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라틴어: Lucius Hostilius Manci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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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조부)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아버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45년 |
전임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
동기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
후임 |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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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플레브스 가문인 호스틸리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기원전 170년 아울루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가 집정관에 선임된 이래 노빌레스로 승격되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동안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휘하 이탈리아 연합군 기병 분견대를 이끌고 한니발 바르카에 대적하다 캄파니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가 그의 조부일 수 있다고 추정하며, 아버지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는 기원전 170년 집정관 아울루스의 형제인 것으로 추정한다.기원전 148년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레가투스 또는 법무관으로서 집정관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휘하 로마 함대를 이끌었다. 기원전 147년 피소가 전직 집정관 자격으로 내륙에서 작전을 펼치는 동안, 그는 해상에서 카르타고를 공격해 요새의 한 구역을 점령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인들이 곧 반격을 가해와서 몰살당할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다가 기원전 147년도 집정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이끄는 함대가 다가오자 카르타고군이 철수한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후 로마로 귀환한 그는 전쟁 영웅으로서 큰 인기를 얻었고, 포로 로마노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쟁 경험담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그 덕분에 기원전 145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고, 파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가 먼 히스파니아 속주로 가서 루시타니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자신은 이탈리아에서 행정을 맡았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