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그누스 라틴어: Spurius Postumius Albinus Mag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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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조부)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아버지)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아들?)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48년 |
전임 |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마니우스 마닐리우스 |
동기 |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
후임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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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포스투미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스푸리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해 기원전 151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기원전 148년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제비뽑기 결과 피소가 고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 투입되었고, 그는 이탈리아에 남게 되었다. 이후 제노아에서 크레모나, 그리고 아퀼레이아로 이어지는 도로를 건설해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의 물류 운송을 원활하게 했다. 이 도로는 훗날 비아 포스투미아(Via Postumia)로 일컬어졌다.
고대 사료에는 기원전 146년 아카이아 전쟁 이후 그리스에서 집정관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와 함께 전후 처리를 논의한 10명의 사절 중 한 명인 '알비누스'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했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148년 집정관 스푸리우스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기원전 151년 집정관이며 아카이아 전쟁 당시 뭄미우스 휘하 레가투스를 맡고 있던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일 거라 추정한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가 당대 최고의 웅변가로서 활약하는 동안, 그는 이에 미치지 못했지만 역시 이름을 날린 웅변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변호사로서 경쟁했던 인물로 알려진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가 그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