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라틴어: Gaius Porcius Ca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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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리키니아누스(아버지)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형제)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손자?)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14년 |
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
동기 |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
후임 |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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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대 카토 이래로 고위 행정관에 이름을 여러 차례 올린 노빌레스 가문인 포르키우스 카토 가문의 일원이다. 아버지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리키니아누스는 기원전 152년 법무관을 역임했다. 형제로 기원전 118년 집정관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가 있었다. 기원전 123년 화폐 주조관에 선임되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그가 본래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지지자이자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지지자였지만 나중에 갈라섰으며, 연설 실력은 보통이었다고 밝혔다.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17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114년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듬해 마케도니아 총독으로 부임했지만 트라키아의 스코디키족과 맞붙었으나 패배했다. 플로루스에 따르면, 카토의 군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전리품을 확보하여 부귀를 챙길 가능성이 사라지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해 속주민들을 착취했다. 임기가 만료된 후 로마로 귀환한 뒤 속주민 착취 혐의로 고발되어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8,000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가벼운 벌금을 지불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후 유구르타 전쟁에 투입된 로마군의 레가투스를 맡았지만 기원전 109년 유구르타 왕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자 타라코나 시로 망명한 뒤 그곳의 시민권을 얻고 모종의 시기에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기원전 56년 호민관을 역임하면서 삼두정치를 지지했던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는 그의 손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