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의 날
Eagle's Day Adlertag |
|
|
|
▲ 세임스 에스투아리 상공에서 격추된 독일 공군의 Do 17 전투기 잔해와 MG17 기관총을 살펴보는 영국 육군 병사들 | |
날짜 | |
1940년 8월 13일 | |
장소 | |
영국 및 영국 해협 | |
교전국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지휘관 |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키스 파크| ]] |
]][[틀:깃발| ]][[휴 다우딩|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알베르트 케셀링| ]] |
]][[틀:깃발| ]][[헤르만 괴링| ]]
피해규모 | |
전투기 13기 파괴[1] 전투기 조종사 3명 전사 폭격기 11기 격추 폭격기 승무원 24명 전사 폭격기 승무원 포로 9명 기타 항공기 47기[2] 민간인 25명 사망 |
항공기 최대 48기 격추 항공기 39기 대파 전사 및 포로 최대 200명 전사 확정 44명 부상 23명 실종 최소 45명 |
결과 | |
영국의 승리 |
[clearfix]
1. 개요
Adlertag(Eagle's Day).제2차 세계 대전 초기 영국 본토 항공전 시기에 영국 공군에게 독일 공군이 참패한 공중전이다. "독수리의 날"은 당시 독일 공군의 작전명이다.
2. 내용
영국 본토 항공전의 전초전격인 도버 해협 공중전이 영국의 후퇴로 끝난 뒤, 본격적으로 독일의 영국 본토 공습이 시작된 날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헤르만 괴링이 이끄는 독일 공군은 도버 해협에서의 우세 등으로 인해 영국 공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고, 8월 10일 잉글랜드 남부의 영국 공군 세력을 일소하고 전략폭격 수행을 위한 공중우세를 확보하는 작전명 Adlerangriff(Eagle attack, 독수리 공세)를 실행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으로 최종적인 작전 실행일인 독수리의 날(Adlertag 또는 Eagle day)은 8월 13일로 늦춰지게 되었다. 독일은 이 작전에 운용 가능한 전투기 및 폭격기의 70~80%에 이르는 대전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영국은 에니그마 해독 등으로 정보전에서 독일을 크게 앞서 독일의 전력 배치 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고, 반면 독일 공군의 수뇌부는 영국 공군의 실제 전력을 크게 과소평가하는 보고를 전달받았다.
영국 공군은 공중에서 전투기 13대, 폭격기 11대를 잃고 지상에서도 수십 대의 항공기를 잃었지만 독일은 47~48대의 항공기 격추가 기록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주요 폭격 목표를 타격하는 데도 실패하는 등 완패했다.
결국 피해를 견디지 못한 독일 공군은 황급히 후퇴했고 기지로 돌아온 영국 공군의 스코틀랜드 출신 조종사 한 명이 "나는 올해의 8월 12일에는 뇌조 사냥을 하지 못했지만[3], 오늘이야말로 최고의 사냥이었다! (I couldn't get away for the Glorious Twelfth this year - but the Glorious Thirteenth was the best day's shooting I ever had!)"라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하였다. #
하지만 이 날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세는 위축되지 않았고, 이후 영국 본토 항공전은 8월 15일, 8월 18일, 9월 15일(배틀 오브 브리튼 데이)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지는 등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