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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어: Հայ մեքսիկացի
스페인어: armenio mexicano
1. 개요
아르메니아계 멕시코인은 아르메니아인이 멕시코로 귀화한 경우 혹은 아르메니아계 혈통을 이어받은 멕시코인를 의미한다. 멕시코와 아르메니아 사이의 접점은 서기 17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긴 하지만, 근현대 기준으로 멕시코로 이민했던 일부 아르메니아인들이 멕시코에 체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회가 되는데로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한 이유로 오늘날 멕시코에 잔류한 아르메니아계 인구는 수백여 명 규모에 불과하다.2. 이민사
오늘날 멕시코의 전신이 되는 스페인 제국의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는 근세 대항해 시대 당시 갤리온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스페인의 알짜 식민지였고,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멕시코 각지에 정착했던 바 있다. 1632년 프란시스코 마르틴이라는 이름의 아르메니아인이 멕시코에 도착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1723년에는 아르메니아인 상인 세 명이 필리핀 도독령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갈레온을 타고 멕시코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사실 아르메니아인들이 대항해시대 당시 멕시코에 도착했다는 기록은 놀랄 것도 없는데,[1][2] 당대 아르메니아인들의 무역망은 중동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북유럽,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국은 물론 말레이시아에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이 멕시코까지 와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이들의 후손들이 뭐하고 살았는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부족한데, 이는 당시 누에바에스파냐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일단 대항해시대 당시 스페인 제국은 가문과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였고, 고위직에 진출하려면 자신의 조상이 유대인, 무슬림 출신이 아닌 스페인 가톨릭교도라는 것을 공증해야만 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혹은 아르메니아 가톨릭을 믿던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러한 누에바에스파냐 사회 분위기 내에서 자신의 출신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편이 유리했다. 멕시코 측 사료에 등장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전부 스페인어 이름으로 기록되었던 것을 보면 멕시코에 정착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유사 사례로 누에바에스파냐에 정착한 세파르드 유대인 후손들이 사회적 차별을 피해 족보 상의 조상을 스페인인 가톨릭교도로 조작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18세기 들어서 멕시코와 아르메니아 사이의 인적 교류 관련 기록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지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누에바에스파냐의 부를 지탱하던 은 광산들이 하나둘씩 서서히 고갈되면서, 멕시코와 중국 사이의 교류가 줄어들었다. 이는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의 부 자체가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아르메니아인들 입장에서 굳이 장거리 여행이라는 리스크를 무릅쓰고 멕시코까지 찾아갈 이유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아시아 무역 거점 역할을 하던 이란의 사파비 제국이 몰락하고 아르메니아인 상인 공동체가 여러 차례 약탈을 당해 큰 타격을 입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인도양-태평양 방면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19세기 말 멕시코의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은 멕시코를 아르헨티나처럼 백인 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 하에서 유럽인 이민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는데, 이 가운데에서는 아르메니아인 이민 계획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계획과는 다르게 멕시코로 이민을 희망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소수에 불과하였고, 20세기 초반 멕시코로 이민한 일부 아르메니아인들 역시 기회가 닫는데로 국경을 넘어 캘리포니아 LA로 이주해버리고 말았다.
소련 해체 이후 동유럽의 아르메니아인 중 일부가 멕시코로 이민, 정착한 사례가 있다.
3. 유명 인물
- 아르투로 사루칸 -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주미 멕시코 대사를 역임한 인물로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후손
- 시우사나 멜리키얀 리소프스키 : 멕시코 여배우로 아르메니아계 우크라이나인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