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02:20

스페인계 멕시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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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민사
2.1. 누에바에스파냐 시대
2.1.1. 식민지의 카스티야인
2.2. 멕시코 독립 이후
3. 바케로4. 멕시코의 혐스페인인 감정5. 유명 인물6. 같이 보기

1. 개요

오늘날 멕시코 인구의 약 80~90%가 스페인계 혈통을 일부 이상 물려받았다.[1] 스페인계 멕시코인은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시대 누에바에스파냐에 정착/체류한 페닌술라르 혹은 근현대에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민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스페인인들의 멕시코 이민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 1521년 스페인이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이후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신대륙 이민 붐이 일던 시절
  • 20세기 중반 스페인 내전 시기
  •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스페인 내 청년 실업률이 40%대를 찍은 이후

2. 이민사

2.1. 누에바에스파냐 시대

파일:Lascastas.jpg

오늘날에 멕시코에 해당하는 지역들은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이후 스페인 출신 군인과 선원들이 대거 정착하게 된다. 초창기 스페인인들이 데려온 돼지 등이 옮겨온 질병으로 인해서 많은 아즈텍, 마야 원주민들이 사망하고, 스페인 군인들이 원주민 여성들을 현지처로 삼으면서 오늘날 멕시코 인구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메스티소들이 생겨났다. 스페인 식민지 시기 수백여 년에 걸쳐 총 50만여 명의 스페인인들이 멕시코에 정착하였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발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사실이 잘 알려져있지만, 아메리카에 정착한 스페인인들 역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 스페인에서는 노다지 식민지에 파견할 유능한 관료들이 식민지 발령을 거부하거나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이들에게 반도인 즉 페닌술라르라는 감투를 씌워준 이후 식민지 내에서 왕 못지않은 절대권력을 누리도록 허락하면서,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에는 라 카스타 라고 부르는 일종의 카스트 제도가 형성되었다. 카스트 제도의 최상층에는 페닌술라르, 그 다음에는 식민지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인 크리오요가 있었고, 원주민 및 흑인 노예들은 사회 하층 계급으로 차별받았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초창기에 누에바에스파냐로 이주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었고, 이 때문에 오늘날 멕시코인 상당수는 혼혈인 메스티소이다. 이는 오늘날 멕시코인들의 외양에도 반영되는데, 스페인인 중에서는 벽안이 그렇게 드물지 않은 반면, 멕시코에서는 벽안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 한 편 멕시코인 특유의 코뿔소 모양 코 역시 스페인인과 멕시코 일대 원주민 사이의 혼혈로 인한 특징 중 하나이다. # 스페인에서 온 여성 이민자들은 주로 유대계였다. 스페인 내에서 종교재판으로 탄압받던 세파르드 유대인들이 살인적인 박해를 피해 어쩔 수 없이 가족 전체를 데리고 이주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2]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왕실은 유대인의 이민을 엄격히 금지했고 지속적으로 이민금지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이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돈으로 면제부를 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갈 수 있었다. 스페인 왕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이민 금지와 허용을 반복한 것은 스페인 왕실의 재정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왕실이 이민 규정을 강화할 때마다 유대인 신분을 세탁할 증명서의 값도 상승했고 이에 따라 국고 수입도 늘어갔다. 이런 점에서, 당시 유대인의 이민은 전적으로 국왕의 손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군인, 선원 그리고 종들은 이런 증명서가 없이도 스페인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런 직업으로 바꿔 신세계에 갈 수 있었다. 한편, 많은 수의 유대인 후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스페인식으로 개명한 , 16세기 중반 누에바에스파냐에 정착하게 된다.

멕시코 유대인 이민과 종교재판 - 식민시기 초기 누에바에스파냐

신대륙에는 백인 인구가 특히 여성 인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도 몰래 유대교를 믿는다고 심하게 박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만, 차별은 존재했다. 식민지 시대 초기 누에바에스파냐의 백인 여성들은 상당수가 이런 유대계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들 대다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몰래 믿던 유대교 전통을 잊어버리고 멕시코의 가톨릭 인구와 동화되었다.[3]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이런 순혈주의가 만연했던 이유나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했던 이유는 근세 당시 스페인의 상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레콩키스타가 완료된 1492년은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했다. 스페인은 레콩키스타를 거치며 강성 가톨릭 국가가 되었고, 그 결과 유럽 스페인 본토의 세파르딤들과 무데하르 상당수가 가톨릭으로 개종당하거나 추방당했으며, 스페인 내에서는 조상 대대로 가톨릭 신도였는지를 중시 여기는 순혈주의 풍조가 생겨났다.[4]

페닌술라르들이 가정을 꾸리거나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눌러앉으면 후손들은 순혈 유럽인이라도 계급이 한 단계 강등( 크리오요)이 되어버리므로 부인을 데려온 사람들의 경우 임기가 끝나면 대다수가 귀국을 택해버렸다. 스페인 제국 정부 입장에서는 파견보낸 관료들이 식민지에서 세습 군벌 왕조를 세우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5] 스페인계 페닌술라르들은 독립 이전 누에바에스파냐 사회의 특권층을 차지했다.

2.1.1. 식민지의 카스티야인

물론 스페인에서 식민지로 파견된 백인들이 다 귀족 관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항해시대 당시 선원 일은 매우 고된 것은 물론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직업이었고, 스페인의 항구도시 세비야의 고아원에서 자라난 남자아이들은 8살 정도가 되면 선원으로 투입되어 아카풀코 마닐라를 오고가는 갤리언을 타게 되었다. 이들은 누에바에스파냐의 필리핀 도독령에서 카스티야인(Los Castellanos)이라고 불리는데, 카스티야 연합 왕국 출신 사람이라는 의미이다.[6] 멕시코에서 필리핀 도독령으로 파견되는 스페인 혼혈 메스티소들 역시 같은 이유로 카스티야인으로 불리곤 했다.

이웃나라 포르투갈의 경우 본토에서 식민지로 파견되는 사람들은 귀족 출신이 아닌 이상 스페인과 같은 특혜가 없어서, 유럽 본토에서 파견된 병사들이 심지어 식민지에서 현지인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받아낼 정도였다. 이렇게 푸대접받던 선원들과 병사들은 금방 소모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러다보니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 급격히 소모된 인력을 다시 보충하는데 실패함으로써 결국 전성기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네덜란드에게 밀려난다. 반면 스페인의 경우 네덜란드처럼 주식회사 등을 통한 효율적인 수익금 분배 방법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가장 수익성이 좋았던 태평양 갈레온 무역을 인력 문제 없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갈레온 선원 중 2/3 이상은 식민지 출신, 1/3 정도는 스페인 본토 출신으로 채웠는데 어릴 때부터 배를 타서 숙련된 스페인인 선원들에게는 배급 우선권이 주어졌고, 필리핀인 전쟁포로가 중심이 되는 미숙련 선원들에 비해 항해 도중 사망률도 낮았다. 숙련된 선원의 사망률이 낮아지면 운수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물론이다.

2.2. 멕시코 독립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보르본 왕조는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 내에 중앙집권적 행정력을 강화하는 이런저런 개혁 조치를 취하고, 이는 현지 태생 백인들인 크리오요들의 자치권 축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반발한 크리오요들은 결국 라틴아메리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쟁취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멕시코 역시 1821년부로 독립을 쟁취하였다. 멕시코 제1연방공화국 시기에 해당하는 1827년부터 1829년 사이 법령에 의해 멕시코에 체류하던 스페인 국민 중 절반 가량이 추방되거나 학살당했다.

185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스페인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한 인구는 350만여 명에 달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쿠바로 이민하였고 멕시코로 이민한 인구는 소수였다. 스페인 내전 이전까지 멕시코는 스페인인들의 이민 관련하여 이런저런 제한을 가했다.

파일:1440px-El_exilio_español_en_la_CD_de_México_(19).jpg
스페인 내전 당시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공화파를 지지한 국가로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멕시코 이렇게 두 국가가 있었다. 상당수의 스페인 공화파 출신 인물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멕시코로 피난보냈는데, 결국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 정권의 승리로 끝나자 공화파 난민 상당수가 멕시코로 영구 이주하게 되었다. # 스페인 내전 시기 멕시코 정착을 결정한 난민 18,000여 명 중 25%는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텔리 계층으로 멕시코 내 여러가지 갈등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내전 당시 탈출한 지식인들은 반파시스트 성향의 좌파 예술가들이 많았고, 이는 현대 멕시코 문화의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멕시코 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루이스 부뉴엘부터 시작해[7]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등이 대표적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멕시코로 이민한 사람들 중 카탈루냐, 바스크[8] 출신이 많았다면 2008년 스페인 경제 위기로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이 치솟자 마드리드 출신 카스티야인들을 중심으로 멕시코 이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3. 바케로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과 안달루시아 내륙 지역은 농업이 불리한 건조지역이었고, 농업보다는 목축업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했다. 카스티야와 안달루시아 출신 스페인인 상당수는 오늘날 선벨트와 멕시코 북부의 건조지대에서도 스페인 내륙에서 하던데로 말을 타고 다니며 소와 양을 쳤는데, 이들은 스페인어로 바케로(Vaquero)라고 불렸으며, 오늘날 멕시코 중부의 메스티소/인디오 목동 차로(Charro)와 미국의 카우보이의 직계 기원이 되었다.[9] 캘리포니아와 그레이트베이슨 지역에서 카우보이를 지칭하는 이명 중 하나인 버커루(buckaroo)의 어원은 바케로를 영어식으로 잘못 읽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미국과 멕시코의 승마술은 아랍 승마술과도 의외로 많이 겹친다. 바케로의 마술과 승마용 장비는 히네테(Jinete)라고 불리던 중세 이베리아의 경기병들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레콩키스타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무슬림들의 승마술 및 말 관리법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4. 멕시코의 혐스페인인 감정

파일:El exilio español en la CD de México.jpg
독립 이후 멕시코는 자국의 국민 정체성을 새로이 규정하는 과정에서 스페인인들을 악마화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스페인인들이 멕시코에 사업을 하거나 이민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오늘날 멕시코의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남긴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는 자신의 그림에서 미국인들과 스페인인들을 탐욕스런 침략자이자 압제자로 묘사하는 여러 작품을 남겼다. 일개 지방 농민 반란군 지도자였으나, 후대 들어서 어른의 사정으로 이른바 멕시코의 국부로까지 격상된 미겔 이달고 신부는[10] 스페인인들을 두고 "돈을 숭배하는 비인간적인 비열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던 바 있었다. 20세기 초반 미국 기업의 진출과 중국인 이민에 반발하면서 일어난 멕시코 혁명 당시 스페인인들이 소유한 기업들도 표적이 되었는데, 당시 멕시코 각지에서 스페인인 200여 명이 멕시코 폭도들에게 강도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새로 유입된 스페인계 멕시코인들은 여타 멕시코인들 사이에서 주로 베레모를 쓰고( 바스크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아무데서나 쿠바산 시가를 가지고 길빵을 하고,[11] 멕시코인들이 주로 마시는 맥주나 데킬라 대신 일부러 와인을 마시며 사치를 부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흥미로운 점은 근대 이전 멕시코에 집중적으로 이민을 와서 현지 유럽계, 메스티소 엘리트를 형성한 스페인인들은 거의 대부분 안달루시아, 카스티야, 엑스트레마두라에서 온 남부 이베리아인들이었던 반면, 20세기 정치적으로 망명해온 스페인 난민들은 상당수가 바스크, 카탈루냐 사람들이라 토착 멕시코 메스티소들이 이들을 두고 말하는 "베레모 쓰고 시가 피는 깍쟁이" 등의 고정관념 상당수가 스페인 본토에서의 남북 지역간 담론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항목들이란 점이다.

물론 스페인인들과 멕시코인들 모두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멕시코 문화의 상당부분이 스페인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서로간의 차별이나 반목이 심한 것은 아니라고도 하지만, 이는 주로 전근대부터 있었던 백인 침략자와 원주민의 갈등 및 페닌술라르와 크리오요의 갈등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멕시코 사회 내 백인과 메스티소 간의 갈등의 연장선상이라고 봐야 옳겠다.

5. 유명 인물

6. 같이 보기



[1] 2008년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멕시코인의 유전자는 백인 29.6%, 원주민 60.1%, 흑인 10.1%로 이루어졌다. # [2] 이러한 경향은 멕시코보다는 포르투갈의 브라질 식민지에서 훨씬 더 두드러졌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의 경우 인구가 100만여 명에 이주민도 적었기 때문에, 식민지 경영 인력이 부족한 편이었고 이 때문에 자국의 해외 식민지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좀 더 관대한 편이었다. [3] 오늘날 멕시코의 유대인 인구는 주로 20세기 유럽/중동 등지에서 반유대주의를 피해 이민한 유대인들의 후손으로, 상술한 대항해시대 이민정착한 유대인들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다. [4] 한 편 스페인의 모리스코/ 무데하르 인구 대다수는 스페인 동부 해안의 아라곤 왕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식민지로의 이주가 쉽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오스만 제국이나 북아프리카 같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민이 가능했다. [5] 중세 압바스 칼리프조 몽골 제국이 해체된 이유도 지방에 파견된 관료들이나 장수들이 현지에서 세습 왕조를 세우고, 반독립 상태를 유지하면서 거대한 제국이 시나브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 본토 사이에 거대한 대서양을 끼고 있고 유럽과의 거리가 상당히 먼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라면 이런 위험이 더 컸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6]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전 스페인은 카스티야-레온 왕국 아라곤 왕국의 동군연합 상태였는데, 아라곤 왕국의 신민이 아메리카 식민지로 파견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7] 멕시코 영화로 유명해진 아르투르 립스테인도 부뉴엘 조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8] 그래서 현대 멕시코에는 가르시아(Garcia), 소레기에타(Zorreguieta) 등의 바스크계 성씨가 존재한다. [9]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1846년 미국은 멕시코에게 전쟁을 걸어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텍사스 등등을 포함하는 광활한 선벨트 일대를 점령했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살던 멕시코인 목동들은 미국 국민으로 편입되었다. 1860년대 남북 전쟁이 끝나고 남군 출신 실업자들이 그동안 히스패닉들이 주로 종사하던 목동 일에 뛰어들면서 서부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카우보이 문화가 정립되었다 한다. [10] 참고로 미겔 이달고의 반란을 진압한 산타 안나는 몇 십년 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졸전을 벌여 대패한 인물이고, 멕시코 독립을 지휘했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왕권신수설 신봉자였다. 미겔 이달고는 한국으로 치면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 정도의 포지션인데, 멕시코 독립 초기 인물들이 어딘가 하자가 많다보니, 대신 국부로 평가받게 된 셈. [11] 남유럽은 전반적으로 흡연에 관대한 편이다. 대조적으로 멕시코는 마약이 흔해서인지는 몰라도 흡연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12] 식민지 개척 초창기 당시에는 아프리카에서 다이렉트로 이민 온 노예들이 아닌 스페인 흑인 콩키스타도르들이 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