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5:00:37

지금 평양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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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간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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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in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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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df1e><colcolor=black> 방송 시간 화요일 19:00 ~ 21:00
방송 기간 1982년 11월 30일 ~ 1985년 5월 14일
방송 횟수 199화
장르 시대극
제작 한국방송공사 자체제작
채널 KBS 1TV


<colbgcolor=#e3df1e><colcolor=black> 연출 하강일
극본 김동현
조연출 김종식
기술감독 조석주
조명감독 유용우
음악 임효택
출연 김병기, 문오장, 허진, 김성겸, 사미자, 백일섭, 이치우, 이춘식, 김순철, 김흥기, 이일웅, 김성녀, 한정국 外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984.6.19.방영분]

1. 개요2. 내용
2.1. 기원2.2. 줄거리2.3. 등장인물
2.3.1. 김씨 일가2.3.2. 군부2.3.3. 관료2.3.4. 기타
2.4. 명대사 등
3. 평가4. 여담5. 동명의 프로그램

[clearfix]

1. 개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방영한 KBS 1TV 드라마. 반공 드라마이며, 총 199부작이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북한 평양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고,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표된 1980년 10월 18일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직후를 배경으로 잡았다.[2] 방송시간은 평일 저녁 7시~8시대에 편성되었는데 선정성이나 폭력적인 묘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처리된 반공드라마의 특성상 방송시간에 비해서는 수위가 꽤 높은 드라마였다. 극본은 중앙정보부 요원 출신이자 반공드라마 전문 작가인 김동현, 연출은 하강일 PD, 해설은 성우 이강식이 맡았다.

2. 내용

2.1. 기원

원래 시작은 KBS의 단막극 실화극장에서 시작되었고[3] 실화극장의 한 시리즈로 1982~85년까지 방영되었다. 실화극장은 제목과는 다르게 반공을 소재로 한 드라마였고, 반공이라는 주제아래 가족드라마, 전쟁물 등이 방영되었는데 군사정권 당시에는 안기부에서 직접 제작에 관여했었기 때문에 현역 스타급 영화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조연급이야 어떻게든 돈이 들어오는 일이니 출연하는것이 이상하지 않았지만 신성일 같이 돈이 별로 궁하지 않은 스타급 배우도 반공드라마 출연제의에는 즉각적으로 응했는데 이유인 즉슨, 출연을 거절했다가 바로 일감이 끊길수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4] 당시 KBS와 MBC가 정권의 직간접적인 통제에 놓여있었고, 각종 영화도 심의를 핑계로 이런저런 가위질이 합법적으로 자행된 것은 물론이고 개봉여부까지 결정했던 시절이었고 박용식같은 대머리 연예인이 단순히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로 한 동안 방송출연을 못한 일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단순한 우려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는 실화극장이라는 타이틀 명은 사라졌지만 반공드라마는 지속적으로 제작되었고, 지금 평양에선은 실화극장 시리즈중에 가장 길었고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로동신문 기사를 참고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안기부에서 기획한 드라마인 만큼 핀트가 안 맞거나 의도적으로 과장이나 왜곡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시트콤식 전개로 다른 반공 드라마보다는 가볍게 볼수 있었던 데다가[5] 김병기의 실감나는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한계점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최고 시청률이 46%에 달했으니[6]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수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될듯했다가 1985년에 종영되었는데 남북해빙모드가 불면서 정권 차원에서 굳이 김정일을 나쁘게 그려야될 필요까지는 없어지면서 굳이 드라마를 더 방영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1~2년 뒤에 금강산댐을 가지고 정권차원에서 야바위질 한 사건이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일어나는 등 해빙 무드가 1년 정도 가는데 그쳤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재 KBS아카이브 내에 보존된 테이프는 1화와 최종화인 199화밖에 없고 VCR이 대중화되기 이전에 방영된 작품이기 때문에 상당수 방영분을 앞으로도 못 찾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은 갖고 있었을 듯-- 이 드라마의 테이프를 기증하고 싶다면 여기에 기증이 가능하다.

2.2. 줄거리

실상은 김정일 갖고 노는 드라마다. 주제에 걸맞게 김정일의 포악한 측면과 아스트랄한 모습과 북한 권부내의 찌질한 모습들이 주로 나왔고 그것이 남한이나 기타 외국과의 관계 내에서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 와중에서 북한 내부의 반공세력내지는 김정일 반대파들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 (정치세력으로써 유의미한)김정일 반대파가 김정일로 후계자가 확립되고나고 김성애 김평일이 설자리를 잃으며 사라졌기 때문에 고증에 어긋나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보통의 반공물이면 '그런데 유엔군이 들어와 북한은 물러갔다'로 끝날 것이지만 이 작품은 현재도 존재하는 독재체제를 다루기 때문에 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어 현시창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는 북한도 사람 사는 세상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김정일이 김정숙의 제삿날에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제사를 지내는 장면도 나갔는데 바로 정부에서 그딴거 묘사하지 말라고 압력이 들어오기도 했다. #

2.3. 등장인물

2.3.1. 김씨 일가

  • 김정일 ( 김병기 분)
    김병기는 원래 악역 전문 연기자였는데 여기서는 진짜 아줌마 파마를 하고 온통 개망나니같은 행동에 몰지각한 재벌집 아들식 연기를 한다. 샐러리맨 초한지 호해 부사장 마보국, 웨이레이만큼이나 무능한데 높으신 분들 자리에 있는 부자이자 병신으로 표현되고 있고, 오로지 밥만 먹고 하는건 대남적화 야욕뿐인 바보 정치가. 심심하면 오진우를 비롯한 부하들을 패고 부하들은 위에서 깨지고 자기네끼리 격양되게 싸운다. 어린이 프로가 끝나고 바로 7시에 하던 드라마였는데, 정무로 스트레스 받은 김정일이 별장에 가서 거기에 대기하던 기쁨조(?) 녀성 동무들에게 "다 벗으라우"하는 내용까지 버젓이 방영되었다. 물론 벗는게 나오진 않지만, 멀티을 암시. 아이들에게 김정일을 천하의 호색한으로 각인시킨 장면이다. 그래도 초반에는 생모 김정숙을 그리워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는 까만 양복을 입는 인간적인 면모도 간혹 선보이는 등 입체적인 악역으로 그려낼려고 했는데 정권차원에서 신경쓴 드라마라는 한계점때문에 안기부와 KBS 간부들이 이러한 묘사를 문제삼으면서 그냥 쌩 호색한 노선으로 진행되었다. 김일성의 얼굴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을 정도로 심의가 엄격하다보니까 어쩔 수 없었기는 했다.
  • 김일성 (배우 불명)[7]
    입과 손만 나오며 김정일을 무섭게 꾸짖곤 한다. 한동안 배우 문오장이 연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실제 배우가 누구였는지 불명확하다. 남한 TV를 열심히 챙겨보던[8] 김정일이 이 프로를 보던 중 문오장이 김일성을 연기하는 모습에 격노했다는 썰이 도는데, 사실 지금 평양에선이 아니라 1970년대에 방영했던 실화극장에서 악랄한 만경봉호 선장 역을 맡았던 것을 보고 분노한 것이다.
  • 한성희 (최선자 분)
    김일성의 전처. 극중에선 우순이의 친모로 설정되어 있으며 해방 이후 김일성에게 버림받고 함경도 산골에 숨어 살면서 알게 된 어느 남자와 동거하여 우순이를 낳았다. 나중에 김정일에게 탐지되어 우순이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살해당하자 딸과 함께 함경도를 탈출하여 평양에 잠입한 후, 최현을 찾아가 우순이를 당부한 후 사라지게 된다.[A]
  • 김경희 (허진 분)[10]
    김정일의 여동생. 기쁨조 여성들을 관리하는 역으로 나오는데 자기 오빠 못지 않게 악랄하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핵개발을 위해 외국 기술자들에게 기쁨조 여성을 넣어주는데 한 기쁨조 여성이 방에 들어가자 피부가 새카만 흑인이 안에 있던 것이다. 그 다음날 기쁨조 여성은 자살하는데 이걸 본 김경희 말이 "또야? 치워!". 지금이야 인종차별적인 묘사로 난리날 내용이지만 이 당시에는 흑백혼혈인들이 주한미군과의 성매매로 태어났다는 인식으로 인해서 인상이 좋지 않았고, 해외여행은 사치에 한국에 주거하는 외국인들이 별로 많지 않았던 시절인지라 이런류의 묘사에 대해서는 재미거리로 여기거나 무관심했다. 그나마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서 이런류의 묘사가 국가망신이라면서 시커먼스가 폐지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
  • 김영주 ( 김성겸 분)
    김일성의 동생. 후계 구도에서 물러난 후에 매일 욕 먹는게 일. 이미 김성겸은 1980년 100분 드라마 《붉은 왕조》에서 같은 배역으로 나왔으며, 훗날 MBC 드라마 제4공화국 등에서 찌질한 최규하 캐릭터가 사실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11]
  • 김성갑 (신종섭 분)
    김성애의 남동생.

2.3.2. 군부

  • 오진우 ( 이치우 분)[13]
    북한군 원수. 하지만 하는 일은 매일 김정일에게 깨지는 역할 전문. 위의 오프닝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와 어우러져서[14] 조선인민군 정복은 대단히 간지나는데 행동은 찌질이의 극단을 달린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다 늙은 원수가 부동자세로 팬티만 입고 김정일에게 쳐맞는다.[15]
  • 김용현 ( 강민호 분)
    호위처장. 계급은 소장이며 김정일과 만경대혁명학원 동기/동창이란 설정이다. 사격술이 좋고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을 반대하는 엘리트.
  • 오백룡 ( 이춘식 분)
    북한군 대장 겸 호위총국장, 로농적위대 사령관. 1984년 2월경에 첫 등장했으며 김일성의 오랜 친구이자 심복이었다. 그런고로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를 호령하고 당 서열 50위 안의 장성들을 팰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녔으며, 북한의 서열 2위 김정일조차도 비위를 맞출 정도였다. 대사들 중 "팔은 두 개 있어도 생명은 하납네다. 하나밖에 없는 이 생명을 어째 두 분께 찢어발길 수 있갔습메~"라는 경박한 발언은 김정일이 그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회유하다가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드는 대사이기도 했다. 시끄러운 함경도 사투리로 꽥꽥거리는 전문 역할이기도 했다.[16]
    첫 등장 때만 해도 이 역할은 비중이 작았던지라, 조연출이던 김종식 PD가 이춘식을 캐스팅할 당시 4회만 출연하다 죽는 역할이었으나, 첫 녹화 당시 그의 실감나는 연기를 지켜본 하강일 PD가 AD에게 "오백룡 역을 맡은 사람이 누구냐?"며 묻고는 "오백룡을 클로즈업시켜야 되겠다"는 말을 하면서 비중이 커졌다. 이 캐릭터의 임팩트 덕인지 당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패러디되었다. 실존 인물이 1984년에 병사하였기 때문에 동년 12월 17일 방영분에서 극중 김일성 사칭했던 흑역사가 들통나 자살하는 걸로 처리된다.[17]
  • 김철만 ( 문오장 분)
    자료가 많이 없어서 극중 상세한 행적 확인이 어렵지만, 1995년 8월 3일에 문오장 본인이 출연한 KBS2 <밤과 음악사이>에선 자료화면 소개 때 나왔다.

2.3.3. 관료

  • 김일 ( 이일웅 분)
    나중에 김정일에게 밀려서 탄광에서 옥수수밥을 처묵처묵하는 장면이 나오고, 복귀는 한다. 이 배역을 맡은 이일웅도 김성겸처럼 《붉은 왕조》에서 이미 같은 배역으로 나왔다. 사실 김일은 빨치산 최고 원로 중 한명이고 김정일 승계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서 김정일에게 이런 대접받을 일이 없었다.
  • 김환 ( 최정훈 분)
    내각 공업성 부상 및 정무원 부총리, 화학공업부장을 지냈으며, 김정일의 측근이었다.

2.3.4. 기타

  • 우순이 (윤상미[22] 분)[A]
    최현의 기요군관. 한성희의 친딸로 어머니가 김정일에게 발각되자 친부와 남동생이 살해되자, 21세 때 어머니와 함께 함경도를 탈출하여 평양에 잠입한 후 최현에게 맡겨졌다. 1년 동안 김일의 아들 김경준을 알게 되면서 사랑에 눈을 떴지만, 김정일의 눈에 띄어 몸을 망치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 김경준의 어머니 허창숙이 모종의 일로 김정일에게 살해된 사실을 알고 복수를 결심, 김정일의 사냥을 틈타 독살을 시도하다 처형된다.[24] 극중 내내 이 역을 맡은 윤상미는 야무진 연기 스타일에 독특한 함경도 사투리를 구사했는데, 이는 선배인 신구에게 배운 것이다.[25]
  • 최은희 ( 김성녀 분)
    1984년 6월 19일에 방영된 '함정'편에서[26]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을 다뤘을 때 출연. 당시 안기부가 발표한 내용대로 홍콩에 사업차 방문했다가 납치되는 것으로 나오며 이후 김정일에게 자신을 서울로 돌려보내달라고 하다가 주변 간부들의 겁박에 단념하는 것도 잠시, 자신은 대남 방송을 절대 못하며 설령 한다 해도 남쪽 사람들이 믿어줄 것 같냐는 말을 하는 패기를 보인다! 이에 김정일이 격분을 애써 억누르며 부들부들거리는 모습과, 문예봉이 찾아와 설득하는 것조차 뿌리친 채 막판에는 손목을 긋는 자살시도를 실패한 뒤 군인들의 감시 속에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는 모습으로 끝난다.
    사실 해당 에피소드의 방송 당시에는 최은희 신상옥 둘 다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최은희가 납치된 이후의 상황을 사실상 상상으로 그려냈을뿐이지, 훗날 탈북한 두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김정일은 최은희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고 한다. 애초에 최은희를 납치한 목적 자체가 신상옥을 데려와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은희에게 함부로 해서 좋을 것도 없었거니와 오히려 김정일 본인은 최은희를 어머니 대하듯이 잘 모셨다고. 실제로 생모인 김정숙이 어릴 때 죽었고 이후로 계모 김성애하고 사이가 영 좋지 않았던 대목을 생각나면 이해가 간다. 제4공화국을 보면 최은희가 북한에 온 직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김정일 본인이 최은희의 기분을 달래느라 애쓰는 장면이 나오는 등, 최은희의 실제 회고는 지금 평양에선의 묘사와 다르다. 다만 신상옥의 경우에는 납북 직후 탈출을 시도하다가 걸렸고, 이 때문에 수용소에서 감방생활을 하는 등 한바탕 고생을 한지라, 지금 평양에선의 묘사가 아주 틀린 건 아닌 셈.
  • 김정숙 ( 반효정 분)
    허담 전 부총리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사촌누이. 김정일의 친모와는 동명이인이다.

2.4. 명대사 등

(실컷 부하들을 두들겨패놓고는) "내레 이런 짓 하는 것을 아바이 동지[27]가 아시면… 에이 썅!"
미제 식민지 남반부 서울역 거지가 버글버글하고...
"그래 우방 중국 비행기가 추락할라는데 니네는 어떻게 했어?"
"예, 소방차 열대와 병원차 이십 대를 준비했는데."
"했는데."
"그게 그만 남반부로 넘어갔습네다!!!"
"뭬야~!!! 소방차와 병원차를 준비하고 그래 공화국을 지나가는 걸 쫓던 처럼 봤단 말이야?!!!" (퍽 퍽)
- 중국민항 296편 불시착 사고[28]
미군 철수! 미군 철수!! 미군 철수!!! 미군 철수!!!! 미군 철수!!!!!⤴ (김정일이 한 가장 강한 반미를 드러내는 대사)

김정일 미군 철수 장면

여담으로 미군 철수 장면이 왠지 너무 코믹해서 마보국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어이 오뱅료이~![29]
안전원 나오라우, (주소...)에 악질반동분자
-김정숙-
딸의 남친이 여기가 인민공화국이오? 벌레공화국이오? 하는 비난을 듣고 분노해서
이때 딸은 그 전화를 끊어버린다.
  • 가끔 끝날 때는 주제가가 흐르면서 김정일이 한 어두운 골방에서 바로 그 아바이 수령에게 신나게 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바이 수령'의 모습은 <컴퓨터 형사 가제트>의 클로우 박사마냥 달랑 밖에 없고 김정일은 그걸 또 엄청나게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었던 것.[30]
  • 여기서는 항상 연대를 일천구백육십칠년에…식으로 처리한다.[31]
  • 김정일이 비키니 입은 여자들 5-6명을 쭉 눕혀놓고 인간 매트리스로 삼아 그 위에 누워 자는 장면이 나온다. 김정일의 엽색행각을 묘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여배우들이 필요했단 소리가 되는데 당시 KBS의 젊은 여성 탤런트들은 죄다 김병기와 김정일의 성노리개가 되는 씬을 찍어야 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 김정일이 차를 타고 가다가 밭을 매던 소녀를 보고 입맛을 다시자 호위 차량이 소녀를 그대로 차에 태운다. 다음 장면은 목욕탕.[32]

3. 평가

이 작품은 비록 왜곡되고 개그화 되었지만 당시의 북한 권력자들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했다. 지금이야 제한된 정보 내에서는 북한 인사들의 동정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공식 서류에 버젓히 '김모, 최모'라는 표현을 썼었다. 이 작품은 실명을 공개함으로서 역설적으로 북한 권력자들의 동정을 머리에 넣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4. 여담

  • 배우 김병기가 극중 김정일 역으로 인기를 끌어 연기생활 13년 간의 무명 생활을 탈출해냈다. 이후 그는 2005년 MBC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 제5공화국>에서 노신영, 2006년 특별기획 드라마 <주몽>의 연타발 등으로 명성을 날렸다. LADY GURA의 정보에 의하면 김병기는 이 드라마 이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고자라니 역을 맡은 김영인이나, 범인 역을 많이 했던 이계인처럼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지거나 실제 김정일로 오해받는데 따른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을 한창 진행할 적에 드라마 찍으러 가다가 '김정일이 간다.'는 말에 이산가족들에게 맞아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으니... 그래서 이미지 변신때문에 사회사업이나 자선사업에도 꽤 신경을 썼다고 한다. 1984년 인터뷰를 보면 심장판막증환자돕기운동, 낙도어린이돕기운동, 교도소 방문 등을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 그의 가족들은 이웃에서 딸은 지도자동지 딸, 김정일 딸, 아내는 김일성 며느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씩 반공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찬조출연하기도 했으며 (유튜브 영상), 2018년 2월 15일자 TV CHOSUN <인생다큐 마이웨이> 김병기 편에서도 출연 당시의 비화가 소개된 바 있다.
북한의 지금 목표는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세계 올림픽을 목표로 하여, 대한민국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갖은 만행과 책동을 저지를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88/18 중 자료영상에서
  • 뽀글이 머리에 군복이나 인민복을 입고 말장화를 신고 나왔는데, 배우가 실제 김정일보다 키도 크고 배도 안 나오고 훨씬 잘 생겨서 살짝 괴리감이 있었다. 그래도 주색잡기를 일삼고, 나이나 지위 불문하고 사람들을 다들 보는 데서 냅다 패는 또라이 역할을 실감나게 해 냈기에 배역에 잘 어울렸고 당대의 노인층들이 지금 평양에서의 묘사를 연기인줄 모르고 이걸 어떻게 찍어왔지?라는 반응을 보이며 신기해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방송기간 중에 상당한 인기가 있었기에 여대생으로부터 손수 청혼전화를 받았을 정도였다고.
  • KBS 측은 1983년 6월 7일 방영분에서 다룰 조선로동당 비밀 전당대회 씬을 촬영하기 위해 보통 드라마 세트 18개 규모의 여의도 별관 C스튜디오를 회의장 세트로 할애했으며, 당대 단일 세트장 규격으로 국내 TV 프로그램 사상 대형이며 카메라도 5대나 동원되었다.
  • 북한 김정일 자기를 비하하는 드라마였음에도 가끔 시청했으며, 방북한 남측 인사들에게 김병기의 연기를 호평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영화에 관심이 많은 영화연극 전문가[33]라서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에서 자신이 바퀴벌레 외계인에게 조종당하는 미친 독재자로 묘사됐는데도 체코에 상영 자제 요청한 것 외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문화 당국에서 일할 때 연극도 담당했으니 배우의 연기와 작품의 수준만 평하지 내용은 개의치 않았던 듯. 또한 부자세습과 고난의 행군, 핵개발의 임팩트가 위낙에 강하다보니 어차피 항의를 해봐야 좋지 않은 반응만 보일것이 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당시 신문이나 <TV가이드> 등 연예잡지 인터뷰를 보면, 김병기는 개망나니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녹화 중 깨먹은 양주잔이 80잔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경력을 시작한 신인 탤런트들의 데뷔 무대가 이 작품이고 주로 역할이 기쁨조였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이 배역은 가장 많은 신인과 연기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또한 김을동이 당 주요 간부로 나오는데, 한 번은 지도자 동지 들으라고 디스코 음악 틀다가 김정일한테 걸려서 싸대기 맞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 1984년 6월 19일에는 6.25 특집 연속기획 9탄 드라마 <함정>이 방영되었는데, 사실은 '지금 평양에선'의 100분 특집이다. 방송사도 시간대도 출연진도 스토리도 전부 똑같기 때문.

5. 동명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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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0일부터 10월 2일까지 OBS경인TV에서 방영한 북한정보 프로그램으로 제목은 위 드라마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구성은 KBS의 남북의 창 MBC 통일전망대와 유사하다.


[1984.6.19.방영분] [2] 출처: <TV가이드> 1982년 12월 25일자(제75호) 녹화현장 화보 참고. [3] 1964년에 방송을 시작해서 1985년까지 장수한 드라마였다. 다만 드라마 자료 보존을 제대로 안하던 시기라서 방송자료는 별로 남아있지는 않다. 2020년 9월 3일자 KBS1 <다큐인사이트> '모던코리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편에 따르면 보존자료들 중 가장 오래된 방송자료는 1973년 한국방송공사 창립식 중계방송이다. 해당 드라마의 극본은 전술했던 김동현 작가가 많이 썼다. [4] 물론 건강상의 이유라면 넘어가긴 했다. [5] 기존 반공 드라마는 진지로 일관하는 한편 특성상 특별한 입체성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다 길이까지 길어서 상상 이상으로 재미가 없었다. [6] 다만 이 당시의 시청률 조사는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지금의 시청률 조사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되기는 할것이다. [7] 보면 뭔가 형사 가제트의 메인 빌런인 닥터 클로우 느낌이 난다. 거기서도 손과 목소리만 나온다. [8] 처음에는 남한 정보 수집 목적(예를 들면 남한 KBS에서 방영되는 뉴스 프로그램들과 국정 홍보 프로그램들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의 동정을 수집한다는 식) 남한 TV를 시청한것이기는 하지만 남한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북한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보다 더 재미있어서 같이 시청했던 듯하다. [A] 출처: <TV가이드> 1983년 제93호(5월 7일) 기사 '<지금 평양에선>의 윤상미' p39. [10] 1998년에 방영된 '진달래꽃 필때까지'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다. [11] 《붉은 왕조》에서 김영주는 이미 늙은데다가 병까지 걸려 다 죽어가는 몸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세습을 욕하다가 김정일에게 "빨리 하늘에나 올라가슈"하고 핀잔을 듣는 퇴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드라마에서 중병으로 골골거리며 죽어가던 김영주가 실제로는 김정일보다 훨씬 장수해서 100세를 넘기고 죽었다. [12] 김일성의 사촌동생인 김정숙의 남편이니 김정일에게는 당고모부가 되는 셈. [13] 1998년에 방영된 < 진달래꽃 필때까지> 3회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다. [14] 마치 소련군 장성같은 느낌이 난다. [15] 물론 이런 묘사는 몹시 과장된 것으로, 오진우는 김정일이 어렸을 적에 그를 양육했을 뿐 아니라 김정일이 장성한 후에는 그의 후견인 노릇까지 했기 때문에 제법 괜찮은 대접을 받았다. 무엇보다 김일성이 살아있을 적에 오진우는 그의 심복으로서 대단한 신임을 받아 군부의 우두머리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김정일이 후계자였다고 하더라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김정일은 오진우를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차라리 오진우와 라이벌이었던 리용무가 더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16] 이러한 함경도 사투리 연기는 실제 함경도 태생인 김동현 작가에게 배운 것이다. [17] 이하 출처: <TV가이드> 1984년 제140호 기사 p50~51. [18] <TV가이드> 1985년 1월 26일자(제181호) 46~47쪽 기사에 따르면 원래 오백룡 사망 시기인 1984년 4월 극중 등장 예정이었으나, 배역에 맞는 배우를 찾지 못해 8개월 뒤로 미뤄졌다고 한다. [A] 출처: <TV가이드> 1983년 제93호(5월 7일) 기사 '<지금 평양에선>의 윤상미' p39. [A] 출처: <TV가이드> 1983년 제93호(5월 7일) 기사 '<지금 평양에선>의 윤상미' p39. [21] 동 잡지 기사에서 '김성민'으로 오기되어 있다. [22] 혜화여자고등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 출신으로, 1979년 TBC 21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소망>, <아픈 성숙> 등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A] 출처: <TV가이드> 1983년 제93호(5월 7일) 기사 '<지금 평양에선>의 윤상미' p39. [24] 해당 스토리는 1982년 김정일 독살 미수사건을 토대로 했다. [25] 신구 역시 1975년 <대동강>에서 최현 역을 맡을 당시 함경도 사투리를 배웠다. [26] 사실은 6.25 연속기획 9탄 드라마 '함정'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지금 평양에선'과 별개인 듯하지만, 타이틀만 다를뿐 배역과 세트는 물론이고 방영 시간까지 전부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냥 '지금 평양에선'의 스폐셜 에피소드로 보면된다. 기존의 50분보다 2배 많은 100분 분량의 말 그대로 특집이기에 타이틀을 다르게 해서 방영한걸로 보인다. 극본은 김동현, 연출 하강일로 동일하며, 나레이션 신원균. [27] 김정일은 공개석상에서 김일성을 절대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무조건 수령님으로만 불렀으니 썩 맞는 호칭은 아니지만 애초에 반공 개그물이니 상관은 없을듯... [28] 여담이지만, 김정일 역을 했던 배우 김병기는 훗날 MBC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5공 주요인물 중 한 명인 노신영역을 맡게 되면서, 중국민항 296편 불시착 사고와 관련된 연기를 하게 된다. [29] 오백룡을 부르는 장면. [30] 사실 고증오류다. 이미 1980년대에는 실권이 김정일에게 넘어가 있었고, 김일성이 직접 김정일에게 생일 축하 헌시까지 써서 바칠만큼 권력관계가 이미 역전되어 있었다. 김일성이 1980년대 당시 겉보기로는 절대적인 위치에서 독재적으로 군림했지만[34] 실상은 김정일이 김일성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 애초에 안기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평양에선'의 주인공은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로 나오는 것이다. [31] 북한이 주체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고 한참 후인 1997년이었다. [32] 사실 이것은 소련에서 스탈린의 오른팔이었다가 숙청된 라브렌티 베리야의 에피소드를 차용한 것이다. 베리야의 '모스크바 여학생 사냥'은 그 시절에도 매우 유명했다. [33] 영화연극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미디어 환경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전략에서 중요하게 다루워지는데 김정일이 막 정계에 입문했을때도 북한에서 TV가 흔했던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권홍보라는 측면에서 영화와 연극이 매우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