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19:56:47

조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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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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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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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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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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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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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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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주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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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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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퐁황.jpg 1999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한화 이글스 등번호 55번
정민철
(1992~1999)
조규수
(2000~2001)
정민철
(2002~200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이상군
(1999~2001)
조규수
(2002)
이상목
(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이상목
(1999~2002)
조규수
(2003~2004)
고지행
(2005)
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박정진
(2004)
조규수
(2005)
김해님
(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조성민
(2006~2007)
조규수
(2008~2009)
윤경영
(2010~2010.6.7.)
두산 베어스 등번호 43번
박민석
(2008~2009)
조규수
(2010~2011)
박민석
(2012~2014)
}}} ||
}}} ||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802210959280107000001070100-001.jpg
조규수
趙圭洙 | gyu-soo Jo
출생 1981년 9월 15일 ([age(1981-09-15)]세)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광평리[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천안남산초등학교 ( 졸업)
천안북중학교 ( 졸업)
북일고등학교 ( 졸업)
( 목원대학교) ( 법학 01[2] / 학사)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0년 1차 지명 (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0~2009)
두산 베어스 (2010~2011)
지도자 평택시 리틀야구단 감독 (2014~)
본관 배천 조씨(白川 趙氏)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
3. 기타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프로야구 선수. 평택시리틀야구단 감독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북일고등학교 시절 최고 145km/h 안팎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앞세워 1999년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고 MVP를 수상하는 등 초고교급 투수로 주목받았고, 2000년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2억 8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김태균이 그의 초-중-고 1년 직속 후배다.
고1이던 199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동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장해 경기를 매조지었다.

팬들은 조규수가 '제2의 정민철'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고, 구단 역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떠난 정민철의 등번호였던 55번을 조규수에게 주면서 기대를 걸었다.

2.2. 프로 경력

프로 첫 시즌, 조규수는 4월에만 5연승을 거두며 정민태와 공동 다승 1위를 달리기도 하는 등 특급 신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활약을 펼친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구 선수로서의 미래는 굉장히 밝아 보였다.

하지만 5월 19일 열린 현대 유니콘스전, 조규수는 이 날 박경완에게 두 개의 홈런을 헌납했고 박경완은 프로야구 최초 4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 경기 이후 6연패, 그리고 1승 후 다시 4연패로 매우 부진했다가 8월 이후 다시 살아나[3] 10승 12패 ERA 5.0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10승이라는 성적, 그리고 신인 완봉승이라는 기록[4] 덕에 신인왕 후보에는 올랐으나 SK 와이번스 이승호에게 내주게 된다.

그러나 2000년 시즌 한화는 말 그대로 개 망한 상태였고, 송진우의 계투 전향과 이상목, 정민철 등의 기존 선발투수들이 이탈한 상황에서 조규수만이 유일하게 로테이션을 지켰다. 첫해부터 규정이닝을 넘기고 팀 내 최다 이닝을 기록한 조규수를 팬들은 당연히 한화를 책임지는 에이스가 될 거라 생각했다. 괜히 당시 별명이 차세대 정민철이었겠는가.

2001 시즌에는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7승 8패 2세이브 ERA 4.24의 그럭저럭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다. 01시즌 첫 경기에서 완봉승을 기록했고, 시즌 후에는 야구 월드컵에 뽑혀가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조규수의 한계가 뚜렷하게 보인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직구가 가벼워 장타를 많이 허용하고 체력이 좋지 않아 긴 이닝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팔꿈치 부상과 잦은 투구 폼 변경도 조규수에게 악재로 작용했고, 이후 2002시즌에는 5승, 2003시즌에는 4승에 그치며 이른바 만년 유망주 테크를 밟게 된다.

그리고 2004 시즌에는 새가슴으로 낙인찍히며 아예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내다가 설상가상으로 시즌 후 프로야구 병풍 사건에 연루되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냈고, 이듬해인 2005 시즌이 끝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2008 시즌부터 팀에 합류했으나, 공익근무 기간동안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조규수의 공은 채 140km/h를 넘지 못하는 배팅볼로 전락해 있었다.

복귀 후 2군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2009 시즌 후 이대수를 상대로 김창훈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두산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2011 시즌 후 방출되었다. 군대 이후 기량이 떨어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입대전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군대 탓을 할 수 없긴하다.

방출 이후 천안시에서 사회인 야구단에서 선수생활 및 심판을 본다는 제보와 함께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4년 12월 23일, 평택시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3년 현재도 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여러 대회를 우승하고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감독으로도 선임되는 등 유소년 야구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9oSOl7U2OE

3. 기타

2004년 한화 시절, 8회 1사 만루에서 유승안 시프트가 걸린 상황에서 큼지막한 좌측 2루타를 맞으면서 유승안 감독을 쓴웃음 짓게 한 전력이 있다. 해설자에 따르면 1사 만루에서 병살 땅볼을 노리고 있는데 풀카운트까지 간 게 패인이라는 듯.

잘생겨서 선수 시절엔 얼빠가 많았다. 신인 시절 차세대 정민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당시엔) 잘 던진다고, 그리고 잘 생겼다고 붙은 별명이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주름이 좀 많이 생겼지만 미남인 건 여전하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한화 29 169⅓ 10 12 0 0 0.455 5.05 177 25 72 105 104 95 1.441
2001 40 136 7 8 5 2 0.467 4.24 158 18 69 85 71 64 1.625
2002 28 113⅔ 5 7 0 0 0.417 5.46 114 19 62 88 71 69 1.434
2003 32 121 4 10 2 1 0.286 5.28 121 18 64 80 74 71 1.496
2004 20 38⅔ 2 3 1 0 0.400 7.68 51 7 23 26 35 33 1.810
2005 5 3⅔ 0 2 0 0 0.000 22.09 11 1 3 4 9 9 3.818
2006 군복무( 공익근무요원)
2007
2008 1군 기록 없음
200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0 두산 2 1⅓ 0 0 0 0 0.000 0.00 1 0 0 0 0 0 0.750
2011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2시즌)
156 583⅔ 28 42 8 3 0.400 5.26 633 88 293 388 364 341 1.532

5. 관련 문서


[1] #. 배천 조씨(白川 趙氏) 집성촌이다. [2] 2003년 1월 23일 충청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법학과(야간부)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후 2005년 2월 22일 졸업했다. [3] 특히 8월부터의 성적이 매우 고무적이었는데, 8월 10일 두산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이래 퀄리티스타트 4경기, 8월 22일 완투승에 10월 12일에는 당해 신인 최초 완봉승을 거두며 8월 이후에만 4승 1패를 기록했다. 다만 9월에는 잠깐 성적이 좋지 않긴 했다. [4] 2000년 시즌 신인들 중 유일. 더불어 이 기록은 팀 내에선 1995년 신재웅 이후 달성한 기록이며 그 다음으로 류현진이 2006년 기록한 이후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