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7:21:52

프랑수아 올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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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 제24대 대통령
프랑수아 제라르 조르주 니콜라 올랑드
François Gérard Georges Nicolas Hollande
파일:François Gérard Georges Nicolas Hollande.jpg
출생 1954년 8월 12일 ([age(1954-08-12)]세)[1]
프랑스 오트노르망디 레지옹 센마리팀 주 루앙
재임기간 제24대 대통령[2]
2012년 5월 15일 ~ 2017년 5월 14일
서명
파일:프랑수아 올랑드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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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23235a> 배우자 세골렌 루아얄[3]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
쥘리 가예 (2014년~ )[4]
자녀 슬하 3남 1녀
학력 리세 파스퇴르 ( 졸업)
파리 팡테옹 아사스 대학교 ( 법학 / B.A.)
파리 고등상업학교 ( 경영학 / M.A.)
파리 정치대학 ( 박사)
국립행정학교 ( 졸업)
종교 가톨릭 (세례명:프란치스코)
신체 170cm
소속 정당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9, 11, 12, 13, 17 }}}}}}}}}}}}
파일: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jpg
대통령 재임 시기 사진

1. 개요2. 생애
2.1. 출생부터 정계 진출까지2.2. 대통령으로2.3. 집권2.4. 하락 행진
2.4.1. 틀어진 러-불 관계2.4.2. 위기? 혹은 호재?2.4.3. 삐그덕삐그덕2.4.4. 노동법 날치기 사태
2.5. 재출마 포기2.6. 국회의원으로의 복귀
3. 성추문4. 망언
4.1. "이 빠진 사람" 발언 논란4.2. 알제리 비하 논란
5. 평가6. 소속 정당7. 선거 이력8. 기타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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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4대 프랑스 대통령.

2. 생애

2.1. 출생부터 정계 진출까지

성씨 올랑드( Hollande)[5]에서 알수 있듯이 먼 조상이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한다.

1954년 프랑스 센마리팀 주 루앙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이비인후과 의사였지만 동시에 극우 성향의 인물로 루앙시 의회 의원선거에 국민전선의 후보로도 출마한 경력이 있었다. 반면 어머니는 생활환경조사원으로 가톨릭 좌파 성향의 인물이었다. 재미있게도 그는 2008년 사회당 후보로 시의회 선거에 출마한 바도 있다. 극우 성향 아버지와 좌파 성향 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 때문인지 올랑드는 좌파적인 성향이지만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지는 않은 성향을 띠게 되었다.

14살 때 가족이 루앙에서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으로 이사를 간 후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파리 팡테옹 아사스 대학교, 파리 정치대학, 그리고 국립행정학교와 같은 명문대들을 무사히 졸업했을 정도로 수재였다.[6] 원래는 학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다.

2.2. 대통령으로

이후 사회당에서 나름대로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가며 사회당 당수까지 되었으나 인기 없는 정치인, 존재감 없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들어야 했다. 본래 학자 타입의 인물인 탓인지 정치인다운 맛이 그리 없었던 것도 사실. 결국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은 밋밋하고 존재감 없던 올랑드 대신 당시 동거인이었던 세골렌 루아얄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주었다.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런 상황은 계속되어서 사회당은 올랑드를 아예 제쳐두고 사르코지를 이길 후보를 찾는데 고심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세계은행총재가 거론되었으나 색욕을 주체 못한[7] 스트로스칸의 스캔들로 결국 사회당은 스트로스칸을 포기했다. 일각에선 2007년 대선에 나섰던 루아얄의 재등판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

이때 올랑드는 거의 트랜스포머급의 변신을 감행했다. 우선 다이어트를 통해 14kg을 빼고, 평소 즐겨쓰던 둥근 안경테 대신 각진 테로 바꾸었다. 이런 외양의 변화는 먹물 스타일에 후덕해 보이던 이미지를 날카롭고 세련되게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전에는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말을 하던 스타일에서 날선 공방도 주고받을 정도의 스타일로 변신했다. 어쨌든 사회당은 올랑드를 후보로 내세웠다. 그리고 결선투표에서 51.6%(1800만 표)를 득표하며 48.4%(1687만 표)에 그친 니콜라 사르코지를 꺾고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5년 만에 사회당 소속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2.3. 집권

파일:external/img.timeinc.net/20120521_600.jpg
봉주르, 앙겔라? TIME지의 당선 직후 표지.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메르코지" 소리까지 들으면서 우파 정치인 간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유로존 위기 해법으로 긴축정책을 추진하던 사르코지와는 달리 올랑드는 긴축보다는 경기부양과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올랑드의 첫 방침은 재산이 100만 유로 이상인 부유층에게 75%의 최고세율을 부과하는 것. 이에 부유층들 가운데 국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벨기에에 귀화신청을 한 게 대표적. 근데 아르노가 세금 때문에 국외도피를 시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프랑스의 반응은 돈만 넘쳐나고 애국심은 없는 얼간이 정도.

결국 2013년 4월, 아르노는 여론에 밀려 귀화 신청을 전면 철회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세금을 안 낼 목적은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소득자의 과세 비율을 대폭 늘린 것도 망명 열풍에 한몫. 물론 대다수의 반응은 '프랑스에서 실컷 돈벌고 잘살더니 세금 많이 걷는다고 도망쳐?' 지만[8], 쓸데없이 새는 정부예산부터 줄여봐라는 비판과 더불어 세금 부과가 너무 지나치다는 주장도 나왔다.

올랑드의 허니문은 여기까지.

2.4. 하락 행진

파일:external/cdn5.img.sputniknews.com/1038263671.jpg

하지만 예상보다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나쁘고 국가부채가 GDP의 90%에 달하는 등 성장을 위한 재원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멘붕하여 대선 당시 공약과는 달리 그리스 스페인 같은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올랑드 본인은 물론 프랑스 사회당의 지지율도 추락했다. 기사 아니나다를까, 취임 100일이 지나자 올랑드 대통령한테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한다. 그 덕분에 사회당 고정지지층까지 떨어져서 2012년 기준 지지율이 20~30%대에 머물렀다.

취임 1년이 넘은 2013년 5월, 11월에는 올랑드의 지지율이 24%를 거쳐 일부 조사에서는 15%까지 추락했다. 한국에서 노태우 윤석열이 취임 2년차, 노무현이 취임 3년차에 1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셈이다.[9] 기사 대통령, 하원의원 임기는 2017년까지인데 차기 총, 대선까지 4년이나 남겨놓고 벌써 레임덕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런 추락은 지지율이 13% 이상 빠진 샤를 드골 알제리 독립 발표와 자크 시라크 유럽 연합 헌법 부결보다도 훨씬 더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말리 내전에 개입하는 등 나름 이거저거 해보고 있지만 걸프전 직후 부시가 왜 박살났는가를 생각해 보면 큰 의미는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그가 집권할 동안 프랑스는 내내 0~1%대 경제성장률만 기록할 정도로 불황 중의 불황기였다.[10][11]

2013년 6월에 일본을 방문해 일본 국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돌직구를 던져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방문 당시 일본 중국을 헷갈려 욕도 엄청 먹었다. #

2013년 이후 선거마다 참패하고 있다. 올랑드의 집권 여당인 사회당 2013년 프랑스 하원 재보궐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UMP)에 털렸고, 2014년 지방선거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각각 대중운동연합과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에게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멘붕 선거결과가 나올 정도였으며 심지어 이해 9월 28일에 열린 상원의원 선거마저도 역시 대중운동연합과 민주독립연합(Union des démocrates et indépendants, UDI)을 비롯한 중도우파에게 패하고 심지어 국민전선에게까지 의석을 내주는 등, 그야말로 무려 선거전에서 4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2017년 4월 23일(2차 투표는 5월 7일)'에 하는 대선에서 사실상 낙선할 것이라는 평이 프랑스 내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에는 지지율이 20%를 밑돌았다. 재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프랑스 현지의 관측. 2016년 10월 말 기준 4%라는 경이로운 지지율을 뽐내고 있었다고 한다.[12] 참고로 부정평가는 70%. (프랑스어) 때문에 올랑드의 별명은 미스터 4%가 되었으며, 당연히 자기 당에서조차도 소외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영어)

2.4.1. 틀어진 러-불 관계

올랑드의 프랑스 정부는 동맹국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완고하게 미스트랄급 상륙함들의 계약대로 인도 의사를 계속 드러냈다. # 결국 버락 오바마의 압박에 러시아에 인도하기로 돼 있던 2척의 미스트랄급(Mistral-class) 상륙함을 공급하기로 한 계약을 파기하고, 러시아 측에 피해 배상을 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링크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국방부장관은 피해 배상 금액에 대한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고 계약에 따른 지불 선금 전액을 러시아에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취약한 성장, 높은 재정적자와 실업률을 겪고 있는 와중에 수십억 유로의 손해배상을 하게 된 것. 당연히 야당들(UMP, UDI, FN)로부터 3중 극딜을 당하고 있는 중.

프랑스 정부가 러시아에 자신들이 제조한 선박을 인도하지 않기로 한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상륙함 인도 문제에 대해 지난 5일 전화 대화에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는 지난 2010년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로부터 수주, 지난해와 올해에 각각 1척씩 공급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지난 11월 보낼 예정이었던 첫 번째 상륙함을 인도하지 않았고 이번에 1척도 계약을 파기했다.

미스트랄급 상륙함은 헬리콥터 16대와 장갑차 50대, 병력 700명이 탐승할 수 있는 규모로 알려졌다. 이 상륙함 제조사인 DCNS는 방산 그룹인 탈레스(Thales)가 지분의 35%를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 정부가 64%의 지분을 가진 기업이다. DCNS측은 상륙한 1척을 1개월 유지하는데 110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때가 되었다고 미국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고 있고 미국과 러시아 양측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이제는 프랑스 내부에서도 원성이 나오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안팎으로 사면초가. 이 때문에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임기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15년 7월. 결국 러시아의 식품 맞제재로 인해[13] 프랑스의 농업이 좀(...) 아픈 듯. 프랑스 농부들의 분개, 프랑스 농업, 오그라들다 야당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랄하게 올랑드를 까고 있다. 아울러 농부들은 대거 파업에 들어간듯.

프랑스 의원단이 7월 23~26일 동안 크림 반도를 방문했다. 프랑스 외교부가 만류했지만 씹혔다. 친러시아 성향 프랑스 의원들, 크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야

프랑스의 석유, 자동차, 식료품 업계는 러시아의 금수조치로 타격을 입어 러시아 제재 해제를 위해 로비전을 계속 펼치고 있다.

그 와중에 자유 시리아군을 위해 살상무기를 제공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선제적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 등의 행보로 러시아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 ##

2.4.2. 위기? 혹은 호재?

주어진 기회도 활용 못하는 인물.
스티븐 F. 코언(Stephen F. Cohen), 전직 외교관•미국 정부 대러시아 외교 전문 학자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발생 1시간 만에 선혈이 낭자한 현장에 바로 나타나는 등 위기를 대응하는 리더십이 믿을만 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이 19%에서 34~40%로 치솟았다. 사상 최초로 경찰특공대(RAID)와 대테러 헌병특수부대(GIGN)를 동시에 투입하고 경찰병력도 8만 명 이상 동원하는 초강수를 띄워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인질범들을 사살했다.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전 세계 국가정상 45명과 정적들을 포함한 다양한 정치세력을 엘리제궁으로 불러들여 ‘국가단합(Union Nationale)’을 내세우기도 했다. 사회당에서 가장 우파적인 성향의 마뉘엘 발스 총리 지지율은 무려 55∼60%를 기록. 반면 발스 총리의 테러 대책을 비판하고 나선 사르코지과 마린 르 펜의 지지율은 급락. 그러나 테러가 끝나자 다시 30%로 보합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반짝 인기였는지 15년 3월 22일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은 물론 국민전선한테도 완패를 당했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발생 후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단호한 조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많지만 너무 과한 대처가 아니느냐 라는 주장들이 속속들이 나오는터라 지지율은 다시한번 요동치고 있다.

결국 아시발꿈으로 끝나고 2015년 12월 7일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여당인 사회당은 고작 20% 초반의 득표율로 3위로 내려앉아 폭망했고 국민전선이 31.5%로 압승했다. 파리 테러의 진앙지인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 광역구에서는 국민전선이 36%로 전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해버렸다.(프랑스 지방선거는 비례대표가 없이 전석 지역구다) 그나마 12월 13일 2차 투표에서는 올랑드가 사회당 지지자들에게 차라리 공화당에 표를 던지라고 연설하였고, 결선 투표에 올라간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들이 모두 단일화하는 등 좌우가 결집하여 국민전선에게 자치단체장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득표율을 좌우로 분류하면 좌파인 사회당은 고작 30%인데, 우파인 공화당과 국민전선은 68%가 된다. 즉 사회당 단독으로는 국민전선조차도 상대하기 버겁다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지면서 올랑드와 사회당은 상처뿐인 승리를 안게 되었다. 패배한 마린 르 펜 조차도 기세등등한데다가, 전임 대통령이던 니콜라 사르코지의 영향력마저 극대화되어 버렸다.

게다가 미러에게 "다같이 힘을 합쳐서 다에시를 박멸하자"라고 호소했지만 이번에도 예외없이 양측으로부터 무시당했다...

2.4.3. 삐그덕삐그덕

Approval rating for the President of France hits a new all-time-low of just 4%. Still much too high, to be honest.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작 4%뿐이라는 역대 최저의 기록을 새웠다. 솔직히 그것도 많다.
- 바랴기(Varyagi), 노르웨이 트위터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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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행보
2012년: 고체[14] 상태
2014년: 액체 상태
2016년: 기체 상태

2016년 1월 프랑스 초등학생 모두가 라 마르세예즈를 잘 부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 프랑스가 테러를 당하고 있는 영향도 있고, 재선을 염두에 두고 한 계산이라는 평. 그러나 문제는 안그래도 가사 내용과 오용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국가를 개인의 신념에 따라 거부할 권리를 무시하고 부르도록 강제화한다면, 특히나 이민자와 해외영토 주민의 자녀들에게는 세뇌식 강요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기미가요와 비슷한 맥락이다. 게다가 이 사람은 좌파 성향의 대통령인데 이 부분에선 정작 국가주의적인 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15]

2.4.4. 노동법 날치기 사태

또한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노동자들과 대학생들, 공무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버렸다. 지지율도 20% 미만으로 폭락했다. 개정된 노동법은 다음과 같다.
  • 현재 주 35시간으로 규정되어 있는 현행 근무시간을 노사합의를 통해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초과근무 수당도 깎을 수 있도록 허용.
  •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좀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함.

취임 초와 달리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들을 우선시 하는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이 법안은 사회당 내에서도 엄청난 반발을 샀기 때문에, 마뉘엘 발스 총리는 프랑스 헌법 제 49조 3항을 사용해 의회의 의결을 생략[16]하고 노동법 개정안을 법률로 성립시켰다. 물론 이 권한은 총리의 권한이고 그 책임도 총리가 지지만, 총리를 누가 임명하는지를 고려할 때 대통령에게 책임이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참고로 이 노동개혁의 실무총책임자는 차후 대통령이 되는 경제장관 에마뉘엘 마크롱.

결국 이는 프랑스 전역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무려 7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파리시 공무원들도 파업에 동참함에 따라 시청서비스와 에펠탑도 문을 닫은 상황이다. 거기에 프랑스 전국 900여개 중고등학교와 대학이 학생, 교사들의 수업거부로 사실상 휴교했고, 10대 중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나섰다.[17]

노동법 개정에 찬성하던 의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당황해하고, 올랑드도 어쩔 줄 몰라했다. 같은 사회당 소속인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총이라도 쏘냐?"라고 비아냥거리며 시위를 방관하고 있을 정도.

2.5. 재출마 포기

TTIP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 "표 얻으려고 또 쇼 하네"라는 식의 조소를 듣고 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재출마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으나, 국민들로부터 "왜 그때까지 가? 지금 때려치워."라는 식의 야유만 듣었다.

7월 들어서는 전속 이발사에게 매달 9,900유로에[18] 달하는 봉급을 준 것으로 확인되어 또다시 욕을 먹었다. 이미 프랑스 현지에서는 이발사 게이트라 불리며 조롱받는 분위기.

얼마 후 니스에서 또 일이 터졌고,[19] 올랑드는 "그 어떤 것도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굴복시킬 수 없다"라고 발표했지만 평론가들은 "똑같은 소리만 계속 해대고 뭐가 달라진 게 있냐?"라고 디스했다. 아울러 예비군들을 풀어 국경 통제에 들어갔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9월 24일, 칼레에 소재한 난민촌 '정글'을 완전히 폐쇄하고 난민을 전국에 분산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

결국 11월 7일 야당은 올랑드가 르몽드 기자들에게 국가기밀을 유출하였다며 탄핵 결의안을 제출했다. # 프랑스 검찰도 국가기밀 유출 혐의에 대하여 수사 중이라고 한다. # 물론 탄핵안은 하원에서 부결되었으나, 지지율이 4%를 찍고 있을 정도로 추락했기에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

결국 12월 1일에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그런데 불출마 선언 이후에 4%였던 지지율이 오히려 35%까지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 불출마 선언이 제일 잘한 일

2.6. 국회의원으로의 복귀

대통령 퇴임 후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2024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 옛 지역구에 출마했다. # 프랑스 좌파 진영에서 올랑드에 대한 반감이 높은 만큼 신인민전선 내에서 한동안 격론이 오고갔으나, 코레즈 1구가 사회당에 배정된 선거구인만큼 그 뜻을 존중하여 연합공천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6월 30일 열린 1차 투표에서 37.63%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면서 결선투표에 진출했고, 7월 7일 3자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직 퇴임 7년만에 다시 국민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하게 되었다. 전직 대통령이 직선 국회의원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이다.[20]

다만 신인민전선의 총선 승리 시 총리에 도전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나는 공화국의 전직 대통령이다. 오로지 프랑스 민중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완곡히 부인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차기 총리 지명 과정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함께 2024년 9월 2일,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했다.

3. 성추문

취임 후 올랑드와 사실혼(동거) 관계였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가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맡았다. 발레리는 언론인 출신의 이혼녀다.

2014년 1월, 프랑스의 가십 주간지인 "클로저"는 올랑드가 밤마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을 나와 여배우 쥘리 가예(41)와 밀회를 즐긴다는 폭로보도를 했다. 눈에 띌까봐 경호원 한 명만 대동하고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간다는 것. 쥘리 가예 역시 아이 둘을 둔 이혼녀. 올랑드 대통령은 폭로 보도 이후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으나 폭로 내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세금만 축내지 않으면 남이사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반대파도 딱히 물고 늘어지지 않았으며, 유권자 여론조사만 해도 70% 넘는 수가 "별 문제 없다", 나머지 대부분은 "모르겠다"의 반응. 실제로 프랑스 정치인들은 대부분 정부를 두고 있으며,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인 1974년 혼외 딸을 낳았다는 사실이 재임 중에 알려졌지만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국정과 관련도 없는 보도로 대통령을 흔들려는 치졸한 수작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사실, 프랑스는 사생활에 대한 법적 보호가 매우 강해서 불륜이라는 소재로 함부로 기사를 쓰기가 어렵고 사람들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데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은 그런 가십이나 다름없는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올랑드가 전임자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된 이유는, 바로 다름아닌 오토바이 때문이었다! 니가 바람을 피우든 말든 상관 없는데 프랑스의 대통령이란 놈이 국산(프랑스제)을 안쓰고 감히 외국산(이탈리아제)을 써?라고 엄청 까였다.

이 스캔들[21]이 폭로되자 퍼스트 레이디였던 발레리는 충격을 받고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발레리는 올랑드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 결국 올랑드는 발레리와 결별하고 당분간 퍼스트레이디 없이 싱글로 지낸다고 한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MBC의 예능프로그램 ' 나 혼자 산다'에서도 회자되었는데, 2014년 2월 7일 방송분(42회)에서 자국 출신으로 대한민국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이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무지개 회원 ' 파비앙'(Fabien Yves Jerome Corbineau)이 아침식사 도중 이 사건을 언급한 뉴스[22]를 보다가 기겁하면서 이 사건을 두고 그를 "바람둥이"라 논평하여 화제가 되었다.

4. 망언

4.1. "이 빠진 사람" 발언 논란

2014년 9월 트리에르바일레가 올랑드가 가난한 사람을 '이 빠진 사람'(레 상 당, Les Sans-Dents)으로 희화화하면서 경멸했다고 폭로하면서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올랑드 본인은 자신은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도 않았다고 변명했지만 폭로처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올랑드 대통령의 전 동거녀이자, 영부인 역할을 하던 도중 올랑드의 외도로 인해 헤어졌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였기에 씨알도 먹히질 않았다.

여기서 왜 하필 '이 빠진 사람'이냐면, 프랑스는 국가 의료보험이 된다고 하지만 치과 치료비가 비싸서 가난한 프랑스 국민들은 치아가 썩거나 빠져도 치과에 가서 치료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기 때문이다. 프랑스 통계청(INSEE)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인 가운데 7%가 매년 치과 검진을 하지 않으며 이들 가운데 50%는 치과 검진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프랑스인 3명 가운데 1명이 검진 비용 때문에 치과 치료를 포기한 적이 있다. 특히 가난한 노년층의 경우 평균 15개의 치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더욱이 올랑드는 명목상진보 성향 정치인이었다. 우파 성향의 정치인이었어도 견디질 못하고 갈려나갈 말이겠지만 올랑드였기에 더 크게 비판을 받았다.

4.2. 알제리 비하 논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대해 망언을 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내무장관이 알제리를 방문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2013년 12월 16일에 프랑스 유대인 단체 대표자 회의에서 이를 두고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알제리 비하 발언으로,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매우 불쾌해했고 알제리 국민들도 분노했다. 또 "130여년 간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가 잘못된 것은 인정하지만 사과하지 않겠다."라는 발언도 했다.  아베 신조에게 한 과거사 발언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모순된 상황.

사실 프랑스가 배째라 할 수 있어도 알제리에 대하여 무시할 수도 없는데도 이렇게 굴어봐야 알제리 내 반프랑스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프랑스 기업이나 경제계로부터도 욕을 쳐먹었다.[23]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자원개발에서 여러모로 알제리 측은 프랑스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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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평으로 전체적인 요약이 가능.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취임했지만 그야말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제대로 망가진 대통령이었다. 프랑스 내의 이민자 문제, 알제리 식민지 배상 문제 등으로 인한 사회 갈등을 전혀 봉합하지도, 경제를 잘 컨트롤하지도 못했는데다가, 불륜 스캔들이 폭로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부적절한 처신 문제까지 있어서 그야말로 최악의 대통령이라며 좌우를 막론하고 까이고 있다.

특히 그가 한 정부 운영의 문제점으로 인해 프랑스 좌파와 사회당까지 몰락했다. 사회당은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서 브누아 아몽 후보는 한자리수 득표율로 5위를 기록하며 폭삭 망했으며, 이어진 2017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도 고작 44석에 그쳤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회당 후보 안 이달고가 1.7%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사실 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올랑드는 전형적인 민주주의의 만들어진 후보의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보통 민주주의 국가의 각 정당에서는 자신들의 후보를 위해서 후보에 대한 이미지메이킹을 상당히 하는데[24] 올랑드는 그 전략이 제대로 먹혀서 달라진 이미지로 민심을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된 정치인들의 한계인 정작 그 자리에 오른 뒤에 치세가 굉장히 좋지 않았고, 지지층의 외면을 받으면 대통령으로 올라온 당사자뿐 아니라 정당 전체가 흔들리는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올랑드와 사회당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우스갯소리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는 말도 있다. 자신의 내각 일원이었던 에마뉘엘 마크롱[25]이 2017년 대선에서 앙 마르슈! 소속으로 당선되었기 때문. 게다가 앙 마르슈 구성원 상당수가 사회당 내에서 우파로 평가받던 정치인들이고 사회당 의원 상당수도 사회당 후보였던 아몽을 버리고 마크롱을 지지하다 보니까 마크롱 정부를 올랑드 2기 집권기 정도로 보는 경우도 많다(...) 또, 사회당 의원들 상당수는 사회당을 탈당하고 앙 마르슈로 당적변경을 하여 여전히 올랑드 하에서 각료직을 지냈던 의원들 상당수는 생존하며 그나마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26]

그래도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 진보 성향 정치인답게 임기 초 동성결혼 LGBT 커플의 입양을 합법화하는 등 프랑스의 인권 분야에 있어서는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 또 2015년 파리협정을 주재한 대통령도 올랑드다.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4 - 정계 입문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수 (득표율) 2차 득표수 (득표율) 당락 비고
1981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3구

10,679 (26.40%) - 낙선 (2위)
1988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1구 14,786 (28.90%) 28,793 (53.91%) 당선 (1위) 초선
1993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12,835 (26.06%) 23,663 (46.70%) 낙선 (2위)
1997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16,639 (35.40%) 27,472 (54.52%) 당선 (1위) 재선
1999 유럽의회 선거 프랑스 3,874,231 (21.95%) - 당선 (1번) 초선
2001 프랑스 지방 선거 튈 시장 ??? (53.10%) 당선 (1위) 초선
2002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1구 19,684 (39.51%) 26,661 (52.92%) 당선 (1위) 3선
2007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20,879 (44.38%) 28,470 (60.25%) 당선(1위) 4선
2012 프랑스 대통령 선거 프랑스 10,273,582 (28.63%) 18,000,668 (51.64%) 당선 (1위) 초선
2024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1구 24,720 (37.63%) 28,751 (43.10%) 당선 (1위) 5선

8. 기타

  • 장남인 토마 올랑드(Thomas Hollande)는 프랑스의 여가수 조이스 조나탕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동거하다가 헤어졌다.
  • 예전에는 올랑드물이 조회수가 200만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아예 명줄이 끊겼다.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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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생존 중인 전현직 프랑스 대통령들 중 최고령이다. [2] 안도라 공동 영주 겸임. [3] 사실혼 관계. 올랑드와 마찬가지로 사회당 소속 정치인이였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해 결선 투표까지 진출했으나 47.1%를 득표해 53.1%를 득표한 사르코지에게 밀렸다. [4] 2022년 혼인신고를 하였다. [5] 네덜란드의 한 지방이자 다른 이름이기도 한 홀란트 프랑스어식 읽기. [6] 프랑스 대학은 졸업이 매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7] 사르코지 탓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애시당초 사르코지는 판만 깔아줬을 뿐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스트로스칸의 성중독에 있었다. [8] 특히 배우인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러시아로 도망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찬양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르는 중. [9] 다만 이명박은 조사에 따라서는 취임 4개월도 안 되어(...) 1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사 [10] 올랑드 집권 전인 2011년에는 2,2%였는데 딱 2012년 0.3%로 급락한 후 2013년 0.6%, 2014년 1.0%, 2015&2016년 1.1%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올랑드가 퇴임한 2017년 갑자기 2.3%로 폭등(?)했다. [11] 비교하자면 대침체 당시(2009)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8%였다. 이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도 못한 경제성장률을 세계적 경제위기도 없는 상황에서 5년이나 기록했다는 말. [12] 참고로 비슷한 시기 선진국 정치사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린 박근혜의 지지율이 이 정도였다! 때문에 한 네티즌은 레딧에 " 루이 16세도 올랑드보다는 지지율이 높았을 것"이라고 비야냥거리기도 했다. 참고로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 비율이 전체 인구의 2% 가량 됐다. # [13] 다만 러시아도 미국의 경제제재로 경제사정이 좋지 못하며 경제력이 약화되는 형편이다. [14] 'solid'가 '단단하다'라는 의미도 가지는 것을 이용한 언어 유희로 보인다. 제목 역시 상태변화(change of state)와 국정(state)에 대한 언어 유희. [15] 다만 프랑스 좌파의 거두였던 프랑수아 미테랑도 어느정도 이런 면모는 있었다. 특히 핵폭탄 실험을 반대하던 그린피스 선박을 공격명령을 내리게 한 적도 있다. [16] 하원의 의결을 생략하는 것이지, 상원에서는 의결을 받아아 한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원에서는 보수성향 공화당이 다수이므로 상원은 어렵지 않게 통과. 이를 저지하려면 내각불신임결의를 국민의회(하원)에서 가결시켜야 하며, 불신임안이 부결될 경우 총리가 직권으로 통과시킨 법률안은 정식으로 성립한다. [17] 이후 2023년, 이 날치기를 기획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하 엘리자베트 보른 내각이 연금개혁법안을 하원 의결 없이 성립시킨 때에도 프랑스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18] 한화로 1264만원에 달한다. [19] 그것도 국가 비상사태 와중에 이 참사가 터졌다. [20] 중남미 국가에서는 사례가 다소 있다. [21] 사실 정식 결혼이 아니므로 불륜이라고 보기도 그렇다. 프랑스에는 간통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사실혼 관계일 경우 결별할 경우에도 전혀 위자료를 받을 수 없다. [22] 정확히는 프랑스2TV(France 2) 8시 저녁종합뉴스 'Journal 20 Heures'의 인터넷 다시보기. 참고로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시차는 8시간(프랑스에서 저녁 8시=다음날 한국시간 새벽 4시) 으로서, 한국시간으로 아침 한가운데 쯤이면 전날의 뉴스가 업로드되기에, 파비앙처럼 아침식사를 먹으며 전날 뉴스를 시청할 수 있다. [23] 알제리 항목을 보면 엄청난 자원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프랑스가 알제리에 때론 굽혀야 하는 상황이다! [24]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유약한 이미지의 안철수가 강철수라고 강한 이미지를 주거나, 홍준표 트럼피즘의 스트롱맨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 있다. [25] 올랑드 대통령 부비서실장,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직 역임 [26] 유사 사례로 올랑드도 유능해 보일 수준의 실정으로 인해 지지율이 96%에서 9%로 떨어졌음에도 자신이 밀어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한 페루 알란 가르시아가 있다. 그리고 가르시아는 퇴임 16년 후 재선에 성공했다. [27]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에마뉘엘 마크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