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07 12:46:11

전주(삼국지)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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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疇
(169년 ~ 214년)
1. 개요2. 생애
2.1. 전반기2.2. 서무산에 은거2.3. 백랑산 전투2.4. 이후
3.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자태(子泰)로 유주 우북평군 무종현(現 톈진시의 일부) 사람.

2. 생애

2.1. 전반기

독서를 좋아하고 검술에 능해 수재로 이름이 났다. 당시 동탁이 황제였던 유변을 폐위한 뒤 살해하고, 진류왕 유협을 새 황제로 추대하자 이 명분없는 행위에 지방의 관리들이 반발하여 반동탁연합군이 일어났고, 연합군은 헌제 유협이 반역자에게 옹립된 괴뢰라는 이유를 들어 명망 높은 황족이었던 유주목 유우를 황제로 추대한다.

유우는 이 추대를 거절했고, 장안의 헌제를 인정하면서도 동탁과는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때 유우가 사신으로 보낼 적절한 사람을 찾자 사람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모두 그의 비범함을 칭찬한다며 당시 22세였던 전주를 유우에게 추천했다.

유우는 전주를 만나본 뒤 매우 칭찬하며 종사로 삼았고, 전주를 호위할 다수의 수행원을 준비했으나 전주는 도적들이 종횡으로 날뛰는 시기이므로 사람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고, 자신이 신뢰하는 식객들과 젊고 용맹한 이들 중 전주를 수행하기를 자원하는 이들을 가려뽑아 24기의 말에 나눠 태우며 장안으로 향한다. 유우가 직접 송별에 나섰으며, 전주는 중원 군벌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태행산맥을 한바퀴 돌아 병주에서도 변경인 삭방군의 사막지대를 경유하는 험난한 여정 끝에 장안에 도달한다.

전주가 장안에 도착해 헌제를 알현하자 헌제는 크게 기뻐하며 전주를 기도위로 삼았고, 삼공부에서도 경쟁적으로 전주를 초빙하려 했지만 전주는 유우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 벼슬을 받지 않는다.

2.2. 서무산에 은거

전주는 헌제의 답서를 받아 유주로 돌아갔지만, 유주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유우가 공손찬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유우의 묘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곡을 했으며 제사를 지내고 떠났다. 이에 공손찬은 크게 노하여 포상금을 걸고 전주를 사로잡았으나, 오히려 전주는 포악한 공손찬 앞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했으며 은근히 그를 비판하였다. 공손찬은 전주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죽이지는 않았으나 군영 안에 감금해 놓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곧 전주를 풀어주었다.

전주는 유우의 원수를 갚을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일족들과 식객 수백 명을 데리고 서무산에 은거했고, 산지를 깎아 농사를 지었다. 유주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인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수천 가구가 전주에게 의탁했고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전주는 자체적으로 법령을 제정해 효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오환, 선비족과도 교역했다.

유우의 고리로서 공손찬에게 복수를 다짐했으며 상당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다른 유우의 고리들과 달리 원소에게는 협력하지 않았는데, 원소가 예를 갖추어 다섯 차례나 전주를 정중히 초빙했음에도 이를 모두 거절했으며, 원소가 죽은 뒤에도 후계자였던 원상이 전주를 재차 초빙했으나 전주는 끝까지 따르지 않는다.

<전주전>에서는 전주가 과거 오환이 전주의 고향인 우북평군에서 다수의 고관들을 살해한 일(=삼군오환의 난)을 항상 원망하여 오환을 토벌할 뜻을 가졌지만, 전주 자신의 역량만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기록을 덧붙이고 있는데, 전주가 원한을 품고 있던 삼군오환의 수장은 답돈이었고, 답돈은 원소의 사위가 되고 원소에 의해 오환 전체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등 무척 잘 나가고 있었다.

유우에 대한 충성심과는 별개로 오환족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고, 삼군오환의 수장들과 긴밀히 유착하는 원씨의 대 오환 정책에도 불만을 품으면서 원소와 원상의 초빙을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2.3. 백랑산 전투

이후 원상은 조조에게 패하여 삼군오환의 답돈에게 망명했고, 조조는 원상과 오환을 치기 위해 대대적인 북벌에 나선다. 조조는 무종에 도달하면서 전예를 보내 전주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고, 전주는 조조에게 가기 위해 긴급히 행장을 꾸린다.

전주 문하의 사람들은 과거 원소가 아주 정중한 자세로 다섯 차례나 불렀음에도 도의를 견지하며 응하지 않던 전주가 조조가 겨우 한 번 불렀을 뿐인데, 조조에게 닿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며 의아하게 여겼으나, 전주는 웃으면서 그대들은 몰라도 되는 일이라 대답한다.

전주가 전예를 따라 조조 앞에 당도하자 조조는 전주를 사공호조의 속관으로 삼았고, 전주와 접견하여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의논했지만 전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가 부리는 관리가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다" 라고 평하며, 수(蓚. 발해군 수현)의 현령으로 임명한다. 다만 바로 임지로 보내지는 않고 잠시 무종에 머물게 했는데, 당시 장마비가 와 해안가의 저지대에 위치하던 무종의 주 행군로가 진창이 되고 고지대의 샛길들은 원상,오환군이 선점하여 굳게 지키고 있었다.

조조는 2달 동안 진퇴를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주는 길이 무너져서 후한 건국 이래로 쭉 이용이 끊기고 잊혀져 있는 노룡의 고도를 소개하며 노룡에서 백단(白檀)의 산길을 넘고 사막지대를 거쳐 삼군오환의 근거지가 있는 유성(柳城)을 친다면 이 샛길의 존재를 모르는 적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대군을 맞아 무너질 것이라 진언한다.

이 책략을 받아들인 조조는 강행군 끝에 유성 앞 2백리 떨어진 곳에 도달했고, 답돈과 원상은 경악하여 요격에 나섰으나 백랑산에서 답돈이 죽으면서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고, 조조는 유성까지 추격해 삼군오환을 대파한다.

2.4. 이후

일이 성공되자 조조가 전주를 정북장군(靖北將軍) 유정후(柳亭侯)로 봉하고 5백 호의 식읍을 내렸으나, 전주는 자신이 유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서무산 속으로 달아났지만 뜻을 세우지 못한 채 오히려 사적인 이유로 그것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봉록까지 누리는 것은 본래의 뜻한 바가 아니라며 강력히 사양했다.

한편 추격을 피해 달아난 원상은 요동태수 공손강에게 살해되었고, 공손강이 조조에게 원상의 머리를 보내 오자 조조는 원상의 머리를 효수하며, 곡을 하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수한다는 엄명을 내렸으나 견초의 주관으로 장례식이 진행되었고, 전주는 일찍이 원상에게 부름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례식에 참석해 원상을 조문했다. 조조는 이를 못본 척 불문에 부치며 이 일을 전주에게 말하지 않았고, 전주와 전씨 일족 3백 명을 업성에 거주하게 하며 많은 재물을 내리나 전주는 이를 전부 친족과 옛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이후 형주를 정벌하고 돌아온 조조는 전주의 공이 특별히 중요한 것이라 여겨 전주가 분봉을 거절한 것이 한 개인의 뜻을 완성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왕법과 대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원망했고, 다시 전주를 제후로 삼으려 했으나 전주는 여러차례에 걸쳐 조정의 공식적인 책봉을 공개적으로 거절하여 조조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이에 조조의 부하들은 전주의 본성이 오만하고 교활해 작은 절개를 내세워 도리를 어지럽히니 모든 직위를 박탈하고 처형해야 한다며 조조를 거들었지만, 순욱, 종요와 같은 거물들이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고 전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자며 두둔했고 조비도 전주의 편을 들었으므로 조조는 전주를 죽일 생각을 그만두었고, 전주가 평소 하후돈과 친했기에 하후돈을 시켜 마지막으로 전주를 설득한다.
그대가 먼저 가서 우정으로 그를 설득하오. 이것은 모두 그대의 뜻이라고 말하고, 나의 뜻이라고 말하지는 마시오.

하후돈은 전주의 숙소로 가서 조조보다 먼저 권하는 것처럼 했다. 전주는 하후돈이 찾아온 뜻을 알고 그와 얘기하지 않았다. 하후돈은 떠날 때, 전주의 등을 치며 말했다.
전군(田君), 주군의 뜻이 이토록 간절하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는 없겠소?
전주는 대답했다.
장군은 나 전주의 사람됨을 잘 알면서 오히려 이렇게 재차 말하고 있소. 만일 반드시 부득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는 당신 앞에서 머리를 잘려 죽기를 원하오.

전주는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후돈은 이런 사정을 모두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는 전주의 뜻을 끝내 굽힐 수 없음을 알고 깊게 탄식하며 그를 의랑으로 임명했다.

전주는 4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전주의 아들은 전주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 대가 끊긴다. 나중에 조비 대에 이르러 그의 덕과 절개를 높이 여기고 전주의 종손 전속을 후사로 삼아 대를 잇게 하고 관내후를 내려 주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은 인물이었으나, 명예와 절의를 숭상하던 고대 중국인의 관점으로도 전주의 외골수적인 행보는 유난스럽고 정도가 과하다고 여겨졌는지 배송지는 저럴 거였다면 전주는 조조를 도와 원상을 핍박하지 말아야 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3. 미디어 믹스

3.1.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675.jpg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시리즈에선 평균 능력치 70정도의 고만고만한 무장이지만, 이 능력치로도 유우군한테는 상당한 전력이다.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선 후사인 전속도 유우군 소속으로 되어 있다. 삼국지 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8에서는 무력 66/지력 70/정치 73/매력 74의 능력치는 괜찮으나 전법이 교란 1에 화시 2, 낙석 2로 레벨이 낮아서 전장에서 부리기가 애매하다. 성장형은 매력. 특기는 경작, 혼란. 207년 원상 세력의 최후에서는 엉뚱하게도 원상군에 소속되어 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68/무력 66/지력 74/정치력 78의 좀 애매한 만능형 스탯이지만 교사를 가지고 있어서 좋고 기사, 혼란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8/무력 64/지력 72/정치력 73/매력 74의 고만고만한 만능형에 특기는 총 8개.(농업, 보수, 진정, 기습, 반목, 유인, 지리, 명사) 특기 배분마저도 고만고만하며 평상 시엔 농업셔틀로 쓰다가 전장에선 진정, 기습, 반목, 유인, 지리 특기로 주변을 서포트할 수 있다. 유우군이라는 걸 감안하면 저 능력치로도 전장에서 굴릴 만은 하다. 명사 특기는 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66/지력 72/정치력 76/매력 74, 특기는 풍수다. 전주의 혐오무장이 공손찬, 원소이기 때문에 공손찬, 원소는 아무리 전주를 등용하려고 해도 등용을 못한다.

삼국지 12에서는 서주 변천 시나리오에서 이상하게 전주가 원소 막하에 있다. 아무래도 잘못 배치한 듯하다. 일러스트는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권유에 거절하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6/66/73/76으로 전작해 비해 지력이 1 상승해 있다. 특기는 농업 1, 순찰 2. 전수특기는 순찰이며 전법은 공격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6, 무력 66, 지력 72, 정치 74, 매력 74로 전작에 비해 전작에 비해 지력이 1, 정치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진흥, 교화, 친오, 친선, 소욕, PK에서는 진흥이 삭제되고 향도 개성으로 변경되었으며 주의는 왕도, 정책은 호적정비 Lv 3, 진형은 장사, 추행, 전법은 제사, 혼란, 고무, 친애무장은 유우, 하후돈, 혐오무장은 공손찬, 원소다.

3.2. 만화

삼국전투기에서는 유성 전투에서 장료에게 돌파구를 알려주고 등장 끝. 그것도 반은 개구멍에 들어가 있는 고로 하반신만 나왔다.

그 외에는 한참 뒤 적벽 전투 (2)편의 타이틀 컷에만 1컷 등장했다. 여기서 패러디 캐릭터가 패트레이버의 고토 키이치임이 밝혀졌는데, 이후 등장이 없으니 전혀 의미가 없다(...)
파일:전주1(삼국지톡).jpg 파일:젊은전주(삼국지톡).jpg
현재 모습 젊었을 때 모습
2021년 10월 연재를 재개한 삼국지톡에서 비중있게 등장한다. 유우를 존경하고 그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그와 별개로 과거 오환에게 고향을 수탈당했던 일로 인해 오환을 원망하였으므로 조조에게 노룡고도의 숨겨진 길을 알려준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전주가 온 것은 하늘의 뜻이 나에게 있는 증거라며 제후로 임명하려 하지만, 전주는 "조조 당신의 야망을 당신이 실행하려는거지 하늘의 뜻이 뭔 상관이냐"며 조조에겐 하늘의 뜻이 없다는걸 우회적으로 디스했고, 이에 조조 역시 전주가 자신의 사람이 될 가망성이 없다 여기며 아쉬워한다. 독자들은 이를 어차피 억지로 수하로 둬봤자 진궁같이 애증서린 관계가 되풀이될걸 염려한 거라고 평가했다.

삼국지 여포전에선 여포가 젊은 날로 회귀해 조조가 인재를 얻는 기회가 어그러지고 유우가 공손찬에게 죽지 않고 조조의 손에 죽게된다. 유우가 죽기 전 공손찬 공략을 위해 여포와 손을 잡는듯 하지만 전주가 유우의 세력을 보전해야한다 회유하면서 유우와 함께 유주에서 남하해 이렇다할 계획 없이 기주와 연주의 경계에 머무른다. 문제는 유우가 덕망이 높아 탁군에 있던 백성들이 모두 뒤따르고 이때문에 여포는 배신당했다 여기는데 설상가상 백성까지 따라붙으니 군량이 바닥난다. 전주는 어쩐일인지 조조에게 의탁하자는 제안을 하지만 군량이 없어 연주까지 갈수가 없게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어영부영 기주에 있던 원소에게 군량을 얻으러 갔다가 조조의 암살자들에게 유우가 죽게된다. 그러나 원소의 소행으로 누명을 씌워 전주는 원소에게 복수심을 품는데 오히려 조조의 조부 조등의 공비를 받아 학문을 닦아 조조의 가문에 빚을 지었다 생각해 유우의 아들 유화를 주공으로 받들면서 조조의 책략에 휘둘리게 된다. 이후 조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유화와 함께 원술에게 귀부하려 한다. 이는 주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보물인 구정이 하내에서 드러난 것 때문인데, 유화를 추대해 황제에 오르게 하려는 계책을 편다. 그러나 여포가 유화의 세력에 있던 선우보, 선우은 형제가 세력에서 밀려난 것을 알고 회유해 반란을 일으키게 하여 계책이 어그러진다. 결국 선우 형제에게 덜미를 잡혀 조조의 공비생이었다는게 여포에게 들키게되고 유우를 죽게한 원인을 제공한게 자신이라는걸 선우형제에게 들키자 자결하려 하지만 여포에게 붙들려 투옥된다. 가후의 귀계로 원소에게 넘겨져 조조가 유우를 죽였다고 증언하게 된다. 나름 주군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더럽혀질 명예를 의식해서인지 정직하게 증언을 하지만 이미 유화의 세력에겐 주군을 죽인 무능한 책사로, 상대 세력에겐 배신을 거듭하는 배신자로 인식된다.

원소는 전주를 낙양으로 보내 원소가 유우를 죽이지 않았다고 증언하게 하고 그 범인은 조조라고 밝히게 하여 명문회에 스며든 채옹이 거두로 자리잡게끔 하는 도구 역할로 쓰인다. 의도는 조금 다르지만 조조나 여포나 전주를 이용하게 된다. 증언 후에는 딱히 등장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퇴장.

정사에선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유우가 본의아니게 자신 때문에 죽자[1] 유화를 꼬드겨 들르는 세력마다 배신하게 되는 정반대의 인물이 된다. 마음먹고 배신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세력에 맹장과 책사가 부족하니 가는 족족 세력보전을 위해 이득만 보고 도망치자고 제안한다. 이때문에 결국엔 여포의 책사인 가후에게 걸려 선우 형제에게도 배신당해 사실상 죽는거보다 나을게 없는 형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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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소에게 군량을 얻으려 갔는데 이를 하필이면 유우의 세력과 손잡기로 한 조조에게 알렸다가 조조가 유우를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