23
탄천면 43.56% 49.21% ▼5.65 62.69
계룡면 41.87% 53.34% ▼11.48 63.73
반포면 40.71% 55.07% ▼14.37 64.71
의당면 48.69% 45.14% △3.55 63.20
정안면 43.63% 52.51% ▼8.88 63.04
우성면 45.07% 50.57% ▼5.50 63.51
사곡면 41.22% 55.31% ▼14.09 64.37
신풍면 40.36% 56.20% ▼15.84 61.06
후보 박수현 정진석 격차
거소·선상투표 49.43% 44.94% △4.49
관외사전투표 60.76% 33.88% △26.88
재외투표 60.71% 37.50% △23.21
}}}}}} ||
비례대표 선거
정당

[[미래한국당|
파일:미래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격차 투표율
득표수
(득표율)
22,129
(38.34%)
17,928
(31.06%)
4,781
(8.28%)
3,153
(5.46%)
2,429
(4.20%)
+ 4,201
(△7.28)
61,133
(6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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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공주읍
득표율 10,591
(35.91%)
9,742
(33.03%)
2,625
(8.90%)
1,797
(6.09%)
1,305
(4.42%)
+ 849
(△2.88)
30,949
(63.68%)
중학동[A] 38.85% 29.94% 8.57% 5.64% 3.99% △8.91 65.89
웅진동[B] 41.31% 30.70% 7.94% 5.30% 3.65% △10.61 65.67
금학동[C] 35.80% 32.40% 9.83% 6.38% 4.74% △3.40 63.07
옥룡동[D] 41.31% 30.01% 7.29% 3.97% 4.07% △11.30 61.24
신관동[E] 33.59% 34.03% 9.21% 7.12% 4.67% ▼0.44 61.00
월송동[F] 30.88% 36.62% 9.87% 6.65% 4.89% ▼5.74 66.94
구 공주군
득표율 10,147
(43.91%)
6,357
(27.51%)
1,591
(6.88%)
1,026
(4.44%)
824
(3.56%)
+ 3,790
(△16.40)
24,789
(63.28%)
유구읍 49.44% 23.61% 6.10% 4.53% 3.34% △25.83 62.02
이인면 40.12% 27.39% 8.82% 4.24% 3.16% △12.73 65.23
탄천면 40.88% 29.26% 6.68% 4.47% 2.98% △11.62 62.69
계룡면 44.39% 28.79% 6.64% 4.12% 2.86% △15.60 63.73
반포면 45.57% 25.10% 7.34% 5.13% 4.58% △20.47 64.71
의당면 38.48% 31.78% 7.75% 4.90% 3.93% △6.70 63.22
정안면 44.05% 28.15% 6.58% 3.86% 3.66% △15.89 63.06
우성면 42.65% 28.76% 6.52% 4.26% 4.22% △13.89 63.53
사곡면 42.51% 27.69% 6.36% 3.80% 3.93% △14.83 64.37
신풍면 46.52% 26.12% 6.82% 5.06% 2.72% △20.40 61.06
정당

[[미래한국당|
파일:미래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격차
거소·선상투표 33.13% 28.99% 9.46% 4.14% 2.95% △4.14
관외사전투표 26.82% 36.05% 11.11% 6.56% 5.85% ▼9.23
재외투표 35.82% 26.86% 8.95% 2.98% 13.43% △8.96
}}}}}} ||
충청남도 공주읍 국회의원/시의원 선거구
구분 선거구명 지역
국회의원 공주읍·부여군·청양군 공주읍 전역 + 부여군, 청양군 전역
도의원 공주읍1 유구읍,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신관동, 월송동
공주읍2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공주읍는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며, 지역색 또한 강하여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제3당이 있을 때에는 제3당인 신민주공화당 - 자유민주연합 - 자유선진당을 지지하는 성향이다. 또한 공주를 기반으로 한 거물 의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인구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던 특징이 있다. 쉬운 예로 과거에 정석모가 6선을 한 지역이었으며, 은퇴 후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는데 그 인물이 현 국회의원인 정진석이다. 또한 18대에는 충청권의 맹주를 꿈꾸던 심대평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심대평은 19대 선거에서 세종시에 출마하였고 이해찬에게 발린다.(...) 그리고 무주공산이 된 공주읍는 박수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다시 민주당 계열 당선자가 나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공주읍, 청양군, 부여군 3개 시군이 인구 부족에 의해 하나의 선거구로 합병되었다.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출마한 정진석 후보가 현임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를 48.1% : 45%, 3.1%차로 간신히 누르고 지역구를 탈환하게 된다. 공주에선 박수현 후보가 3천여표 앞섰으나, 부여와 청양에서 각각 3~4천여 표 부족해서 정진석 당선자가 역전한 것이다.

대선에서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13대 대선 이후로 꾸준히 당선인을 뽑아주는 스윙보터의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단 두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민주화 직후 처음으로 치뤄진 13대 대선 때 충청도를 기반으로 했던 김종필 전 총재에게 58%의 득표율을 몰아주었고, 17대 대선 때에는 양당 모두에게 강한 실망감을 보이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회창에게 39.5%의 표를 몰아주었다. 나머지 대선인 14대 김영삼 (40%), 15대 김대중 (48%), 16대 노무현 (55%), 18대 박근혜 (57%), 19대 문재인 (38%), 20대 윤석열 (55%) 후보들이 각각 1위를 차지했고, 공교롭게도 거제도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만 전국 평균보다 낮은 득표율을 얻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뤄진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37.6%의 득표율로 2위 홍준표(27%)를 약 10% 차이로 따돌렸다. 당시 충남 평균보다 둘의 격차가 살짝 적은 편이었는데, 그 이유로는 대선 경선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주요 지지기반이 이곳이었으나, 문재인이 최종 후보로 선출된 이후 안희정 지지자 상당수가 다른 후보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공주읍내 6개동 전역과 의당면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거둔 반면, 그 외의 시골 지역은 홍준표 후보가 이겼다. 다만 그가 승리한 지역 중 어느 곳에서도 40%를 넘은 곳이 없었다.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유구읍도 38.5%에 그쳤고, 다른 충남의 시골 지역보다 세 후보간에 적은 표차를 보였다[85]. 반면에 국민의당(2016년) 안철수 후보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20%대 중반~후반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대안세력인 제3당에 표를 주는 충청권 특유의 민심이 드러난 선거였다.

이후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도지사, 시장 선거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양승조 도지사 후보가 59.0%, 김정섭 시장 후보가 56.7%를 기록해 경쟁자인 이인제 38.9%, 오시덕 43.3%를 큰 격차로 따돌렸으며, 도의회 및 시의회 선거도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2년 뒤인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박수현 vs 정진석 재대결이 있었는데, 박수현 후보가 이 지역에선 이겼으나 부여군, 청양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4년 전과 똑같은 결과를 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8,867표, 13% 격차로 크게 이겼다. 경기도 여주시, 양평군, 강원도 속초시, 인제군, 그리고 같은 도의 홍성군과 비슷한 격차였는데, 이들 지역 모두 5년 전 대선에서 문재인 홍준표가 3% 이내의 초박빙 결과를 냈다는 것을 고려하면 윤석열 후보가 비교적 선전했다. 윤석열 후보의 부친이 이웃 논산시 출신이라는 점에서 소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적용됐다고 볼 수 있는 결과이다.
충청남도 공주읍 국회의원
공주읍·공주군 공주읍 공주읍·연기군 공주읍 공주읍·부여군·청양군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21대
윤재기/초선
신민주공화당
이상재/재선
무소속
정석모/6선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초선
자유민주연합
오시덕/초선[86]
열린우리당
심대평/재선
자유선진당
박수현/초선
민주통합당
정진석/4선
새누리당
정진석/5선
미래통합당
정진석/재선[87]
무소속
충청남도 공주읍장
1기(95~98) 2기(98~02) 3기(02~06) 4기(06~10) 5기(10~14) 6기(14~18) 7기(18~22) 8기(22~26)
전병용/초선
자유민주연합
전병용/재선[88]
자유민주연합
윤완중/초선[89]
무소속
이준원/초선
국민중심당
이준원/재선
국민중심연합
오시덕/초선
새누리당
김정섭/초선
더불어민주당
최원철/초선
국민의힘
-[90] 오영희/초선[91]
무소속

9.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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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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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타

예전에 충청남도 지역의 향토방위를 담당하는 육군 제32보병사단이 있었다. 사단 자체가 이전한 건 아니지만 그 지역 일대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분지지형과 금강의 영향인지 가끔씩 미스트(영화)에 버금가는 짙은 안개가 낀다.

시청과 가까운 곳(충청남도 공주읍 봉황로 19-12)에 과거 시장 관사로 쓰던 가옥이 있다. 현재는 민원콜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공주교대 방향으로 시청 인근에, 시정연구원(충청남도 공주읍 해지개길 19-3)이 있는데, 원래 이 자리는 '옥돌돼지갈비'라는 식당이 있던 곳이다. 공주읍청과 인접해서 공무원들이 가끔 회식을 갖기도 했는데[92] 옥돌돼지갈비 식당이 확장사업을 하려고 천안시 풍세면으로 이전하자, 공주읍청 측에서 그 건물을 매입하고 인근을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11. 출신 인물

12. 관련 문서


[1] 131통 245리 [2] 2022년 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3] 공주읍 가선거구 (유구읍,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강현철
공주읍 나선거구 (의당면, 정안면, 신관동, 월송동): 이범수, 송영월
공주읍 다선거구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윤구병
공주읍 라선거구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이용성
비례대표: 권경운
[4] 공주읍 가선거구 (유구읍,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구본길
공주읍 나선거구 (의당면, 정안면, 신관동, 월송동): 임달희
공주읍 다선거구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서승열
공주읍 라선거구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이상표, 김권한
비례대표: 임규연
[5] 공주읍 제1선거구 (유구읍,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신관동, 월송동): 고광철 (초선)
공주읍 제2선거구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박기영 (초선)
[6] 041-840, 841, 850~858, 960~962 [7] 042-820~827: 반포면의 동학사 및 인근지역(학봉리, 온천리 등)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역전화국번을 사용 [8] 을 기준으로 아래쪽(남쪽)이 구시가지, 위쪽(북쪽)이 신시가지다. [9] 충청권 5대 도시 중 청주를 제외한 모든 도시(대전광역시, 천안시, 세종특별자치시, 아산시)와 접경하고 있다. 다만 공주 시가지가 남동부에 몰려 있어 광역 생활권은 대전권에 속한다. [10] 대전, 세종에게 연달아 땅을 뜯겼다. 어느 지역이 떨어져나갔는지는 아래 역사 문단 참조. [11] 한성백제는 고구려계 유이민 세력과 경기충청전라 서해안 일대의 토돈분구묘제 집단의 연합으로 탄생했기에, 엄연히 마한 주류와는 좀 다른 세력이었다. 개로왕 시대에는 마한 주류 집단과 적극적 융합이 진행된 그 시절에도 200여 년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건국 초기에는 그랬다. [12] 백씨가 몰락한 뒤 무령왕의 근왕세력으로 보이는 예씨가 웅진성 일대를 관리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3] 어차피 도독부를 설치한 거 자체가 군정을 실시했다는 것인데 사비성은 물산은 풍족하나 평지 지형이라 군사적으로는 영 좋지 못했던 반면 웅진성은 뛰어난 요새로 중요한 군사거점이었다. 당측도 백제의 수도가 어디였는지 몰랐을 리는 없고 소정방이 이끌던 당군의 약탈과 학살로 인해 백제 유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던 때인데 군사요새가 아닌 곳에 거점을 두긴 어려웠을 것이다. [14]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우술군(雨述郡)이었으며 경덕왕의 한화정책으로 비풍군이 되었다. 둘 다 순우리말로 '비술/비수리' 정도로 발음되었을 동일한 지명을 한자로 다르게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15] 현재 공주에 있는 연미산이라고 전한다. [16] 일부 구전 또는 판본에서는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려 가두었다고도 한다. [17]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암컷 곰이 '이제 자식들까지 있으니 좀 자유롭게 둬도 도망가지 않겠지' 라고 생각해서 입구를 막지 않았다고도 한다. [18] 이 시기 최대의 난이었던 김헌창의 난이 바로 웅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19] 광복 이후에도 옆에 있던 일개 군 행정중심복합도시 선정되는 바람에 또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20] 경상권의 4대 대도시인 대구, 부산, 울산, 창원이 모두 50 km 이내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발전을 못했다. [21] 또한 경부선은 아니지만 익산시는 전북 철도교통의 관문이라 불리는 익산역( 동대구역 포지션과 비슷하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22] 현재는 광산구에 광주송정역이 있으나 광역시 승격 전에는 현 광산구 지역은 별개의 행정구역이였다. [23] 심지어 두 읍을 합쳐 시로 승격시켰는데도 말이다! 나주읍성이 있던 나주읍(25,000여명), 항구가 있었던 영산포읍(12,000여 명)을 합하여 금성시(이후 나주시로 개칭)로 승격시켰는데, 그만큼 쇠퇴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증거이다. 1995년 도농통합 당시만 해도 50,000명 정도였으나, 수도권 및 광주, 목포, 등 큰 도시들로의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이미 2000년대 중반에 40,000명대가 무너졌다. 그리고 빛가람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물론 주소상으로는 나주에 있기 때문에 나주시 자체의 인구를 늘려주는 효과는 있었지만 # 유입된 인구의 상당수는 원래부터 나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다. # 도심 인구가 계속 혁신도시로 유입되면서 2017년 인구 역전 이후로 2022년 현재는 격차가 10,000명 가까이 된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인구를 빼앗기는 공주읍와도 비슷하다. [24] 대표적인 사례가 신라 유적들을 피해 동해선 철도를 통째로 이설중인 경주시다. [25] 조성 예정인 송선, 동현신도시 [26] 계룡대 대전광역시를 연결하는 길목으로 대전, 계룡 두 도시의 시내버스가 자주 통과한다. 정작 공주읍 버스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의 배차간격이며 그나마 약 30분 정도의 배차인 300번을 타고 박정자 삼거리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데다 이 노선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강북 지역은 아예 가질 않는다. [27] 충청도 유일의 광역시 대전, 전국 유일한 특별자치시인 세종, 충청남도 최대도시인 천안, 범 충남권 4위 도시인 아산과 모두 접하고 있다. [28] 실제로 공주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보다 타지역인 조치원역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더 자주 다니는 실정이다. [29] 특히 이웃한 부여와 비교하면 공주는 수도로서의 역사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등 쓸만한 유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관광지로서의 기능은 별로다. 1년에 단 9일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백제문화제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정도다. [30] 물론 여느 대기업들이 그렇듯이 실질적인 본사는 서울에 있다. [31] 어차피 여권 규격의 사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냥 여권 사진 찍으러 왔다고 하는게 훨씬 낫다. [32] 실제로도 공주교대의 학생수는 학부생 1,500명에 대학원생 400명 수준이니까 동일하다. [33] 이와 같은 비슷한 현상은 특히 군부대가 밀집한 경기 강원 북부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다. [34] 지명이므로 Sanseong으로 표기해야 한다. [35] 애초에 시 면적 자체가 전국에서 제일 작은데다가 근처에 아울렛, 백화점, 복합쇼핑몰이 널렸다.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39] 공산성 발굴은 1980년부터 시작됐으며, 현재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진행 중. 최근 화제가 된 백제의 옻칠된 갑옷이 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40] 거기다 박물관과 공주읍내를 오가는 시내버스(108번)는 평일 60분/주말 120분 간격이다. 본래는 강남의 비교적 시내에 있었으나, 이전 시 멀리 가버렸다. 그나마 배차간격이 짧은 101번이나 125번을 타고 와도 되는데 고개를 넘어야한다. 거리는 약 600m. 예전에 국립공주박물관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충남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41] 그나마 예전에는 무령왕릉을 개방했지만 관광객 개방으로 윈한 손상 및 고분 붕괴 위험으로 1997년부터 폐쇄했다. [42] 공주와 부여가 백제의 수도였던 기간은 각각 63년, 122년에 불과하지만 두 도시는 매우 가까워 하나의 권역이나 마찬가지며 특히 사비성이 위치한 부여읍은 공주읍와 접경해 있고 웅진성과 사비성의 거리도 고작 27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두 도시가 수도였던 기간을 합산하면 185년으로 거의 200년에 육박한다. 이 정도 기간은 충분히 긴 기간이라 볼 수 있으며 남한에서 이 이상 수도를 유지한 도시는 서울과 경주밖에 없다. [43] 1990년 이전까지 공주사범대학이었다. [44] 대전충남권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교원양성기능은 대전이 아닌 공주읍가 분담했었다. 따라서 그 영향으로 대전에는 교대가 현재까지도 없고(오늘날 교대에 해당하는 대전사범학교가 존재한 적은 있다. 1963년 공주사범학교와 통폐합됨), 2009년 이전까지 대전에 위치한 충남대는 사범대를 보유하지 못했다. 현재도 대전충남권 거점사범대학 역할은 공주대가 하고 있으며 충남대는 부설학교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45] 다른 하나는 청주시인데, 여기는 종합교원양성대학인 한국교원대학교가 있어서 가능했다. 게다가 국립대학 청주교육대학교 충북대학교도 있기 때문에 청주시는 국립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2개교씩 존재하고 있다. [46] 자립형 사립고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자율학교라는 분류로 인가를 받았고 2010년에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언뜻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르다. 해당 기사. [47] 다른 사례를 들자면 민족사관학교 강원도 횡성군에 있지만 입학생의 80%가 수도권 출신이고 강원도 출신은 고작 3%밖에 안된다. # 거창고등학교의 경우 하도 타 도시지역에서 학생들이 몰려드는 탓에 아예 광역시 출신을 22%로 제한하고 거창군 출신을 13% 뽑는 조치까지 취했다. # [A] 법정동 중학동 · 봉황동 · 반죽동 · 중동. 공주읍청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중심지 [B] 법정동 교동 · 산성동 · 금성동 · 웅진동. 공산성, 무령왕릉 및 시장이 있는 중심지 [C] 법정동 금학동 · 주미동 · 오곡동 · 태봉동 · 봉정동 · 검상동 [D] 법정동 옥룡동 · 소학동 · 신기동 · 상왕동 [E] 공주대학교가 있는 동네 [F] 법정동 월송동 · 금흥동 · 송선동 · 동현동 · 무릉동 · 석장리동 · 쌍신동 · 월미동. 충남 연구원/연수원이 있는 동네 [54] 지역구 국회의원: 정진석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5선) [G]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구 공주읍) [H] 유구읍,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구 공주군) [A] 법정동 중학동 · 봉황동 · 반죽동 · 중동. 공주읍청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중심지 [B] 법정동 교동 · 산성동 · 금성동 · 웅진동. 공산성, 무령왕릉 및 시장이 있는 중심지 [C] 법정동 금학동 · 주미동 · 오곡동 · 태봉동 · 봉정동 · 검상동 [D] 법정동 옥룡동 · 소학동 · 신기동 · 상왕동 [E] 공주대학교가 있는 동네 [F] 법정동 월송동 · 금흥동 · 송선동 · 동현동 · 무릉동 · 석장리동 · 쌍신동 · 월미동. 충남 연구원/연수원이 있는 동네 [63] 1표차였다. [A] 법정동 중학동 · 봉황동 · 반죽동 · 중동. 공주읍청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중심지 [B] 법정동 교동 · 산성동 · 금성동 · 웅진동. 공산성, 무령왕릉 및 시장이 있는 중심지 [C] 법정동 금학동 · 주미동 · 오곡동 · 태봉동 · 봉정동 · 검상동 [D] 법정동 옥룡동 · 소학동 · 신기동 · 상왕동 [E] 공주대학교가 있는 동네 [F] 법정동 월송동 · 금흥동 · 송선동 · 동현동 · 무릉동 · 석장리동 · 쌍신동 · 월미동. 충남 연구원/연수원이 있는 동네 [70] 지역구 국회의원: 정진석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5선) [G]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구 공주읍) [H] 유구읍,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구 공주군) [A] [B] [C] [D] [E] [F] [A] [B] [C] [D] [E] [F] [85] 이것은 충남 서해안권 시골 단위와 비교하면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충남 서해안권의 면 단위에서는 기본적으로 40% 이상의 유권자가 홍준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공주 주민들의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지세는 근처의 다른 지역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을 뜻한다. [86] 05.1.27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87] 05.4.30 재보궐선거 [88] 01.11.13 시장직 상실(뇌물수수) [89] 02.11.21 시장직 사퇴 [90]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 [91] 03.4.25 재보궐선거 [92] 사실 공주읍 공무원들은 굳이 이 식당 말고도 공주에 있는 모든 식당들을 골고루 정해서 다른 식당들에서 엄청 많이 회식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93] 이 당시 공주고 야구부는 부산고에서 온 전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양상문 스포티비 해설위원도 김경문의 권유로 공주고로 전학을 갈 뻔 했으나 부산고에 남아 졸업했다. [94] 지역구: 경기도 부천시 병 [95] 모두의 유채꽃 10화 소개에서 밝혀졌다. [96] 기업명을 공주의 옛 지명인 웅진에서 따왔다. [97] 정확히는 키즈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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