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라틴어: Lucius Furius Phi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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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조부)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아버지) 마르쿠스 푸리우스 필루스(아들)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36년 |
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
동기 |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
후임 |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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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푸리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조부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는 기원전 223년 집정관, 기원전 214년 감찰관을 역임했다. 아버지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는 기원전 171년 법무관을 역임했다.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39년 이전에 법무관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136년,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지난해 집정관이며 누만티아 전쟁에서 참패한 뒤 누만티아인들과 굴욕적인 협약을 맺은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를 협약을 파기하겠다는 의미로 누만티아인들에게 넘기겠다고 제안했고, 원로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만키누스를 알몸인 채 누만티아인들에게 넘겼지만, 누만티아인들은 로마의 배신을 한 사람에게만 물 수 없다며 만키누스를 되돌려보냈다.
그 후 원로원은 누만티아 전쟁을 이어갈 권한을 그에게 넘겼지만, 현지에 주둔한 군대의 전의와 전투력이 엉망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가 공세를 벌이기를 포기하면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후 기원전 135년도 집정관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에게 임페리움을 넘긴 뒤 로마로 귀환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마르쿠스 푸리우스 필루스는 기원전 119년 화폐 주조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