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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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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당나라의 안동도호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당시에 존재했던 안동도호부에 대한 내용은 안동시/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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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평양에서 요동까지2.2. 도호부로 승격 그리고 폐지
3. 부속 관할
3.1. 도독부(都督府) 9주3.2. 안동도호부 14주(州)
4. 연혁5. 역대 도호 목록6. 함께 보기

1. 개요

안동도호부()는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을 통치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 6도호부 중 하나이다. 당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고구려의 영토를 9도독부, 42주, 100현으로[1] 나누고, 옛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다.[2] 그러나 신라가 이에 반발해 나당전쟁이 발발했다.[3] 분노한 신라와 고구려 유민들이 연합하여 당나라군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안동도호부는 신라에서 가까운 평양을 떠나 이후 요동으로 치소를 옮겼다가 758년, 안록산의 난으로 폐지되었다.

2. 역사

2.1. 평양에서 요동까지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당 제국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초대 도호로 설인귀를 임명했다. 한편, 신라 내에서는 불만과 분노가 계속 표출되고 있었는데, 이전에 당은 취리산에서 백제 왕족이자 웅진도독부 소속인 부여융 신라 문무왕이 서로 화맹을 맺게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잘 생각해보면 이미 멸망한 백제와 독립국인 신라를 동일시했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당나라군과 신라군이 전쟁 중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은 점도 있었다. 이러한 불만과 분노 속에서 당나라는 고구려를 기미지배하기 위한 일환으로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것은 신라로써는 대단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의 팽창주의가 한반도 전체의 멸망으로까지 직결 될 수 있다는 것에 의견이 통일되자 신라는 결국 당과 전쟁을 불사하기로 마음먹었고, 검모잠, 안승 등이 이끄는 고구려 부흥군과 군사적 동맹을 맺기위해 접촉했다.

670년, 옛 고구려 장군 고연무와 신라 장군 설오유가 2만의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선제 공격해 나당전쟁이 시작됐다. 나당 전쟁 과정에서 당군의 강력한 공세와 고구려 부흥군의 내분이 겹쳐 패배했지만 이후 신라는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에서 당나라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당의 한반도 정복 야욕을 밖으로 몰아냈다. 676년, 이에 따라 당 제국은 안동도호부를 신라에서 너무 가까운 평양에서 요동 고성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신성으로 다시 이전했다가 잠깐 폐지하기도 했다.[4] 677년, 당은 보장왕을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 朝鮮王)으로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해 남아있는 고구려 유민을 통솔하게 하였다. 그러나, 보장왕은 말갈과 군사적으로 결탁해 독립을 시도했으나 사전에 척후병들에 의해 발각되었다. 특이하게도 이후 보장왕의 직계 혈족이 도호부를 대대로 통치하였다. 696년, 거란 이진충이 당에 대해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안동도호부가 기존에 있던 목적을 점점 상실하자 698년, 안동도호부를 안동도독부로 격하하였다.[5] 이듬해에 보장왕의 셋째 아들 고덕무가 안동도독이 되었고, 몇몇 기록을 근거로 고덕무가 이 해에 요동 반도에 소고구려를 건국했는 주장도 있는데 기록이 미약해 이것이 국가가 맞는지에 대한 비판도 있다.

2.2. 도호부로 승격 그리고 폐지

안동도호부는 잠시 안동도독부로 격하되었다가 705년, 유주도독과 겸임하는 형태로 안동도호부는 부활했다. 714년, 당 제국은 거란의 발호를 차단하기 위하여 평주에 이치하였다. 그러다가 안동도호부는 요서 고군성(故郡城)에 이전되었다. 이곳이 안동도호부의 마지막 치소이다. 안동도호부의 실권은 개원 말부터 몰락하기 시작하더니 이후 평로절도사의 통제 하에 있다가 결국 758년, 안사의 난이라는 거대한 내전이 발발하면서 폐지되었다.[6] 안동도호부는 668년 설치되어 758년에 이르기까지 91년동안 존속하다가 그 명칭이 사라지게 되었다.

3. 부속 관할

본디 고구려의 지방행정 체계는 5부(部), 176성(城), 69만호(戶)였는데 상기한대로 당은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이를 9도독부 42개주 100현으로 나누었다. 현재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안동도호부의 행정구역 명칭은 9도독부와, 42개 주 가운데 23개주[7]의 이름만 확인되고 있다.[8] 이들의 공통적인 출처는 신당서 지리지(地理志) 하북도(河北道)로 추측된다. 신당서 원문
高麗降戶州十四,府九太宗親征,得蓋牟城,置蓋州;得遼東城,置遼州;得白崖城,置巖州。及師還,拔蓋、遼二州之人以歸。高宗滅高麗,置都督府九,州四十二,後所存州止十四。 初,顯慶五年平百濟,以其地置熊津、馬韓、東明、金連、德安五都督府,並置帶方州,麟德後廢:南蘇州 蓋牟州 代那州 倉巖州磨米州 積利州 黎山州 延津州 木底州 安市州 諸北州 識利州拂涅州 拜漢州 新城州都督府 遼城州都督府 哥勿州都督府 衛樂州都督府捨利州都督府 居素州都督府 越喜州都督府 去旦州都督府 建安州都督府右隸安東都護府。
신당서 권43하 지33하 지리7하 하북도(河北道)

신당서의 원문에 따르면, 당고종은 고구려를 멸한 뒤 42주를 설치했는데(668년 12월) 나중에 남아있는 주는 14개에 지나지 않았다[9]는 식으로 적혀있다. 고구려 멸망 후 42주를 설치한지 얼마안가 나당전쟁(670년-676년)이 터져서 한산주, 하서주, 수약주의 북부 일대를 신라에게 뺏기고, 나머지도 얼마안가 발해(698년 건국)에게 털려서 신당서의 저자[10]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14개주 밖에 안되었던게 아닌가 싶다. 삼국사기에서 언급되는 고구려와 안동도호부의 지방행정에 관해서는 고구려 본기 제10 보장왕 27년 12월(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기사 및 언급되는 주석도 참조할만 하다.

3.1. 도독부(都督府) 9주

신성주(新城州)[11], 요성주(遼城州)[12], 가물주(哥勿州), 위락주(衛樂州), 사리주(舍利州), 거소주(去素州), 월희주(越喜州), 거단주(去旦州), 건안주(建安州)

3.2. 안동도호부 14주(州)

남소주(南蘇州), 개모주(蓋牟州)[13], 대나주(大那州), 창암주(倉巖州), 마미주(磨米州), 적리주(積利州), 여산주(黎山州), 연진주(延津州), 목저주(木底州), 안시주(安市州)[14], 제북주(諸北州), 식리주(識利州), 불열주(拂涅州), 배한주(拜漢州) 등 42주[15]

4. 연혁

  • 평양(平壤):668년 — 676년
  • 요성(遼城):676년 — 677년
  • 신성(新城):677년 — 699년
  • 유주(幽州):705년 — 714년
  • 평주(平州):714년 — 743년
  • 요서고군성(遼西故郡城)[16]:743년 — 758년

5. 역대 도호 목록

대수 왕호 이름 재임기간 비고
1 - 위철(魏哲)[17] 668년 ~ 669년
2 - 설례(薛禮) 669년 ~ 670년
3 - 고간(당나라)(高侃) 670 ~ 676
- 설눌(薛訥) 685 ~ 696
- 배현규(裴玄珪) 696 ~ ?
- 적인걸(狄仁杰) 698
- 장인단(張仁亶) 698 ~ ?
- 고덕무(高德武) 699 ~ ?
- 당휴경(唐休璟) 704 ~ 705
- 배회고(裴懷古) 712
- 손검(孫儉) 712
- 선사경(單思敬) 713 ~ ?
- 허흠주(許欽凑) 713 ~ ?
- 허흠담(許欽澹) 713 ~ ?
- 장열(張說) ? ~ 719
- 설태(薛泰) 720 ~ 725
- 영왕 이교(潁王 李璬) 727 ~ ?
- 장부량(臧怀亮) 727 ~ ?
- 배민(裴旻) 733 ~ ?
- 가순(賈循) 742 ~ 755
- 마영찰(馬灵察) ? ~ 756
- 왕현지(王玄志) 756 ~ 758
- 후희일(侯希逸) ? ~ 781
- 고련(高連) ?
- 고진(高震) ? ~ 773

6.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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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의 지방행정이 얼마나 촘촘했으며 광활한 범위를 영위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당의 6도호부 중 가장 도독부가 많고 주현이 많은 것이 안동도호부다. 고구려의 통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것. 고구려가 자못 독자적인 천하관을 형성하고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니 당시 세계에서 군사력이 제일 막강한 대제국이던 당나라 입장에선, 고구려 역시 토번제국이나 돌궐같이 당나라의 팽창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갖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비슷하게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신라 땅에는 계림대도독부를 두었다. 단 고구려, 백제와 달리 신라는 실제로는 멸망하지 않고 멀쩡히 존재했기 때문에 당나라가 이북 5도청처럼 명목상으로 지정한 것이다. [3] 당나라는 평양 이남과 백제 영토를 신라에게 준다고 약속 했으나 그 약속을 배신하고 전쟁으로 영토를 넓히려 했다. [4] 성력 연간에 폐지되었는데 안동도호부가 다시 부활할 즈음 요동의 고구려 유민은 당의 기미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5] 이 때 중국 추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적인걸도 잠시 안동도호부 도독을 지냈으나, 유주도독과 겸임이었고 실제 부임하지는 않았다. [6] 신당서 지리지에 따르면 "지덕 연간 이후 폐지되었다"라고 서술돼있다. [7] 도독부 치소가 위치한 9주 + 신당서에 이름이 남은 14주 [8] 중국어 위키피디아에는 23개주 밖에 다른주(예를 들어 국내성을 치소로 삼은 것 같은 국내주國內州)의 명칭들도 등장한다. 다만 위키피디아 답지 않게 도무지 출처를 알 수 없다. [9] 高宗滅高麗,置都督府九,州四十二,後所存州止十四 [10] 신당서는 11세기 북송 시기의 기록이다. [11] 바이두 백과와 구글맵을 통해 추론해보면, 현재의 랴오닝성 푸순시 훈허강(渾河) 북쪽 순청구(順城區) 일대로 추측된다. 주의 치소는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였던 신성(新城)으로 추측되며 치소의 위치는 오늘날 순청구 가오얼산(高尔山)으로 비정된다. [12] 현재의 랴오닝성 랴오양시 일대. 주의 치소는 고구려 요동성. [13] 바이두 백과의 기록 및 훈허강 북부의 신성주가 별도로 존재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랴오닝성 푸순시 훈허강(渾河) 남쪽 왕화구(望花區)와 신푸구(新抚區) 일대로 추측된다. 주의 치소는 개모성(蓋牟城)이며 오늘날 푸순시 남쪽 천태산(千台山) 고성(古城) 자리에 위치했다고 한다. [14] 현재의 위치는 랴오닝성 안산시(중국) 대관현급시 하이청(海城) 일대. 주의 치소는 안시성(安市城). [15] 압록강 이북에 있는 32개 성의 명칭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와있는데, 이 32개 성이 주로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6] 명칭 자체가 고유명사라기보다 요서에 있던 옛 군 치소인 성 또는 옛 요서군 치소인 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17] 검교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