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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사중주 | |||
지쿠 | 소크라치스 | 토니뉴 세레주 | 호베르투 파우캉 |
지쿠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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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28대 |
6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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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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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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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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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 1981 · 1982 | |||
1982 FIFA 월드컵 브론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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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Year 1984 | ||
수상 미셸 플라티니 |
2위 이안 러쉬 |
3위 지쿠 |
Player of the Year 1983 | ||
수상 호베르투 파우캉 |
2위 지쿠 |
3위 미셸 플라티니 |
지쿠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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鹿島アントラー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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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9193f><colcolor=#dddddd> 이름 |
지쿠 Zico |
|
본명 |
아르투르 안투니스 코임브라 Arthur Antunes Coimbra |
|
출생 | 1953년 3월 3일 ([age(1953-03-03)]세) |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2cm / 체중 66kg 선수 시절 | |
직업 |
축구 선수 (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b9193f><colcolor=#dddddd> 선수 |
CR 플라멩구 (1967~1971 / 유스) CR 플라멩구 (1971~1983) 우디네세 칼초 (1983~1985) CR 플라멩구 (1985~1989) 가시마 앤틀러스 (1991~1994) |
감독 |
가시마 앤틀러스 (1999) CFZ (2000~2002) 일본 대표팀 (2002~2006) 페네르바흐체 SK (2006~2008) FC 부뇨드코르 (2008) PFC CSKA 모스크바 (2009) 올림피아코스 FC (2009~2010) 이라크 대표팀 (2011~2012) 알 가라파 SC (2013~2014) FC 고아 (2014~2016) |
|
기타 | 가시마 앤틀러스 (2018~ / 기술고문) | |
국가대표 | 71경기 48골[2] ( 브라질 / 1976~1986) | |
SNS |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가시마 앤틀러스 기술고문을 맡고 있다.
'하얀 펠레'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3]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세계 축구계를 대표하는 선수로, 특히 플라멩구에서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활약했다. 또한 엘리아스 피게로아, 카를로스 테베스와 함께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상 최다 수상자(3회)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지쿠는 1971년 CR 플라멩구에서 데뷔하여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플라멩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1974년 브라질 전국 리그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다음 시즌에는 리그에서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플라멩구는 명실상부 브라질 최강의 팀 중 하나로 바뀌었고 1979년에는 무려 72골[4] 을 넣었다.
1980년에는 전국 리그 결승전 2차전에서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를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여 2경기 모두 승리로 이끌며 전국 리그 트로피를 차지한다. 기세를 몰아 1981년에는 11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제패한다.
이후 리버풀과의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지쿠는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상대를 3:0으로 대파하고 MVP를 차지한다. 당시 리버풀은 단순한 강팀이 아니었다.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중후반까지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리그 우승 11번, 유로파 우승 2번, 유러피언컵 우승 4번을 이룩한 명실상부 유럽축구계 최강의 팀이자 클럽 축구계 역대 최강의 팀에도 명함을 내밀 수도 있는 팀으로도 뽑히는 붉은 제국 시절의 리버풀이었는데 공간을 찢어버리는 패스로 원맨쇼를 펼치며 그 리버풀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것이다. 이 경기의 여파와 함께 당시 리버풀 멤버들은 각종 국가대표 대항전에서도 큰 활약을 못 보여 클럽의 업적에 비해 개개인의 평가는 그다지 높게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경기가 바로 지쿠의 인생 경기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붉은 제국을 혼자서 묻어버린 셈이다.
이후 1983년 30대에 접어든 지쿠는 당시 세리에 A의 중위권 팀이었던 우디네세 칼초로 이적한다. 사실 지쿠 정도 되는 동세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밀란이나 유벤투스 정도 되는 명문 클럽도 아니고 군소 클럽에 가까웠던 우디네세로 이적한 것은 그가 하락세로 접어들 나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우디네세가 지쿠를 영입하기 위해 돈이란 돈은 남김없이 털어버린 것도 모자라 시민들까지 모금 운동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렇게 세리에 A로 이적한 첫 시즌에 지쿠는 프랑코 카우시오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많은 골을 넣어 미셸 플라티니에 이어 득점 2위를 차지하는 등 기대에 걸맞은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다만 그 이후로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좋은 활약을 하지 못했고, 이후 1989년 CR 플라멩구에서 선수 생활을 정리한 뒤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미토모 금속공업' 팀에 들어간다. 이 팀은 J리그가 출범하면서 가시마 앤틀러스가 된다.
지쿠는 J리그 출범에 깊이 관여했을 뿐더러 선수로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일본 팬들의 지지를 얻는다. 1994년 가시마 앤틀러스를 마지막 팀으로, 지쿠는 현역 프로 생활에서 은퇴한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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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했다. 하지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1978년엔 무패 3위라는 성적표[5][6]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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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브라질의 월드컵 행보를 요약한 동영상 |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에 3:1로 승리를 거뒀으며, 그나마 아르헨티나의 1골도 종료 1분 전에 들어간 것이었다. 멘붕한 마라도나는 종료 5분 전 브라질의 수비수 바티스타를 걷어차고 퇴장당했다. 반면 지쿠는 이 경기에서 1골 1어시에 남은 득점 장면에서도 어시의 어시를 기록하는 등 3골 모두에 관여하며 MOM급 활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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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 vs 젠틸레 |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부상을 안고 출전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팀은 오히려 1982년 대회보다 훨씬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8강전까지 파죽지세로 진출했다. 8강전에서 플라티니의 프랑스와 만난 브라질은 카레카의 선제골을 앞세워 앞서나갔으나 플라티니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1대1로 비긴 상황에서 후반전 극적으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는데, 하필 이것을 지쿠가 실축하고 만다. 결국 브라질은 승부차기 끝에 패하고 말았고, 지쿠는 경기력과 더불어 패배의 원흉으로 몰려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 월드컵은 지쿠 입장에서는 커리어 막판 제대로 재를 뿌린 대회가 되고 말았다.
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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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에 남을 킥 능력을 보유했던 선수. '발에 레이더가 달렸다'는 찬사를 들을만큼 정교한 킥으로 수비 허점을 노리고 길고 짧은 패스를 자유자재로 뿌렸다. 팀에서 프리킥과 코너킥을 도맡아 차다시피한 역대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명으로, 프리킥의 본좌로 꼽히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가 "지쿠가 나보다 잘 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9][10] 여기에 탁월한 개인기와 득점력까지 보유한 선수였다.[11][12]
웬만한 스트라이커를 방불케 하는 득점력과는 대조적으로, 플레이를 관전하다보면 득점에 특별히 주력하던 미들라이커 유형의 선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팀의 빌드업을 후방에서부터 리드하던 지휘관 스타일의 선수였다. 이런 선수가 득점력마저도 역대 최고 수준이니, 레전드로 꼽지 않을 수가 없다.
4. 평가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자 브라질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3] 남미의 발롱도르라 할 수 있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를 3회 수상했을 정도로 당시 남미 리그에선 독보적인 실력과 인기를 자랑했고[14] 동시대 유럽에서 활약했던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1980년대 초반 세계 축구계를 대표하는 선수다.그러나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브라질에서 보냈다는 점, 유럽에 진출해서도 우디네세라는 약소팀에서 뛰었다는 점, 브라질 에이스로서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 어느 것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평가가 내려가고 잊혀지는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5. 지도자 경력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튀르키예에 패한 후 사퇴한 필립 트루시에의 후임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이후 2004 아시안컵 우승을 맛보기도 했지만,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당시에도 졸전을 펼치자 대한민국의 조 본프레레 감독과 일명 '감독 단두대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15] 그 경기에서 승리한 후 정신을 차렸는지 팀을 재정비해 본선 진출에 성공한 상태에서 치른 최종전이었던 이란전은 2대1로 승리하는데 성공했으나, 막상 월드컵 본선에서는 졸전 끝에 1무 2패로 광탈하였고, 이비차 오심에게 감독직을 넘겼다.먼저 1차전에서 거스 히딩크의 호주에 1-3으로 역전패하였고,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에서는 졸전 끝에 0-0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버렸고, 닥치고 이겨야만 했던 모국과의 3차전에서는 1-4로 대패하는 굴욕을 당했다.[16]
이후 쉬페르리그의 페네르바흐체 SK 감독을 맡았으며, 2007-0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PSV 에인트호번을 조 3위로 밀어내고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뒤 16강에서 세비야를 꺾고 팀을 8강에 올려놓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감독으로서도 선수 못지않은 명성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으며,[17]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케빈 키건의 후임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감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뒤 우즈베키스탄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의 분요드코르,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PFC CSKA 모스크바를 맡았으나 각각 1년만에 경질되었으며, 2009년 수페르리가 엘라다의 올림피아코스 FC 감독을 맡아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 2위로 다시 한 번 챔피언스 리그 16강을 밟는 등 좋은 성적올 올렸다. 하지만 팬들은 지쿠의 팀 운영 방식이나 전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쿠를 까대기 시작했으며, 구단도 이를 받아들여 결국 2년차에 팀의 지휘봉을 놓게 되었다.
이후 자국으로 돌아가 CR 플라멩구의 단장을 맡았으며, 2011년부터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A조에 소속되어 조 1위를 확정짓고 최종 예선에 올랐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최종 예선에서 자신이 감독을 맡았던 일본과 한 조가 되었다. 조추첨 이후 "일본을 꺾을 자신이 있다."고 인터뷰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가 끝난 후 가시마 앤틀러스의 기술 이사에 취임했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 CR 플라멩구 (1971~1983)
- 세리 A: 1980, 1982, 1983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72, 1974, 1978, 1979, 1979 (Extra), 1981, 1986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81
- 인터컨티넨탈컵: 1981
- 브라질 비치사커 축구 국가대표팀
- 비치사커 월드 챔피언십[19]: 1995, 1996
- 아메리칸컵 비치사커: 1995, 1996
6.1.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AM 9위)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83
-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77, 1981, 1982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1982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MVP: 1981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1981
- 인터컨티넨탈컵 MOTM: 1981
- 볼라 지 오우루: 1974, 1982
- 볼라 지 프라타: 1974, 1975, 1977, 1982, 1987
- 세리 A 득점왕: 1980, 1982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1975, 1977, 1978, 1979, 1982
- 비치사커 월드 챔피언십 MVP: 1995
- 비치사커 월드 챔피언십 득점왕: 1995
-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 1981
- 구에린 스포르티보 베스트 XI: 1980, 1981, 1983
- FIFA XI: 1979, 1982
- FIFA 100: 2004
- FIFA 공로장: 1996
- 골든풋: 2006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2010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남아메리카 드림팀: 2021
- IFFHS 올타임 브라질 드림팀: 2021
6.2. 감독
6.2.1. 대회 기록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2002~2006)
- AFC 아시안컵: 2004
- FC 분요드코르 (2008)
- 우즈베키스탄 슈퍼 리그: 2008
- 우즈베키스탄컵: 2008
7. 여담
은퇴 후 일본 대표팀에 부임하기 전 페르난두 콜로르 정부에서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체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장관 재직 시절 이른바 '지쿠법'을 추진해 브라질 프로 스포츠의 구조를 개선하려 했다. #일본 국가대표팀에 부임한 뒤 한때 나카타 히데토시, 나카무라 슌스케, 오노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 등 당시 일본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선수들로 MF를 꾸린 적이 있다. 이를 놓고 일본에선 '일본판 황금 4중주'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막상 경기에서 좌우 측면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끝내 포기했다. 생각을 해 보면, 수비형 미드필더를 주로 하는 나카타와 이나모토, 중앙에서 플레이메이커를 하는 오노와 나카무라를 뒀으니, 좌우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무래도 자신의 현역 시절 브라질 국대의 주 포메이션이었던 4-2-2-2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은데, 당시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지쿠 본인과 소크라치스로 오노, 나카무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선수들이었다.[20]
J리그에서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는 젊은 선수가 있어 당장 선발해야 한다며 프로필을 알아봤는데, 한국 선수인 김근철[21]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강인한 인상이 남달라 보였는지, 일본대표팀 선수들에게 '한국 선수들처럼 뛰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오락실 축구게임 세이부 컵 축구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메인 모델이자 주장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쿠가 아니라 카레카 혹은 둥가라는 의견도 있다.
1994년 슈퍼 패미컴으로 나온 지코 사커에서도 감수 및 찬조출연을 담당했다. 문제는 게임 자체가 똥겜인데다 카트리지를 너무 많이 찍어낸 탓에 중고게임 샵에서 10엔에 팔리는 등의 수모를 겪었으며 다른 불법 게임 롬 바꿔치기의 주요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피파 시리즈에서도 클래식 레전드로 등장했다. 오버롤은 91.
일본에서는 초기 J리그를 상징하는 대형 스타이지만, 의외로 J리그 출범 전에는 지명도가 낮다 보니 이름과 관련한 굴욕적인 일화도 있었다. 가시마의 전신 스미토모금속에서 지쿠를 데려왔다는 뉴스가 나오자, 지역 주민들이 '제철소에서 또 사고 (일본어 발음으로 '지코') 를 친 모양이구만' 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소도시인 가시마의 프로팀 가시마 앤틀러스가 빠르게 명문으로 발돋움하면서 그런 일은 사라진다.
중국의 탁구 선수 장지커, 아프리카TV BJ 커맨더지코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한국 래퍼 지코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감상하기도 했다.
8. 둘러보기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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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격형 미드필더
[2]
대표팀 역대 득점 5위.
[3]
이 별명은
토스탕부터 이어져내려온 별명이며,
카카가 그대로 이어받는다.
웨인 루니 역시 하얀 펠레라는 별명이 있었다.
[4]
1년 최다 골 기록에서 지쿠보다 위에 있는 선수는
리오넬 메시,
게르트 뮐러,
펠레 단 3명밖에 없다.
# 심지어 1년 최다 골 기록 top 10 안에 든 선수 중 몇 안되는 미드필더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였음에도 얼마나 괴물 같은 득점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
이 무렵엔 토너먼트가 아닌, 16강 조별 리그 방식이었다. 결국 골득실에서 홈팀 아르헨티나에 밀려 결승전에 오르지 못했는데, 지금도
승부조작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현재 담합을 막기 위해 같은 조 마지막 경기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연다고 명시했지만, 이때는 이런 규칙이 없어서 아르헨티나가 브라질보다 나중에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득실차 +3을 극복한 6:0 대승이었다.
[6]
이 국제대회 우승이 없는 커리어 때문에
호마리우에게 "지쿠가 뭘 우승한 적은 없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월드컵 우승이 없다고 해서 지쿠를
호마리우보다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7]
지쿠와 마찬가지로 일본 국대 감독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선수다.
[8]
역사상 최강의 국가대표팀이라 불리는 1970년 브라질 국가대표팀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9]
베스트 일레븐에서 소개한 일화중 하나로
우디네세 칼초에서 뛰던 시절,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는 프리킥을 차려는 지쿠를 견제하기 위해서 수비벽을 쌓은 유벤투스 선수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기어나오는 통에 심판의 제지로 인해 경기가 5분 가까이 지연되기도 했다는 소설같은 일화도 있다.
[10]
프리킥 통산 골 수는 62골.
디에고 마라도나와 동률로, 역대 프리킥 득점 순위 상위권에 든다.
[11]
동시대 라이벌이였던 플라티니, 그리고 마라도나보다도 더 많은 득점 및 득점률을 기록했다.
[12]
이 때문에 하얀 펠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전방 공격수였던 펠레와 미드필더였던 지쿠, 둘의 활동반경은 미들진부터 최전방까지 매우 비슷했다. 사실 펠레는 전형적인 센터포워드라기보다는 프리롤 세컨탑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왔다갔다 하는 타입에 가깝다. 이는 동시대의 프랑스의 축구 영웅인
미셸 플라티니도 마찬가지이나 지쿠는 좀 더 단독으로 전진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플라티니도 뛰어난 테크니션이지만 지쿠는 굉장히 빠르고 민첩한데다가 테크닉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상대 선수 여럿을 가볍게 제칠 수 있는 수준의 드리블러였다.
[13]
호나우두,
가린샤급 반열로 평가받는다.
[14]
당시 발롱도르에 국적 제한이 없었다면 1981년 발롱도르는 지쿠의 것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5]
참고로 이 경기에서 패배한 본프레레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기회를 얻었으나, 결국 그 경기에서도 패배하자 어김없이 경질되었다.
[16]
브라질은 이미 조 1위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1.5군으로 출전했다. 의외로 전반 34분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으나 12분만에
호나우두에게 동점골, 후반 2분
주니뉴 페르남부카누에게 무회전 중거리 슈팅으로 연달아 실점했다. 이날
호나우두는 자신의 월드컵 통산 13, 14호골을 기록했다.
[17]
이 당시에는 페네르바흐체 팬들 사이에서 '크랄 아르투르(Kral Arthur, 킹 아르투르라는 의미)'로 불렸다.
[18]
J리그의 최초 명칭
[19]
FIFA 비치사커 월드컵의 전신
[20]
오노나 나카무라도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지쿠와 소크라치스는 동포지션 역대 다섯손가락 안에도 드는 선수이다.
[21]
이 선수도 소싯적에 축구팬들에게 유망주로 기대받았지만, 이른 나이에 J리그 간 선수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기대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채 정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K리그로 돌아와서
경남 FC와
대구 FC에서 활약하다가 이후 태국 리그에서 뛰었다.
분류
- 1953년 출생
- 1971년 데뷔
- 1994년 은퇴
- 리우데자네이루 출신 인물
- 브라질의 남자 축구 선수
- 브라질의 남자 축구 감독
- 미드필더
- 공격형 미드필더
- 축구 행정가
- CR 플라멩구/은퇴, 이적
- 우디네세 칼초/은퇴, 이적
- 가시마 앤틀러스/은퇴, 이적
- 가시마 앤틀러스/역대 감독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페네르바흐체 SK/역대 감독
- FC 부뇨드코르/역대 감독
- PFC CSKA 모스크바/역대 감독
- 올림피아코스 FC/역대 감독
-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알 가라파 SC/역대 감독
- FC 고아/역대 감독
- 브라질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참가 선수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1979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감독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감독
- AFC 아시안컵 우승 감독
-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 참가 감독
-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 참가 감독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수상자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명예의 전당 헌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