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귀족 朝鮮貴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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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
조선귀족 백작
고중덕 高重德 |
|
<colbgcolor=#b0313f><colcolor=#c0c0c0> 출생 | 1923년 2월 18일 ([age(1923-02-18)]세) |
경기도
경성부
서대문구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본관 | 제주 고씨 |
가족 | 부: 고흥겸 |
친인척 |
증조부:
고영희 조부: 고희경 |
학력 | 게이오기주쿠대학 |
재임 | 1939년 ~ 1945년 |
비고 |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제주(濟州)이다.2. 생애
1923년 2월 18일에 태어났다. 1939년 8월 14일 아버지 고흥겸이 죽자 16세의 나이에 백작 작위를 습작받았다. 정미칠적 및 경술국적 중 하나인 고영희는 그의 증조부이며 고희경은 그의 조부였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일본군 학도병에 지원하기도 했다.1949년 10월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불구속 송치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충청남도 예산군으로 낙향해 농촌 유지로서 산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 12월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되었으며, 1974년 당시 예산 군농협 조합장을 맡았고, 1977년 12월 9일에는 새마을 포상자로 지정되어 새마을운동근면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
2011년 3월 8일에는 친일재산 반환 소송에 휩싸이기도 했다. # 당시 고중덕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졌다.[1] 2011년 4월달의 소식을 보면 이 시기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 2014년 당시에도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 2016년 4월 15일 성남도시개발공사 대장동 토지조서에서 당시 소유했던 토지가 확인되었다. 고중덕 명의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2016년까지는 근황이 확인되었다. #
이후 근황은 불분명한 상황이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이 된 조선귀족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2024년 11월 기준으로 생존 중인 독립유공자는 5명이다.[2] 물론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조선귀족이라는 사실을 숨겼으면 숨겼지, 자신의 정체를 자의로 밝힐 일은 없다.[3]
그의 증손자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해외야구 갤러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증조부의 근황에 대한 질문엔 일절 응답하지 않고 어그로만 끌다가 사라졌다.
[1]
해당 재판의 판결문
[2]
강태선,
김영관,
오성규,
이석규,
이하전
[3]
당장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인
민복기 전
대법원장만 하더라도 본인의 부친인
민병석의 정체를 숨겨야 했다.
# 고중덕 본인도 죽기 전에 확실히 숨기고 죽으려 하는 건지 2010년대에 비해 고중덕이라는 이름이 포함된 뉴스 기사 자체가 많이
삭제되었다. 심지어 전직
해군참모차장과
대우조선
부사장을 지낸 1931년생 동명이인인 제독 고중덕의 기사조차도 많이 내려가서 현재는 몇 남아 있지 않다. 참고로 1931년생 고중덕은 2017년에 향년 86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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