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투조프 작전 러시아어: Орловская стратегическа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операция «Кутузов»[1] 독일어: Orjoler Operation[2]/Operation Kutusow[3] 영어: Operation Kutuzov |
||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전선의 일부 쿠르스크 전투의 일부 |
||
▲ 오룔 돌출부 근방의 양군 전선 | ||
시기 | ||
1943년 7월 12일 ~ 8월 18일 | ||
장소 | ||
소련 러시아 SFSR 오룔과 브랸스크 일대 | ||
교전국 | [[틀:깃발| | ]][[틀:깃발| ]][[소련| ]]|
지휘관 |
[[틀:깃발| (서부 전선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마르키안 포포프| ]] (브랸스크 전선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중부 전선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이반 페듀닌스키| ]] (제11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이반 바그라먄| ]] (제11근위군 사령관) |
]][[틀:깃발| ]][[바실리 소콜롭스키| ]]
[[틀:깃발| (중부 집단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 (제6항공함대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발터 모델| ]] (제2기갑군, 제9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로타르 렌둘릭| ]] (제35군단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요하네스 프리스너| ]] (제23군단 사령관) |
]][[틀:깃발| ]][[귄터 폰 클루게| ]]
결과 | ||
독일 국방군의 오룔 돌출부 포기 | ||
영향 | ||
중부 전선에서
쿠르스크 전투 종료 중부 전선에서 독일 국방군의 마지막 전략적 공세 실패[4] |
||
병력 |
군인 1,287,600명[5] 야포 26,400문 전차/자주포 2,400대 항공기 3,000기 |
군인 307,000명 야포 5,500문 전차/자주포 625대 항공기 610기 |
피해 규모 |
전사/실종 112,529명 부상 317,361명 전차/자주포 2,586대 야포 892문 항공기 1,104기[6] ~ 1,705[7] |
전사 14,215명 실종/포로 11,300명 부상 60,549명 전차/자주포 대 항공기 218기 |
[clearfix]
1. 개요
쿠투조프 작전은 쿠르스크 전투를 구성하는 3개의 작전[8] 중 하나이며 목표 자체는 달성하여 오룔 돌출부를 제거하긴 했으나 전술적으로 소련군의 압도적인 패배였으며 이후로도 남부 전선과 달리 44년 6월까지도 스몰렌스크와 브랸스크를 탈환하는 것에 그치고[9]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므로 작전술적으로도 승리라 보기 힘들었다.[10] 그나마 독일군이 전략적으로 공세를 펼칠 역량을 상실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2. 전투 서열
2.1. 독일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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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집단군 ( 사령관 :
귄터 폰 클루게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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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개
3.1. 공세 준비
소련군은 쿠르스크에서 방어를 준비할 때부터 남북으로 반격 작전을 미리 준비해 뒀으며 이 중 북쪽의 쿠투조프 작전은 오룔의 탈환과 독일군의 돌출부 제거가 목적이었다. 돌파를 담당하게 될 것은 서부 전선군 좌익의 11근위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의 3군, 61군이었으며 후방에 3근위전차군과 4전차군이 돌파구로 파고들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소련군은 1,287,000명의 병력과 26,000문의 포, 2,400대의 전차/자주포[23], 3,000기의 항공기를 보유중이었다.독일군은 쿠투조프 작전 시작 시점에서 9군과 2기갑군 합쳐 약 307,000명의 병력을 보유중이었으며 5,000문의 포와 600대의 전차/자주포를 보유중이었다. 중부 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6항공함대는 7월 10일 기준으로 610기의 항공기를 보유중이었다. 이중 138기가 전투기였고 335기가 공격기/폭격기였다. 그러나 작전 시작 시점에서 대부분의 항공기는 성채 작전을 위해 9군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이후 2기갑군 지역이 중부 전선의 격전지가 된 이후로도 스몰렌스크를 방어하던 4군과 비텝스크를 방어하던 3기갑군도 지원해야 했기에 오룔에 온전히 집중 할 수가 없었다.
3.2. 오룔 북쪽에서의 공세
7월 10일에 독일 9군의 공세가 사실상 끝나면서 스타브카는 쿠르스크 북쪽부터 반격을 개시하기로 했다. 공세를 담당한 서부 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은 성채 작전 방어에 전혀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한 전력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1.5개 전선군이 5개 야전군과 5개 전차군단을 포함하여 645,000명을 보유중이었다. 추가로 스타브카 예비인 2개 전차군과 1개 야전군을 포함하여 720,000명의 병력을 보유중이이었고 브랸스크 전선군은 10,000문의 포, 서부 전선군 좌익의 2개 야전군이 6,000문의 포를 보유하여 16,000문의 포를 보유중이었다. 기갑전력을 보면 브랸스크 전선군이 794대, 3근위전차군이 731대, 4전차군[24]을 포함한 서부 전선군 좌익이 1,737대를 보유하여 3,262대의 전차/자주포를 보유중이었으며 항공전력은 서부 전선군의 1항공군이 1,322기, 브랸스크 전선군의 15항공군이 995기를 보유하여 2,317기를 보유중이었다.반면 약 107,000명의 병력과 2,000문의 포를 보유한 독일 2기갑군은 휘하에 기갑사단이 하나도 없고 25기갑척탄병사단이 유일한 기갑전력이었으며 집단군 예비인 5,8기갑사단을 합쳐도 전차/자주포가 234대[25]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룔 돌출부를 담당한 1항공사단의 항공기는 전부 9군에 할당되어 2기갑군을 지원하는 공군 전력은 전무했다.
공세의 시작은 오룔 돌출부 북쪽의 서부 전선군 좌익과 브랸스크 전선군이었다. 오룔 북서쪽의 서부 전선군은 11근위군에게 2개 돌파포병군단의 지원을 받는 2개 전차군단을 배속시켜 돌파를 담당하도록 했다. 12일 공세 시작 당일, 11근위군의 돌파 집단은 16km 구역에 60,000명의 병력과 615대의 전차/자주포를 집결시켰다. 1km당 200문 이상의 포가 동원됐으며 8근위소총군단의 돌파구에서는 1km당 260문의 포가 있었다. 독일 53군단은 1km당 1.7문의 포가 전부였으며 돌파구를 담당하던 것은 2개의 보병사단과 40대의 전차로 구성된 제5기갑사단의 전투단뿐이었다.
3.3. 오룔 남쪽에서의 공세
3.4. 하겐 라인으로의 퇴각
4. 결과
[1]
오룔 전략공세작전 "쿠투조프"
[2]
오룔 작전
[3]
쿠투조프 작전
[4]
성채 작전이 성공했더라도 전쟁의 주도권이 이미 소련군에게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전략적 공세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규모 자체는 전략적 공세라고 봐도 무방하다.
[5]
서부 전선군 233,300명, 브랸스크 전선군 409,000명, 중부 전선군 645,300명
[6]
소련 측 기록
[7]
독일 측 기록, 이 기록이 훨씬 신빙성이 높다.
[8]
성채 작전, 루미안체프 작전
[9]
이 때 소련군의 공세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남부 전선과의 차이라면 양군의 기갑 전력이 남쪽에 집중되었다는 것 정도로 서부 전선군은 11차례의 공세를 펼쳤음에도 4군은 반년 넘게 전선을 고수했으며 9군 역시 2군이 집단군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여 전선이 점점 길어졌음에도 거의 밀리지 않았다. 중부 집단군 전체로 봐도 30개가 넘는 사단을 타 전역으로 보내고 절반으로 줄어든 병력으로 남부 집단군이 밀려나면서 길어진 전선을 그대로 담당하여 1.5배의 전선을 방어해야 했음에도 거둔 엄청난 성과였다.
[10]
이탈리아에 서방 연합국이 상륙하지 않아 예비대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독일군도 후방 방어선으로 철수할 이유가 없었기에 돌출부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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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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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부터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 겸임
[13]
8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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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갑군 사령관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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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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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에 브랸스크 전선군에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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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62군 사령관이었던 장군이며 7월 14일부터
이반 페듀닌스키 중장이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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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에 새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아래 편성은 8월 1일 기준, 7월 30일에 브랸스크 전선군에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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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 참여한 우익 일부만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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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군의 주력은
수보로프 작전에 참여중이었고 쿠투조프 작전에는 휘하 야전군 9개 중 2개만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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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방면에 배치되어 작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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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과 9군 경계에 배치되어 작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음
[23]
소련군은 공세시 1파만 투입 전력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후방 병력은 전부 제외된 수치이며 기갑전력이 돌파를 직접 담당하는 독일군과 달리 돌파 후 투입되는 소련 기갑전력의 특성상 실제 기갑전력은 이보다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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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에 서부전선군에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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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144대, 돌격포 23문, 자주포 67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