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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允
(? ~ 254)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사종(士宗). 아내 완씨와의 사이에서 허기, 허맹 두 아들을 두었다.2. 생애
기주 하간국 고양현 사람으로 대대로 관직을 역임한 명문가에서 자라 어린 시절에 동향인 최찬과 함께 기주 일대에서 명성을 날리다가 군에 입대했으며, 조예 때 상서선조랑이 되었다가 원간과 함께 일했지만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 사건은 사형 선고가 나올만한 사건으로 죄가 없더라도 무거운 벌을 받을 처지였다. 허윤은 원간에게 경은 공신의 자손이므로 팔의에 응해 처리할 것이기에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며, 허윤은 옥에서 나와 다시 관리가 되어 군수가 되었다가 시중, 상서, 중령군을 역임했다.허윤은 이풍이 체포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마사를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도중에 바지를 안 입은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이풍이 이미 체포된 것을 알았다.
진북장군 유정이 죽자 진북장군이 되었고 사마사로부터 진북장군은 비록 적은 일이지만 출진할 때 격식을 갖춰야 하니 화고를 울리면서 주절을 세워 본 주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으며, 이에 허윤은 기뻐하면서 사람들과 서로 상의해서 북과 정기를 바꾸도록 했다. 허윤의 형제와 아들들은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허윤을 싫어한 것을 알고있어 빨리 임지에 출발해야 한다면서 북이나 정기 같은 것을 바꿔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했다.
그러나 허윤은 이를 거부했고 임지에 출발할 때 조방이 여러 신하들이 모이게 했고 조방으로부터 특별히 가까이 부름을 받았으며, 허윤은 시중을 지낸 적이 있어 당시를 회고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작별했다. 그런데 어떤 관리가 허윤이 자기 멋대로 돈과 곡식을 자신의 무리들과 부하들에게 나눠줬다고 고발해 그 자리에 잡혀 정위에게 압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사형에서 감형되어 유배형을 받았다.
254년 가을에 유배지로 떠났다가 겨울에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
위씨춘추에 따르면 이부랑을 지낼 때 군수를 선발한 적이 있었는데, 조예가 허윤이 임용 차례를 지키지 않자 불러들여 죄를 물으려고 했다. 허윤은 아내 완씨로부터 현명한 군주는 남의 관직을 이치를 근거로 주고 빼앗을 수는 있어도 남의 관직을 정을 근거로 유지해주는 것은 어려운 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임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조예는 그 일을 살펴보아 알고 있었기에 허윤은 석방되었다.
또한 조예는 그의 옷이 남루한 것을 보고 청백리라면서 상을 주었고 허윤이 진북장군이 될 때 아내에게 자신은 화를 피할 줄 알고 있다고 좋아했지만 아내는 화가 이미 코 앞에 또 있는데, 어떻게 화를 피했다고 말하냐고 했다. 허윤은 인상(도장의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는 상의 한 법술)에 능하였는데, 관직을 받았을 때 받은 직인이 길하지 않아 다시 새기기를 세 차례 했다. 허윤은 도장을 보고 막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미 욕을 당한 것이라고 하였고, 도장을 만든 사람에게 물으니 과연 측간에 빠진 것이었다고 하였다.
아내인 완씨와는 혼례를 치를 때 완씨가 너무도 못 생겨서 신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완씨는 환범이 남편을 설득해 자신의 방으로 오게 할 것이라 했다. 허윤이 완씨의 방에 들어가서 여자에게 4가지의 덕이 있다고 하면서 무엇을 갖추냐고 했는데, 완씨는 용모만 모자란다고 했다.
완씨에게서 사대부에게는 100가지의 행동 지침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허윤은 다 갖췄다고 했지만 완씨로부터 사대부의 지침 가운데 으뜸은 덕으로 색을 밝히면서 덕행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받았으며, 허윤은 이로 인해 완씨가 비범한 여자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는 아내를 몹시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