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02:33:45

김명국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김명국(동명이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문화부 심볼.svg 이달의 문화인물
(1990-1997)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90년
7월
김정희
8월
장영실
9월
김소월
10월
세종대왕
11월
김홍도
12월
신재효
1991년
1월
나운규
2월
정철
3월
한용운
4월
김정호
5월
방정환
6월
정약용
7월
문익점
8월
안익태
9월
허준
10월
주시경
11월
윤선도
12월
이해랑
1992년
1월
이황
2월
정선
3월
박지원
4월
우장춘
5월
신사임당
6월
류성룡
7월
일연
8월
홍난파
9월
고유섭
10월
이윤재
11월
안창호
12월
윤동주
1993년
1월
이이
2월
이인문
3월
장보고
4월
이천
5월
윤극영
6월
원효
7월
지석영
8월
안중근
9월
박연
10월
최현배
11월
장지연
12월
윤백남
1994년
1월
우륵
2월
황희
3월
김유정
4월
홍대용
5월
강소천
6월
이상백
7월
안견
8월
박은식
9월
박승희
10월
이희승
11월
정도전
12월
신채호
1995년
1월
강세황
2월
조식
3월
월터 정
4월
최무선
5월
이원수
6월
김병로
7월
이육사
8월
김구
9월
채동선
10월
김윤경
11월
이수광
12월
곽재우
1996년
1월
김만중
2월
최치원
3월
이순지
4월
서재필
5월
김명국
6월
유일한
7월
도선
8월
심훈
9월
왕산악
10월
정인승
11월
전형필
12월
이제마
1997년
1월
송석하
2월
성현
3월
최윤덕
4월
이중환
5월
초의 (의순)
6월
한호
7월
이세보
8월
박제가
9월
박진
10월
장지영
11월
왕인
12월
송진우
※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이달의 문화인물(1998-2005) }}}}}}}}}

이름 김명국(金明國)[1]
본관 안산[2]
생몰년 ? ~ ?
직업 화가
천여(天汝)
연담(蓮潭)

1. 개요2. 기타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김명국 달마도.jpg
김명국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달마도

조선 중기의 화가. 현 시대에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달마도'이다.

한미한 가문 출신인데다가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는 등 개인의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여 당대에는 평가가 낮았으나, 현재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그림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다. 1636년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을 처음 방문하면서 그의 그림이 알려지고, 1643년에는 일본 측의 간절한 요청으로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두번째 방문을 하기도 한다. 같은 화원이 일본을 두번 방문한 사례는 김명국을 제외하면 없다.

술을 즐겨하며 호방한 성격이었다고 하며, 조선통신사 때 인삼을 밀매하다 처벌받았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아, 품행이 단정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중인 가문 출신으로, 생몰년과 이름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지 않으며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술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전해지는데, 명부전에 걸 지옥도를 부탁한 스님이 갖다준 옷감(비단 또는 삼베)[3]을 술로 바꿔먹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때문인지 취옹(醉翁)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듯. 당시 김명국은 그림 값으로 받은 옷감을 술로 바꿔먹은 뒤 스님의 독촉에도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 스님이 술을 가지고 와서 대접하며 계속 부탁하자 마침내 반쯤 취한 상태에서 지옥도를 뚝딱 그려내었다. 그런데 그 지옥도 속 고통받는 죄인들을 전부 스님들로 그려놓았는데(...) 이에 망연자실한 스님에게 김명국은 "너희 무리가 불도로 백성들을 미혹했으니 지옥에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일갈했다... 이에 스님이 그림은 태워 버리고 자신이 준 옷감은 돌려달라고 부탁하자 술을 더 가져오면 고쳐 그려 주겠다 했고 그 말대로 스님들 머리에 머리카락을 그려놓고 승복에 색을 칠해서 스님이 원하던 지옥도를 그려주었다고.

2. 기타

달마도를 비롯하여 '수노인' 같이 호쾌한 필치의 수묵화가 유명하지만, 가느다란 붓으로 섬세하게 그린 정통 수묵화에도 능한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기려도'

사실 달마도와 같은 그림은 김명국이 진지하게 그린 그림은 아니며, 술을 좋아하는 김명국에게서 그림 한 점을 얻기 위해 일본의 유력인사들이 김명국에게 술과 연회를 대접하고, 김명국은 연회장에서 술에 취한 채, 대접에 대한 보답으로 연회장에서 쓱쓱 낙서하듯이 그려서 선물한 그림들이다. 그럼에도 유례를 볼 수 없는 호방하고 호쾌한 붓놀림 때문에 일본에서는 더더욱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3. 관련 문서



[1] 鳴國이라고도 기록되며 족보가 없는 중인 출신이다보니 기록이 정확하지가 않다. [2] 출처 [3] 조선 후기까지도 화폐는 쌀 아니면 옷감이 주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