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2px 0" |
<tablebordercolor=#315288> |
}}} | ||||||||||
{{{#!wiki style="margin:0 -10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1~100호]⠀ {{{#!wiki style="margin:-10px 0" |
1.
경주 포석정지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101~200호]⠀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01
서울 삼전도비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20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 bordercolor=#fff,#1f2023> 1.#201
서울 태릉과 강릉
1.#254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301~400호]⠀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 bordercolor=#fff,#1f2023> 1.#301
부여 정림사지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401~500호]⠀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 bordercolor=#fff,#1f2023> 1.#403
포천 반월성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501호~]⠀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 bordercolor=#fff,#1f2023> 1.#502
경주 불국사
1.#539
부산 연산동 고분군
2021년 11월 19일부로 번호 지정제 폐지 |
}}}}}}}}}}}} |
대한민국의 사적 | |
함안 성산산성 咸安 城山山城 |
|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번지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면적 | 227,821m2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건축시기 | 삼국시대 |
[clearfix]
1. 개요
함안 성산산성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번지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67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함안군의 서북쪽에 있는 성산에 둘레 1km에 걸쳐 돌로 쌓은 신라의 산성이다. 특히 조남산성이라는 부르기도 한다.이 산성은 건설된 연도는 그 관련된 기록이 없지만 함안읍지에 따르면 함안 성산산성이 가야국의 옛터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성의 형식이 삼국시대 유형을 따르고 있고 산 아래 북쪽 낮은 유적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산성은 북쪽에서 보면 독립되어 있는 구릉처럼 보이고 서남쪽으로 계속되는 구릉지맥을 빼면 나머지 3면이 모두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산세를 이루고 있었다.
성안의 형태는 약간 오목하게 생긴 병탄한 지형인데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동쪽에서는 제일 낮은 곳에서 흘러가는 물이 성밖에 작은 계곡을 만들고 있었다. 이 부근에 문터가 있고, 서쪽 성벽에는 문터로 보이는 곳이 남아 있었고 그 밖으로 시설물은 보이지는 않는다.[출처]
3. 사적 제67호
대한민국의 사적 제67호 |
함안의 서북쪽에 있는 성산에 둘레 약 1,4㎞에 걸쳐 돌로 쌓은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조남산성(造南山城)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함안읍지』에 의하면 이 산성은 가야국의 옛터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성의 형식이 삼국시대 유형을 따르고 있다. 산 아래 북쪽 낮은 언덕에는 가야의 무덤들이 있어 무덤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야 유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성산은 북쪽에서 보면 독립된 구릉처럼 보이며, 서남쪽으로 계속되는 구릉지맥을 빼면 나머지 3면이 모두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성안의 형태는 약간 오목하게 생긴 평탄한 지형인데,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동쪽 제일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이 성밖에 작은 계곡을 만들고 있다. 이 부근에 문터가 있고 서쪽 성벽에도 문터로 보이는 곳이 남아 있으며 그밖에 뚜렷한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