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1768~1830)에 대한 내용은 조제프 푸리에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colcolor=#fff> 샤를 푸리에 Charles Fouri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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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
출생 | 1772년 4월 7일 |
프랑스 왕국 브장송 | |
사망 | 1837년 10월 10일 (향년 65세) |
프랑스 왕국 파리 | |
직업 | 철학자 |
사상 | 사회주의 (푸리에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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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의 사회주의 철학자, 사상가.그는 자코뱅내 급진 좌파세력인 몽테뉴파(Montagnards)[1]의 사상적 계승자로 알려져 있으며 급진적 공화주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사상
그는 공상적 사회주의의 한 인물로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실 다른 두명과 비교해봤을때 그의 사상은 현대 기준으로도 좀 많이 급진적인 편이다. 일례로, 1837년 샤를 푸리에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보는 팔랑스테르(phalanstery)에서 전통 가정을 비웃고 광란의 그룹 섹스 파티를 벌여야 인류의 내재적 욕망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랑과 열정적 매력을 여성의 여성해방론에 의해서 성을 공유해야 하며, 성 학대, 근친상간, 심지어 수간을 포함해 그 어떤 형식의 성 만족 이든 모두 허락해야 한다는 엽기적인 주장까지 펼치기도 하였다.그는 우애와 협동에 기반한 사회주의야말로 사회적 성공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팔랑쥬(Phalanstère)라는 공산촌 계획을 수립하여 노동생산성과 경제적 평등성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거대한 집산주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는 작업지에 원통형 또는 사각 고리 형태의 아파트를 지은 다음, 모든 사람이 평균이상의 주거 수준을 누릴 수 있게 한 동시에, 생산성 상승을 꾀하기 위하여, 생산성이 제일 낮다고 평가되는 노동자는 1층, 제일 높다고 판단되는 노동자를 제일 위의 층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자리는 각 개인의 희망에 따라 분배하는 동시에, 의무로 지정된 하루 근로 시간은 6시간이며, 일주일 중 하루는 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재화의 경우는, 모두에게 기초적인 재화를 분배하되, 생산성에 따른 약간의 차등을 둔다. 이것 외에도 육아를 위한 탁아소, 그리고 정신적 안정을 위한 건전한 오락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시설, 교육 시설, 의료 시설, 공동 식당 등을 두어야 하며, 인류애를 증가시키기 위한 이성(logos)의 제단을 만들어서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함을 설파했다.
그는 사회적 병리 현상의 주요 원인을 문명의 물질적 발전에 따른 상업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 당시 자본주의라는 표현은 없었지만, 그가 비판하는 상업화란 현대의 자본주의와 유사하다. 그는 전방위적인 상업화가 과거 중세 몽매 시기에 비해 훨씬 높은 생산성을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인간의 정신을 크게 타락시켜 '최고 존재로서의 신'(우주만물의 이성)에 대한 추구성을 파괴했다고 하였다. 그는 그 자신이 유물론자였으나,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의 원리에 기반한 삶, 즉, 정신에서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찰은 빠져 있으며 어디까지나 부르주아와 같은 기존 기득권층과 노동 계급이 화해해 다같이 잘사는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식의 이상론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마르크스가 그를 비롯에 오언과[2] 생 시몽을 한데 묶어 공상적 사회주의자라 칭한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 위에 나왔듯 그는 기존 질서의 파괴를 역설했으나 동시에 또다른 질서에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적용시키려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질서의 해체를 위한 무분멸한 광기와 폭력까지 옹호하고 말았다.[3]
3. 여담
[1]
'산악파'나 '급진자코뱅'으로도 번역한다.
[2]
오언은 실제로 신대륙에 마을을 지어 자신의 구상을 실험해보았으나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다.
[3]
사실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그 당시와 지금의 관점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지금의 폭력에 대한 관점으로 푸리에의 폭력을 논하는 것은 흔히 연구방법론에서 경계하는 논리적 오류를 유발할 수 있다.
대혁명을 통해서 수백년간 지속되어온 견고한 구체제를 격파한 것은 결국 민중운동이자 집단적 폭력이었기 때문에 푸리에 역시 이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4]
가끔 서구권의 일부 기독교 우파나 극우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가 시초라는
색깔론을 펴기도 하는데, 사실 근세 내지 근대의 진보적 이데올로기 상당수는
계몽주의 전통의 직계이기 때문에 반쯤 말장난인 측면이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계몽주의 전통에서 여성의 인권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며 여성 운동의 기원도 계몽주의에 있다. 즉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자유주의와 초기
사회주의 모두 철학적 방향성은 매우 다를지언정 뿌리는 같다.
[5]
이런 진보주의 교육은
장 자크 루소가 이미 말했던 것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