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22:20:26

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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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曄
(? ~ 234?)

1. 개요2. 정사
2.1. 조조를 따르기 전까지2.2. 조조 휘하에서2.3. 조비 휘하에서2.4. 조예 휘하에서
3. 평가4. 연의5.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자양(子揚). 유도의 아버지.

방계 황족으로 광무제의 후손이다. 그의 조상은 광무제의 7남이자 폐후 곽씨의 소생 부풍질왕 유연(劉延)으로 양주 회남군 성덕현 출신이다. 이렇게 한나라 황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조조 휘하의 참모로 활약했다.[1] 흔히 참모나 발명가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정사에 기록된 젊었을 때 일화들을 보면 호걸의 면모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2. 정사

2.1. 조조를 따르기 전까지

정사 삼국지에서는 일찍 아버지 유보(劉普)가 죽고 7살 때 어머니 수(脩)는 심한 병중에서도 아버지의 시비를 제거하기를 유언했다. 결국 13살 때 그 시비를 죽이고 어머니 묘에 참배했다. 노숙과 친구였다. 친구 노숙에게 함께 회남에서 수만 명의 무리를 모으고 세력을 떨치고 있던 정보[2]를 섬길 것을 권했고 노숙은 승낙했으나 노숙은 결국 중도에 주유의 권유로 마음을 바꾸어 손책을 섬겼다.

그래서 유엽이 정보와 행복하게 살았냐면 그러지 않았으니, 한편 정보가 주민을 쫓아 장강 남쪽으로 건너가려고 했는데 유엽이 고귀한 집안이며 명사이므로 유엽을 협박하여 이를 주도하게 하려고 했다. 마침 조조가 양주에 사자를 보내었는데 유엽은 사자를 뵙고 양주의 사정을 설명하고 며칠 더 머무르게 했다.

정보가 사자를 맞이하여 대접하자 유엽은 정보가 술에 취한 틈을 타 정보를 모살하려 했다. 그러나 정보가 술을 마시지 않아 정신이 말짱하여 틈을 노리기 어렵게 되자 직접 정보의 머리를 베고 정보의 무리들을 위협하여 달아나게 했다. 나중에 정보의 진영을 찾아가 설득하여 주인을 잃은 정보의 무리들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왕실의 지파이므로 사병을 거느리려 하지 않고, 얻은 무리를 여강태수 유훈에게 넘겨주었다.

손책 유훈에게 뇌물을 주어 상료를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유엽은 이것이 유훈이 상료를 공격하러 나간 틈에 여강을 거저 먹으려는 손책의 계략임을 간파하고 유훈에게 이를 받아들이지 말도록 조언했으나, 유훈은 마침 원술의 잔당 등 귀의한 무리가 갑자기 늘어나 식량이 부족했으므로 이를 듣지 않았고 상료를 공격하다가 과연 손책의 공격을 받아 본거지인 환성을 잃고 조조에게 도주했다.

2.2. 조조 휘하에서

여강에는 산적 진란이 수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조조가 여러 번 토벌군을 보냈으나 이기지 못했다. 조조가 수춘에 이르자 여러 부하들은 진란을 내버려 둘 것을 조언했는데, 유엽은 조조에게 진란을 무찔러 위세를 보일 것을 조언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맹장을 써 진란을 토벌하고 돌아오면서 유엽을 사공창조연[3]에 임명했다.

이후 별 기록이 없다가 조조가 장로을 토벌할 때 주부로 전임되었다. 한중 땅은 길이 험하고 또 군량이 다했으므로 조조는 철수하면서 유엽에게 후군을 감독하게 했다. 유엽은 장로를 이길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군량을 끊어 퇴각하지 못하게 했다. 과연 조조는 장로를 무찌르고 한중을 평정했다.

유엽은 조조에게 한중 점령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을 촉을 치도록 권하고, 또 촉이 안정되어 제갈량이 재상이 되고 관우, 장비가 지휘관이 되면 그때에는 이미 늦어 근심거리가 된다고 조언했으나 조조는 듣지 않고 돌아갔다. 유엽은 행군장사가 되었고 영군을 겸했다.[4]

2.3. 조비 휘하에서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자 맹달 위나라에 투항하여 조비의 총애를 받아 신성태수가 되었다. 하지만 유엽은 맹달에겐 충성심이 없고, 또 신성군은 국경의 요지이므로 이를 반대했으나 기각되었다. 그리고 그 맹달이 훗날 배신을 한다.

관우가 죽고 유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조비가 묻자, 다른 신하들은 모두 유비가 버로우탈거라고 했지만 유엽만이 유비는 오나라에게 자신이 강대함을 보이려 할 것이며, 유비와 관우의 사이는 겉은 신하의 관계지만 은혜의 베풂을 보면 부자 관계와도 같다며( 형제가 아니다!) 유비가 반드시 관우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어찌 보면 유비 일파에 대한 스페셜리스트같은 느낌이다.

간언으로 공을 제법 세웠지만[5], 아무래도 구 황실의 적파자손이라는 혈통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중용되지도 않았고, 관직은 그리 높진 않았다.

2.4. 조예 휘하에서

조비가 죽은 후 조예가 다음 황제가 되었는데, 그 때까지 조예가 워낙 수수께끼의 존재였던 터라, 유엽이 만나서 이야기를 한 후에 다른 신하들에게 조예의 인물평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6]

초기에 조예는 유엽을 매우 중히 여기고 가까이 했다. 이후 조예가 유엽에게 촉나라를 정벌하는 것에 관한 의견을 물었는데 이 때 유엽은 조예에게는 정벌할 수 있다고 답하고 물러나와서 다른 신하들 앞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조예는 유엽이 촉을 정벌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다른 신하들을 불러 촉을 정벌하는 것에 관한 의견을 물었는데 다른 신하들은 당연히 반대하였다. 조예가 유엽은 촉을 정벌 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하자 다른 신하들은 유엽은 우리와 있을 때는 정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이상함을 느낀 조예가 유엽을 다시 불러 이에 대해 묻자 유엽은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중대사라 다른 신하들에게 떠벌리지 않고 비밀로 했을 뿐인데 섣불리 다른 신하들에게 의중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오히려 화를 냈다. 그러자 조예는 유엽에게 사과했지만 이로 인해 유엽에게 의심을 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조예에게 유엽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황상이 뜻하는 바를 잘 살펴 좇아가서 그에 영합한다면서, 유엽을 시험해 보고 유엽이 황제가 질문한 것과 반대되면 황제의 뜻에 합치되는 사람이지만 매번 물어볼 때마다 그렇다고 하면 유엽의 마음이 영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물은 것을 반대로 대답하면 항상 황제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고 매 질문마다 동의하면 아부하는 본래의 심정은 반드시 도망할 곳이 없다고 했는데, 이에 조예가 유엽을 시험했더니 그 심정을 드러내 조예와 소원하게 되면서 유엽은 발광하다가 쫓겨나서 대홍려가 되어 근심하다가 죽었다.

3. 평가

원래 유엽은 결코 예스맨이 아니었다. 조조/ 조비 시절 기록을 보면 유엽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하다. 남들이 다 Yes라고 할때 혼자 No라고 하고, 결과적으로는 항상 그의 의견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된다. 포스트 곽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랄까. 헌데 이런 유엽의 강한 발언들이 조예 대에 들어가면 쏙 사라지고, 그는 결국 아첨하는 신하로 낙인 찍혀 분사하고 만다.

그렇다고 조예 시절 유엽이 완전히 입 다물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공손연이 요동 태수를 자칭했을 때, 조예를 비롯해 당시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유엽 한 사람만이 훗날 공손연이 근심 거리가 되리라 예상하고 그를 조기에 제거하자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손연은 몇년 후 연왕을 자칭하며 모반을 일으키니,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유엽 홀로 옳은 말을 한 셈이었다. 물론 조예는 듣지 않고 공손연의 태수 직을 인정해 줬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이 조비 시절에도 있었다. 유달리 자기에게 복속해 오는 자에게 약한 조비가 맹달을 신뢰하고 손권의 칭번을 얼씨구나 받아 들일 때,유엽은 역시 그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특히 손권에 대해서는 아예 선제공격을 주장했다. 물론(...) 조비는 듣지 않았고. 여기까지는 조예 때의 공손연 케이스와 겹친다.

그런데 이후 중대한 차이점이, 손권이 결국 촉과 손을 잡고 위나라를 적대하면서 조비의 분노를 사 그가 오나라 정벌을 시도했을 때, 유엽은 역시 유엽답게 이롭지 못한 원정이라 반대하고 결국 원정이 용두사미로 끝나며 그가 옳았음이 또 한번 입증되는데...정작 조예 대의 참담한 실패로 끝난 두 번의 원정 - 조휴의 환성 공격과 조진의 촉 정벌 당시 지금까지 촉새처럼 튀어나왔던 유엽은 침묵했다. 이 두 전쟁은 만총, 위진, 장제/ 진군, 화흠, 양부 등의 중신들이 모두 반대 혹은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불안 요소가 많았던 원정인데,유엽 정도의 인물이,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내다본 이런 참담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더군다나 통감에 따르면,조예와 신하들이 촉 정벌의 가부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유엽은 신하들 앞에서는 그들에 동조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조예 앞에서는 그에게 찬동해 정벌을 지지하는, 지금까지의 그와는 전혀 다른 박쥐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도대체 어째서 유엽은 이렇게 바뀌고 만 것일까?

세어에서 유엽과 조예에 관한 미묘한 기록이 있다. 타인과 접촉이 없는 조예를 신하들이 파악하지 못하던 때,하루는 유엽이 하루 종일 알현한 일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조예에 대해 알기를 원했고,이때 유엽은 조예를 '재능이 부족한 진시황/한무제'에 비견했다고 한다.

외정면으로는 엄청난 위업을 쌓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뤘으나,신하들과 백성들에겐 가혹했고 말년에 좀 맛이간 짓을 벌였던 인물들. 만약 유엽이 조예에게서 이런 황제들을 느꼈다면, 주군이 의도하지 않은 원정은 주장해도, 주군이 의도하는 원정에는 반대하지 않으며 무조건 찬동한 조예 시절 유엽의 행동들이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두 번의 실패로 끝난 원정을 이끈 조휴 조진은(친혈족은 아니지만) 어쨌든 조씨 사람들. 조비의 고명 대신으로 조예의 최측근이자 먼 친척이기도 한 이들이 대사마에 올라 거들먹 거리며 대오/대촉 원정을 준비할 때,조예에게서 효무제를 느낀 유엽이 이광리를 떠올렸을 법도 하지 않은가. 유엽이 침묵한 이유가 이릉/ 사마천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러나 현실은 유엽의 판단과는 달랐다. 조예는 참언하는 중신들에게 가혹하진 않았다. 오히려 조예가 높게 쳐준 신하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뻣대던 진교, 양부 같은 인물들이었으며, 유엽의 이런 판단미스는 결국 그 자신을 몰락시키고 말았다. 한말 위초 격변의 시기, 세 나라 네 명의 황제를 거쳐가면서 전 황실 혈통이라는 태생적 위험 요소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할말 다하며 살아온 이 처세와 인물 감평의 달인이,기껏 나라는 안정되고 스스로도 편안한 말년을 즐길 시점에 이르러 단 한번의 실수로 불명예를 안고 말았으니...그 자존심의 상처는 타인의 함정에 빠져 실각한 것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이상으로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젊을 적 노숙과 교류하거나 정보를 토벌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오히려 유엽의 성인 유씨와 그의 자인 자양을 섞어 '유자양(劉子揚)'이란 별도의 인물로 만들어 노숙과 교류하는 것으로 등장시켰다.[7] 결국 곽가의 추거로 조조를 섬겼으며 관도대전 당시 발석거[8]를 개발하여 심배가 쌓은 토산을 무력화시킨다.

5. 미디어 믹스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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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9, 10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897.jpg
삼국지 12,13

전형적인 책사 계열의 능력치를 보이는데 정치는 다른 책사들에 비해 좀 낮은 편인 70대이다. 초기작에서는 지력도 80대 초반에 불과하였으나 지속적인 상향을 통해 최근작에선 90대 초반까지 오른 상태. 연의의 관도대전에서의 일화를 적극 반영했는지 매 시리즈마다 공성(성벽), 기술, 병기 관련 특기를 달고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게임상에서는 전형적인 참모형이지만 정사에서 꽤 한가닥 한 면모를 보면 무력이 좀 더 평가되어도 좋을 듯한 인물.[9]

삼국지 7에선 한글화 번역과정에서 이름인 엽(曄)에서 일(日) 자를 떼놓고 읽는 바람에 '유화(劉華)'로 표기되는 오역의 희생양이 되었다.[10] 그나마 PK에선 시정되었다.

삼국지 9에서는 공성숙련도가 600[11]. 능력치는 36/68/88/72로 역대 삼국지 시리즈의 유엽 중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무력이 높게 책정되었다. 공성계 병법외에는 분전과 혼란을 보유하고 있다. 이 게임 자체가 공성계 병법이 정란 외에는 취급이 안습해서 그저 B급 문관에 가깝다... 는 건 오해고 지력 88에서 나오는 혼란 확률과 계략 방어 확률은 무시하지 못한다. 게다가 조조군 특성상 의외로 공성계 병법 + 정란을 모두 갖춘 장수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예를 들어 연사가 있는 하후연은 충차만 있는 식) 유엽을 참군으로 삼은 부대는 상당히 강력하다. 본작에서 정란 + 혼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참모형 장수는 무조건 A- 급은 먹고 들어간다.

삼국지 10의 능력치는 통솔력/무력/지력/정치력/매력 순으로 39/23/93/75/71. 엔간한 군사들보다도 높은 지력이다. 물론 유엽이 주로 소속되어있는 조조군엔 지력 98의 가후부터 시작해서 참모감들이 넘쳐나서 존재감이 옅긴 하지만. 군사, 명사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숨겨진 사기캐이기도 하다. 물론 통솔이 39로 낮고 쓸만한 특기는 반목, 혼란정도라 전장에서 아주 사기까진 아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기술, 반목, 혼란, 반박, 논파, 군사, 명사, 간첩. 총 9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36/32/92/73/69. 여전히 지력이 높다. 특기는 연의의 일화를 반영한 듯한 사정. 악진 공성과 조합하면 악진의 무력/통솔과 유엽의 지력 덕택에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원소군에 있었다면 벽력차를 좀 휘둘렀을 듯.

삼국지 12에서는 매력을 제외하여 56/32/92/73이고, 삼국지 12의 전법은 전공성강화로, 보유자 중에서 가장 지력이 높다. 일러스트는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삼국지 13능력치는 12와 동일. 중신특성은 공정무사, 전수특기는 교섭, 언변보다 2 낮은 병기, 전법은 적부대의 공격과 사기를 각각 30, 10씩 떨어뜨리는 동요였지만 PK에서 대도발로 변경되어 있다. 보유특기는 상업 2, 교섭 7, 언변 7, 인덕 2, 위풍 1, 병기 5, 귀모 4이다.높은 지력과 인덕 보유로 재야장수 설득 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그 외에 전투요원으로서는 절망적인 병과적성과(올 C) 통솔을 지니고 있으므로 전투력이 높지만 지력이 떨어지는 맹장들의 부장으로 출진하는 것을 추천.

5.2. 영걸전 시리즈

유엽(영걸전 시리즈) 문서 참조.

5.3.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벽력거 개발은 이전에게 양보하고 적벽대전이후 조조가 합비를 방문할때 함께 가는 것으로 처음 등장. 조조의 후기모사진(유엽, 사마의, 장제 등)중의 필두라고 언급된다. 초기의 순욱처럼 조조가 종종 곁에두고 대화를 하기도 하며, 조조의 장로토벌때 종군하여 이대로 군세를 이끌고 유비까지 토벌하자는 진언을 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위나라 전체의 불온한 움직임을 포착, 처리하는 첩보임무를 수행.

5.4.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서는 적은 등장 회수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는 캐릭터. 황숙 신분이자 유씨 문중의 손꼽히는 실력자로, 황실에 해가 되는 자들을 음지에서 견제,제거하는 흑막계 인물이다. 원술이 제위를 참칭하기 직전 이미 그를 꿰뚫어 보고 같은 유씨인 유표,그리고 손책과 내통해 그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이후 손책이 야심을 드러내자 이번에는 조조, 우길(!!)과 내통해 손책 암살을 배후에서 조율했다.

대부분의 유씨 인사들이 친 유비/반 조조 성향을 보이는데 반해 이상할 정도로 친 조조 성향을 보이며 심지어 자기 친척들을 무력으로 협박까지 하며 강제로 조조 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분명 조조가 의 충신이라는 점은 작 중 대부분의 현자들이 동의하고는 있지만 정작 조조 본인은 언뜻언뜻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5.5. 삼국지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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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삼국지대전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위나라의 강력한 간파요원으로 대활약. 저렴한 코스트+높은 지력+복병보유+간파의 프레셔라는 완벽한 4박자로 사용률도 엄청나게 높다

5.6. 삼국전투기

유엽(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1] 여담으로 후한의 황족 유우와 먼 친척 뻘인데 그의 조상은 광무제의 장남이자 폐후 곽씨의 소생이었던 동해공왕 유강(劉彊)이었다. [2] 잘 알려진 손씨 3대를 섬긴 막료 정보와는 동명이인이다. [3] 일종의 사공의 비서라고 보면 된다. [4] 주석 《부자》에 따르면, 7일 후 촉에서 온 투항자가 유비가 두려워하는 자들을 참했음에도 촉 사람들은 불안해 한다고 전했고, 조조는 유엽에게 촉을 쳐도 좋은지 물었는데 유엽은 이제는 안정되었으니 칠 수 없다고 답했다. 고작 일주일만에 상황이 바뀐 것이다. [5] 의외로 정사에서는 발석거 일화도 안나오고 조조군에 투신한 후 한중전까지 별 기록도 없는 인물인데 연의에서 정욱, 곽가의 뒤를 잇는 조조군 참모진처럼 각색되었다. [6] ' 진시황이나 한무제와 비슷해보이지만 자질은 부족해보인다'라고 평했다. 다만 이 일화는 훗날 지어낸 이야기라는 의견도 있어서 맹신하면 안된다. 다만 자치통감에는 이 내용이 실려있다. [7] 대신 유엽의 자는 같은 발음의 한자인 阳자로 개명당했다. [8] 원소군은 벼락소리를 내는 수레라는 뜻으로 벽력거라고 불렀다. [9] 그나마 삼국지 4에서 무력이 66인 걸 비롯, 9까지는 66~68에 이르는 상당한 무력을 자랑했으나 10에서 갑자기 20대로 수직하락 했다. [10] 이 엽 자가 드물게 쓰는 한자도 아니다. 사람 이름에 '엽'이 붙으면 曄 아니면 燁을 쓰는데, 두 글자 모두 '빛날 엽'으로 새긴다. 야구선수 이승엽의 경우 燁을 쓴다. [11] 나머지 제갈량, 마균 이 셋의 공통점은 상병 병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