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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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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조선 왕릉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Tombes royales de la dynastie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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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서울특별시[1]
경기도[2]
강원특별자치도[3]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1319
등재연도 2009년
등재기준 (iii)[4], (iv)[5], (vi)[6]
링크 공식 홈페이지
파일:조선왕릉 안내도.jpg

1. 개요2. 상세3. 입지4. 양식5. 목록
5.1. 능(陵)
5.1.1. 왕과 왕후의 능5.1.2. 추존된 왕과 왕후의 능
5.2. 원(園)5.3. 묘(墓)
6. 조선왕릉 기신제향 일자7. 관련 영상8. 한국사 다른 왕조의 왕릉9. 여담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excellent_unesco9_1.jpg
문종 현덕왕후 현릉
조선의 역대 국왕과 왕비, 추존된 국왕과 왕비 및 대한제국 황제 황후가 묻힌 능(陵)을 통틀어 일컫는 말.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이라는 점 때문에 조선왕릉을 "'신들의 정원"' 이란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2. 상세

총 42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태조의 추존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의 능까지 포함하면 총 50기. 그러나 일반적으론 42기의 능만을 조선왕릉으로 표현하고 있다.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개최된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7]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40기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나머지 2기인 제릉 후릉이 현재 북한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 반정으로 폐위되어 왕의 능이 아닌 일개 왕자의 묘가 된 연산군 연산군묘 광해군 광해군묘도 여기서 제외됐다.

일반적으로 방문 관람시 성인 기준 입장료 1,000원[8][9]이며, 해당 왕릉이 위치한 지역민의 경우 50% 할인이 적용된다.[10] 간혹 특정일[11]이나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의 문화가 있는 날에는 무료 개방행사가 진행되므로 이 점을 역시 참고해두면 좋다.

조선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몇몇 능역의 경우는 여타 사유로 인해 비공개되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삼릉의 효릉. 12대 인종 인성왕후 박씨의 능으로, 이곳은 서삼릉 경내이면서 동시에 농협 젖소개량사업소 영역이기 때문에 일반에는 비공개가 된 능이다. 정확히는 무덤 주변은 국유지지만 효릉에 들어가기 위한 길이 농협의 소유다. 그러나 2023년 9월 7일 기점으로 효릉이 전면 개방됨으로서, 남한 내에 모든 조선왕릉 총 42기가 개방되었다. 그래서 관람하고 싶은 사람들은 효릉(현장)에 방문해 관람할 수 있다. [12]

몇몇 능을 제외한 대부분은 보존상의 이유로 능침 앞부터 출입을 금하고 있어 이 또한 수십미터 바깥 멀리서 관람하는 것만이 가능하다.[13] 전국에 있는 다른 왕조의 왕릉들[14]은 대부분 봉분 근처까지 가서 여러 석물을 자세히 볼 수 있고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데 유독 조선왕릉들은 봉분 접근을 금지하고 한참 멀리서 바라보는 게 끝인 곳이 많다.

왕릉들은 왕실의 능역인 만큼 숲(일반적으로 소나무) 보존이 잘 되어 있고 경관도 매우 좋기 때문에 왕릉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왕이나 왕비를 참배한다는 목적보다는 대개 산림욕이나 가벼운 산책 등의 관광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예 능역 코스를 산책로나 수목원으로 구성해 놓은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세조 정희왕후의 남양주 광릉 옆에 위치한 광릉수목원이 있다. 사릉의 경우는 권역 내에 전통수목양묘장과 자연생태전시관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덕분에 낮은 확률로 딱따구리 같은 보기 어려운 조류나 쉽게 보기 힘든 희귀 식물을 찾을 수도 있어서 이런 희귀한 동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방문해도 좋은 곳이다. (서울)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선정릉은 도심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며, 지하철로 찾아갈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15]

그 외 사진 촬영이나 왕실 제향과 관련해 취미인 사람들도 역시 많이 찾으며, 능이 있는 인근 지역의 학생들이 사생대회나 백일장, 소풍 같은 학교 행사 때문에 방문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조선왕릉의 경우, 다른 왕조의 능과는 달리 아직까지 무덤 내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이는 왕릉 기신제향를 맡은 전주 이씨 종약원에서 발굴에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건전한 학술 연구라고 해도 무덤을 완전히 파헤쳐야 하니 예법상 매우 꺼릴 수밖에 없다. 천마총 황남대총 같은 삼국시대 왕릉급 고분들을 발굴한 사례가 있는데, 이때도 경주 김씨 문중들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굴을 강행한 것은( #, #) 그 당시가 일제강점기&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현재는 이렇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발굴하는 것은 어렵다. 이 때문에 조선 왕릉의 내부 구조는 조선왕조실록 등 왕릉 축조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구한다.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유해를 부검해서 연구하지 못하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일. 건강상태 및 체형 등을 통해 당시 인물들의 개인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유해를 연구해서 대부분 소실된 역대 국왕의 어진을 복원하는 데에도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중기 이후의 능에서는 왕들의 미라가 나올 확률이 상당히 높다. 조선 중기 이후의 무덤 양식으로 인해 무덤에 안장되어있는 양반들의 시신도 미라가 되어 무덤 이장 등의 이유로 발견되는데, 이보다 더욱 철저한 왕릉급들에서는 사실상 미라화가 되었을 터이다. 만약 발굴조사가 이뤄진다면 방금 승하한 듯한 조선 왕과 왕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왕릉은 조선 시대에는 조정이 엄격히 관리하였거니와, 일제강점기 기간 및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당연히 중요하게 다뤄서 관리하였다. 또한 시신을 안치한 석실에 석회를 두텁게 바른 회곽묘라서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나 폭약 없이 소수 인력이 단시간에 몰래 파들어갔다 빠지는 식의 도굴이 불가능한데다, 검약을 강조한 유교 윤리에 따라 온갖 진귀한 부장품을 가져다 묻은 이전 왕조와 달리 '비교적' 도굴할 가치가 없는 물건들뿐이라 도굴꾼들이 자기 목숨을 걸고 공격할 동기 또한 부족했으므로, 왕릉 강역 주변이 훼손되었을지언정 왕릉 자체는 보존되었다. 구한말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벌어졌으나[16] 석회에 막혔고, 2007년 서오릉 순창원[17]도 당시 자행됐던 도굴 시도 역시 두터운 석회벽에 막혀 미수에 그쳤다. 조선왕릉 도굴성공 사례는 다수의 인력을 눈치 볼것 없이 동원할 수 있었던 선정릉 도굴사건이 유일하다. 이 사건은 임진왜란 조선 일본이 외교 관계를 국교 정상화로 회복할 때 조선측에서 관련자들의 체포와 처벌을 강하게 요구할 정도로 심각한 안건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유약조 문서에 나와 있다.

조선왕릉들은 주변의 지명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아예 지명화되어버린 정릉(성북구 정릉동), 태릉(태릉 선수촌), 광릉(광릉수목원) 등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조선왕릉에서 역명을 따온 철도역인 동구릉역[18], 선릉역, 선정릉역, 태릉입구역, 정릉역, 온릉역, 사릉역, 세종대왕릉역 등이나 서오릉 앞을 흐르는 창릉천과 그 일대의 행정동명인 창릉동, 그리고 해당 지역에 조성될 예정인 창릉신도시, 헌릉 앞을 지나는 도로인 헌릉로 선정릉 앞을 지나가는 도로인 선릉로 정릉 앞을 지나가는 정릉로, 용인서울고속도로 헌릉IC 등의 지명이 그 예이다. 다만 세종대왕릉은 ' 영녕릉'이라는 이름을 무시한 첫 사례.

3. 입지

조선왕릉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수도인 한양( 한성부) 인근인 경기도에 주로 밀집해 있다. 이는 조선의 국법인 경국대전에서 '능역은 도성에서 10리(약 4km) 이상, 100리(40km) 이하의 구역에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도성 내, 즉 옛 한양 시가지 내에 있는 조선왕릉도 없다. 조선 초기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태조의 명에 따라 도성 내[19]에 있었으나, 이후 태종 때 현 위치[20]로 이장했다.

이 규칙에서 예외는 다음과 같다.

4. 양식

조선왕릉은 풍수와 지형, 그리고 안장되는 순서 등에 따라 6가지의 형태를 갖고 있다.
  • 단릉(單陵) - 한 언덕 위 하나의 능에 한 사람이 안장되어 있는 왕릉. 대표적으로 태조가 묻힌 건원릉
  • 쌍릉(雙陵) - 한 언덕 위에 단릉이 나란히 두 개 있는 것. 대표적으로 태종 원경왕후 민씨가 같이 묻힌 헌릉
  • 합장릉(合葬陵) - 한 언덕 위 하나의 능에 두 사람이 함께 안장되어 있는 것. 대표적으로 세종 소헌왕후 심씨가 같이 묻힌 영릉
  •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두 개의 언덕에 각각 단릉이 있는 것. 대표적으로 세조 정희왕후 윤씨가 같이 묻힌 광릉[25]
  •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 하나의 언덕 위에 단릉이 위아래로 배치된 것. 대표적으로 경종 선의왕후 어씨가 같이 묻힌 의릉 효종 인선왕후 장씨가 같이 묻힌 영릉 등이 있다.

파일:261BD35055E24D8C0938CA.jpg
조선왕릉 상설도 (단릉 표준)

기본적으로 불탑을 모방한 난간석, 12지신을 부조한 병풍석, 정자각, 무덤 주변의 문무석인 등 석물 배치와 같이 통일신라, 고려 왕릉의 양식을 거의 이어받았다. 예를 들어서 신라 원성왕릉에서는 능 입구에 있던 화표석이 조선왕릉에서는 능침의 망주석으로 위치가 바뀌고 능 입구에는 그 대신 홍살문을 세우는[26] 등의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틀은 대동소이하다. 특히 초기에는 전왕조와 매우 비슷한 양식을 유지하다 중후기로 가면서 독자적으로 변화한다. 조선왕릉은 크게 위와 같이 구성되어 있지만, 조성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이유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위의 구조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왕릉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조선왕릉 구조의 표준 정도로만 이해를 해 두자.
  • 그림에서는 봉분에서 난간석만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어떤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이 모두 쳐져 있는 곳도 있고 어떤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모두 없는 곳도 있다.
  • 수라간(그림의 4번)과 수복방(그림의 3번)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왕릉 자체가 거의 없다. (있더라도 현대 시대에 들어서 복원한 경우가 대부분)
  • 소전대(그림의 6번) 역시 현재는 건원릉 헌릉 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 무석인(그림의 8번)이 아예 배제되고, 석마(그림의 10번) 2쌍이 아니라 1쌍만 배치된 능도 있다. 예를 들어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묻혀있는 사릉.
  • 상계, 중계, 하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왕릉도 있다.
  • 장명등(그림의 11번)이 중계가 아니라 하계에 위치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철종 철인장황후 김씨가 묻힌 서삼릉의 예릉.

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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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철인왕후 고종, 명성황후 순종,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예릉睿陵 홍릉洪陵 유릉裕陵
폐지된 능호
소릉昭陵 | 회릉懷陵 | 숙릉肅陵 | 성릉成陵 | 문릉文陵
}}}}}}}}} ||

조선왕릉은 그 격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능(陵): 왕,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추존왕비, 황제와 황후의 무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왕릉은 총 50기[27]이며, 그 중에 40기의 능이 남한에 위치하고 있다. 나머지 10기의 능[28]은 이북 지방인 북한 개성에 위치한다.
  • 원(園): 황태자, 왕세자, 왕세자빈 또는 임금의 사친(私親)[29]의 묘소에 붙이는 이름이다. 총 12기.
  • 묘(墓): 나머지 왕족(친왕, 대군, 군, 공주, 옹주, 후궁)과 폐위된 왕과 왕비의 무덤.

5.1. 능(陵)

5.1.1. 왕과 왕후의 능

능호 피장자 승하 봉릉 소재지 형식 사적 비고
건원릉
(健元陵)
태조고황제[A] 1408.06.18.
(태종08.05.24.)
1408.09.28.
(태종08.09.09.)
경기도
구리시
단릉 193호
( 동구릉)
1409. 신도비 건립
제릉
(齊陵)
신의고황후[B] 1391.10.21.
(공양03.09.23.)
1392.10.04.
(태조02.09.18.)
경기도
개성시
단릉 [32][33] 1404. 신도비 건립
1744. 신도비 재건립
정릉
(貞陵)
신덕고황후[B] 1396.09.15.
(태조05.08.13.)
1396.10.30.
{태조05.09.28.)
서울특별시
성북구
단릉 208호
(서울 정릉)
1409. 천장
1669. 재건
후릉
(厚陵)
정종 1419.10.05.
(세종01.09.26.)
1412.08.27.
(태종12.07.20.)
경기도
개성시
쌍릉 [35][36] [37]
정안왕후 1412.08.02.
(태종12.06.25.)
헌릉
(獻陵)
태종 1422.05.30.
(세종04.05.10.)
1420.10.02.
(세종02.08.25.)
서울특별시
서초구
쌍릉 194호
( 헌인릉)
1424. 신도비 건립
원경왕후 1420.08.18.
(세종02.07.10.)
영릉
(英陵)
세종 1450.03.30.
(세종32.02.17.)
1446.06.13.
(세종28.05.19.)
경기도
여주시
합장릉 195호
( 영녕릉)
1450. 신도비 건립
1469. 천장
소헌왕후 1446.04.19.
(세종28.03.24.)
현릉
(顯陵)
문종 1452.06.01.
(문종02.05.14.)
1452.07.03.
(단종즉위.06.17.)
경기도
구리시
동원이강릉 193호
( 동구릉)
1450.08.08. 소릉(昭陵)
1513. 천장
현덕왕후 1441.08.10.
(세종23.07.24.)
장릉
(莊陵)
단종 1457.11.07.
(세조03.10.21.)
1698.12.07.
(숙종24.11.06.)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단릉 196호
(영월 장릉)
[38]
사릉
(思陵)
정순왕후 1521.07.07.
(중종16.06.04.)
경기도
남양주시
단릉 209호
(사릉)
[39]
광릉
(光陵)
세조 1468.09.23.
(예종즉위.09.08.)
1468.10.10.
(예종즉위.09.25.)
경기도
남양주시
동원이강릉 197호
(광릉)
정희왕후 1483.05.06.
(성종14.03.30.)
창릉
(昌陵)
예종 1469.12.31.
(예종01.11.28.)
1470.01.19.
(성종즉위.12.18.)
경기도
고양시
동원이강릉 198호
( 서오릉)
안순왕후 1499.02.03.
(연산04.12.23.)
공릉
(恭陵)
장순왕후 1462.01.05.
(세조07.12.05.)
1470.02.22.
(성종01.01.22.)
경기도
파주시
단릉 205호
( 파주삼릉)
선릉
(宣陵)
성종 1495.01.19.
(성종25.12.24.)
1495.02.08.
(연산01.01.14.)
서울특별시
강남구
동원이강릉 199호
(선정릉)
정현왕후 1530.09.13.
(중종25.08.22.)
순릉
(順陵)
공혜왕후 1474.04.30.
(성종05.04.15.)
1474.05.04.
(성종05.04.19.)
경기도
파주시
단릉 205호
( 파주삼릉)
정릉
(靖陵)
중종 1544.11.29.
(중종39.11.15.)
1545.03.07.
(인종01.윤01.25.)
서울특별시
강남구
단릉 199호
(선정릉)
1562. 천장
온릉
(溫陵)
단경왕후 1557.12.27.
(명종12.12.07.)
1739.05.05.
(영조15.03.28.)
경기도
양주시
단릉 210호
(온릉)
희릉
(禧陵)
장경왕후 1515.03.16.
(중종10.03.02.)
1515.03.21.
(중종10.03.07.)
경기도
고양시
단릉 200호
( 서삼릉)
태릉
(泰陵)
문정왕후 1565.05.05.
(명종20.04.06.)
1565.07.01.
(명종20.06.04.)
서울특별시
노원구
단릉 201호
(태강릉)
효릉
(孝陵)
인종 1545.08.07.
(인종01.07.01.)
1545.08.18.
(명종즉위.07.12.)
경기도
고양시
쌍릉 200호
( 서삼릉)
인성왕후 1578.01.06.
(선조10.11.29.)
강릉
(康陵)
명종 1567.08.02.
(명종22.06.28.)
1567.10.23.
(선조즉위.09.22.)
서울특별시
노원구
쌍릉 201호
(태강릉)
인순왕후 1575.02.12.
(선조08.01.02.)
목릉
(穆陵)
선조 1608.03.16.
(선조41.02.01.)
1608.06.30.
(광해즉위.05.19.)
경기도
구리시
동원이강릉 193호
( 동구릉)
1608.04.09. 숙릉(肅陵)
의인왕후 1600.08.05.
(선조33.06.27.)
1600.08.19. 유릉(裕陵)
인목왕후 1632.08.13.
(인조10.06.28.)
1632.08.22. 혜릉(惠陵)
장릉
(長陵)
인조 1649.06.17.
(인조27.05.08.)
1649.06.24.
(효종즉위.05.15.)
경기도
파주시
합장릉 203호
(파주 장릉)
1731. 천장
인열왕후 1636.01.16.
(인조13.12.09.)
휘릉
(徽陵)
장렬왕후 1688.09.20.
(숙종14.08.26.)
1688.09.25.
(숙종14.09.02.)
경기도
구리시
단릉 193호
( 동구릉)
영릉
(寧陵)
효종 1659.06.23.
(효종10.05.04.)
1659.06.28.
(효종10.05.09.)
경기도
여주시
동원상하릉 195호
( 영녕릉)
1673. 천장
인선왕후 1674.03.19.
(현종15.02.23.)
숭릉
(崇陵)
현종 1674.09.17.
(현종15.08.18.)
1674.09.23.
(숙종즉위.08.24.)
경기도
구리시
쌍릉 195호
( 동구릉)
명성왕후 1684.01.21.
(숙종09.12.05.)
명릉
(明陵)
숙종 1720.07.12.
(숙종46.06.08.)
1701.09.22.
(숙종27.08.20.)
경기도
고양시
동원이강릉 198호
( 서오릉)
[40]
인현왕후 1701.09.16.
(숙종24.08.14.)
인원왕후 1757.05.13.
(영조33.03.26.)
익릉
(翼陵)
인경왕후 1680.12.16.
(숙종06.10.26.)
1681.12.22.
(숙종06.11.02.)
경기도
고양시
단릉 198호
( 서오릉)
의릉
(懿陵)
경종 1724.10.11.
(경종04.08.25.)
1724.10.19.
(영조즉위.09.03.)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원상하릉 204호
(의릉)
선의왕후 1730.08.12.
(영조06.06.29.)
혜릉
(惠陵)
단의왕후 1718.03.08.
(숙종44.02.07.)
1720.07.19.
(경종즉위.06.15.)
경기도
구리시
단릉 193호
( 동구릉)
원릉
(元陵)
영조 1776.04.22.
(영조52.03.05.)
1776.05.28.
(정조즉위.04.11.)
경기도
구리시
쌍릉
정순왕후 1805.02.11.
(순조05.01.12.)
홍릉
(弘陵)
정성왕후 1757.04.03.
(영조33.02.15.)
1757.04.09.
(영조33.02.21.)
경기도
고양시
단릉[41] 198호
( 서오릉)
건릉
(健陵)
정조선황제[A] 1800.08.18.
(정조24.06.28.)
1800.08.25.
(순조즉위.07.06.)
경기도
화성시
합장릉 206호
( 융건릉)
효의선황후[B] 1821.04.10.
(순조21.03.09.)
인릉
(仁陵)
순조숙황제[A] 1834.12.13.
(순조34.11.13.)
1834.12.19.
(헌종즉위.11.19.)
서울특별시
서초구
합장릉 194호
( 헌인릉)
순원숙황후[B] 1857.09.21.
(철종08.08.04.)
경릉
(景陵)
헌종성황제[A] 1849.07.25.
(헌종15.06.06.)
1843.10.24.
(헌종09.09.02.)
경기도
구리시
삼연릉 193호
( 동구릉)
효현성황후[B] 1843.10.18.
(헌종09.08.25.)
효정성황후[B] 1904.01.02.
(광무08.01.02.)
예릉
(睿陵)
철종장황제[A] 1864.01.16.
(철종14.12.08.)
1864.01.23.
(고종즉위.12.15.)
경기도
고양시
쌍릉 200호
( 서삼릉)
철인장황후[B] 1878.06.12.
(고종15.05.12.)
홍릉
(洪陵)
고종태황제 1919.01.21. 1897.01.06.
(건양02.01.06.)
경기도
남양주시
합장릉 207호
( 홍유릉)
1919. 천장
명성태황후[B] 1895.10.08.
(개국504.08.20.)
유릉
(裕陵)
순종효황제 1926.04.25. 1907.08.26.
(융희01.08.26.)
경기도
남양주시
합장릉 1904.11.10. 유강원(裕康園)
1926. 천장
순명효황후 1904.11.05.
(광무08.11.05.)
순정효황후 1966.02.03.

5.1.2. 추존된 왕과 왕후의 능

능호 피장자 승하 봉릉 소재지 형식 사적 비고
덕릉
(德陵)
목조 1274. 1392.08.26.
(태조02.08.08.)
함경남도
신흥군
쌍릉 - 1410. 천장
안릉
(安陵)
효공왕후 ? -
지릉
(智陵)
익조 ? 함경남도
안변군
단릉 -
숙릉
(淑陵)
정숙왕후 ? 함경남도
문천군
단릉 -
의릉
(義陵)
도조 1342. 함경남도
함흥시
단릉 -
순릉
(純陵)
경순왕후 ? 함경남도
흥남시
단릉 -
정릉
(定陵)
환조 1361. 함경남도
함흥시
쌍릉[52] -
화릉
(和陵)
의혜왕후 ? -
경릉
(敬陵)
덕종 1457.09.20
(세조03.09.02.)
1470.02.22.
(성종01.01.22.)
경기도
고양시
동원이강릉 198호
( 서오릉)
소혜왕후 1504.05.11.
(연산10.04.27.)
장릉
(章陵)
원종 1620.02.02.
(광해11.12.29.)
1632.04.29.
(인조10.03.11.)
경기도
김포시
쌍릉 202호
(김포 장릉)
1626.04.26. 흥경원(興慶園)
1626.04.11. 육경원(毓慶園)
인헌왕후 1626.02.10.
(인조04.01.14.)
영릉
(永陵)
진종소황제[A] 1728.12.16.
(영조04.11.16.)
1776.05.19.
(정조즉위.03.19.)
경기도
파주시
쌍릉 205호
( 파주삼릉)
효순소황후[B] 1751.12.30.
(영조27.11.14.)
융릉
(隆陵)
장조의황제[A] 1762.07.12.
(영조38.윤05.21.)
1899.09.01.
(광무03.09.01.)
경기도
화성시
합장릉 206호
( 융건릉)
1764.06.18. 수은묘(垂恩墓)
1776.05.07. 영우원(永祐園)
1789.09.27. 현륭원(顯隆園)
헌경의황후[B] 1816.01.13.
(순조15.12.15.)
수릉
(綏陵)
문조익황제[A] 1830.06.25.
(순조30.05.06.)
1834.12.19.
(헌종즉위.11.19.)
경기도
구리시
합장릉 193호
( 동구릉)
신정익황후[B] 1890.06.04.
(고종27.04.17.)

5.2. 원(園)

원(園)은 왕세자, 왕세자빈과 임금의 사친(私親, 생부모)의 무덤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능과는 엄연히 구분되며 따라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원호 피장자 사망 봉원 소재지 형식 사적 비고
순창원
(順昌園)
순회세자 1563.10.06.
(명종18.09.20.)
1871.01.30.
(고종07.12.10.)
경기도
고양시
합장분 198호
( 서오릉)
공회빈 1592.04.14.
(선조25.03.03.)
순강원
(順康園)
경혜인빈 1613.12.10.
(광해05.10.29.)
1755.07.10.
(영조31.06.02.)
경기도
남양주시
단분 356호
(순강원)
[비공개]
소경원
(昭慶園)
소현세자 1645.05.21.
인조23.04.26.)
1871.01.30.
(고종07.12.10.)
경기도
고양시
단분 200호
( 서삼릉)
[비공개]
영회원
(永懷園)
민회빈 1646.04.30.
(인조24.03.15.)
1871.01.30.
(고종07.12.10.)
경기도
광명시
단분 357호
(영회원)
[비공개]
소령원
(昭寧園)
화경숙빈 1718.04.09.
(숙종44.03.09.)
1744.04.19.
(영조20.03.07.)
경기도
파주시
단분 358호
(소령원)
[비공개]
수길원
(綏吉園)
온희정빈 1721. 1778.04.14.
(정조02.03.18.)
경기도
파주시
단분 359호
(수길원)
[비공개]
수경원
(綏慶園)
소유영빈 1764.08.12.
(영조40.07.26.)
1871.01.30.
(고종07.12.10.)
경기도
고양시
단분 198호
( 서오릉)
1764. 의열묘(義烈墓)
1788. 선희묘(宣禧墓)
1970. 천장[64]
의령원
(懿寧園)
의소세자 1752.04.17.
(영조28.03.04.)
1871.01.30.
(고종07.12.10.)
경기도
고양시
단분 200호
( 서삼릉)
1949. 천장
[비공개]
인명원
(仁明園)
인숙원빈 1779.06.20.
(정조03.05.07.)
1779.06.20.
(정조03.05.07.)
경기도
고양시
단분 200호
( 서삼릉)
1786. 강등[66]
1950. 천장[67]
효창원
(孝昌園)
문효세자 1786.06.06.
(정조10.05.11.)
1871.01.30.
(고종07.12.10.)
경기도
고양시
단분 200호
( 서삼릉)
1944. 천장[68]
휘경원
(徽慶園)
현목수비 1823.02.05.
(순조22.12.26.)
1823.02.09.
(순조22.12.29.)
경기도
남양주시
단분 - 1855. 1차 천장
1863. 2차 천장

[비공개]
흥원
(興園)
흥선헌의대원왕 1898.02.22.
(광무02.02.22.)
1908.05.08.
(융희02.05.08.)
경기도
남양주시
합장분 - 1966. 천장[70]
순목대원비 1898.01.08.
(광무02.01.08.)
영휘원
(永徽園)
순헌황귀비 1911.07.20. 1911.07.2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단분 361호
(영휘원과
숭인원)
[71]
숭인원
(崇仁園)
이진 1922.05.11. 1922.05.15. 단분 [72]
영원
(英園)
의민황태자 영왕 1970.05.01. 1970.05.09. 경기도
남양주시
합장분 207호
( 홍유릉)
자행황태자비 1989.04.30.
회인원
(懷仁園)
회은황세손 2005.07.16. 2005.07.24. 단분 [73]

5.3. 묘(墓)

구분상 왕릉이 아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되었다.

6. 조선왕릉 기신제향 일자[82]

※ 제향 일자는 국가유산청(舊.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및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월별 제향 일정표에 기재된 것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각 기신제향의 시기가 매년 다를 수 있습니다.
[아래 날짜는 '24년 5월 17일 기준(최신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7. 관련 영상






8. 한국사 다른 왕조의 왕릉

9. 여담

2019년 말까지 스탬프투어를 운영했었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이 주변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인천 서구청과 시공사들이 문화재보호법 방지를 위한 문화재청의 별도 심의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 결국 문화재청의 행정 착오로 인한 해프닝으로 결론지어졌고, 문화재청의 언론 플레이와 선동질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선정릉만 봐도 문화재청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알 수 있다

고양시 서삼릉은 다른 왕릉군들에 비해 훼손이 유난히 심각한 상황이다. 부지 인근에는 한양 컨트리클럽,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청소년야영장, 종마장, 농협대학교, 농협 젖소개량소, 군부대가 위치해 있는 상황이다. 복원을 계획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소식이 없다.[175]

맨발 보행을 금지했다가, 맨발 걷기 시민운동본부가 하소연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176]

10. 관련 문서



[1] 강남구, 서초구, 노원구, 성북구. [2] 고양시, 구리시, 김포시, 남양주시, 양주시, 여주시, 파주시, 화성시. [3] 영월군. [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7] 2009년 6월 22일~6월 30일 [8] 여주시 영녕릉은 500원이며 드물게 외부인도 똑같이 받는다. [9] 다만 만24세, 즉 만24세 생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 전까지는 청소년 관람으로 해당되어 관련 신분증을 제시하면 전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10] 단, 관련 신분증 필참. [11] 예를 들면 광복절과 같은 특정 공휴일이나 명절 등 [12] 적지 않은 수의 유적들이 각자의 사유로 인해 일반적인 접근 및 관람이 불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비공개 능역을 관람하고 싶으면 한시적으로 공개되는 시기를 고르던가, 또는 국가유산청에 별도로 문의해야 관람이 가능하므로 관람 및 답사할 생각이 있다면 잘 알아보고 답사하도록 하자. [13] 그러나 능침 개방이 있거나, 각 능에 대한 제향이 있는 날이 있으면 한시적, 특별 한정으로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능침 바로 앞에까지 가볼 수 있다. [14] 백제왕릉, 신라왕릉, 가야왕릉, 강화도에 있는 일부 고려왕릉 등. 고구려 왕릉의 경우 북한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수도가 국내성이었던 시절의 것들은 중국에 가서 볼 수 있고 발해왕릉도 마찬가지이다. [15] 선릉역(2호선, 수인분당선) 또는 선정릉역(9호선, 수인분당선)에 내려서 밖으로 나오면, 걸어서 5~7분 내지 짧은 거리에 바로 앞에 있다. [16] 부장품 따위를 노리려는 것이 아니라 남연군의 시신고인 모욕을 확보하여 협상에 유리한 입장을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17] 順昌園, 명종의 원자인 순회세자 공회빈 윤씨의 합장묘. [18] 2024년 개통예정. [19] 서울특별시 중구 외교공관 일대 [20] 서울특별시 성북구, 서울 우이신설선 정릉역 인근에 위치 [21] 다만 정종은 골육상쟁으로 피투성이가 된 한성에 진절머리가 나 즉위 후 잠시 개성으로 환도해 그의 치세의 조선은 도읍이 개성이었다. 그래서 개성을 그리워했던 노상왕 정종의 뜻을 금상 세종과 상왕 태종이 헤아려 그곳에 모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읍지로부터 10리 이상 100리 이하에 부합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2] 문종, 단종 의경세자(덕종), 예종, 인성대군 등등. [23] 지금의 동구릉 원릉(元陵, 영조대왕 정순왕후 김씨의 능역) 자리 [24] 조선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가 안장된 경릉(敬陵)과 구별. [25] 두개의 언덕에 각각 단릉은 일반적이라는 얘기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목릉( 선조대왕 의인왕후 박씨, 인목왕후 김씨) 같이 세개의 언덕이 있는 경우가 있고 명릉( 숙종대왕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같이 하나의 언덕에는 쌍릉의 형식이 있을 수도 있다. [26] 사실 홍살문이 유기물인 목재로 만든 것이다보니, 신라왕릉에서도 세웠는데 지금 남아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27] 태종이 추존한, 태조의 선조(직계 4대조)를 모신 8기의 능 포함 [28] 제릉, 후릉 및 함길도(함경도) 8릉 [29] 임금을 낳은 선왕의 후궁. [A] 대한제국 때 추존 황제가 되었다. [B] 대한제국 때 추존 황후가 되었다. [32] 북한 보존급문화재 556호 [33] 북한에 위치해 있어 조선왕릉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B] [35] 북한 보존급문화재 551호 [36] 제릉과 함께 북한에 위치한 왕릉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37] 조선왕조실록 세종 2년(1420) 1월 3일자 기사의 지문(誌文), 애책문(哀冊文)을 통해 능 조성 당시 신도비가 설립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38] 유일하게 강원특별자치도에 위치한 왕릉. 단종은 폐서인이 된 상태로 사망했기 때문에 노산군묘였으나, 숙종 때 복위되면서 장릉으로 승격되었다. 특이한 점은 장릉은 영월 엄씨 선산에 조성됐기 때문에 인근에는 엄씨 가문의 묘가 많이 위치해 있다. [39] 정순왕후가 사망하던 당시의 임금인 중종의 배려로 처음에는 부부인의 예로 묘가 만들어졌으나, 숙종 때 단종과 함께 복위되면서 사릉으로 승격되었다. 특이한 점은 장릉처럼 이곳 또한 정순왕후의 시매부(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 집안인 해주 정씨 선산이기 때문에 인근에는 해주 정씨의 묘가 많이 위치해 있다. [40] 희빈 장씨가 묻힌 대빈묘가 명릉 근처에 있다. [41] 단릉이지만 독특하게 우측(봉분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봉분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실제로는 쌍릉의 규모다. [A] [B] [A] [B] [A] [B] [B] [A] [B] [B] [52] 하나의 곡장 안에 두 개의 봉분을 배치한 쌍릉의 형식이지만, 특이하게도 양옆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라 앞뒤로 배치한 구조이다. 동원상하릉의 형식과 매우 유사한데, 하나의 곡장 안에 두 개의 봉분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왕릉의 쌍릉 형식 중에서 앞뒤로 배치한 구조는 이 정릉과 화릉이 유일하다. [A] [B] [A] [B] [A] [B] [비공개] [비공개] [비공개] [비공개] [비공개] [64] 처음에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지금의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 있었으나 1970년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비공개] [66] 22대 정조의 후궁으로, 홍국영이 몰락한 뒤 인명원은 원빈묘로 강등되었다. [67] 처음에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지금의 고려대학교 자연계 캠퍼스)에 있었으나 1950년 서삼릉 후궁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68] 이곳에는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의 무덤도 함께 위치해 있다. [비공개] [70] 흥선대원군의 묘는 처음에는 고양군 공덕리(현재의 공덕동)에 위치했으나 일제에 의해 1906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 1966년에는 미군 부지 확보를 위해 다시 남양주군 창현리로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71] 26대 고종의 후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귀비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72] 영친왕(의민황태자)의 장남으로 생후 8개월에 요절했다. [73] 영친왕(의민황태자)의 차남으로, 1947년 5월 3일 신헌법 제정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이왕세자 신분이었다. 1910년 8월 29일, 조선왕조(대한제국 포함)가 멸망한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공식적인 ‘원(園)’은 아니다. [74] 원래 여기는 세종대왕의 4남 임영대군의 봉토였는데 세종의 명으로 의정궁주 조씨( 태종의 후궁)의 봉사손이 되면서 의정궁주의 묘가 처음으로 자리하게 됐다. 이후 임영대군의 외손녀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요청을 중종이 들어주면서 연산군 가족의 묘가 함께 자리하게 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75] 연산군 재위기에 제헌왕후로 복위되어 '회릉(懷陵)'으로 승격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다시 묘로 격하되었다. 다만 무덤의 양식 자체는 왕릉의 형태 그대로이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비공개 구역이다. 주변의 부지가 서삼릉 청소년야영장, 농협 젖소개량소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76] 경희의료원 부지 내, 더 정확히는 경희여자중학교 건물 [77] 폐주의 생모라는 공통점 때문에 격상과 격하의 과정이 위의 폐비 윤씨와 정말 유사하다. 광해군 재위기에 공성왕후로 추존되어 '성릉(成陵)'으로 승격되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다시 묘로 격하되었다. 회묘와 마찬가지로 석물은 왕릉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 [78] 광해군이 임종 때 자신을 생모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겨서 성묘와 광해군묘는 직선 거리로 약 650m 남짓 떨어져 있다. 성묘 바로 앞에 풍양 조씨 시조인 조맹의 묘소가 위치해 있다. [79] 엄밀히 말하자면 장희빈은 폐위의 개념이 아니라 인현왕후 복위로 인한 후궁 재강등이지만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죄로 사사당했기 때문에 왕의 생모 후궁의 묘소에 붙는 '원(園)'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80] 링크 속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일대라고 한다.(경기도 광주시 문형동 452번지 일대) [81] 공교롭게도 서오릉 내에는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묻힌 명릉과 정비 인경왕후가 묻힌 익릉이 있다. [82] 일반 조선의 국왕, 왕비 뿐만 아니라 정식적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대한황실문화원)에 의해 지내는 (국왕에 준하는)황태자, 황태손, 왕세자, 친왕 뿐만 아니라, 폐위된 연산군, 광해군 및 왕족의 사친들 또한 모두 포함해서 작성함을 유념해주길 바랍니다. [83] 영조대왕의 후궁· 진종소황제(효장세자)의 사친 [84] 중종대왕의 원비 [85] 예종대왕의 정비· 인성대군의 모후 [A] [B] [88] 대한제국 완효헌친왕, 순종효황제, 의친왕, 의민황태자 영왕, 덕혜옹주의 부황 [89] 조선 연산군, 중종대왕(진성대군)의 부왕 [90] 인조대왕, 능원대군, 능창대군의 부왕·모후 [91] 정조선황제의 후궁· 순조숙황제의 사친 [92] 대한제국 고종태황제의 서자 [93] 대한제국 고종태황제의 사친 [94] 경종대왕의 (추존된)정비 [95] 임해군, 광해군의 모후 [96] 추존 원종대왕, 영창대군의 모후 [97] 중종대왕의 제1계비· 인종대왕의 모후 [98] 영조대왕의 원비· 효장세자(진종소황제)과 사도세자(장조의황제)의 모후 [99] 조선 문종대왕, 세조대왕의 부왕 [100] 숙종대왕의 승은 후궁· 영조대왕(연잉군)의 사친 [101] 대한제국 고종태황제의 고명딸(황녀) [102] 흥녕군, 흥완군, 흥인군, 흥선대원군의 사친 [103] 세종대왕의 원비· 문종대왕, 세조대왕,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의 모후 [104] 소현세자 세자빈(부인)·원손 경선군 석철(백), 경완군 석린, 경안군 석견(회)의 사친 [105] 원손 이진, 회은황세손 이구의 부왕·모후 [106] 성종대왕의 원비 [107] 중종대왕의 제2계비· 명종대왕의 모후 [108] 인조대왕 인열왕후 한씨 사이의 적장자·원손 경선군 석철(백), 경완군 석린, 경안군 석견(회)의 사친 [109] 조선 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대왕, 성녕대군의 부왕 [110] 경혜공주, 단종대왕의 부왕·모후 [111] 하릉군, 하원군, 선조대왕(하성군)의 사친 [112] 소현세자, 효종대왕, 인평대군, 용성대군의 부왕·모후 [113] 현종대왕의 부왕·모후 [A] [B] [116] 헌종성황제, 고종태황제의 부황·모후 [A] [118] 진안대군, 정종대왕, 익안대군, 회안대군, 태종대왕, 덕안대군, 무안대군, 의안대군의 부왕 [119] 선조 후궁· 임해군 광해군의 사친 [A] [B] [122] 의소세자의 모후· 정조선황제의 사친 [123] 경종대왕의 모후 [124] 영조대왕, 연령군의 모후 [125] 일제강점기 시기 이왕세자· 대한제국 의민황태자 영왕 자행황태자비 사이의 적차남· 황사손(이원)의 부왕 [126] 조선 단종대왕의 원비 [127] 대한제국 고종태황제의 후궁(귀비)· 의민황태자 영왕의 사친 [A] [B] [B] [131] 음력으로 6월 28일에 기신제향을 치른다. [A] [B] [134] 순조숙황제의 부왕·모후 [135] 양부 영선군의 양자 및 운현궁의 계승자 / 사손 이청, 이종의 사친 [136] 후릉은 이북 지방인 북한 개성시 개풍군에 위치해 있으므로, 기신 제향은 시아버지 태조의 능이 있는 건원릉 정자각에서 정자각 뒷문을 닫고 기신 제향을 치른다. [137] 정종대왕의 원비 [138] 순회세자, 선조대왕(하성군)의 부왕·모후 [139] 영조대왕의 후궁· 장조의황제(사도세자)의 사친 [140] 태종대왕의 원비· 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충녕대군), 성녕대군의 모후 [141] 숙종대왕의 부왕·모후 [142] 성종대왕의 폐위된 왕비· 연산군의 모후 [143] 인조대왕의 계비· 소현세자, 효종대왕, 인평대군, 용성대군의 계후 [B] [145] 태조고황제의 계비· 무안대군 이방번과 폐세자 의안대군 이방석의 모후 [146] 음력으로 8월 22일에 기신제향을 치른다. [147] 성종대왕의 제2계비· 중종대왕(진성대군)의 모후 [148] 음력으로 8월 25일에 기신제향을 치른다. [149] 음력으로 9월 2일에 기신제향을 치른다. [150] 조선 월산대군· 성종대왕(자을산군)의 부왕·모후 [B] [152] 대한제국 고종태황제 황후· 대한제국 완효헌친왕 순종효황제, 의친왕, 의민황태자 영왕, 덕혜옹주의 모후 [153] 음력으로 9월 8일에 기신제향을 치른다. [154] 추존 덕종대왕(의경세자), 예종대왕(해양대군)의 부왕·모후 [155] 대한제국 고종태황제의 후궁· 의친왕의 사친 [156] 정조선황제의 후궁· 문효세자의 사친 [157] 후릉은 이북지방인 북한 개성시 개풍군에 위치해 있으므로, 기신 제향은 아버지 태조의 능이 있는 건원릉 정자각에서 정자각 뒷문을 닫고 기신 제향을 치른다. [A] [159] 제릉은 이북지방인 북한 개성시 개풍군에 위치해 있으므로, 기신 제향은 남편 태조의 능이 있는 건원릉 정자각에서 정자각 뒷문을 닫고 기신 제향을 치른다. [B] [161] 태조고황제의 원비· 진안대군, 정종대왕, 익안대군, 회안대군, 태종대왕, 덕안대군의 모후 [162] 숙종대왕의 후궁이자 폐위된 왕비· 경종대왕의 사친 [163] 음력으로 10월 11일에 탄신제를 치른다. [A] [165] 음력으로 10월 26일에 기신제향을 치른다. [166] 조선 숙종대왕의 원비 [167] 선조대왕의 후궁· 의안군, 신성군, 원종대왕(정원대원군), 의창군의 사친 [A] [B] [170] 대한제국 추존 문조익황제(효명세자), 철종장황제(덕완군)의 부왕·모후 [171] 철종장황제의 사친 [A] [B] [174] 정조선황제의 부왕·모후 [175] 그럼에도 2023년 9월 7일, 유일하게 비공개로 남아있던 서삼릉 효릉이 전면 공개됨으로서 남한 내 조선왕릉 총 42기가 전면 개방된 점에서 긍정적인 희망은 가질 필요가 있다. [176] 그럼에도 국가유산청과 조선왕릉을 주 소관업무를 하는 궁능유적본부 측은 이 원칙(맨발 보행 금지)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09년 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정식 등재될 만큼 경건하고 살아 숨쉬는 그 찬란한 문화유산 앞에 맨발보행과 같은 무식한 행동은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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