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라틴어: Aulus Manlius Vuls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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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조부)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아버지)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형제)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형제)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78년 |
전임 |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 |
동기 |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
후임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대 그라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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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480년부터 정기적으로 집정관을 역임한 파트리키 가문인 만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기원전 5세기부터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기까지 이어지는 로마 공화국의 최고 행정관 목록을 담은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이고 아버지는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라고 한다. 독일의 고대 역사가 프리드리히 뮌처는 그의 할아버지는 기원전 256년과 기원전 250년에 집정관을 역임한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 롱구스라고 주장했다. 이 인물은 제1차 포에니 전쟁 당시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와 함께 아프리카 원정을 이끌었다. 고대 기록에는 기원전 256년 집정관 루키우스의 아들로 기원전 218년 집정관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와 기원전 210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만리우스 불소만 언급하지만, 일찍 죽어서 기록에 남지 않은 그나이우스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형제로 기원전 197년 법무관을 역임한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와 기원전 189년 집정관을 역임한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가 있었다.기원전 194년 루키우스 아푸스티우스 풀로,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에서 새로운 로마 식민도시를 건설하는 임무를 맡은 위원회의 일원이 되어 기원전 192년까지 활동했다. 기원전 189년 리구리아인과의 전쟁 도중에 사망한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디베스를 대신해 법무관으로 선임되어 리구리아인과의 전쟁을 수행했다. 이후 10년간 별다른 행적을 보이지 않다가 기원전 178년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임지로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에 배정되었지만, 이스트리아인들이 속주에 종종 쳐들어와서 약탈을 일삼는 것을 빌미로 삼아 이스트리아를 공략해 군공을 세우고자 침공을 단행했다. 그러나 그는 이스트리아인들의 기습 공격에 큰 피해를 입고 숙영지를 빼앗겼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원로원은 리구리아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동료 집정관 브루투스를 이스트리아로 보내 그를 돕게 했다. 호민관 2명은 그가 로마로 와서 패배한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3번째 호민관 퀸투스 아일리우스가 거부권을 행사한 덕분에 임지에 남을 수 있었다.
그 후 두 집정관은 아퀼레이아에서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봄에 전직 집정관 자격으로 이스트리아를 침공해 이스트리아 왕 에풀로가 농성하는 네사틸리 시를 포위했다. 얼마 후 신임 집정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가 현장에 와서 속히 떠날 것을 요구하자, 그와 불소는 풀케르가 로마에서 종교 서약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고, 풀케르는 로마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그와 불소가 네사틸리 시 공략을 완료하기 직전에 풀케르가 새로운 군대와 함께 도착한 뒤 두 사람을 로마로 돌려보낸 후 네사틸리 시와 2개 도시를 공략하고 이스트리아 전체를 평정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