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5:02:53

세기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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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양장본 7권 및 8권. 출처는 통일뉴스

1. 개요2. 특징3. 논란
3.1. 1994년 가서원 세기와 더불어 판매 논란3.2. 2021년 민족사랑방 세기와 더불어 판매 논란
4. 구성5. 기독교 관련 언급6. 기타7. 참고/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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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eminiscences: With the Century / 世紀와 더불어 / 與世紀同行/ [ruby(世紀, ruby=せいき)]とともに

세기와 더불어는 1992년 4월~1998년 7월에 북한에서 출간된 김일성 회고록이다.

김일성 혼자서만 쓴 건 아니며, 통일전선부의 지원을 받은 조선로동당 당력사연구소에서 북한의 어용작가 집단을 동원해 썼는데, 이 과정에서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내용이 과하게 들어갔기에 실제 김일성의 행적과는 다른 내용이 많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통일전선부에서 작가들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력사연구소에서 반발하여 두 부서가 서로 하겠다고 다툼이 생겨 김정일이 당력사연구소에서 주관하는 대신 통전부에서 작가를 지원하라고 정리했다.

김일성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항일운동까지의 일생을 윤색하여 개인우상화와 주체사상 주입용으로 발간하였다. 김일성 생전에 발간된 6권의 '항일혁명편'과 사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김일성의 유고들과 각종 자료들을 기초로 발간한 2권의 '계승본'까지 총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방송에선 이 책의 본문의 일부를 읽어주기도 한다.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해당 언어 사용 국가에서 판매 중이다.

2. 특징

이러한 역사의 위조가 과연 효과를 낼 수 있겠는가?
이들은 역사는 결국 사실대로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황장엽, 북한의 진실과 허위, (시대정신, 2006)
고위급 탈북자 황장엽은 한때 본인도 이 회고록 편찬에 관여하였다고 증언했으며, 이 자서전을 김정일이 주도하여 그의 부자세습을 완결짓기 위한 정치사업의 일환으로 보았다. 김정일은 혁명 1세대 원로들이 집필한 빨치산 회고록들을 전부 회수하고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각색된 소설과 영화들을 찍어내도록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전부터 이미 빨치산 1세대 혁명 원로들의 회고록은 판이 새롭게 나올 때마다 내용이 바뀌고 있었다. 1950년대 최초로 출판된 빨치산들의 회상기에는 주체사상이나 조선인민혁명군, 조선광복회 같은 내용은 전혀 없고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들의 항일유격대 경력만 담고 있는데, 최신판으로 갈수록 나중에 새롭게 창작된(!) 무장투쟁기록이 추가되면서 노골적인 김일성 우상화 선전물이 되었다. 근데 김정일은 이것조차도 부족하다고 느껴서 아예 회수해 버렸다. 즉, 원로들의 회고록에 말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김일성 숭배에 걸림돌이 되는 내용이 들어가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회고록이 어겨선 안 되는 일종의 역사 가이드라인을 김정일이 직접 제시한 것이다. 이는 김일성 사망 이전에 김정일이 일찍부터 원로 세대를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틀어쥐는 데 성공했음을 알 수 있는 간접적 증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1980년대 김정일이 지휘한 선전영화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자서전도 과장과 윤색, 날조로 점철되어 있다. 중국 조선족 출신 유순호 작가도 2017~2018년에 출판한 저서 <김일성 평전>을 통해 이 책에 왜곡이 많다고 밝혔다. 이 책이 담은 사건들이 역사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찍이 1990년대에 서적을 확보해 연구한 사람들이 2000년대 초반 남북 해빙기에 내놓은 논문을 통해 평가가 끝났다.

일단 첫 장에서 등장하는 김일성의 족보부터가 날조다. 북한 정권의 자신들의 정통성으로 삼는 1930~40년대 만주 소련 지역에서의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활동도 모두 조작으로 중국, 일본, 소련의 풍부한 대전기 사료와의 교차검증으로 완벽하게 부정된다. 작중 주인공인 김일성이 지휘하였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으며, 실제 그는 1930년대 중후반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동북항일연군이라는 다민족 항일무장조직에서 150명 규모로 추정되는 조선인 유격대를 이끌던 하급지휘관이었을 뿐이다. 관동군의 가혹한 토벌로 만주 지역의 항일무장조직들이 와해되던 1941년 자신의 최측근들을 데리고 소련령 연해주로 도피해서 소련군 극동88여단 장교로 복무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원산항에 양복을 입고 소련군 대위가 되어 이반 치스차코프 대위를 수발하러 돌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실제 행적은 자서전에서 완전히 지워졌고, 실제 역사와 동선 하나 제대로 짜맞추기 어려울 만큼 과대포장, 날조되고 말았다. 사실상 실제 역사와는 완전 무관한 3류 무협지인데 단지 주인공이 김일성일 뿐이다.

사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실질적 와해를 전후로 일본군의 침략전쟁이 기승을 부리면서 상당수의 후기 독립운동가들은 내부 파벌싸움과 재정난으로 앓기 바빴지, 의미있는 열매를 거둔 인사의 수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김일성이 세습독재와 개인숭배로 치닫지 않았더라면 그도 작게나마 일본에 맞서겠다고 만주로 향한 자로서 비웃음 없이 행적 그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자였을 것이다. 때문에 일본이 중국 동북부는 물론 중국 내륙으로 점점 침략해들어가면서 만주땅에서 무장독립투쟁은 거의 불가능하던 시절 고작해야 일본 경찰의 국경초소를 습격한 것에 불과한 보천보 전투가 그렇게 신화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유였으며,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김일성 장군 전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황장엽의 말마따나 어처구니 없는 신격화와 개인숭배가 뒤따르고 김일성의 영웅적 무장투쟁이 곧 세습의 정통성이라는 논리에 입각해서 천배, 만배 뻥튀기하고 윤색, 날조한 가상의 항일무장투쟁사를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주입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이 자서전은 호사가들에게 김두한 자서전만큼의 가치도 없는 불쏘시개로 여겨지고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비슷한 유형의 자서전으로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이 꼽히는데, 두 책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전자는 네오나치의 환상을 산산이 부숴 줄 만큼 더럽게 재미가 없는 한편, 아직 정권을 석권하지 못한 애송이 히틀러가 1925년 만 35세의 나이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대해 질릴 정도로 떠들어대는 것을 저열한 문체로 그대로 옮겨 적은 덕에 연구가들에게는 그의 심리를 해부할 수 있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료로 여겨진다. (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반박 주석을 달지 않으면 출판이 엄격히 금지된다.) 나의 투쟁과 달리 세기와 더불어는 어떤 의미에선 재미가 꽤 있고 다른 의미에선 정말 재미가 없다. 전문 작가들이 김일성의 의견과 무관하게 김정일에게 충성하기 위해 가필한 위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김일성 숭배라는 기조의 기준에서) 사상적으로 가지런하고 씩씩하고 멋진 말들만 들어 있다. 때문에 세기와 더불어는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인간적이고 건조하게 포장된 자기소개서와도 같으며, 한편으로는 작가들이 일부러 웃으라고 넣어 둔 포인트마다 '아, 이 대목에서 재미있어하면 되는 거구나'라는 내용이 있고 전문 작가들이 쓴 것이기 때문에, 그런 대목에서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결과적으로 두 책 모두 자뻑의 소관이나 <나의 투쟁>은 장문충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사료로, 후자는 정부사업으로 펴낸 양판소 무협지 내지는 군대 무용담 정도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차이가 있다.

굳이 이 선전물에서 어떤 의의를 찾자면 김일성 일가가 자신들의 가계도를 어떻게 포장해서 인민들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북한인들의 정의론적 관점에서 인정되는 영웅상이란 어떠한 모습인지, 세계사적 사건이나 해방 이전 북조선계 인사들에 대해 김일성 일가가 공식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은 약간 건질 수 있다. 그 내용이 전부 구라일지라도 현대 사회에서 종신집권에 세습까지 하려면 태조의 업적이 어느 정도나 커야 정당화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북한 사회와 김정일의 심리를 엿보는 기준점으로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한편 이 서적은 김일성의 출생부터 해방 당일까지만 다루기 때문에, 김일성이 이반 치스차코프의 따까리로 원산항으로 입국해 시작된 소련군정 시절부터 직접 집권하여 겪어 온 20세기 중후반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쓰여 있지 않다. 1945년부터 김일성 집권기의 기록이나 선전물을 열람할 의도라면 이 책이 아닌 다른 자료를 찾아야 한다.

3. 논란

3.1. 1994년 가서원 세기와 더불어 판매 논란

김일성 사후 주사파 파동이 불어닥친 1994년에 도서출판 가서원이 이 책을 대한민국에서 만들어 팔려고 했다가, 8월 8일에 출판사와 인쇄소가 압수수색되고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현재 이 책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이적표현물로 규정되어서 시중에서 구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책의 내용을 찾는다면 국립중앙도서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찾아서 열람하거나 대학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3.2. 2021년 민족사랑방 세기와 더불어 판매 논란

2021년 4월 1일부터 한국에서도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을 통해 출판되어 교보문고 등 서적 및 쇼핑 사이트를 통해 구매를 시작했는데, 북한 조선로동당출판사의 원전을 그대로 냈다. 이 출판사는 2020년에 전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 김승균(남북교역(주) 대표)이 세운 곳이다.

출판사 측은 인터넷 서점 책 소개란에 미-중 2극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북의 화합으로 통일을 이룩하자고 하며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이 명예회복된 것처럼 좌익 항일무장투쟁도 역사적인 공적으로 인정받길 바라는 차원에서 냈다고 했으며 판매 수익을 통일운동기금으로 쓴다고 밝혔다.

허나 문제는 소위 좌익 항일무장투쟁이라는 것이 과연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냐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도 박헌영, 김원봉, 김무정 등 다른 좌익 항일운동가들도 있었고, 굳이 북한 정권을 빼더라도 다른 좌익계 독립운동가들도 있지만, 북한 정권이 인정하는 좌익 항일무장투쟁이란 김일성을 따르는 빨치산파의 활약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의 진정한 활약이라곤 보천보 전투, 훙치허 전투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중국 팔로군, 소련군에 소속되어 맡은 작은 역할뿐이었다. 그나마 이런 자신들의 활약도 북한에서는 왜곡하여 선전한다. 애초에 세기와 더불어 자체가 왜곡으로 범벅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목적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다. 싫다거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왜곡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진실로 인정받을 수도 없고. 그렇지만 독일에서 현재 히틀러의 나의 투쟁 출간시 비판, 비평문을 달고 나오는 것처럼 출판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도 있다.

통일부와 협의를 안 거치고 냈다는 점에서 이적표현물 문제가 있고,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유해매체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으며, 20만원 대의 비싼 가격 등 여러모로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이에 출판사 측은 "우리나라 헌법이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데다, 이 책은 김일성의 어린 시절 및 항일운동사까지 소개한 터라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며, 한국에선 허가제가 아니라서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다고 밝혔고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와 경제협력 사업 지원 등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기사, 중앙일보 기사, 조선일보 기사)

이에 통일부 측은 4월 22일에 출판 경위를 파악하여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김일성 찬양물을 버젓이 출판하겠다는 거냐”며 반발하거나 “어차피 체제 경쟁 우리가 이겼고 책 내용이 대부분 거짓 왜곡인 거 알만한 사람 다 안다”고 비판적으로 걸러서 보면 될 일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 논리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 출판을 허용하면서 '어차피 히틀러가 미친 놈인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라는 이유를 대는 것과 같다.

물론 나의 투쟁 출판을 허용하는 경우 대게 '히틀러가 얼마나 미친놈인가' 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목적이지만 이 경우는 그 목적 자체부터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출판사의 의도는 결국 독자의 이해방식, 한국 사회의 수용태도에 따를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인물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뜻하지 않은 긍정적인 효과로 돌아올 것이다.

이는 일부 보수 인사들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이유와 같은데, 모든 정보를 오픈한다면 북한의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게 되어 종북주의자가 오히려 줄어들지 않겠냐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 민주화 초창기에 몰래몰래 진지하게 보던 금서들도 지금 기준으로 호기심을 벗기면 그저 '평범한 사회주의, 좌파 서적'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운동집단에 대한 비판이나 북한식 반미민족주의 기반의 독재체제에 대한 이론적 면역이 충분하기 때문에 츨판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남한의 이러한 논란이 관심을 끌었는지 대외매체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대결광기를 보여준다”고 비판하였고 메아리에서는 남조선에서 얼마만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하며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는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 중에서도 가장 초보적인 것이라며 누워서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기고문을 작성하였다. 물론 어디가 더 자유가 없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출간 후인 4월 23일에 우익 시민사회단체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NPK)' 및 산하 조직 NPK아카데미 등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변호는 도태우 변호사가 맡았다. 이에 교보문고 측은 '고객 보호'를 명분으로 해당 도서의 신규 판매를 중단하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검색이 안 되도록 했다. 26일에 서울지방경찰청 안보수사대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다가 5월 14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는 NPK 등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신청인(채권자)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기각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 이 서적의 판매·배포 행위로 인해 신청인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 있겠지만, 이 사건에서 서적 내용이 신청인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 이 서적이 국가보안법상 형사 처벌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행위가 신청인들의 인격권을 침해했으니 금지돼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 서적 판매·배포 행위는 국가가 헌법을 수호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 신청인들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신청인들에게 사법상 권리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
  • 신청인들은 자신들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신청인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신청할 수는 없다.

1심 재판 다음날에 대한출판문화협회 측은 1심 선고를 환영하는 성명을 내자 (사)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주축으로 한 납북자 가족 20여명이 서울서부지법에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서 맞섰다. 5월 26일에 경찰 측은 발행처인 민족사랑방 사무실과 김승균 대표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한 후 7월 1일 김 대표를 소환 조사했고, 9월 28일에 김 대표와 관련자 1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다른 한편 10월 6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판매·배포금지 가처분이 기각됐다. 이에 원고 측은 1심 재판부를 국보법상 방조 혐의로 고발한 후 2차 판매·배포금지 가처분도 신청했고 동월 28일에 탈북민 원외정당 ' 남북통일당'도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2022년 1월 18일 대법원은 "이적표현물이라 해도 국민들이 맹목적으로 수용하긴 보기 어렵다" 며 기각 처리했고 2차 가처분신청 역시 25일 서울고법에서 기각 처리됐으며 원고 측은 대법원으로 재항고하겠다고 했다. 과거 존재한 도태우 측 페이스북 게시글에 따르면 남북통일당이 별도로 낸 3차 가처분신청은 2022년 3월 기각되었다.

동년 6월 30일, 서울지방경찰청 안보수사대는 발행처인 민족사랑방 사무실, 김승균 대표 및 직원 자택, 인쇄소 등지에 압수수색을 벌였고 7월 29일에는 안보수사대가 정대일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실장 및 통일시대연구원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는데 압수품 중엔 해당 판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정대일 측이 "연구자가 연구자료를 모으는 건 당연하다"[1]며 경찰의 수사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하며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자 11월에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수사를 받았고 2023년 5월 25일 불구속 송치되었다.

2021년 세기와 더불어를 구입한 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되었으나 불입건된 네티즌이 인증하였다. # 대법원에서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것이 영향이 있던 것 같다.

4. 구성

  • 제1권 - 김일성의 어린 시절부터 화성의숙 중퇴와 길림으로 전학 1930년에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의 인생이 서술돼 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이 사실은 반공주의 성향의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는 것을 은폐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교회가 끼친 영향도 모조리 부정한다. 김형직, 강반석 부부의 고향 평양 1907년 평양 대부흥 때부터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신교의 세가 강력하던 곳이었다. 현재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극단적인 보수, 반공, 반북 성향을 띄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양의 개신교도들이 해방 이후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서 대거 월남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체사상의 형성에 김일성의 모태신앙이었던 개신교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점은 전문연구자들 사이에서 흔히 나오는 지적이며, 고영환 같은 고위급 탈북자들도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다.
    화성의숙 중퇴 시기와 사유도 김형직의 유언까지 왜곡하는 불효와 패륜을 보여준다. 민족주의자 김형직이 사망하자 화성의숙을 때려친 것인데, 김형직의 유언을 왜곡하여 김형직의 뜻에 따라 자퇴했다고 주장했다.
  • 제2권 - 1930~1933년까지의 일을 회상한다. 그를 돌봐 주었던 손정도 목사가 얼마나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는가를 서술하였다.
    그런데 김일성의 주장과 달리, 손정도 목사 가족은 그저 얼굴이나 알던 사이이며 친밀했던 사이란 걸 부정한다. 손정도 목사가 유명인이고 당시 김일성의 만주 행적을 증명할 유일한 주요인물이기 때문에 과장하지 않았다는 게 현재의 평가다. 다만 이 이야기는 가족마다 주장이 다르다.
    한편 책에서는 그것 때문에 정은 있었는지 미국에 살던 손정도의 차남 손원태 박사를 초대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손정도 목사의 장남 손원일 제독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자로 6.25 전쟁 당시 김일성과 적대했다. 그의 원래 이름이 김성주이며 그의 선배가 쓴 <조선의 별> 이라는 시에 영향을 받아서 김일성이라고 개명했다고 말한다.
  • 제3권 - 가장 긴 책이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의 독립운동을 한 걸 회고한다. 당시 한국 독립군 게릴라, 중국 빨치산들과의 관계를 서술하였다. 자신이 만주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와 싸운 전투를 언급한 것들이 있는데, 일본 공식 문헌에 있는 것과 없는 것도 있다. 김일성이 만주에 있는 반일 인민유격대를 통합하여 1934년 3월에서 5월까지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고 하였고, 조선인민혁명군이 나중에 동북항일연군에 제2군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북한 자료 외에 일본 자료나 중국공산당 자료에는 이러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기록은 없다. 동북항일연군의 총사령관은 중국공산당의 양징유이고 제2군 군장도 중국인 왕더타이였다. 김일성은 당시 제2군 제6사의 사장으로 싸우고 있었다. 즉, 중국공산당이 지휘하는 항일무장부대에서 1~200명 규모의 조선인 소부대를 이끄는 말단 지휘관이었는데, 중국공산당을 완전히 빼버리고 마치 자신이 만주 지역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을 혼자서 이끈 것처럼 엄청나게 뻥튀기 한 것이다.
  • 제4권 - 1935년 2월부터 1936년 5월까지 항일전투 기록을 담고 있다. 중국인 한국인 인종차별 문제를 서술했다.
    1931년 만보산 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을 국내 언론(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터무니 없이 부풀려서 만보산사건 오보사건이 일어나면서 한반도에서 반중 정서가 폭발해 1931년 화교배척폭동, 1931년 평양화교 학살이 일어난다. 이것이 다시 만주에 전해지면서 이번에는 중국국민당 계열의 봉천군벌에 의해서 조선인에 대한 학살과 약탈이 일어나고, 중국공산당도 내부의 조선인 당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진행한다. 1935년이 되면 일단 겉으로는 조용해졌지만, 만주 전역에서 조선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 만연하게 된다.
    이 문제의 해결은 김일성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대황위회의 기록에는 김일성의 존재가 없다. 또한, 이때는 김일성의 만주항일무장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기인데, 자신이 조국광복회를 조선 국내와 만주에 창설하였다고 하는데, 조국광복회에 대하여는 많은 역사적 문헌들이 있고, 이 회의 본명은 ‘재만한인조국광복회’이며, 창설자와 조직망도 잘 조사되어 있다. 여기에도 김일성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 제5권 - 1936년 5월부터 1937년 3월까지 김일성이 일본군과 싸운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여기에 몇몇 빨치산 인물들이 언급된다. 이들 중 몇 명은 북한에서 중요한 요직에 앉은 이들의 부인 자리에 앉게 된다.그리고 김일성은 남만에서의 싸움이 자랑스러웠다고 썼다. 이때 김일성이 우리말로 <삼일월간>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자신과 천도교와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은 자기가 항일운동에 유용하게 이용한 조국광복회와의 관련을 설명하면서 천도교를 민족종교라고 주장하며, 끝으로 김일성은 자기들의 투쟁이 인민들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운동이라고 평가하고, 인민과의 유대성을 강조하면서 제5권을 마친다.
  • 제6권 - 이때부터 김일성이 사망 뒤에 책들이 나온다. 그가 쓴 유고를 모아 사망한 후에 출판했다는 추정이 가능, 시기적으로는 1937년 3월부터 11월까지에 일어난 일을 김일성이 회고했던 것이다. 북한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회상이 적혀있다. 5권까지는 생소했던 김일성의 별칭 김사령도 나오고, 김일성과는 달리 북만주에서 활동했던 김책이 김일성과 함께 "따바리잠"을 잤다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따바리잠이란 한 장의 모포를 놓고 여럿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자는 것. 문화어로 "똬리잠"이라 하며 "따바리잠"는 이의 준말. (출처: 현대조선말사전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 저))
  • 제7권 - 1937년 11월부터 1940년 3월까지 김일성의 만주에서 한 마지막 항일운동을 회고하고 있다. 열하 원정도 얘기하고, 양징유를 만났던 것도 회고한다. 여기서 제1차 고난의 행군이 언급된다.
  • 제8권 - 1940년 3월부터 1945년까지 김일성의 활동이 회고된다.
  • 2020년 7월 후속편인 <민족과 더불어>가 출간되었다. # 해방 후부터 사망 전까지 김일성의 행적을 다뤘다고 하지만 북한 도서가 늘 그렇듯 말도 안되는 허위와 과장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5. 기독교 관련 언급

김일성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부모를 무신론자로 왜곡하고, 기독교의 영향도 부정했다. 강반석이 동서 현씨와 교회에 자주 갔던 것을 그저 "심심해서 나갔다"라며 왜곡하고, 반공주의자인 김형직 또한 무신론자로 왜곡했는데 차마 김형직의 모교 숭실중학교가 기독교 학교인건 아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부정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이 기독교인들에게 오히려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운동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사상은 나의 성장에서 큰 자양분으로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호기심이 나서 동무들과 함께 가끔 송산으로 다니였다. 그러나 동심에 맞지 않는 엄숙한 종교의식과 목사의 단조로운 설교에 싫증을 느낀 다음부터는 예배당에 잘 다니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날 나는 할머니가 달여준 콩엿을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예배당에 안 갈래요. 예배를 구경하는게 재미없어요.”
아버지는 아직 철부지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나어린 나를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

“가고 안 가는 거야 네 마음대로지. 사실상 예배당이라는 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안 가도 좋다. 너는 예수보다도 자기 나라를 더 믿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예배당에 잘 다니지 않았다. 칠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예배당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통제하였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는 예수의 복음이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비극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의 교리가운데 인도주의적인것도 많았으나 민족의 운명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져있던 나에게는 구국에로 부르는 역사의 외침소리가 그보다 더 절박하게 들렸다

사상으로 보면 아버지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신학을 가르치던 숭실중학교 출신이였기때문에 아버지의 주위에는 교인들이 많았고 따라서 나도 교인들과의 접촉을 많이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장과정에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는가고 묻는데
나는 종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신자들에게서 인간적으로 도움은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상적영향도 주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정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가 예배당에 갈 때에만 송산으로 다녔다.

어머니는 예배당에 다녔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다.

어느날 나는 어머니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어머니, 어머니는 〈하느님〉이 정말 있어서 예배당에 다니시나요?”

어머니는 웃으면서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무엇이 있어서 다니는건 아니다. 죽은후에 〈천당〉가서는 뭘하겠니. 사실은 너무 피곤해서 좀 쉬자고 간다.”

《세기와 더불어》1권, 제 1 장 비운이 드리운 나라
따라서 김일성이 자기 입으로 사실은 자신이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는 토막글이나 여담은 대부분 출처 없는 조작이다. 북한에서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활동이 1945년부터 탄압받았고 6.25 전쟁 이후 1950년대에 모두 박멸되었다는게 정설이며, <세기와 더불어>는 자기우상화와 주민 교육용 교재인데, 수령이 자기가 교회 다녀서 기독교에 영향을 받았다고 쓸 리가 없다.

6. 기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어버이 수령님께서 서거하신후 여러 달이 지난 어느날 일꾼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금수산의사당에는 수령님께서 애용하시던 금고가 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 그 금고안에 무엇을 보관하셨는가 하는것은 부관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다음 그 금고를 열어보려고 하였으나 열쇠를 찾지 못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며칠전에 그 열쇠를 찾아 금고를 열어보니 그 안에 수령님께서  김책 동지와 함께 찍으신 사진이 있었습니다. 원래 수령님께서는 사진들을 다 당 역사연구소에 보관하셨습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김책 동지와 함께 찍으신 사진만은 직접 금고에 따로 보관하여 두셨습니다. 이것은 수령님께서 전우인 김책 동지를 얼마나 못 잊어하셨는가 하는 것을 잘 말하여줍니다.》

수령의 추억 속에서의 영생, 그것은 인간이 한생을 통해 지닐수 있는 영광 가운데서도 가장 큰 영광이며 혁명가가 한생을 바쳐 도달 할 수 있는 행복 가운데서도 가장 큰 행복이다. 김책 동지는 그 영광과 행복의 상상봉에 있는 충신 중의 충신이다.

그는 어떻게 되어 수령의 추억 속에 영생하는 인간으로 되었는가.
세기와 더불어, 제8권 제23장 제2절 혁명가 김책.
김책이 언급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사람이 건전한 인격을 갖추려면 다면적인 지식을 섭취해야 하지 않습니까. 학교당국은 어째서 새것을 한창 섭취해야 할 청년들에게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선진사상을 연구할 권리마저 빼앗습니까. 맑스나 레닌의 저작들이 보통책방에까지 흘러나와 글을 아는 사람이면 다 읽는 판인데 유독 화성의숙에서만은 어째서 그런 책들을 못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기와 더불어, 제1권 제2장 제3절 타도제국주의동맹.
화성의숙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리 좋지 않게 묘사했다.

교보문고에서 8권 양장본이 28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데 북한 어용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나 '한길을 가리'에 나레이션 텍스트 pdf 버전과 구글드라이브와 e-book 링크가 올려져있기 때문에 내용이 궁금하다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거주자라 북한 사이트 접속이 어렵다고 해도 인터넷에 널려 있기 때문에 찾는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게다가 한국에서 팔리는 영인본은 말 그대로 북한에서 편찬된 서적을 그대로 스캔해서 오려붙인 조악한 품질로 전혀 소장가치가 없다. 북한 관공서나 도서관 가정집마다 대대손손 김부자 초상화 모시듯 잘 간수하고 있기 때문에 희소성도 떨어진다. 굳이 소장하고 싶다면 중국으로 굴러나온 북한판을 염가로 수입하는게 나으나 국가보안법상 불법이라 추천하지 않는다.

7. 참고/관련 자료

한국에서 발행한 서적에 한한다.
[1] 정대일 연구원은 주체사상과 기독교를 비교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