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c002d><colcolor=#000,#ddd> 대한제국의 매국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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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1] | ||||
이완용 | 박제순 | 이근택 | 권중현 | 이지용 |
||<-8><tablewidth=100%><#bc002d><tablebgcolor=#fff,#1f2023>
경술국적 ||
}}}}}}}}} ||[1] 박제순 대신 체결에 적극적이었던 이하영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
역임한 지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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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중추원 의장 이근택 李根澤 | Lee Geun-taek |
|
이름 | <colbgcolor=#fff,#1f2023> 이근택 (李根澤) |
초명 | 근용 (根湧) |
출생 |
1865년 (고종 2년)
9월 30일 ( 음력 8월 11일) |
충청북도 충주 | |
사망 | 1919년 12월 17일 (향년 54세) |
직업 | 군인, 정치가 |
종교 | 유교 ( 성리학) |
본관 | 전주 이씨 경명군파[2] |
작위 | 조선귀족 자작 |
주요 경력 |
병조참판 좌부승지 군부대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조선귀족 자작 |
가족 |
아버지 이민승(李敏承) 형 이근호 동생 이근상 동생 이근홍(李根洪) 동생 이근목(李根沐) 이름 모르는 아내 아들 이창훈(李昌薰) |
|
1. 개요
조선과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 을사오적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이다.2. 생애
1865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성종의 9남 경명군의 12대손인 어영청파총(御營廳把摠) 이민승(李敏承)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명은 '이근용(李根湧)'이며 1901년을 전후하여 '이근택(李根澤)'으로 개명하였다. 무신 집안[3]이었지만 출사의 계기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 민씨에게 싱싱한 생선을 진상함으로써 눈에 들어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성황후 민씨가 환궁하면서 벼슬길에 들어섰다. 1884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입문하였고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당시 친위 연대 제3대대장으로 정부 전복을 꾀하던 도중 발각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898년 한성판윤, 의정부 찬정 등을 거쳐 1905년 법부대신(지금의 법무부 장관)과 군부대신(지금의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는데 이완용이 주도한 을사조약 체결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서 을사오적이 되었다. 때문에 조선 민중들과 의사의 표적이 되어서 습격을 받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살아남았고 이후로는 일본군을 호위 대동하여 출퇴근을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고 1919년 사망했다.3. 기타
-
황현의 <
매천야록>에 따르면
한규설[4]의 딸이 이근택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사돈 관계였다고 한다. 그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이근택에게 한규설의 딸을 따라온 교전비(여종)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꾸짖기를 아래와 같이 말하고 옛 주인 한규설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5]
"네가 대신까지 되었으니 나라의 은혜가 얼마나 큰데, 나라가 위태로운 판국에 죽지도 못하고 도리어 내가 다행히 살아났다고 하느냐? 너는 참으로 개 돼지보다도 못하다. 내 비록 천한 종이지만 어찌 개, 돼지의 종이 되고 싶겠느냐? 내가 힘이 약해서 너를 반 토막으로 참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 의외의 사실이지만 원래 이근택은 친러파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이용익과 함께 고종의 군비 증강 정책을 이끌던 인물이었지만 이근택은 해군 양성을 주장했기에 육군 양성을 주장한 이용익과는 서로 암살자까지 보낼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 이근택은 일본의 군사 정보를 캐내기 위해 대한제국 정보대를 창설한 인물이기도 한데 정보대를 통해 일본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정보대가 보내는 정보들이 너무 비관적이어서 점점 친일로 기울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련 링크 그 이후 이근택은 친일파로 돌변, 을사늑약 직전 일제로부터 30만 원[6]이라는 거액의 돈을 수수받고 궁중과 부중의 모든 기밀사항을 정탐하여 일본에 제보했다고 한다. 군부대신이 조정의 정보를 캐내 일본에 전달하는 스파이 활동까지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괴물과 싸우려다 심연에 삼켜져 또 다른 괴물이 되어버린 셈. #
- 이근택의 아들 이창훈(1890~1947)는 아버지의 사후 작위를 습작받았고 그 아들인 이원구(1912~?)는 1949년 반민특위 조사 때 기준으로 충청남도 공주 공주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으나 아버지가 광복 후에 사망하여 습작을 받지 않아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리고 이원구의 아들, 즉 이근택의 증손자인 이상우는 1995~1998년 공주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다가 1998년 사망했고 그 동생은 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를 역임했다고 한다. #
4. 둘러보기
온건개화파 溫乾開化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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