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03 15:59:55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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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hotography[1]
파일:external/www.hdwallpapers.in/windows_xp_bliss-wide.jpg
Windows XP의 기본 배경화면 (1996)[2]
1. 개요2. 역사
2.1. 초기 인식
3. 한국 최초의 사진들4. 예술
4.1. 미술에 끼친 영향4.2. 예술적 특징4.3. 진실성4.4. 순수사진작가
5. 사회
5.1. 사진 규격5.2. 사진학과5.3. 사진 포즈5.4. 사진병(촬영병)5.5. 촬영금지 장소5.6. 대중매체에서의 사진5.7. 사진과 시험
6. 용어7. 여담

[clearfix]

1. 개요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우리에게 시간을 멈출 수 있는 힘을 준 발명
- 내일은 발명왕 20권 대사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로부터 오는 광선 사진기 렌즈로 모아 필름, 건판 따위에 결상(結像)을 시킨 뒤에, 이것을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음화(陰畫)를 만들고 다시 인화지로 양화(陽畫)를 만든다.

물리학적으로 사진의 정의를 설명하면 '물체에서 반사된 빛과 같은 전자기적 발광을 감광성 기록재료 위에 기록하여 얻은 빛 그림'을 말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진은 사진기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사진기는 빛을 모아 필름이나 CCD[3] 또는 CMOS[4] 같은 이미지 센서에 초점을 맞추어 상을 맺히게 한다.

사진을 찍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사진사, 예술 활동으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사진 작가, 사진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을 사진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2. 역사

초기 사진기의 프로토타입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부터 상을 그대로 재현해내어 회화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물건이긴 하지만 그냥 회화의 스케치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 전체를 그대로 옮겨서 재현하려는 구상은 있어왔고 19세기 들어 광학기술과 화학의 발달로 이를 실제로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파일:http-%2F%2Fimages.nationalgeographic.com%2Fwpf%2Fmedia-live%2Fphotos%2F000%2F014%2Fcache%2Fniepce-first-photo_1459_990x742.jpg
파일:external/file2.answcdn.com/rdglq4zstaybgudd5sby.jpg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가 찍은 세계 최초의 사진(1826년)[5] 헬리오그래피 기법을 응용한 그림(1825년)[6]

이후 프랑스의 발명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드디어 1826년 세계 최초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 그의 사진현상법을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했다. 문제는 한 장을 찍는데에 무려 6~8시간이 걸렸다.[7] 그래서 이 방법으로는 인물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풍경사진만 찍었다.

그 후 니에프스와 함께 연구를 한 화가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가 기술을 개량해 1839년 좀 더 발전적인 사진현상법인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발표했다. 이는 은판사진법이라고 불리는 물건으로 아직 사진의 특성인 복제와 인화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은 물건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 문서에 있는 그가 죽기 직전인 1849년 남긴 유일한 사진도 바로 이 다게레오타입으로 찍힌 사진이다.

같은 시기(1835년)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은 칼로타입(Calotype)을 발명했는데, 이는 종이인화법(talbotype)이라고 해서 현대 사진과 유사하게 감광처리된 종이를 이용한 인화의 개념을 등장시켰고 본격적인 복제 가능한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진의 시초라고 할만하다. 초기에 엄청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여러 연구와 노력으로 1840년대 초반에 수십 분 이상이던 노출 시간을 수십 초가량으로 줄이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1849년 죽기 전에 프레데리크 쇼팽은 운 좋게 사진을 찍은 경우이다. 때문에 당시 인물 사진은 모든 게 세팅된 스튜디오에서 찍었으며, 오랫동안 가지런히 포즈를 잡고 찍는 경우가 많았다.

1851년 영국의 프레드릭 스콧 아처에 의해 개발된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은 사진의 획기적인 개량을 가져왔다. 이것은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술이나 톨벗의 종이인화법보다 노출시간을 줄이는데 기여하였고, 또한 음화(陰畵)에서 양화(陽畵)로 인화하는 과정도 간략화시켜 사진표현 상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발명이었다. 이미 은판사진이나 종이인화법에 의한 초상사진의 수요가 증가하였으나, 습판사진술의 출현으로 한층 더 유행을 자극하여 1850년대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
파일:Ds6avNJ.jpg
토마스 서튼이 찍은 세계 최초의 컬러사진(1861년)[8]

이후 1888년 코닥 사의 조지 이스트먼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진의 개념인 롤 필름을 발명해냈다. 당시 25달러짜리 코닥 필름이 들어있는 코닥 1호 사진기에는 100장의 필름이 들어있었는데, 100장을 다 찍고 10달러와 함께 코닥 사에 우편을 보내면 사진을 다 인화해주고 새 필름을 넣어주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시스템이었다. 이로써 현대적인 사진이 완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코닥사의 필름을 뤼미에르 형제 에디슨 같은 초기 영화 제작자들이 사용함으로써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컬러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세계 최강의 국가원수라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세계 최초의 컬러 사진이 1861년에 찍혔는데 컬러 사진을 찍은 미국 대통령은 그로부터 50여년은 더 지난 후에야 나왔다. 나라의 권력을 가진 그것도 미국 같은 엄청난 부자 나라의 권력을 가진 고위층들조차 컬러 사진을 찍기는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1900년대 초중반에 찍힌 사진들의 상당수도 컬러 사진보다 흑백 사진이 매우 압도적으로 많다. 심지어 이후로도 기술 발전이 이뤄졌음에도 본격적인 컬러 사진의 대중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촬영은 가능했으나 현상이 비싸고 플래시 기술의 문제로 특별한 순간에만 쓰는 사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윌리엄 이글스턴이 유명해진 이유도, 이런 컬러 사진의 대중화랑 관련이 있다.

1960년대부터 컬러 사진이 상용화 된 곳은 유럽과 미국 등, 당시에도 꽤나 잘 살았던 국가들인데, 당시엔 한국이 가난해서 1960년대 중반은 흑백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에서 컬러 사진은 1970년대 중후반에야 그 수가 늘었다. 한편 아시아에서 호황을 누리던 일본은 서구권과 비슷하게 1960년대부터 이미 많아졌고 1970년대앤 완전히 대중화가 되었다.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사진의 기본틀은 유지되어 왔으나, 21세기에 들어선 직후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사진은 기존의 필름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으로 분화되게 된다.

디지털 사진이 화소성능 향상과 더불어 아날로그 사진보다 선명하고 깨끗한 상을 얻을 수 있고 아날로그 사진보다도 복제와 재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로서는 예전의 필름 사진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아날로그 사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색채나 질감을 중시하는 마니아층의 수요가 있어 그 존재 가치가 완전히 퇴색되지는 않을 듯하다.

일단 기술적인 측면에서 사진의 발전사는 대충 이러하나, 예술적인 측면이나 기법적인 측면에서 사진의 발전상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 왔다.

2.1. 초기 인식

사진기가 조선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진 찍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자기와 똑같은 모습이 종이에 찍혀 나온다'는 것에서 기원하는데, 때문에 사진기가 영혼을 뺏어간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이는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처음 접한 전 세계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9] 이와 같은 인식은 현대에도 심령사진이나 귀신 들린 사람은 사진을 찍히는 것을 싫어한다는 속설 등을 통해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개화기 조선에 사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 아이를 잡아서 그걸로 현상액을 만든다는 괴담까지 나돌다가 단발령이 내려지자 머리 안 잘린 모습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영혼을 빼앗긴다는 믿음 때문에 구한말의 사진을 보면 사진속 사람들의 눈빛이 매우 강렬하단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영혼이 눈을 통해 왕래했다는 믿음 때문에 눈을 일부러 강하게 뜨고 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전 세계 어디서나 그랬고 심지어 유럽이나 미국과 캐나다 같은 북미 일부 지역, 시골에서도 나타나던 일이다. 그 밖에도 19세기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시아 각지에서도 무턱대고 사진을 찍으려던 백인들이 구타당하거나 사망하고 사진기가 박살나는 일이 많이 벌어졌다. 뿐만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일부 지역도 마찬가지로 사진 찍는 걸 미신적으로 재수 없다고 해서 거부해 20세기 중반까지도 외면하던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건 영화가 나올때도 벌어진 일이다. 1890년대 흑백영상을 촬영하던 촬영기사들도 제법 이런 수난을 겪었다. 유명한 사례가 바로 니콜라이 2세 행렬을 촬영하던 촬영기사를 사람들이 집단 구타한 사건이다. 사진처럼 똑같이 온갖 말이 많았다.

지금도 파푸아뉴기니, 바누아투 같은 터부가 강한 문명권에 사는 주민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뺏긴다고 여겨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고 한다. 사진기가 널리 쓰이는 터부가 강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저런 미신을 믿지는 않아도 왠지 찜찜해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무턱대고 찍다가 현지인들과 갈등을 빚다가 집단구타라든지 폭행을 당하고 사진기가 박살나든지 경찰까지 나타나 필름을 압수당하거나 유치장 신세로 상당한 벌금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슬람권에서도 여성을 찍을 때 조심하는 게 좋으며 차도르나 부르카 차림이니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멋대로 찍다가 분노한 해당 여성들이나 남편에게 맞을 수 있다. 예멘에서 부르카 차림으로 양이나 염소를 몰던 여성들을 무단으로 사진 찍던 호주 사진작가가 그 여성들에게 몽둥이로 집단 구타당하던 일이 2000년대 중순에 벌어졌던 일도 있다.[10] 당연히 나중에 달려온 경찰도 왜 그러기에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찍었냐고 그 사진작가를 탓했다. 다행히 그 사진작가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비슷하게 이런 사진찍던 미국인도 아랍지역에서 목축하는 여성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가볍게 타박상을 당한 사건이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현대국가에서 남의 얼굴을 맘대로 찍으면 경찰서로 간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못사는 개도국이라고 멋대로 찍어대는 건 지양하자.)

그래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온 이들은 반드시 현지인 허락을 맡고 사진을 찍으라고 거듭 강조한다. 사실 인물 촬영에 대한 인식은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라 가령 우즈베키스탄은 여기도 일단은 이슬람권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찍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다.(물론 경찰, 군인은 제외) 하지만 전 세계에는 무작정 찍으려 하면 좋게 보지 않는 지역이 더 많다. 국내에서도 지역이나 시골에 가서 현지인을 일하는 것이나 여러가지를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는다고 욕먹는 경우도 꽤 있으니 주의할 것. 이유가 어찌됐든 찍히는 사람이 찍지 말라면 찍지 않아야 한다. 사실 저런 미신 때문은 아니더라도 초상권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양해를 받아야 한다. 그게 어디든 간에 말이다.

3. 한국 최초의 사진들

최초로 사진을 남긴 한반도 출신 인물은 이의익[11]을 위시한 연행사들인데, 이들은 1862년 청나라 북경에 가서 1863년 1월 29일[12] 러시아 공사관에서 러시아인 사진관들에게 직접 의뢰해 사진을 찍었다. 당시 찍힌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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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histopia.net/2-103.jpg
그리고 조선 내에서 처음 찍힌 조선인의 사진은 바로 신미양요 시절 1871년 미합중국 해군이 찍은 조선군 포로 사진이다. 2008년 2월에 위의 사진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이 사진이 한반도인 최초의 사진으로 알려졌다.

고종황제 1884년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훗날 천문학자가 되는 미국의 퍼시벌 로웰이었다.

한국 최초의 사진엽서는 알레베크 사진엽서 1899년 프랑스 우체고문인 클레망세(E. Clemencent)가 한국의 여러모습을 담은 사진엽서를 판매하면 재정에 도움이 될 수있다는 건의를 하여 대한제국 정부가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가 촬영한 사십여 장의 궁궐과 풍속 사진을 엽서로 제작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총 48장으로 여러가지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어 구한말 풍속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프랑스로 가져가 인쇄하여 제작하였으며 1900 파리 엑스포 때 한국관 기념품으로 팔았다. #

4. 예술

4.1. 미술에 끼친 영향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사실성을 중시하던 기존 고전미술이 어떻게 해도 사실성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맞부딪치게 된 것. 이로 인해 현대미술은 다른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인상파, 야수파, 추상화, 초현실주의같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가의 독특한 관점, 감정, 생각을 부각시키는 미술사조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진의 극사실성에 도전하는 극사실주의 화풍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데는 실패했다.

본디 사진은 회화의 복제수단 정도로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이후 19세기까지 사진기의 원형인 카메라 옵스큐라는 그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스케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 그런데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해 상을 옮기는 과정에 있어서 더 이상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게 된 것이다.

사진은 또한 판화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회화의 복제기술로서 판화는 18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시민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생겨난 부르주아 계층이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회화를 소유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정밀하기로는 회화를 능가하고 복제하기 편하기론 판화를 능가하는 물건인 사진이 등장했으니 어땠겠는가? 값이 저렴한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유산계급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기존에 회화를 다루던 예술가들은 사진의 극사실주의적 재현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예술이라기보단 단순히 현실을 재현한 기술의 산물이라고 여기고 반발했던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런 사진술의 발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의 개념, 원형의 벽을 허물게 된다. 발터 베냐민이 말한 대로 문명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복제기술은 '지금', '여기' 밖에 없는 일품 일회성의 오리지널에 대한 신화( 아우라)를 깨트리고 근대사회의 시민들이 눈뜬 평등의식과 직결되었다. 이와 더불어 사진은 새로운 미학적 사유를 펼치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한 예로 롤랑 바르트는 예술로서 사진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개념으로 스투디움 푼크툼을 도입했다.

이런 경향은 현대에 있어서 복제품의 범람으로 오리지널에 대한 관심이 무디어지는 세태를 낳았으며, 현대 팝아트의 성립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사진의 등장 이후 사진으로부터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영화 같은 영상물. 레코드, 텔레비전 등 새로운 시대의 대중예술은 처음에는 예술의 복제수단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각각 예술의 장르로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이러한 복제예술이라는 장르를 형성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만하다.

순수사진(Fine art Photography)은 보기에 아름답고 뽀대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상업 사진쪽과 달리 예술적인 사진을 찍으려 한다.[13]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존 디볼라(John Divola), 프란체스카 우드먼(Francesca Woodman), 신디 셔먼(Cindy Sherman)등등의 미술 사진작가들을 보면 도통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거라 왜 이게 작품인지 의문이 많을 것이다.

4.2. 예술적 특징

사진은 태생부터가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런 특성은 기존 회화가 가지지 못했던 표현과 리얼리티를 내세우는 데 적합하였다. 이러한 사진의 특징은 예술적인 것과 결부되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낳는다.
  • 첫째, 렌즈는 인간의 시야 한계나 인식을 넘어서 현실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반영한다. 카메라는 사람의 눈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14] 또한 이는 인간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다. 망원경과도 같은 원리로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든 지역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며, 인간의 시야를 자유자재로 확장시키고, 그것을 실제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 둘째, 사진은 모두가 과거에 일어난 사실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시간을 현재 시점에서 재생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하면 리얼리티를 가진 기록 매체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듯. 이는 사물의 순수한 객관화와 아직 체계화되지 않은 미분화된 현실대상이 표현세계에 나타나게 만들며, 그 자체가 현재성을 상징하므로 보는 사람에 있어 감정이입을 용이케하며 현실에 대한 일종의 대리체험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 셋째, 사진은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대상의 모습이 무한히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변화에 따라 대상이 갖는 의미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에 의한 기록적인 재현의 영상은 실제 사물을 인간이 재현하는 데 있어 기억의 애매함이나 모호함을 개선하고, 그로 인해 생긴 실제와 다른 개념의 재정립을 가능케 한다. 사물에 대한 기호적 의미부여가 실제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았을 때 사진이 극단적인 사실주의로서 현실을 재현하게 되면 이런 개념을 설명하기에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은 그 스스로가 개념이나 기호로서 작용한다기보단 개념 기호를 새롭게 갱신시키는 새로운 기호로서의 본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순수사진은 Fine Art Photography로 상업사진, Commercial Photography랑 전혀 다른 사진분야므로 상업사진쪽의 예술과 미술사진쪽의 예술은 굉장한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둘 다 할 순 있지만 배우는 거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미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상업쪽으로 갈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상업은 돈, 미술은 명성. 물론 많은 미술이 그렇듯, 한 쪽의 극에 달하면 돈과 명성 둘 다 얻을 수 있긴 하다.

4.3. 진실성

발명 당시에 사진은 기존의 예술과는 차별된 진실성과 사실성, 즉시성 등으로 피사체를 그대로 투영하는 도구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진 기술이 발전하고 사진에 대한 여러가지 시도와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사진의 진실성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게 되었다.

모든 예술과 기록이 그러하듯 사진 또한 촬영자의 의지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사진 또한 어느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일한 객체를 어떠한 구도, 렌즈, 필터, 인화로 사진으로 촬영하는가에 따라서 해당 사진이 품는 메시지가 달라지게 된다. 심지어 동일한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붙이는 단 한 줄의 제목에 의해서 사진의 의미가 180도로 뒤바뀔 수도 있다.

실제로 사진은 독재자 또는 독재국가의 선전으로 널리 활용되기도 하고 전쟁의 승리만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로도 활용된 역사가 길다. 요즘에는 사진 조작기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프로필 사진은 기본적으로 포토샵 보정이 들어가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범죄에 가까운 딥페이크 가짜뉴스까지 발생하게 되는 등 점차 사진의 진실성은 축소되고 있다. 어찌나 문제가 심한지 객관적인 모델의 외모를 평가해야하는 오디션에서는 아예 폴라로이드 사진으로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미봉책을 널리 사용할 정도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진실에 가까운 사건내용을 취재해야하는 진실보도의 의무가 있는 기자들은 아예 사진보정이나 조작을 금지하는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다. 촬영한 장소와 시간은 물론 어떠한 사진기와 렌즈, 필터를 사용했는지까지 일일이 기록해서 사진의 정보왜곡이 최대한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기도 한다.

4.4. 순수사진작가

  • Richard Prince
  • Penelope Umbrico
  • Diane Arbus
  • Richard Avedon
  • Roger Ballen
  • Vivian Maier
  • Tim Walker
  • Sally Mann
  • Martin Parr
  • Nick Knight
  • Andy Warhol
  • Garry Winogrand
  • William Eggleston
  • Robert Frank
  • 기타 등등

5. 사회

5.1. 사진 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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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사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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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진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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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진병(촬영병)

군부대 대부분에서는 일명 사진병(촬영병)이라는 직책도 있는데 연대급 본부대에 속하며 사진영상 특기가 있거나 사진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병사를 중심으로 선발한다. 사진병의 임무는 군부대 내의 행사기념 촬영 및 단체방문 기념 촬영 등이다. 다만 연대장이나 중소대장 또는 직책급 장교의 허가 없이는 무단으로 촬영할 수 없으며 대외반출 또한 금지한다.

사진 병과는 사실 현대의 군대라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미디어를 통한 여론전이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게 되었고, 사진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풍자화(만화 일러스트)가 차지하던 미디어 저널리즘은 사진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20세기 미국에서는 "LIFE" 같은 사진 저널리즘 전문 잡지가 오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리고 2차대전 미군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창설 초기 대한민국 국군에도 사진병과가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사전병이 찍은 사진들은 평시에는 각종 홍보자료로, 전시에는 전황의 증빙으로 활용되게 된다. 물론 디지털 시대가 되며 영상이 도입되자 사진병이 커버 못하는 동영상의 영역까지 확장한 영상 전담병도 존재한다.

이는 군대뿐만 아니라 홍보 전담조직을 갖고 있는 모든 정부기관, 회사, 학교 등 조직에서 사진병과 비슷한 직책의 업무분장을 찾아볼 수 있다.

5.5. 촬영금지 장소

촬영금지가 되어 있는 곳은 아래와 같으며, 촬영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 일부 박물관(미술관): 사실 사진 자체가 전시물에 주는 영향은 없지만 플래시를 사용할 경우 강한 빛에 탈색되는 등 전시물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관람객이 사진 찍겠다고 작품 앞을 막아 다른 사람 감상을 방해한다거나 다른 전시물을 밀친다거나 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도 사진촬영을 금지한다. 때문에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곳에서도 플래시와 관람객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삼각대는 사용금지 되는 게 일반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며 재산권의 경우 박물관과 미술관은 전시물 사진을 판매하는 것으로 수익을 거두기 때문이다. 때문에 몇몇 박물관에서는 입장료 외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권리'를 따로 돈을 받고 파는 경우가 있으며, 이를 사지 않고 사진을 찍다간 곳곳에 배치된 감시원의 제지를 받는다.
  • 놀이기구 위: 놀이기구를 타면서 사진을 찍다가 사진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놀이기구를 다 타고 나서 찍자. 때문에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면 직원이 운행 중 사진, 동영상 촬영을 제한한다는 멘트를 남긴다.[15]
  • 군사시설: 보안을 중시하는 곳이라는 특성으로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사진촬영을 금함"이라는 경고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 군부대: 군 부대는 보안을 중시하는 곳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지도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위성사진에서도 군부대가 있는 자리는 이나 같은 자연물 이미지로 대체된다. 그 이유 때문에 전역한 사람이 사진 잘못 찍었다가 영창에 갈 뻔했던 사건이 있다. 같은 이유로 차량의 블랙박스 역시 군부대 진입시에는 작동을 멈춰야 한다. 가족의 훈련소 수료를 위해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주의할 것. 물론 대부분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통제한다.
    • 군사보호구역: 군부대 부대장(연대장 또는 대대장)의 훈령 및 공인하에 지정된 구역으로 민간인 출입엄금구역이다. 그리고 사진병이 아니고서는 촬영이 엄금되어있다. 사실 사진병이라도 영관급 장교의 허가 없이는 이조차도 무단으로 촬영할 수 없으며 대외반출 및 유출도 엄금한다.[16]
  • 교도소, 구치소: 교도소와 구치소 같은 교정 시설도 역시 보안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따라서 군부대와 마찬가지로 지도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위성 사진에도 숲이나 산 등으로 가려져 있다. 단, 비슷한 시설인 소년원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17]
  • 국가정보원: 역시 보안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 지역: 안보관광 등의 이유로 민통선 이북 지역을 방문할 때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 사진 촬영이 제한된다.
  • 종교적 성지: 특히 힌두교의 성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힌두교라도 지역별로 달라서 찍어도 무방한 곳도 많다. 러시아의 티베트 불교 사원인 이볼긴스킨에는 생불이 모셔져 있어 이를 촬영할 경우 엄청난 금액의 벌금을 낸다.
  • 대한민국 차량사업소: 대한민국 철도법상 차량사업소는 남북분단의 특수성상 군부대와 비슷한 수준의 보안을 해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 철도 공항, 교량, : 몇몇 나라에서는 국가보안을 이유로 군부대에 준하는 보안규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만 해도 군인이나 경찰이 다가와서 호루라기를 불거나 카메라를 압수하기도 하니 주의하자. 공항의 경우 사전에 테러 계획을 꾸미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 삼성전자를 위시한 기업체들: 기술 유출 등의 이유로 인해 외부인의 사진 촬영을 막는다. 그렇다고 핸드폰 자체를 수거해갈 수는 없어서 핸드폰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인다.
  • 목욕탕, 수영장 또는 워터파크(특히 탈의실): 워터파크 및 수영장 내부는 케바케지만, 목욕탕 및 대부분의 탈의실은 빼도 박도 못하게 알몸이 드러나기 때문에 성범죄 문제로 인해 사진 촬영을 무조건 금지하고 있다. 보안 스티커 부착을 실시하는 곳도 있다.
  • 식당, 상점 일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 장소가 알려져서 가게세가 올라간다거나, 여러 사람이 몰려들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이유 등 여러 사정으로 촬영이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만다라케, 정글과 같은 중고 피규어 판매점이다.[18]
  • 코스트코 등의 대형마트: 대부분이 잘 모르는 사실이고 제제도 딱히 안 가하지만 코스트코 매장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과거 이마트나 홈플러스도 마찬가지였으나, 현재는 규제가 풀렸다. 일본의 이온몰 같은 곳은 아직도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곳이 있으며, 사진 찍는 장면이 포착되면 무조건 직원에게 사진을 삭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는 경쟁사에서 할인 정보나, 각종 이벤트 정보를 빼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불교 의 선방: 일반인은 그 곳에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 북한의 대부분의 지역: 북한의 평양 등의 그나마 보기에라도 정돈된 일부 지역이 아닌 전 지역은 관광객의 촬영이 금지된다. 아마도 열악한 현실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듯 하다.

5.6. 대중매체에서의 사진

사진을 찍는 것을 게임으로 구현한 게임들로는 격사보이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의 동방문화첩, 더블 스포일러 ~ 동방문화첩, 하쿠나 마타타(게임), 호러 게임 제로 시리즈[19], 미연시이자 애니메이션인 포토카노[20] 등이 있다.

사진학과와 관련이 있는 게임으로는 Life is Strange가 있다.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가 전국에서 인기있는 예술학교. 그 중 사진학과가 가장 유명하다. 그리고 직접 사진찍는것을 조작하진 않지만 사진을 찍는게 간간히 나온다. 또한 초반부에 사진의 역사를 배우는 부분이 나온다.[21]

사진을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타마유라가 있다. 정확히는 사진 찍는 이야기를 다룬 일상물.

잡지 사진을 현상하는 주인공을 소재로 만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도 있다. 사진이 소재이다 보니 마치 여행 사진 슬라이드쇼를 보는 듯한 기법도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이 외 사진을 다룬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은 편인데, 가장 유명한 영화를 꼽자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욕망이 있다.

만화 데스노트에선 사진과 동영상에 의해 본명 노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생존수단중 하나이다. 얼굴과 본명으로 원격살인이 된다는 걸 추론해낸 수사 측에서 가명사용을 적극 권장했으나, 이 조차도 우키타라는 수사관이 최초로 사신의 눈에 의한 살해로 저지당하면서, 얼굴만으로 살해 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난 후에 수사관 측에선 선글라스 착용이나 차량 유리에 선팅을 한다거나 선팅이 된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얼굴이 노출된 사진이나 동영상 공개를 극도로 꺼린다. 니아는 키라 수사 본부와 만나기 전까지 대면은 고사하고 절대 사진이나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5.7. 사진과 시험

  • TOEIC 시험은 Part 1이 사진 묘사다. 이 사진들은 사람이 들어간 사진과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사진으로 나뉘는데, 사람이 있는 쪽이 더 많이 나온다. 아예 시중의 LC 문제집에서도 이 둘을 나누는 실정. 문항 수는 6문항.
  • JPT 시험은 파트 1이 사진 묘사이다. 문항 수는 20문항.
  • TOEIC Speaking 시험은 3번 문제가 사진 묘사이다.

6.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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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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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연장자
위 사진은 1852년에 찍었다. 사진 속 주인공의 이름은 콘래드 헤이어(1749~1856, 향년 107세)로, 미국인 농부였다. 조지 워싱턴 휘하에서 미국 독립전쟁에서 싸웠던 참전 용사인데, 1749 1월 22일[22]으로 사진 찍을 당시엔 무려 103세였다고 한다. 참조

국가별 최초로 사진을 찍은 국가원수는 다음과 같다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빨을 유독 못 받아 사진이 이상하게 나와서 자주 놀림거리가 된다거나, 종교적 이유, 도촬을 당해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경우 등 여러가지 개인적 사유로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외에서는 사진을 찍는 사람 뒤나 근처에서 기괴한 표정과 자세를 연출해 사진을 망치는 장난이 잦은 편으로, 이를 photobombing(사진 폭격)이라고 한다. 참조

세계 어디든 허락 없이 촬영하거나, 분장하거나 탈바가지를 쓴 사람을 찍으면 모델비를 내라고 몰려오는 사람도 많다. 내든 안 내든 알아서 조심해야 하지만 아주 제대로 걸리면 미리 대기한 동료들이 몰려와 위협을 가하며 돈을 강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그럼 이쪽에서도 촬영비를 강요하며 된다

이런 현지인 사진모델 상업성(?)은 선진국에서도 꽤 있으니 특이한 옷차림이나 분장으로 있는 사람을 무턱대고 찍으면 돈을 준비하는 게 낫다. 한 축구팬은 스페인에 가서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러갔다가 경기장 근처에서 귀여운 털복숭이 인형옷을 입고 마드리드 깃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같이 사진을 찍고 5유로[25]나 되는 돈을 억지로 냈던 경우도 있다.

쿠바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또는 멋지게 입고 다니는 현지인을 찍으면 그야말로 귀신같이 숨어서 살피던 현지인이 튀어나와서 모델비를 내라고 강요하는 실제 사례들이 꽤 있다. 돈만 밝힌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지인들에게 그게 벌어먹을 직업이라고 항변하는 경우도 있기에 무턱대고 욕할 일만도 아닌 듯.

모스크바의 경우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 여제 분장을 한 모델을 조심할 것. 특히 크렘린 주변과 아르바트 거리 주변에 이런 모델들이 많아 돌아다니니 혼자 다니는 여행객은 조심해야 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나타나 사진을 찍자 하며 심하게는 모델비와 촬영비를 포함하여 6,000루블(약 13만원 상당)을 뜯어가기도 한다.

자연물 사진의 경우 일부 사진작가들의 자연 훼손 행각이 꾸준히 문제시되고 있다. 보기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새끼 새들을 둥지에서 억지로 꺼내 나뭇가지에 앉히거나 심지어 본드로 새의 발을 나뭇가지에 고정시키는가 하면, 희귀 야생화나 식물 사진을 찍겠다고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훼손하거나 아예 피사체 주변을 갈아엎는 등의 사례가 있다. 심지어 2014년 7월에는 유명 사진작가가 사진 구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울진 금강송 군락지에서 금강송을 무단 벌목한 일이 알려져 큰 논란이 되었다. #[26][27] 아이러니한 것은 문제의 사진작가는 평소 금강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왔다고 밝혀왔다는 점.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이미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무용담처럼 전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관행'으로 생각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가들은 악행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각종 사진 및 카메라 커뮤니티에선 인정받지 못한다.
사진작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무리한 사진 욕심으로 인해 애꿎은 동물들이 희생되는 사례도 많다. 해변에 밀려 올라온 상어 돌고래 같은 수중 동물들을 보고 사진을 찍겠다고 뭍에서 오랫동안 방치하거나 함부로 만지거나 해서 괴롭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의 사례가 있는가 하면, 2016년 7월에는 미국 알래스카의 한 유명 항구도시의 제방에 산양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다 나타났는데, 산양을 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주변을 둘러싸는 바람에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결국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알래스카 산양, 관광객들 사진 공세에 익사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에서는 놀이기구 위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속칭 온라이드 포토존이 존재한다.

과거 나라사랑카드에는 사진이 들어간 적이 있으며 현재 나라사랑카드에는 사진이 없다.

사진이 들어가는 카드도 있다. 서울랜드, 에버랜드, 롯데월드의 연간회원권에는 사진이 반드시 들어간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사후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망한 가족의 시신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당시는 유럽 전역에 창궐하던 각종 전염성 질환으로 여성과 영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이 무렵 병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자식을 추억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28], 1839년 초상화에 비해 완성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은판 사진의 발명으로 초상화를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다만 초상화에 비해 저렴한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일상적으로 찍기에는 부담이 큰 가격이었기에 서민들은 기념할 일이 있을 때 정도만 사진을 찍었고, 죽은 가족을 추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써 사망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던 것. 사후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시신에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한 뒤 특수한 지지 장치를 이용해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했고, 완성된 사진에는 색을 덧입히거나 눈을 그려넣는 등의 보정 작업을 거쳐 시신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만들었다.[29] 다만 자연스러운 사후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부자나 중산층뿐이었고, 가난한 서민들은 비용을 마련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사진을 바로 찍지 못하고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어 가는 상태에서 찍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되었다.( 영상)


[1] 줄이면 Photo. 그리스어의 'phos'(. 소유격은 photos)와 'graphein'(쓰다, 새기다)에서 유래한 말로, 1839년 존 허셜 경이 처음 사용했다. 존 허셜 경의 아버지도 유명한데 바로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이다. [2] 찰스 오리어 (Charles O'Rear) 작품 <환희>,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 평소에는 포도밭이여서 저런 모습이 아니며 해당 사진은 운 좋게 휴지기에 찍은 사진이다. 2006년 촬영된 모습 [3] 빛을 전하로 변환시켜 화상을 얻어내는 센서이다. 전하결합소자라고도 불리며 디지털 카메라에서 많이 사용된다. [4] 마이크로프로세서나 SRAM 등의 디지털 회로를 구성하는 데에 이용되는 소체. 상보성 금속 산화막 반도체라고도 불리며 이를 이용한 고체 촬상 소자등에 사용된다. 역시 디지털 카메라 등에서 많이 사용된다. [5] 위 사진을 찍은 위치는 프랑스 중부 손에루아르 주에 있는데, 전형적인 시골이다. 참고로 이 사진을 찍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 루이 15세 시기에 태어난 사람이며, 이 사진은 2022년 기준으로 196년이나 된 사진이다. [6] 후술하듯이 헬리오그래피 사진은 만드는데 6~8시간 걸리므로 동적인 장면은 찍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헬리오그래피 기법을 응용한 '그림'이지 결코 사진이 아니다. 다만 해당 기법이 사진현상법의 초기형이라는 사실만을 가지고 이 그림을 종종 최초의 사진으로 오인하는 일이 있다. [7]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아스팔트가 마르는 데에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8] 리본이라고 한다. [9] 물론 예외도 있기 마련이라 상기한 한국의 최초의 사진을 찍은 사신들은 거부감을 나타낸 게 아니라 매우 신비로워하며 러시아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 그중 누군가가 자기자신의 사진을 보고 이 작은 것에 내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고 무척이나 경외로워하였다고 한다. [10] 1980년대에 대본소 만화로 출판되었던 이현세 만화 '남 대 남'에서도 아랍에 간 한국 건설 노동자들 가운데 사진기로 무단으로 현지 여성 찍다가 한국인들 모두가 돌팔매를 신나게 당하는 사례가 나왔다. 현지에 대하여 아는 간부가 와서 현지인들에게 빌고 빌어 겨우 넘어갔는데 나중에 고생 끝에 넘어간 그 간부가 팔을 힘주며 "무단으로 현지 여성들을 찍은 놈 누구야?" 라고 분노게이지 가득인 모습을 보이자 그 직원이 우는 얼굴로 손을 들고 주변 동료들이 '명복을...'이라고 생각하며 빌었다. [11] 李宜翼, 1794~?,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예조판서, 경기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12] 음력 기준. 양력 기준으로는 1863년 3월 18일이다. [13] 구글로 처봐도 특정한 미술사진 작가를 검색하지 않는 이상 찾기 힘들다. [14] 카메라로는 사진의 효과를 넣을 수도 있고 원시, 근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5] 몰론 환타지 드림 같이 완만한 놀이기구는 촬영을 허용해주지만[30] 민감한 시설의 경우, 플래시를 금지하는 경우가 있다. [16] 이유는 혹시 모를 간첩 및 사이버요원에 의해 군사기지 타격을 받거나 민간인이 몰래 어슬렁거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나마 보안이 완화된 김포 북부에서도 어슬렁거리다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 [17] 이 또한 죄수에 탈출도움을 차단하거나 폭동을 일으키는 걸 사전에 막기 위함이다. [18] 부득이하게 방송 촬영을 하게 되면 식당 주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소리만 들리도록 한다. [19] 사진으로 유령을 잡는 특이한 플레이 방식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20] 기기를 직접 조작해 주인공들의 사진을 찍는 파트가 크게 연관성은 없어도 비중이 있는 편이다. [21] 또한, 최종 보스가 사진학과 교사다(...) [22] 비교하자면 정조보다 3살, 루이 16세보다 5살, 모차르트보다 7살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즉, 역사서 속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의 형뻘 인물이 사진을 남겼다는 것. [23] 최초로 사진을 찍은 천황이 전대의 고메이 덴노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24] 첫 사진을 무려 1842년 6~7월에 남겼기 때문에, 루이 필리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진 자료를 남긴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참고로 전술한 존 퀸시 애덤스는 1843년, 빅토리아 여왕은 1844년에야 처음으로 사진 자료를 남겼다. [25] 약 7천원. [26] 벌목 자체는 2014년 5월에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으로 기사화되기 시작한 것은 7월이다. [27] 대구시립 중앙도서관 1층 현관에서도 이 사진작가가 찍은 소나무가 걸려있었으나 기자에게 저격당한 그날 떼어내어져 어두운 창고 속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28] 당시 19세기 초까지 가족의 모습을 남기는 수단은 초상화가 유일했지만 그림의 특성상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29] 이런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채색화가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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