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3:14:46

스페인 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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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중세2.2. 근세2.3. 근대2.4. 현대
3. 관련 문서

1. 개요


스페인 흑인 스페인에 거주하는 흑인들을 가리킨다. 스페인 흑인들의 대부분은 적도 기니 출신이 차지하며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등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 국가에서도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오고 있으며 그외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 감비아, 말리 서아프리카출신 이민자도 있는 편이다. 여기에 흑인 이민자들의 스페인국적 취득여부를 조사하여 전부 포함다면 대략 최소 35만 명부터 최대 68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1, #2 또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외에도 라틴아메리카 출신 흑인도 적지 않다. 일부는 투아레그족 출신 이민자인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스페인의 전체인구의 흑인 비율은 1~2% 내외로 보는 편.

아프리카계 흑인 인구비율 자체는 타 유럽국가에 비하면 결코 많은 편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아프리카계 인구만 따지면 모로코인이 93만명에 육박하기 때문에 아프리카계 유럽인만 따지면 절대적인 인구수나 비율 자체는 유럽에서 상당한 편이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스페인에 거주하는 마그레브 아랍인 흑인을 포함한 아프리카계 인구수는 130만 명이다.

2. 역사

2.1. 중세

서기 8세기 초 서고트 왕국 우마이야 칼리프조에게 정복된 이후 이베리아 반도는 수백여 년에 걸쳐 무슬림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와 타이파 시대 당시 무슬림 위정자들은 동유럽 일대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였는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은 북아프리카의 탕헤르 항구를 통해 수입되었고 슬라브족 백인 노예들은 주로 오늘날 체코의 프라하나 프랑스의 베르됭을 거쳐 수입되었다.

그러나 알 안달루스의 무슬림 위정자들은 후우마이야 왕조 칼리파들이 대부분 혼혈로 인해 금발벽안이었다는 기록 등에서 보듯[1] 백인들을 우대하였으며, 흑인들을 천시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후우마이야 왕조가 붕괴한 이후 타이파 시대[2]가 도래했을 당시 슬라브계 노예(사깔리바; صقالبة) 병사들이 자체적인 타이파 왕조를 건국, 유지한 역사는 있어도 흑인들이 주축이 된 타이파 왕조가 건국된 역사는 없다.

하지만 타이파 왕조들의 전성시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무라비트 왕조에 의해 끝을 맺었다. 11세기 오늘날 세네갈 모리타니 일대에서 기원한 무라비트 왕조 가나 제국을 약탈하여 국력을 신장시킨 이후 여세를 몰아 11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여, 여러 타이파국들을 병합하고 북쪽의 기독교 세력과 대치하였다.[3] 무라비트 왕조의 건국세력 람투나족들은 서아프리카 일대의 여타 베르베르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흑백혼혈 외양을 가진 경우가 많았는데, 유럽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이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다르게 유달리 피부색이 짙게 보였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스페인에서는 피부색이 짙거나 검은 사람들을 모로스라고 부르곤 했다. 중세를 다룬 사극에서 흑인들을 무어인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중세 영어[4]에서도 흑인을 Moor, Moors라고 지칭했기 때문이다.[5]

2.2. 근세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왕국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해 중남미는 스페인 제국의 영토, 아프리카와 브라질은 포르투갈 왕국의 영토가 됐다. 15세기 중반 이래 포르투갈 왕국이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노예 무역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흑인 노예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여러 도시국가들이나 스페인으로 팔려나갔다.

일부 흑인들은 콩키스타도르에 합류하여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을 정복하는데 군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 중 역사 기록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출신 배경이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 콩키스타도르(스페인어)

파일:Juan Garrido el negro Conquistador.jpg
  • 후안 가리도(Juan Garrido) : 위에 그림에서 갑옷 입은 백인들 사이에 있는 흑인. 서아프리카 출신으로 포르투갈인들에게 납치되었다가 1510년 리스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 이후 아즈텍 제국을 정벌하는 콩키스타도르에 합류하였다. 군공을 인정받은 후 누에바에스파냐에 최초로 밀밭을 일구고 흑인 노예들을 최초로 멕시코로 데려와서 광산 개발을 시도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 에스테반 엘 네그로(Estevan el Negro, Estevanico) : 자신의 출신 배경 관련해서 negro alárabe, natural de Azamor( 아랍화된 흑인, 아자무르 출신)이라는 기록 한 줄을 남겼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선단에 아랍어 통역 두 명이 탑승했다는 기록에서 보듯,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출신 탐사대들은 아랍어 통역을 일부 대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플로리다에서 탐험을 하다 배가 좌초되어 동료 2명만 살아남은 상태에서 원주민의 노예가 되었다가, 주술사로 전직한 후 탈출하여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횡단한 후 다시 남쪽으로 걸어가서 스페인 식민지로 돌아왔다.
  • 베아트리스 데 팔라시오스(Beatriz de Palacios) : 무어인과 스페인인 혼혈로 여성 콩키스타도르였다.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정복 초창기에는 스페인 흑인들의 입지가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원주민 인구가 격감하고, 반대로 플랜테이션 농업 노동력 수요는 급증하는 상황에서 노예 노동의 수요가 폭증하였고, 그 결과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로 수입되는 흑인 노예들 상당수는 소모품이나 가축 수준의 처참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스페인과 이웃한 포르투갈의 경우 흑인 해방노예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일이 흔했지만, 스페인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스페인의 경우 식민지 경영 과정에서 반도 출신 백인 이른바 페닌술라레스와 식민지 출신 백인 크리오요를 엄격히 구분하고 차별하였던 상황으로,[6] 그만큼 순혈주의에 더 엄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흑인들이 근세 스페인에서 제대로 자리잡기는 쉽지 않았다.

애초에 포르투갈 제국은 영토 상당부분이 해외 식민지였으나 본토의 인구가 스페인 제국에 비해서 적어서 노동력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페인 제국처럼 차별을 두면서 까지 할 건덕지가 못되었다. 한 편 포르투갈 제국은 출신 대륙이나 인종 대신에 종교 교파 문제로 식민지 현지 주민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겪는 문제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에티오피아에서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믿던 현지인들에게 가톨릭을 강요하다 축출당한 사례를 들 수 있다. 결국 포르투갈 제국은 아프리카 대륙에 브라질만한 규모의 식민지를 건설하는데는 실패하였고, 흑인 신민들의 인구 비율은 일정한 수준 이내로 조절되었다.

2.3. 근대

19세기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미국에게 쿠바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쿠바인 일부가 스페인으로 망명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스페인인 농장주들이 함께 데려온 흑인 정부나 흑백혼혈인 집사 등등도 적지는 않았다.

2.4. 현대

현대에는 적도 기니 출신의 스페인 흑인들이 많은 편이다.[7] 스페인 흑인들중에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경제적인 이유로 스페인으로 건너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20세기 후반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 에콰도르나 콜롬비아 등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스페인에 체류 혹은 정착하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흑백혼혈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경제위기 이후로는 베네수엘라인들의 스페인 이주도 늘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민들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내 피부색 차별 문화 관련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있고 해서 흑인 혈통을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지는 않는 편이다.

2010년대 중반, 유럽 난민 사태가 일어나자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스페인을 통해 독일, 영국 등으로 이주했지만, 스페인에 장착한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이 당시 스페인의 실업률이 20%를 넘었을 정도로 경제가 어려웠기 때문에 일거리가 있을리는 없었고, 이 때문에 농가같은곳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용돈 정도의 돈만 받고 일하는 열정페이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돈을 모으면 일거리가 많은 북유럽, 중부유럽, 영국 등으로 떠났다. 딱 중간거점용으로 머무르는 셈이다.[8]

3. 관련 문서



[1] 10~11세기 당시 활동한 알 안달루스의 유명 수학자 이븐 하즘의 기록 [2] 후우마이야 왕조가 붕괴된 이후 들어선 소규모 이슬람 독립 공국들 [3] 여담으로 20세기 미국의 흑인우월주의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 등에서는 오늘날 미국 흑인들이 과거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던 무라비트 왕조의 직계 후예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다소 비약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미국 흑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세네갈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출신인 것도 있어서 한 때 폭 넓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오늘날 아프리카중심주의자들 역시 미국 흑인 무라비트 왕조 기원설을 요즘도 우려먹는다. [4] 중세 유럽 각국의 기사들이나 모험가들이 중세 내내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던 이베리아 반도로 찾아왔는데 이들 중에는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 출신도 적지 않았다. [5] According to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the Moors, as early as the Middle Ages and as late as the 17th century, were “commonly supposed to be black or very swarthy, and hence the word is often used for Negro.” # [6] 이런 차별 제도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스페인 제국이 무슨 몽골제국마냥 식민지에서 세습 군벌 왕조가 생기며 금방 독립해나갈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가 스페인 제국의 영토 상당부분은 해외 식민지였다. [7]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은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아랍어가 공용어이지만, 적도 기니는 아프리카의 유일한 스페인어 사용국이다. [8] 이런 노동착취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유럽 농산물 가격이 싼 이유가 이러한 노동착취를 통한 인건비 절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