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16:27:54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기원전 196년 집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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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8년 기원전 197년 기원전 196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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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95년 기원전 194년 기원전 193년 기원전 192년 기원전 191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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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라일리우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기원전 185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83년 기원전 182년 기원전 181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그나이우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리키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라베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기원전 180년 기원전 180년 보결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8년 기원전 1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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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76년 기원전 176년 보결 기원전 175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73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파울룰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기원전 172년 기원전 171년 기원전 170년 기원전 169년 기원전 1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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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7년 기원전 166년 기원전 165년 기원전 164년 기원전 1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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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2년 기원전 162년 보결 기원전 161년 기원전 160년 기원전 1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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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8년 기원전 157년 기원전 156년 기원전 155년 기원전 1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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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기원전 115년 기원전 114년 기원전 113년 기원전 112년 기원전 111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베스티아
기원전 110년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8년 보결 기원전 1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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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카우루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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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1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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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3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0년 기원전 418년 기원전 40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쿨루스 푸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불명)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푸블리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393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78년 기원전 366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 마르쿠스 푸리우스 푸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 포스투미우스 레길렌시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보결)
기원전 363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1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불명)
기원전 318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07년 기원전 304년 기원전 300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기원전 294년 기원전 289년 기원전 283년 기원전 280년 기원전 275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불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카이디키우스 녹투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기원전 272년 기원전 269년 기원전 265년 기원전 258년 기원전 25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페라
기원전 252년 기원전 247년 기원전 241년 기원전 236년 기원전 234년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
기원전 231년 기원전 230년 기원전 225년 기원전 220년 기원전 214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기원전 210년 기원전 209년 기원전 204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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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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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또는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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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89년 기원전 86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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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루키우스 겔리우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61년 기원전 55년 기원전 50년 기원전 42년 기원전 28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기원전 22년 기원전 8년 14년 46년 73년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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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라틴어: Marcus Claudius Marcellus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177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아버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아들)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196년
전임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동기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
후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대 카토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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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인수브레스족, 보이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식을 거행했다.

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 중 하나인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평민 지파인 마르켈루스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시라쿠사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고 한니발 바르카와의 대결에서 선전하며 5차례 집정관을 역임했다. 고대 사료는 아버지가 조영관을 맡던 시절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다룰 때 그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호민관 또는 보조 조영관을 맡던 가이우스 스칸티니우스 카피톨리누스가 어린 아들을 타락시키려 하자, 아버지 마르켈루스가 격분해 소송을 제기했다. 스칸티니우스는 이를 부인했지만, 그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걸 털어놨고, 원로원은 순수한 어린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보고 스칸티니우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다. 아버지 마르켈루스는 스칸티니우스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은 그릇을 제작한 뒤 신들에게 바쳤다고 한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208년, 그는 아풀리아에서 한니발 바르카에 대적하던 아버지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이었다. 양군은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 분리된 채 한동안 대치하고 있었다. 아버지 마르켈루스는 개인적으로 정찰을 수행하기로 하고, 250명의 분견대와 동료 집정관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언덕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니발이 전날에 언덕에 매복해뒀던 기병대가 그들을 덮쳤고, 아버지 마르켈루스와 로마 기병 40명이 전사했다. 크리스피누스와 아들 마르켈루스는 가까스로 달아났는데, 크리스피누스는 중상을 입은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며칠 만에 사망했다. 그 역시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한니발은 아버지 마르켈루스의 시신을 화장한 뒤 재를 담아서 아들에게 보내도록 했다. 아들 마르켈루스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은 뒤 장례식 연설을 발표했는데, 루키우스 코엘리우스 안티파테르의 역사서에 그 내용이 실렸고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이를 인용했다. 기원전 205년, 아들 마르켈루스는 아버지 마르켈루스가 집정관을 처음 맡았던 기원전 222년에 한 서약을 이행하기 위해 아버지가 세운 명예와 미덕의 사원(Aedes Honoris et Virtutis)의 봉헌식을 개최했다.

기원전 204년 호민관에 선출된 그는 아프리카 원정을 떠날 준비를 하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레가투스인 퀸투스 플레미니우스가 이끄는 분견대가 이탈리아의 로크리 시에서 잔학 행위를 저지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조직된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위원회는 필요하다면 스키피오를 체포하고, 이미 아프리카로 출발했다면 돌아오라고 지시하려 했다. 그러나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를 비롯한 다른 원로원 의원들이 스키피오를 옹호했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다. 기원전 200년 조영관에 선임된 그는 빈민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곡물을 판매하고 검투사 대회를 대규모로 조직했으며, 우라노스 사원에 5개의 동상을 세웠다. 기원전 198년 법무관에 선임되었고 시칠리아를 통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원전 196년,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와 함께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당시엔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 지휘관은 마케도니아 방면 지휘권을 맡아서 군공을 세우길 갈망했다. 하지만 전직 집정관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국왕 필리포스 5세를 격파한 뒤 휴전을 맺었고, 기원전 196년 초 마케도니아 사절이 로마에 도착하여 최종 협약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집정관은 마케도니아의 지휘권을 갈망해, 필리포스 5세를 이 기회에 끝장내야 하니 전쟁을 재개하자고 강력히 권했다. 그러나 호민관 퀸투스 마르키우스 라일라와 가이우스 아티니우스 라베오는 민회에서 35개 부족을 소집해 모든 부족이 평화 조약 체결을 찬성한다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결국 두 집정관은 북이탈리아 방면에서만 군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마르켈루스는 보이족의 영역을 침공했다. 처음에는 보이족의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열을 재정비한 뒤 인수브레스족을 물리치고 콤 시 및 28개 요새를 공략했다. 뒤이어 동료 집정관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의 군대와 연합해 보이족을 격파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이 전투 이후 자기들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동족에게 전할 수 있었던 보이족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파울루스 오로시우스는 마르켈루스와 푸리우스가 보이족을 거의 마지막 사람까지 몰살시켰다고 기록했다. 현대 학자들은 고대 역사가들이 과장했다고 보지만 보이족이 막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기원전 196년 로마로 귀환한 마르켈루스는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 후 카르타고에서 온 사람이 한니발 바르카가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3세와 동맹을 맺고 로마를 대적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원로원은 막 집정관 임기가 만료된 그와 퀸투스 테렌티우스 쿠리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등을 카르타고에 사절단으로 파견해 한니발을 로마에 인도할 것을 요구하게 했다. 한니발은 이 소식을 듣고 동방으로 도주했다. 기원전 193년 집정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휘하의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로서 갈리아인들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이 전투는 승리로 끝났지만, 마르켈루스는 많은 원로원 의원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에서 메룰라를 비판했다. 이에 따르면 메룰라는 예비대를 투입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투입하지 않았으며 기병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룰라가 이 문제로 인해 로마로 소환된 후, 그는 대리로 메룰라의 군대를 이끌었다.

기원전 189년, 그는 감찰관 후보로 출마했다. 이 선거엔 그 외에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대 카토,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가 참여했다. 이중 기원전 191년 안티오코스 3세를 상대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글라브리오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아보였다. 이때 카토가 전 사령관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횡령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두 명의 호민관이 글라브리오를 재판에 회부했고, 카토는 증인석에 서서 자신이 그리스에서 본 금은 그릇 중 일부가 개선식이 벌어지는 동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글라브리오는 카토를 위증 혐의로 고발했지만 곧 감찰관 입후보를 취소했고, 카토에 대한 고발 역시 취소되었다. 그러나 사령관으로 모셨던 이를 가차없이 고발한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커졌고, 결국 대 카토는 낙선했다. 선거 결과 그와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감찰관에 당선되었다. 두 감찰관은 원로원 의원 명단에서 4명을 제외하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프린켑스 세나투스로 세웠다. 또한 도로를 포장하고 원로원 건물을 요새화했으며, 에퀴테스을 받은 이들의 자격을 조사했다.

기원전 186년, 마르켈루스는 바커스를 모시는 비밀 의례인 바카날리아에 가담한 인사들 처리를 집정관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에게 일임한다는 원로원 법령에 서명했다. 이후 별다른 행적을 보이지 않다가 기원전 177년에 사망했다.

아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집정관을 3번 역임했으며, 명예와 미덕의 사원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조각상을 세우고 "9번 집정관을 역임한 3명의 마르켈루스(tres Marcelli novies consules)"라고 적힌 비문을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