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귀족 朝鮮貴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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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
1. 개요
金正祿 [1]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를 지낸 학자다. 호는 학보(學步). 일제 강점기에 할아버지인 김춘희의 조선귀족 작위를 3대째 습작했다. 김홍집의 종증손자다.
2. 생애
한성부출생으로 1926년 만주에서 만철실업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의 배영(培英)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 문과 2학년을 중퇴했다. 전공은 중국 문학이었고, 이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김정록의 할아버지 김춘희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인 김홍집의 조카였다. 한일 병합 조약체결 후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춘희가 받은 조선귀족 작위는 세습되는 것이어서, 1926년 사망한 후 아들 김교신(金敎莘)을 거쳐 1932년 7월 경에 손자인 김정록이 습작하였다.
남작 작위를 세습하고 조선귀족 단체인 경복회에서 매달 150원의 생활보조비를 받았다. 1939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가 1940년 신병으로 사임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소환 통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수하여 조사를 받았다. 중국 유학생으로 있을 때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습작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사정이 참작되어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반민특위는 김정록이 순진한 학자풍의 인물로 남을 모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습작 사실 자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위에서 그가 남작 신분인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미학과 교수를 지냈다. 연구 분야는 동양미학이었다. 시인 김지하가 존경하는 스승의 하나로 김정록을 꼽은 적이 있고, 유홍준도 김정록의 제자로서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