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4:07:52

조선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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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서적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세기와 더불어 · 조선력사
*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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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은 단군릉이다.
1. 개요2. 배경3. 구성과 내용
3.1. 시대별로 비교적 고른 분량3.2. 반란 강조3.3. 기(氣) 사상 중시3.4. 철저한 기성 종교 부정3.5. 축소되거나 누락된 부분
4. 북한의 역사 평가
4.1. 고조선 찬양4.2. 고구려 찬양4.3. 고려 찬양4.4. 신라 폄하4.5. 백제 지배층 평가4.6. 조선 폄하4.7. 왜곡된 근현대사 서술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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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판 국사 교과서. 북한이란 국명은 남한에서 부르는 표현이고 북한은 자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줄여서 '조선'[1]으로 칭하기 때문에 조선력사는 한국에서 배우는 ' 한국사'와 비슷한 과목이다. 범위는 같지 않는데, 근현대사는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에서 배우기 때문.

2. 배경

북한은 표면상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른다. 북한의 사관은 유물사관에 기초하고 조선로동당의 유일사상인 주체사상으로부터 파생된 역사인식의 틀인 '주체사관'이다. 즉, 역사는 합법칙적으로 발전하며 그 발전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사람', 즉 인민대중이라고 보는 주체사관을 도출하고 있다. 유물론적 성향이 짙은 사상은 비교적 우호적으로 서술하나, 모든 근대 이전 사상을 계급체계를 수호한 사상으로 간주하고 '나름의 의미는 있었지만 결국 계급사회를 옹호하는 한계를 가졌다.'라고 가르친다.

주체사관의 입장에서는 역사를 인민대중의 투쟁의 역사로 보아 외세의 침략에 대한 투쟁인 반제/반외세투쟁과 내적 모순에 대한 투쟁인 반봉건투쟁으로 구분하며,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무지한 인민대중이 투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일성과 같은 영명한 지도자(수령)의 존재가 절실하다고 선전하여 유일사상체계, 즉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체제 정통성 마련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3. 구성과 내용

다른 북한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대단원, 소단원 시작 부분에 교시를 실어 놓는다. 내용은 대부분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얻은 교훈을 통해 자주적이고 창의적이고 슬기롭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자주성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것을 빼고는 대체로 한국 교육계에서 목표로 삼는 인간관과 비슷하다.

본문에서는 한국사에서 배울 만한 내용이 대부분 언급된다. 문체는 문화어 표기[2]를 사용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주체사관에 의해 평가된다.

끝부분에는 연습 문제가 나온다. 주요 질문 내용은 역시 한국에서 배우는 내용과 비슷하다.

『조선력사』를 통해서 본 북한 이념교육의 변화와 남북통합의 방향 - 권성아(평화한국 평화제작소) 논문은 교과 내용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2012년판 중학교1학년용 조선력사 교과서 목차를 적어둔다. 북한에서 11세에 배우는 내용으로, 고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다룬다.[3] 고학년 교재는 '싸움'이 아니라 '전투', '대첩' 같은 용어를 쓴다.
1. 우리 땅에서 산 첫 사람들...3
2. 조선민족의 첫나라를 세운 단군...9
3. 강상무덤에 묻힌 노예들[4]...11
4. 고조선의 애국명장 성기...14
5. 공후인...16
6.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18
7. 한겨레의 나라 백제 신라...22
8. 고구려의 애국용사 을두지 뉴유...27
9. 《바보 온달》이 장군으로...30
10. 명림답부의 지략...33
11. 광개토왕릉비가 전하는 이야기...36
12. 을지문덕장군과 살수싸움...38
13. 연개소문장군의 단호한 결심...42
14. 당나라을 애꾸로 만든[5] 안시성싸움...45
15. 혜초의 세계려행...48
16. 가야금을 만든 우륵...49
17. 이름난 고구려의 무덤벽화...51
18. 고구려의 수도 평양의 옛 모습...56
19. 계백장군의 최후결전...59
20. 조선사람의 지조를 지킨 박제상...61
21. 구진천 천보노...63
22. 이름난 화가 솔거...66
23.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6]...67
24.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69
25. 붉은 바지를 입고 싸운 사람들...72
26. 대조영 천문령싸움...74
27.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77
28. 발해의 사신 양태사[7]...79
29. 법륭사에 그린 담징의 그림...81

3.1. 시대별로 비교적 고른 분량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조선시대 사료가 고려 이전보다 많다 보니, 한국사 교과서는 조선시대 서술이 많은 편이다. 북한도 이러한 면을 반영하지 않은 건 아니나, 나름 고구려- 발해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분량을 비슷하게 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러한 면은 형식적 틀에서 더더욱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편찬한 한국사 교과서의 문화 부분을 보면 과학적 성과가 컸던 조선 전기 시대의 경우 농업, 천문, 의약, 무기, 건축, 지리 등으로 세분화하여 서술하지만 고려 시대 이전은 통합하여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전으로 갈수록 사료가 부족하여 쓸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이며, 현대 한국이 전신인 조선을 중점적으로 파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북한 교과서는 사료 부족에도 꾸역꾸역 틀을 분할하고 자료의 이름이라도 언급한다. 한국사는 고려 시대에 지리지가 있었다는 언급을 하지 않지만 조선력사는 지리지 이름을 꼭 언급한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도 적용되어 신라의 중앙 관직인 13부[8]를 전부 명칭과 기능까지 소개하며, 군사 제도도 9서당 10정을 빼고도 한국사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2. 반란 강조

주체사상은 인민의 능동적인 활동성을 긍정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민중이 주도한 반란을 '~의 난'이라는 표현 대신 '인민봉기', '농민전쟁' 등의 표현을 즐겨쓴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폭동'이란 표현이 북한에서는 인민봉기 또는 항쟁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으로 부르는 식이다.

민중봉기도 한국사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부하게 서술되어 있다. 먼저 양적으로는 고려의 경우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무신정권기에서 일어난 반란을 위주로 서술하지만 북한의 교과서에서는 그 범위가 원 간섭기를 넘어 고려 말기까지 확대해 서술하고 있다.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 1286년 영월에서의 강윤명의 난
* 1318년 제주도 사용과 김성의 난
* 1323년 충숙왕 대의 임숙의 부임을 반대한 제주도민의 괘서 사건
* 1329년 양광도 안찰사 마계량의 탄핵
* 1352년 5월 서울 관악산 농민 봉기
* 1382년 합주 사노들의 난
전부 서술되어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는 단편적인 사실과 연도, 의의만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만, 조선력사 교과서는 반란이 일어난 원인과 과정, 결과까지 적어주고 있다.

3.3. 기(氣) 사상 중시

역사서술에 있어서 기(氣)를 중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는 유교에서 말하는 이기론에서 언급되는 무형, 추상적인 성질을 가진 리(理)에 대비된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개념인 그 기(氣)가 맞다. 이 기를 중시하며 한국 사상사를 유물론적 토대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 삼국시대에 원시적인 기 사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
  • 고려 시대에 이규보를 대표적인 기 사상가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기 사상을 바탕으로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불교를 비판하며 불교에 비판적이었던 학자들의 이론도 소개하고 있다. 놀랍게도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학자는 북한이 싫어하는 정도전.
  • 기를 중시한 서경덕과 최한기 사상 옹호.[12]

3.4. 철저한 기성 종교 부정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계급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북한이고 종교는 계급사회를 수호하는데 악용했다고 보기 때문에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가톨릭, 개신교)와 같은 기성 종교에는 부정적으로 서술한다. 불교의 결사 운동 등 종교계가 참여한 독립운동, 사회주의 혁명만 우호적으로 서술한다.

천도교(동학)는 우호적으로 가르친다.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고, 만민평등을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당으로 천도교청우당이 있기도 하고. 봉건적 미신 색채를 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외에 대종교, 천불교[13]와 같은 민족종교와 자생종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업적을 기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3.5. 축소되거나 누락된 부분

기성 종교의 관념론적 사상에 부정적이므로, 한국 윤리와 사상 과목에서 언급할 만한 내용은 많이 생략되어 있다. 그 예로는 이 있다. 한국사는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4. 북한의 역사 평가

북한은 명목상 계급투쟁을 통해 일제와 미제, 한반도 자본가들을 물리치고 세운 사회주의 공화국이므로, 북한의 주체사관은 역사를 지배층이 아닌 인민, 즉 피지배층이 주도해 나가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고 지배층 중심의 정권을 봉건 통치배로 비하한다. 따라서 역대 왕조들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각 왕조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왕조를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한반도 국내의 왕조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있었던 모든 왕조들 또한 군주제라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지킨 고구려, 고려를 통일과 영토 확장에 대한 일부 업적에 한정하여 높게 평가하고 그와 반대로 신라, 조선(북한에서는 리조로 칭한다.) 왕조는 중립 내지 비하한다.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지킨 박제상(신라), 유인석(조선) 같은 일반인은 높게 평가한다.

고구려/고려도 '비교적' 높게 평가를 한다는 소리지, 남한보다 모든 왕에 대한 평가가 박하여 ' 동명성왕'은 '동명왕', ' 광개토대왕'은 '광개토왕'이라고 하여 신라 백결 같은 인물과 비슷하게 서술한다. 고려 망이·망소이의 난도 중요하게 서술된다. 현재도 고구려 왕은 남한에서 더 자세하게 배운다.

고구려를 포함한 근대 이전의 어떤 왕조도 봉건식 계급 제도에 기초해있으니 바람직하지 않은 왕조이지만, 그래도 외세로부터 조선민족의 자존심을 수호한 부분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심지어 조선 왕조라도 흥선대원군은 이런 면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 머리말에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왕이나 봉건통치자들의 역사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투쟁의 역사와 창조의 역사를 알자는 것"이라고 하여 이들은 업적은 인정한다 치더라도 봉건적인 부분은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4.1. 고조선 찬양

북한은 민족 최초의 국가로서, 그리고 평양 역사의 시작으로서 고조선을 매우 강조한다. 우선 북한 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역사를 3000년으로 설정하며 수도 평양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건국 이래 멸망 시기까지 내내 평양이 수도였다고 주장한다.[14] 한국과 중국 사학계의 초기 요동 중심설/후기 중심지 이동설을 전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고조선 역사를 단군조선 - 후조선 - 만조선(위만조선)의 흐름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충 한국의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과 시대가 비슷하다. 또한, 평양 중심설을 정설로 하고 평양 지역에서 점차 조선반도(한반도)~만주 일대로 영역을 확장하였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세웠다고 가르치지만, 북한은 단군릉 발굴 및 개건에 따라 기원전 30세기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철기 문명도 한국에서는 기원전 3 ~ 4세기에 시작되었다고 가르치지만 북한은 기원전 12세기부터 철기가 시작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단군 조선은 한반도 대부분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지난날 봉건대국주의, 사대주의사가들은 엉뚱하게도 후조선시기의 력사를 중국의 기자와 결부시켜 《기자동래설》, (《기자조선설》)을 퍼뜨리였다.

《기자동래설》은 기자라는 고대중국의 은나라귀족이 조선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우리 나라에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켰다는것이다. 이러한 《기자동래설》은 한나라시기에 봉건대국주의사가들에 의하여 조작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기자조선설을 부정하며, 기자조선이라 부르지 않고 후조선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후조선은 고조선 토착민들 사이의 내부 정권교체에 의해 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고 가르친다. 대략 15세기 경에 세워졌다고 하며, 후조선은 국력이 약해져서 이 시기 부여, 구려(졸본부여, 고구려의 전조국가), 진국( 삼한)이 독립했다고 한다.

위만을 연나라 사람이 아닌 조선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조선~만조선 시기에 본수도인 평양 왕검성 외에 요동에 부수도를 따로 두었고, 고조선의 멸망 당시 함락된 왕검성은 평양이 아닌 요동의 부수도였다고 본다. 그 결과, 고조선 멸망 후 설치된 한사군이 지금의 서북 지역이 아닌 요동 지역에 있었다고 교육해 지금의 서북 지역이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가르친다. 대신 평양 지역엔 락랑국( 최씨낙랑국)이 존재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었다고 본다.

참고로 진국은 단일국가로 인식된다.

지배층을 비하하는 서술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중국 랴오둥반도의 남쪽끝에서 고조선의 한 노예주무덤 인 강상무덤이 발견되였다.
무덤에서는 노예주가 죽었을 때 140여명의 노예들을 비롯하여 산사람들을 산채로 함께 파묻어 죽인것이 드러 났다.
강상무덤은 노예주들이 얼마나 악착한 놈들이며 노예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노예주들은 노예들을 물건과 같이 취급하였으며 마음대로 죽이기까지 하였다.
제일 큰 노예주는 왕을 비롯한 높은 관리들이였으며 그들은 수십 , 수백명의 노예들을 가지고있었다.
중학교 제3학년용 조선력사(2012), p.2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 범금8조〉는 한중도 못되는 노예주들의 리익을 옹호하고 노예를 비롯한 절대다수의 피압박대중을 억누르기 위한 법이였습니다.〉》
고조선에는 범금8조라는 법이 있었다.
금지해야 할 8가지 조항의 법 이라는 뜻인데 지금 전해지는것은 3개 조항뿐이다.
(중략)
이 조항들은 마치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공평》한 법인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법은 철저히 노예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고 노예를 비롯한 인민들의 반항을 억누르기 위한 법이였다.
노예들을 마음대로 부려먹고 죽일수도 있는 노예주들에게 이러한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았다는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중학교 제3학년용 조선력사(2012), p.21~22

4.2. 고구려 찬양

삼국 중에서는 고구려에 강한 편애를 보이는 정도를 넘어 우선 봉건통치배라고 표기하지만, 민족의 등불이라고 높게 버금갈 수준으로 집착하며, 아예 삼국시대라는 표현을 거부하고 그 대신 고구려 시대라 칭하면서 남부의 백제와 신라는 동시대에 존재한 곁다리 국가로 취급한다. 나아가 현 북한의 수도 평양이 지역적으로 옛 고구려의 중심지였고 초강대국의 핍박을 받는다는 상황 등 현 북한 정권과 고구려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선 건국시기부터 B.C 37년이 아닌 B.C 277년으로 가르쳐 이 연도를 바탕으로 고구려를 동방의 천년강국으로 부른다.

또한 고구려의 성장 과정이나 타 국가와의 갈등에 대해서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비해 상당히 자세히 쓰여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15] 북한의 교과서에 언급되어 있는 고구려사 내용으로는,
이 있다. 다만 왕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이게 어느 왕대의 일이라는 서술이 2012년판 중학 교과서 기준 동명성왕, 광개토대왕 정도만 좀 나와있다.

또한 똑같은 내용이라도 고구려에 우호적으로 서술하는 내용이 많다. 고국원왕이 전사한 평양성 전투를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백제를 격퇴시켰다고 가르치고, 내치는 유능했지만 백제의 전성기에 맞물려 다소 대백제 관계에서 위축되었던 소수림왕 대에 수곡성을 탈환했다고 가르친다. 영토도 장수왕 시절에 내몽골 동부~흑룡강 일대까지 지배했다고 말한다.[17]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변절자 때문임으로 규정하며, 이를 옹호하는 김정일의 언급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또한 당태종 사후의 고구려-당 전쟁도 한국 사학계에서는 당이 대고구려 전략을 원정전에서 소모전으로의 방침을 전환시킴으로 인해 고구려 국력을 소모하게 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보지만, 북한은 고구려가 당과 맞서 이긴 전투를 언급하며 당에게 적극적으로 맞선 시기로 가르친다.

발해의 경우는 한국의 교과서와 큰 차이가 없지만, 신라보다 앞선 목차에 놓고 있어 오랜 시간 동안 통용되었던 시대적 흐름인 삼국시대 - 통일신라 - 고려의 계보가 아니라 고구려 - 발해 - 고려의 계보로 민족사가 이어진 듯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에 비해 비중이 작은 것은 발해 영토의 일부가 북한 쪽에 있기는 했지만 변방에 속했고 중심지 상경용천부는 북한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고구려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이 별로 없기도 하다.

4.3. 고려 찬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련방국가의 국호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 나라 통일국가의 이름을 살리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북과 남의 공통한 정치리념을 반영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으로 하는것이 좋을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이 제안은 고려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였고 또 그것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반영하여 내놓으신 가장 정당한 제안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제안의 정당성을 력사적으로 깊이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려에 의한 통일과정, 첫 통일국가의 출현과정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고려를 조선 력사 최초의 통일국가라 평가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조선사람은 북쪽의 씨비리( 시베리아)나 남쪽에서 사람들이 이동해 와서 생겨났다고 하는 반동적인 궤변" 등까지 주장되는[18] 북한 교과서에서 민족통일은 반드시 해야된다고 주장된다. 그리고 도입 부분에 고려연방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현 북한에 위치한 개성을 수도로 했고 북한의 현 수도인 평양시 서경으로서 중요시했던 점도 있겠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북쪽에 위치한 고려가 남쪽에 위치한 후백제, 신라를 통일했다는 점이 큰 메리트로 느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고려를 부각시킬 때에도 고려 자체보다도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점을 주로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고려 왕조의 지배 방식에 대해서는 매우 평가가 박해 망이·망소이의 난을 농민전쟁 취급하며 띄어주고, 부자들의 정권이라는 식의 김일성의 교시가 실려 있다.

또한 발해부흥운동 공민왕의 요동 정벌도 한국에 비해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대몽항쟁기의 경우 봉건통치배들은 강화도로 도망쳤지만 인민들의 투쟁으로 몽골의 침입을 격퇴시키고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했다고 가르친다. 공민왕의 경우는 3번의 요동 진출의 과정을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4.4. 신라 폄하

조선력사에서는 신라를 통치한 세력에 대해 '봉건 통치배'라는 부정적, 편향적인 표현을 일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신라가 최초로 민족통합을 이룩했다고 주장하지만( 삼한일통) 북한은 이를 부정하고 나아가서 신라를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배신했다는 식으로 교과서를 서술한다. 따라서 김춘추 김유신에 대한 취급 또한 나쁘다. 반대급부로 적고적 장보고, 견훤, 그리고 왕건을 띄워주는 경향도 있다.
그 이유로 신라는 고구려 영토를 전부 통합하지도 않았고 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나중에 건국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라의 삼국통일을 폄하한다. 그래서 통일신라를 후기신라로 부른다. 고구려 멸망 이후의 신라의 대당 항쟁 부분은 언급하고 있다.

무기 개발을 정당화할 사건은 예외이기 때문에 천보노를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서술한다.

북한은 북한 지역의 수도를 둔 고려를 조선민족 최초의 통일국가로 설정하고자 통일신라를 폄하한다. 신라를 최초의 통일 왕조로 인정하는 순간 민족 정통성을 신라가 위치하던 남한에다 준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크게 경계한다.

4.5. 백제 지배층 평가

북한은 신라와 조선을 가리킬 때와 마찬가지로 백제에 대해서도 '봉건통치배'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쓴다.

게다가 4세기 근초고왕 고국원왕의 대결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명백한 근초고왕의 판정승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이를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백제군을 물리쳤다고 에둘러 표현한다. 고국원왕의 굴욕적인 전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는 띄워주려고 하기 때문에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주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막판에는 황산벌전투와 계백과 성충, 그리고 흥수를 충신이라고 높게 평가한다.

4.6. 조선 폄하

북한에서 조선은 매우 낮게 평가된다. 조선 폄하는 신라, 백제보다도 훨씬 심하다.[19] 그러다 보니 이성계에 대해서는 고려말 왜구 격퇴에 대한 주체를 생략하는 식으로 이성계의 공을 숨겼다. 또한 위화도 회군으로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할 기회를 놓친 사대주의적 역적이라 가르친다. 당연히 조선 왕조 창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4군 6진의 설치는 가르치며, 그 조치 자체를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편이다.

나아가 한국사의 양대 위인격인 세종대왕 이순신조차도 표면적으로는 위인으로 인정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 보면 상당히 비난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조선 왕조의 봉건적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투와 인민의 요구를 악용했고 사실은 '신지 글자'라는 것이 있었다는 식으로 훈민정음을 깎아내리고 이순신 역시 구국의 영웅이기는 하지만 굳이 백성이 아닌 봉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싸웠다는 주석을 꼭 뒤에 단다. 전술했다시피 북한은 고조선과 고구려, 그리고 고려를 봉건통치배라고 명확하게 표기한다.[20]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무능한 봉건통치배( 인조 조정)들은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지만, 인민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의병투쟁을 벌여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굳게 지켜 냈다고 마치 의병의 활약으로 승리해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서술이 단일 사건 중에서는 가장 많다. 일본에 대한 투쟁, 봉건 질서에 대한 반발과 당이 영도하지 못한 점에 대한 한계로 역사를 평가할 구석이 있어서로 보인다. 의외로 조정의 인물인 흥선대원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대목도 있는데, 쇄국정책에서는 침략의 길잡이인 천주교 등을 들여오려는 서구의 자본주의 침략가를 막았다고 꽤 좋게 묘사한다. 선진과학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조선시대에 대한 서술은 일제강점기나 민주화 이전의 남한에서 조선 시대를 당쟁이나 벌이던 뒤떨어진 시대로 매도하던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역사 해석은 이전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매도하여 현재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뤄졌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흥선대원군에 대한 서술에서도 보듯 현재의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비슷하게 해석할 부분이 있으면 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김정은 시대에도 '리조봉건국가'라는 표현이 2012년에 쓰였고, 상업의 발달조차 '봉건통치배'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였다고 주장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조선봉건국가'라고도 하는데 북한 매체 묘사를 보면 여전히 착취를 한다고 주장한다.

4.7. 왜곡된 근현대사 서술

이 시기는 북한 정부의 수립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기에, 대체로 북한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한국 사학계가 반발할 만한 서술이 많다. 대한제국에 대한 언급이 없이 조선사의 일부로 취급하고, 3.1 운동을 기점으로 현대사로 구분하며, 독립운동의 경우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에 두고 설명한다. 또한 '조국해방전쟁'( 한국전쟁)의 경우 북침설을 정설로 설명한다.

5. 관련 문서



[1] '북조선'을 나라 이름으로 칭하는 것은 북한에서 불가능하다. 북한에서 대한민국 정권은 한반도 남쪽지역을 불법 점거중인 괴뢰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헌법상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남한이라는 단어는 한반도 남쪽 지역을 뜻하는 말로 쓰지만 북한은 더욱 민감하게 생각한다. 고려 이후 세워진 나라는 북한에서 '리조'라고 부른다. 다만 한국인들도 한국을 남조선으로 부르면 불쾌하게 받아들이긴 한다. [2] 어느 나라든 표준어 규범으로 자신의 교과서를 쓰겠지만, 북한은 아예 문화어에 위배되는 언어 규범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한국에서의 일부 정치적 교육과 달리 언어적으로는 서울 방언에 기반한 규범이라 두음법칙 미적용과 일부 예스러운 표현, 지배층을 무작정 깎아내리는 비속어에 가까운 표현을 빼면 한국 표준어와 같다시피 하다. [3] 한국에서도 역사 교과서는 2개로 나누지만, 보통 조선 중기~병자호란까지 한 권으로 묶고 나머지 권에서 조선 후기~현대를 다룬다. 페이지 수를 감안했을 때 3권으로 분할했으리라 추측한다. [4] 고조선 귀족이 노예를 소유했다거나 혹은 순장 풍습에 대한 비판 등 부정적인 내용으로 추정된다. [5] 당 태종이 양만춘의 화살에 애꾸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현재 한국에서는 야사로 간주된다. [6] 고구려 첨성대로 추정. [7] 《야청도의성》이라는 한시로 유명하다. 한국 고등학교 국어 교과과정에서 접할 수 있는 시이다. [8] 한국사는 법흥왕이 설치한 병부, 통일신라 때 핵심부서로 자리잡은 집사부를 제외하고는 설명하지 않는다. [9] 한국사에서는 언급조차 거의 안 되는 사건이나, 조선력사는 자세히 서술한다. [10] '일본 침략자들과 봉건통치배들에 맞선 한성 군인과 인민들의 애국적 폭동'으로 설명한다. [11]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1894년은 갑오년이다. [12] 최한기의 사상은 서경덕과 더불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성리학에서의 이 대신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기를 우선시했고, 이것이 주체사상의 바탕이 되는 유물론적 성향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16세기 사상적 흐름을 설명할 때도 적용되어 상대적으로 북한 교과서는 이이와 이황보다 서경덕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13] 불교 계통 자생종교. 일제강점기 백두산 일대를 근거지로 하였으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4]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고 1960년대 리지린 이래 원래는 요동 중심설이 정론이었으나, 단군릉 개건 이후 1999년 평양 중심설로 정설을 뒤집어버렸다. [15] 물론 남한 학계가 아래 내용들을 몰랐던 게 아니라 한국사 교과서의 분량상 생략한 것이다. 역사에 있었던 것을 전부 다 쓰자면 이론상으론 수십만권 분량으로 만들 수도 있다. [16] 한국에서는 광개토왕 대에 요동을 장악했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고국원왕-소수림왕 대에 요동을 장악핬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유주자사 진과 관련된 사료. 북한 교과서에서는 이 사건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17] 한국사학계에서도 종종 간접 통치영역 내지는 영향권으로 내몽골 동부~흑룡강 일대까지 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교과서 지도는 직접 통치영역(요동반도~만주 일대)을 바탕으로 수록되어 있다. [18] 한민족은 지금 한민족이 살던 땅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19] 북한에서는 5대 역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속하는 사람은 김춘추, 이성계, 정도전, 이완용, 이승만으로 다섯 중 2명이 조선 건국의 주역이며 김춘추를 제외한 4명은 조선시대(구한말 포함) 관련 인물이다. 다만 최근에는 정도전의 경우 아예 언급조차 안한다. [20] 앞에는 봉건통치배라고 표기하면서,후술할때는 민족의 등불이라고 높게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