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섭 관련 둘러보기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특채 탤런트, TBC 공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 |
백일섭의 주요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
제10회 ( 1974년) |
→ |
제11회 ( 1975년) |
→ |
제12회 ( 1976년) |
||||||||||||||||||||||||||||||||||||||||||||||||||||||||||||||||||||||||||||||||||||||||||||||||||||||||||||||||||||||||||||||||||||||||||||||||||||||||||||||||||
하명중 (나와 나) |
→ |
백일섭 ( 망나니) 김진규 (광화사) |
→ |
김희라 (마지막 포옹) |
||||||||||||||||||||||||||||||||||||||||||||||||||||||||||||||||||||||||||||||||||||||||||||||||||||||||||||||||||||||||||||||||||||||||||||||||||||||||||||||||||
<colbgcolor=#CBBDB0><colcolor=#fff> 백일섭 白一燮|Baek Il-seop |
|
출생 | 1944년 6월 10일 ([age(1944-06-10)]세) |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면 동정[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수원 백씨 (水原 白氏) |
가족 | 배우자 채미영[2], 아들 백승우, 딸 백지은, 이복동생 4명[3], 이부누나 1명[4] |
학력 |
여수서국민학교[5] (
졸업) 여수종고중학교 ( 졸업) 여수수산고등학교 (어로과 / 전학) 강문고등학교 ( 졸업) 명지대학 ( 영어영문학 / 학사) |
병역 | 육군 제31보병사단 이병 소집해제[6] |
종교 | 불교 |
신체 | 176cm, 82kg, O형[7] |
데뷔 |
1965년
KBS 공채 5기 탤런트 데뷔 [age(1965-01-01)]년차 |
소속사 | 매니지먼트 아이딜[8] |
링크 | KMDb IMDb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젋은 시절에는 남성미 넘치는 쾌남 이미지의 배우였으나 중년에 들어서는 푸근하면서도 속깊고 가슴 따뜻한 다정한 아버지, 남편역을 주로 맡아 오랜시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온 대배우이다. 특히 대사를 구사할 때 나오는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정감있는 대사처리와 보이스톤은 배우 백일섭 연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 평가 받고 있다.
2. 생애
1944년 음력 6월 10일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태어났으며,[9] 용문고등학교와 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5년 KBS 공채 5기로 데뷔하였다.데뷔 초기인 1969년 4월 당시의 대한뉴스 제721호에 등장한 백일섭(46초~1분 10초).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기 청와대로 초청된 몇 안 되는 연예인들 중에 한명이었다.[10] 박정희 대통령이 백일섭이 여수 출신인 걸 알고서, 앞으로 건설될 계획이라며 여수국가산업단지 조감도를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다고 한다. 또 당시는 귤이 귀한 시절이였는데, 귤을 맛있게 먹었더니 갈 때 육영수 여사가 귤을 따로 챙겨줬다고 한다.
2020년 11월 10일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자신의 일대기에 대해 상세히 밝힌 적이 있다. 링크 후술되는 사항들도 비디오스타 당시 언급 및 그 외에 작성된 기사들에 의거해서 기술되었다.
1969년 TBC 이적을 제안받았으나, 이 과정에서 기존 TBC 공채탤런트들의 반대로 고민을 하게 된다. 마침 당시 MBC가 TV채널 개국에 맞춰 백일섭에게 이적을 제안했고,[11] 결국 백일섭은 MBC로 이적해서 MBC의 TV개국드라마 <태양의 연인들>에 출연하게 된다.[12] 이후 몇년간 MBC에서 승승장구했지만 동시에 연예인병에 빠지게 되면서, 어느 PD와 사소한 오해가 발단이 되어[13] 다툼을 하게 되고, 다음날 촬영인데 못하겠다고 그 PD 앞에서 대본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MBC 드라마 캐스팅 자체가 끊기게 된다.(그는 이 때를 가장 후회하는 때로 항상 이야기한다. 백일섭, MBC서 사실상 퇴출→9억 빚 진 사연은…"가장 후회돼") 이로 인해 1973년에 MBC를 떠나 비로소 TBC로 이적했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 때까지 TBC에서 활약한다. 물론 그 기간에 영화출연도 병행했다.
TBC가 없어진 후에는 KBS와 SBS를 오가며 ( 프리랜서 개념으로)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14] 그러나 그 시절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던 MBC의 위상을 감안하면 MBC 드라마에 출연 못하는 타격이 상당했다. 특히 1992~93년에 출연한 MBC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은 제작진이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백일섭을 캐스팅하려고 했으나 예전에 다퉜던 그 PD가 드라마 제작국장으로 있던 시절이라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세월도 흘렀고 해서 백일섭이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제작국장도 받아들여서 실로 오랜만에 MBC 드라마 출연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이 초대박을 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드라마에서 "홍도야~ 우지마라~ 아 글씨! 오빠가~ 이이이있~다." 등 많은 유행어를 낳으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15] 이후에도 사람 좋게 생긴 외모 덕분에, 주로 맘씨 좋고 약간 주책맞은 서민층 어르신 역을 많이 맡았다.
그런데 사실 이 아저씨 젊은 시절엔 원래 김희라와 같은 힘 좋은 육식마초남 캐릭터였다. 우루사 광고를 9년이나 했을 정도다. 당시 우루사 광고 명대사가 허허, 곰이라구요.(너털웃음) 젊은 나이에 영화에 출현했을 때 웃통 사진 벗은 사진을 보면 팔뚝이나 근육이 불끈불끈하다.
우루사 광고 |
생각보다 동안이라서 그런지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나, 솔약국집 아들들, 엄마가 뿔났다 등의 드라마에서 김성겸, 변희봉, 이순재의 아들 역을 맡았는데 모두 백일섭과 10살도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이다.[17]
3. 정치
정치적으로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을 적극 지지했으나( 항목 참조),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후 그가 당선되자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로 취임하였다. 당시 민주당 유은혜[18] 의원에 의하면 회의에 한 번도 참석치 않고 7,000여만 원 수당을 받아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 본인은 한 달 월급이 2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방송 녹화와 시간이 겹쳐서 그랬고 회의 참석말고는 할 일이 없어서 그만두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부터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월급을 받은 것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일단 양측의 말이 달라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나중에 봐야한다.대선 당시에도 MB를 지지하면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겨냥해 원색적으로 이회창 비하 막말을 퍼부어 큰 논란이 있었다. 2007년 11월 13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이회창 출마 규탄 대회 및 필승결의 대회'에서 그는 "친구끼리 만나 같이 일을 하다가도 슬쩍 빠져버리면 뒈지게 맞는다"며 이회창 후보의 탈당 및 대선출마 행보를 비난했다. 그는 이어 "뒈지게 맞기 전에 밤거리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며 거침없이 이회창 후보를 비난했다. 또 그는“누구나 팬이 있듯이 나도 옛날부터 대한민국 국민후보 이명박 후보의 팬”이라며 “좋아하는 사람을 돕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고 규탄대회 참석 이유를 밝혔다. #
4. 그 외
과거 영화 수입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대표로 있던 회사가 솔필름인데, 1990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AKIRA를 수입해 '폭풍소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수입 과정에서 홍콩 영화로 속여서 심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들통나면서 영화사업등록 취소. 당시 신문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인터뷰하기도 했다.2017년 부로 부인과는 별거 중이라고 한다.[19] 덧붙여 이 과정에서 부인과의 사이를 중재하던 딸과도 사이가 틀어져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살림남에서도 보였듯이 가족 중에 서로 연락하는 건 아들 내외 뿐이다. 본인도 현재 주위 상황이 집중 조명되는게 부담스러운지 살림남 시즌 2 제작발표회에서 졸혼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20] 이후 딸과는 2024년 초에 들어서 TV조선의 가족 예능 "아빠하고 나하고"를 통해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과한 체중 때문인지 허리와 무릎이 매우 좋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꽃보다 할배에서는 그리스편에서 다른 출연진 모두가 간 메테오라 수도원을 건강상의 문제로 혼자 가지 못했다. 그리스편 당시의 코디네이터를 후에 여행 가이드로 맞은 사람에 의하면 허리뿐만 아니라 무릎과 심장도 좋지 않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이서진이 밝힌 바에 의하면 유럽편이나 대만편, 스페인편 기간에 방송에 나가지 않아서 그렇지, 일섭이 무섭게 화를 많이 냈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곰같은 덩치의 일섭이 그렇게 화를 낸다면 무섭게 보일만 하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통틀어 서진이 가장 불편해하고 깍듯이 대하는 할배가 일섭이었지만 그리스편에서 짐꾼으로 최지우가 따라오면서 성격이 많이 누그러져서 촬영분위기가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배다른 형제가 4명이나 있다고 한다. #
사용하는 차는 하얀색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다.
1972년 5월에 음주운전 중 좌회전 하던 택시와 부딪힌 후에 별다른 조치 없이 떠나 뺑소니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
조영남과 용문고등학교 10회 동기생이다. 나이는 백일섭(1944년생)이 조영남(1945년생)보다 1살 많다.[21]
5. 출연
- 삼포 가는 길 - 노영달
- 113 수사본부
- 대명 - 임경업
- 길
- 포도대장
- 추적
- 지금 평양에선 - 양형섭
- 개국 - 덕대
- 함정
- 가을꽃 - 김수현
- 즐거운 우리집
- 형사 25시
- 꼬치미
- 제2공화국 - 김동하
- 절반의 실패
- 타오르는 강
- 유심초
- 아들과 딸 - 이만복
- 제3공화국 - 장기영
- 일요일은 참으세요
- 굿모닝 영동 - 주근노
- 남자는 외로워 - 강달호
- 행복하고 싶어요 - 오병택
- 이 여자가 사는 법 - 진무섭
- 제4공화국 - 김형욱
- 간 큰 남자
- 자반 고등어 - 유복조
- OK목장
- 신부의 방
- 미아리 일번지 - 윤칠성
- 세 여자
- 아무도 못말려
- 육남매 - 원영달
- 7인의 신부 - 유달리
- 카이스트 - 교수
- 하나뿐인 당신 - 장필선
- 논스톱
- 불꽃 - 지현 부
- 천사의 분노 - 정민 부
- 대추나무 사랑걸렸네(3기 출연진) - 박태민
- 신화 - 대웅 부
- 미나 - 태훈 부
- 여우와 솜사탕 - 봉진석
- 유리구두 - 김필중[22]
- 황금마차 - 순정 부
- 보디가드 - 경탁 부
- 귀여운 여인 - 장중훈
- 금쪽같은 내 새끼 - 안덕배
- 해변으로 가요 - 윤노인
- 내 인생의 스페셜
-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 - 김철환
- 마이 러브 - 이상구
- 나쁜여자 착한여자 - 김봉달
- 엄마가 뿔났다 - 나일석
- 달콤한 인생 - 박병식
- 솔약국집 아들들 - 송광호
- 스카우트
- 된장 군과 낫토 짱의 결혼 전쟁. - 김달만
-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 홍덕보
- 주홍글씨 - 한용진
- 욕망의 불꽃
- 결혼해주세요 - 김종대
- 사랑을 믿어요
- 오작교 형제들 - 황창식
- 빛과 그림자 - 김풍길
- 힘내요 미스터 김 - 천경술
- 더 이상은 못 참아 - 황종갑
- 결혼의 여신 - 송남길
- 톱스타 유백이
- 아버지의 집
- 한반도
- 피도 눈물도 없이
- 두근두근 내인생 - 장씨 할아버지
5.1. 광고
- 대웅제약 미란타, 우루사, 대웅천
- 유한양행 알마겔, 맥생
- 동원F&B 동원참치캔
- 명인제약 이가탄
- 농심그룹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포테토칩
- 귀뚜라미보일러
- 대일시프, 대일샘파스
- 브롤스타즈
5.2. 예능
5.3. 교양
- 백일섭의 그 때 그 사람 (진행)
-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5.4. 공연
- 내일을 내일만을(1966)
- 햄릿(1967)
- 타인의 목(1967)
- 귀로(1967)
- 마술사의 제자(1969)
- 따라지 족보(1969)
- 학마을 사람들(1972)
- 수전노(1972)
- 흥부와 놀부(1972)
- 토끼와 포수(1977)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78) - 레트·버팔러
- 남녀환상곡(1979)
- 시집가는 날(1985)
- 마게로네의 사랑이야기(1985)
- 빵집 마누라(1993)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2002)
- 빈대떡과 신사(2003)
- 팔도강산(2005) - 아버지
- 장수상회(2016) - 김성칠
- 장수상회(2021~2022) - 김성칠
- 아트(2022) - 이반
6. 저서
- 살맛나는 임플란트 이야기 (2011)
- 살맛나는 임플란트 이야기(개정판) (2012)
7. 수상
-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1975)
-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1993)
-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1996)
- 자랑스런 여수인 (2002)
-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공로상 (2008)
- 제9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탤런트부문 포토제닉상 (2008)
- tvN10 Awards 예능아이콘상 (2016)
[1]
現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
#
[2]
2015년 이후 별거중인 상태.
[3]
그의 아버지는 생전 네 명의 부인을 두셨는데 아버지의 두번째 전처에게서 10살 어린 이복남동생이, 세번째 전처에게서 세 이복여동생이 각각 태어났다고 한다.
[4]
백일섭의 부모가 결혼하기 전에 그의 어머니가 일본유학생과 사이에 낳은 딸이라고 한다.
[5]
現 여수서초등학교
[6]
TV내무반 신고합니다 1999년 5월 17일 제31보병사단 편에서 언급.
#
[7]
https://100479.net/profile/?no=2299
[8]
2022년 12월 15일 전속계약 했다.
기사
[9]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이다. 아버지가 무역업을 했으며 백일섭은 배다른 동기간이 여럿 있다고 할 정도로 어두운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어려서 친어머니와 이별할 때, 잠깐 어디 다녀오시는 줄 알고, 마당에서 노느라 건성으로 인사했는데 그 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못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10]
배우
김용건의 말에 의하면 최초 연예인일 거라고 했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듯하다.
[11]
MBC는 1961년 라디오채널로 개국했고 1969년에야 TV채널을 출범시킨다. 자체 공채탤런트들도 1969년부터 선발(
임현식,
조경환 등등).
[12]
김혜자,
박근형 등과 함께 출연.
[13]
동료, 후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백일섭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대해서 앙금이 쌓였다고 한다.
[14]
1991년말
SBS가 개국하면서 그때부터는 SBS에까지 활동범위를 넓힌다.
[15]
정작 백일섭은
아들과 딸 출연 이전까지는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노래 자체를 잘 몰랐다고 한다. 극 중 이 노래의 가사를 바탕으로 한 유행어도
애드립을 많이 활용했다고 회상했다.
[16]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꽃보다 할배 대만편 촬영 당시 최불암이 그를 지칭해서 배우가 되지 않았으면 뒷세계의 두목, 총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 점이다. 물론 최불암이 약간의 양념을 쳐서 말했겠지만 그 정도로 대단했다는 점이다.
[17]
다만 해당 드라마에서 노역을 맡은 이하의 배우들이 나이에 비해 극 중 맡은 노인의 나이가 많은 것을 참작 해야하기는 하다.
[18]
이후
문재인 정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지냈다.
[19]
실제 이혼은 아니지만 서류상으로만 부부일 뿐으로 사실상
황혼이혼이라고 할 수 있다.
[20]
졸혼이라는 단어는 방송사와 언론에서 남발했지 정작 백일섭 본인은 이 말을 쓴 적이 없다.
[21]
조영남은
서울사대부고,
대광고 입시에서 연거푸 낙방하고 무시험 전형으로 강문고(現 용문고)에 입학했다. 강문고는 당시
창신동에 위치하고 있다가 1964년 4월 30일에
안암동 現 위치로 이전했다.
[22]
29회 사망으로 하차. 30회에 환영으로 잠시 재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