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11:43:09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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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주요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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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뮤직 매거진 선정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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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BBC 뮤직 매거진이 전세계 저명한 현역 피아노 연주자 100명에게 레코딩 시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목록이다. 출처
<rowcolor=#000> 순위 피아니스트
<colcolor=#000><colbgcolor=#fff> 1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2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3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4위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5위 알프레드 코르토
6위 디누 리파티
7위 아르투르 슈나벨
8위 에밀 길렐스
9위 마르타 아르헤리치
10위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11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12위 이그나츠 프리드만
13위 라두 루푸
14위 에드빈 피셔
15위 빌헬름 켐프
16위 머리 페라이어
17위 글렌 굴드
18위 발터 기제킹
19위 요제프 호프만
20위 클라우디오 아라우
○: 생존 피아니스트
†: 목록 선정 당시 생존하였으나 나중에 사망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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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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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1f2023>파일:D8FE539D-CCB2-44DA-9D5B-B6EEC0E8759F.png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은 예술적 탁월함, 혁신, 혹은 상상력을 통해 클래식 음악 녹음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는 첫 발표(2012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는 두번째 발표(2013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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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게오르그 솔티 | 클라우디오 아바도 | 존 바비롤리 | 다니엘 바렌보임 | 토머스 비첨 | 레너드 번스타인 | 피에르 불레즈 | 존 엘리엇 가디너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카를로스 클라이버 | 오토 클렘페러 | 사이먼 래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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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브리튼 | 리카르도 샤이 |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 네빌 마리너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 유진 오르만디 | 안토니오 파파노 | 트레버 피노크 | 프리츠 라이너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 마이클 틸슨 토머스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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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파바로티 | 플라시도 도밍고 | 마리아 칼라스 | 유시 비욜링 | 자네트 베이커 | 안젤라 게오르기우 | 체칠리아 바르톨리 | 엔리코 카루소 |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 비르기트 닐손 |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 조안 서덜랜드 | 조이스 디도나토
몽세라 카바예 | 르네 플레밍 | 토머스 햄프슨 | 안나 네트렙코 | 레온타인 프라이스 | 브린 터펠 | 프리츠 분더리히
토머스 앨렌 |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 호세 카레라스 | 표도르 샬리아핀 | 캐슬린 페리어 | 시르스텐 플라그스타 | 니콜라이 갸로프 | 티토 고비 | 마릴린 혼 | 한스 호터 |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 군둘라 야노비츠 | 요나스 카우프만 | 사이먼 킨리사이드 | 엠마 커크비 | 제시 노먼 | 안네 소피 폰 오터 | 레나타 테발디 | 키리 테 카나와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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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앙드레 | 줄리안 브림 | 제임스 골웨이 | 하인츠 홀리거 | 스티븐 이설리스 | 요요마 | 윈튼 마살리스 | 알브레흐트 마이어 | 안네 소피 무터 | 엠마누엘 파후드 | 장 피에르 랑팔 | 조르디 사발 | 안드레스 세고비아
데니스 브레인 | 정경화 | 아르튀르 그뤼미오 | 프리츠 크라이슬러 | 기돈 크레머 | 나탄 밀스타인 | 존 윌리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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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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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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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 1978년 <colbgcolor=#fff,#1f2023>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 조지 애벗, 릴리안 기시,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험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 앨빈 에일리, 조지 번즈,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 베티 콤덴, 로이 에이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 자니 카슨, 아서 미첼, 게오르그 솔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푸아티에, 닐 사이먼
1996년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 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넬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안젤라 랜스버리
}}}}}}}}} ||
21세기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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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 2001년 <colbgcolor=#fff,#1f2023> 줄리 앤드류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 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 제임스 브라운, 캐롤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 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 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코세이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 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 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 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 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 마티나 아로요, 허비 행콕, 빌리 조엘, 셜리 맥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 알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 캐롤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 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먼 리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 셰어, 필립 글래스, 레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2019년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세서미 스트리트, 샐리 필드, 린다 론스태드, 마이클 틸슨 토머스
2020년 데비 엘렌, 조안 바에즈, 가스 브룩스, 미도리, 딕 반 다이크
2021년 저스티노 디아즈, 베리 골디, 론 마이클스, 베트 미들러, 조니 미첼
2022년 조지 클루니, 에이미 그랜트, 글래디스 나이트, 타니아 레온, U2 ( 보노, 디 에지, 애덤 클레이튼, 래리 뮬렌 주니어)
2023년 퀸 라티파, 르네 플레밍, 빌리 크리스탈, 디안 워윅, 배리 깁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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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s-5.3.2|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word-break: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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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5px"
<colbgcolor=#fff,#353535> 1963년 빙 크로스비
1965년 프랭크 시나트라
1966년 듀크 엘링턴
1967년 엘라 피츠제럴드
1968년 어빙 벌린
1971년 엘비스 프레슬리
1972년 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1984년 척 베리, 찰리 파커
1985년 레너드 번스타인
1986년 베니 굿맨, 롤링 스톤스, 안드레스 세고비아
1987년 로이 에이커프, 베니 카터, 엔리코 카루소, 레이 찰스, 패츠 도미노, 우디 허먼, 빌리 홀리데이, 비비 킹, 아이작 스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행크 윌리엄스
1989년 프레드 아스테어, 파블로 카잘스, 디지 길레스피, 야샤 하이페츠, 리나 혼, 레온타인 프라이스, 베시 스미스, 아트 테이텀, 사라 본
1990년 냇 킹 콜, 마일스 데이비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폴 매카트니
1991년 매리언 앤더슨, 밥 딜런, 존 레논, 줄리 스턴, 키티 웰스
1992년 제임스 브라운, 존 콜트레인, 지미 헨드릭스, 머디 워터스
1993년 쳇 앳킨스, 리틀 리처드, 델로니어스 몽크, 빌 먼로, 피트 시거, 패츠 월러
1994년 빌 에반스, 아레사 프랭클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1995년 팻시 클라인, 페기 리, 헨리 맨시니, 커티스 메이필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96년 데이브 브루벡, 마빈 게이, 게오르그 솔티, 스티비 원더
1997년 바비 블랜드, 에벌리 브라더스, 주디 갈란드, 스테판 그라펠리, 버디 홀리, 찰스 밍거스, 오스카 피터슨, 프랭크 자파
1998년 보 디들리, 밀스 브라더스, 로이 오비슨, 폴 로브슨
1999년 조니 캐쉬, 샘 쿡, 오티스 레딩, 스모키 로빈슨, 멜 토메
2000년 해리 벨라폰테, 우디 거스리, 존 리 후커, 미치 밀러, 윌리 넬슨
2001년 비치 보이스, 토니 베넷,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밥 말리, 더 후
2002년 카운트 베이시, 로즈메리 클루니, 페리 코모, 알 그린, 조니 미첼
2003년 에타 제임스, 조니 마티스, 글렌 밀러, 티토 푸엔테, 사이먼 앤 가펑클
2004년 밴 클라이번, 펑크 브라더스, 엘라 젠킨스, 소니 롤린스, 아티 쇼, 독 왓슨
2005년 에디 아놀드, 아트 블래키, 카터 패밀리, 모턴 굴드,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제리 리 루이스, 젤리 롤 모턴, 파인톱 퍼킨스, 스태플 싱어즈
2006년 데이비드 보위, 크림, 멀 해거드, 로버트 존슨, 제시 노먼, 리처드 프라이어, 더 위버스
2007년 조안 바에즈, 부커 티 앤 더 엠지스, 마리아 칼라스, 오넷 콜먼,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밥 윌스
2008년 버트 배커랙, 더 밴드, 캡 캘러웨이, 도리스 데이, 이작 펄만, 맥스 로치, 얼 스크럭스
2009년 진 오트리, 더 블라인드 보이즈 오브 알라바마, 포 탑스, 행크 존스, 브렌다 리, 딘 마틴, 톰 팩스톤
2010년 레너드 코헨, 바비 다린, 데이비드 "허니보이" 에드워즈, 마이클 잭슨, 로레타 린, 앙드레 프레빈, 클락 테리
2011년 줄리 앤드류스, 로이 헤인즈, 줄리아드 현악 콰르텟, 킹스턴 트리오, 돌리 파튼, 라몬즈, 조지 비벌리 시어
2012년 올맨 브라더스 밴드, 글렌 캠벨,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조지 존스, 더 멤피스 혼즈, 다이애나 로스, 길 스콧 헤론
2013년 글렌 굴드, 찰리 헤이든, 라이트닝 홉킨스, 캐롤 킹, 패티 페이지, 템테이션스
2014년 비틀즈, 클리프턴 체니어, 아이즐리 브라더스, 크라프트베르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아르만도 만사네로, 마우드 파웰
2015년 비 지스, 피에르 불레즈, 버디 가이, 조지 해리슨, 플라코 지메네즈, 루빈 브라더스, 웨인 쇼터
2016년 루스 브라운, 셀리아 크루즈,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허비 행콕, 제퍼슨 에어플레인, 린다 론스태드, Run-D.M.C.
2017년 셜리 시저, 아마드 자말, 찰리 프라이드, 지미 로저스, 니나 시몬, 슬라이 스톤, 벨벳 언더그라운드
2018년 할 블레인, 닐 다이아몬드, 에밀루 해리스, 루이스 조던, 더 미터스, , 티나 터너
2019년 블랙 사바스, 조지 클린턴 / 팔리아멘트-펑카델릭, 빌리 엑스타인, 도니 해서웨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샘 & 데이브, 디안 워윅
2020년 시카고, 로버타 플랙, 아이작 헤이즈, 이기 팝, 존 프라인, 퍼블릭 에너미, 시스터 로제타 사프
2021년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 라이오넬 햄프턴, 마릴린 혼, 솔트 앤 페파, 셀레나, 토킹 헤즈
2022년 보니 레잇
2023년 바비 맥퍼린, 너바나, 마 레이니, 슬릭 릭, 나일 로저스, 슈프림즈, 하트
같이 보기: 공로상 수상자 · 레전드상 수상자 }}}}}}}}}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
이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분야 음악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1737 Vine Street.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1]
파일:Artur_Rubenstein_1968.jfif.jpg
출생 1887년 1월 28일
러시아 제국 프리비슬린스키 크라이 우치
사망 1982년 12월 20일 (향년 95세)
스위스 제네바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피아니스트
종교 무종교( 불가지론)
수상 성 제임스의 검 훈장[2] (1958)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기악 독주자 퍼포먼스 (1960, 78)
레오니 소닝 음악상 (1971)
성 제임스의 검 훈장 (1972)
대통령 자유 훈장 (1976)
대영제국 훈장 명예 사령관 기사 (1977)
케네디 센터 공로상 (1978)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실내악 퍼포먼스 (1975, 76)
그래미 평생 공로상 (1994)

1. 개요2. 생애3. 연주
3.1. 독주3.2. 협주
4. 이모저모
4.1. 연주에 대해서4.2. 루빈스타인 개인에 대해서
5. 어록

[clearfix]

1. 개요

폴란드 출신의 미국의 피아니스트.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폭넓은 레퍼토리, 화려한 테크닉, 곡에 대한 깊은 이해 모두 갖췄다고 평가된다. 네임벨류로 따지면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아르헤리치와 함께 최고로 꼽힌다. 메인 레퍼토리는 쇼팽이었는데, 지금도 피아노계에서 그의 쇼팽 연주는 권위가 막강하다.[3]

2. 생애

나는 한때 루빈스타인의 성품에 매료된 적이 있다. 루빈스타인, 그의 주변에는 마치 햇살이 빛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가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로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를 알게 되었을때, 그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정말로 긍정적이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당시 러시아 치하에 있던[4] 폴란드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독일로 유학하여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빌헬름 켐프, 겐리히 네이가우스 등을 가르친 하인리히 바르트에게 요제프 요아힘의 도움을 받아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5] 그러나 바르트와 루빈스타인은 기질 자체가 달랐고 바르트가 좋은 뜻으로 유태인인 루빈스타인을 입양하여 자기가 가르치는 베를린의 학교의 교수직을 주겠다고 제의하자 바르트와 대단히 좋지 않게 결별하고 어찌어찌 돈을 모아 파리로 맨땅에 헤딩을 하러 간다. 거기서 좌충우돌에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쳐 가며 성장, 젊은 시절부터 비르투오소로 이름을 높였다. 폴란드 출신 답게 평생에 걸쳐 쇼팽을 연주하였으며, 연주의 수준 역시 매우 높다. 쇼팽 외에 고전파에서 부터 근대 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했으며 대부분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또한 루빈스타인 기준으로 '현대' 음악가의 발굴, 홍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브라질 빌라로보스가 대표적인 예. 그 외에도 시마노프스키, 스트라빈스키 등의 피아노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일단 당시에 활동하던 모든 음악가는 루빈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19세기 말에 태어난 덕택인지 20세기 출생 피아니스트에 비해 낭만적인 경향의 해석을 보이지만 과하지 않아, 안티가 거의 없다. 파데레프스키, 코르토 등의 연주를 듣다가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들으면 꽤나 모던하게 느껴질 정도. 사실 루빈스타인이 젊을 때는 너무 건조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본인의 말로는 쇼팽 연주가 가장 큰 비판을 받았는데 꿋꿋이 연주했다고.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야샤 하이페츠와 더불어 백만불 트리오를 결성한 적이 있다. 상설 실내악단은 아니지만 틈틈이 무대에 서고 여러 음반을 녹음했다. 하지만 이 트리오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의 음악적, 개인적 불화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그 외에 다른 연주자, 그룹과 많은 실내악 녹음을 남겼고 퀄리티가 꽤 좋다.

어릴때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둥이로 유명했다가, 1932년에 22세 연하의 아니엘라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다.[6] 그 중 아들 존은 배우로 나름 커리어를 쌓았는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미드 프렌즈 마지막 시즌 마지막 화에 산부인과 의사로 출연. 궁금하면 찾아 보자. 아버지와 붕어빵이니 찾기 쉽다.

자서전을 두 권 남겼다. 태어나서 20대 후반까지를 다룬 My Young Years, 그 후를 다룬 My Many Years. 전자는 일부 주변 인물을 가명으로 표기하긴 했지만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 냈다는 평이 대부분인 반면 후자는 좀 엉성하고 장황하다. 젊은 시절을 다룬 책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사망한 상태라(...) 눈치 볼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고, 후자는 루빈스타인의 삶이 안정된 뒤의 이야기이기도 한데다 집필할 때 건강이 악화되고[7] 누가 봐도 임박한 그의 죽음보다 전에 출판하기 위해 제대로 편집을 거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반전은 그의 죽음을 지킨 여성이 아내인 아니엘라가 아니라 수십년 젊은 다른 여성이었다는 점(...) 결혼 후에도 주구장창 바람을 피워 댔는데, 정작 아내만 몰랐다고 한다.(...)

3. 연주

보통 만년의 연주가들은 테크닉의 감소를 보이는데, 루빈스타인의 경우 애초에 초인적인 신체 능력으로 밀어 붙이는 타입은 아니었고, 손에 무리가 없는 합리적인 운지법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기술에 맞지 않는 곡들은 뜯어 고치거나 (알베니스의 이베리아 모음곡이 대표적) 아예 연주하지 않았기에[8] 나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테크닉의 감소는 그다지 보이지 않고 음악적 깊이만 더해져 만년의 연주도 좋다. 다만 만년의 스튜디오 녹음들은 라이브나 젊은 시절의 녹음들과 비교해 보면 좀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후세에 길이 남을 녹음에서 틀린 음을 치는 것을 만년에는 극도로 두려워 했다고. 편집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걸 걱정하게 되면 연주할 때 약간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흔히 간과되는 점이 있는데, 루빈스타인은 작은 체구나 '평범한' 손 크기를 가졌었음에도 남다른 손가락 길이 비율로 12도 [9] 의 범위를 무리 없이 짚을 수 있었으며, 동시대 거장들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신체 능력도 가졌었다. 협주곡들 중에서도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브람스 협주곡 2번을 들어보면 엄청난 도약과 옥타브로 가득한 패시지를 순식간에 넘어간다. 60세의 나이에 녹음된 쇼팽 협주곡 1번 실황음반의 11:52-12:15구간이 또한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정확하게 옥타브를 집는 것도 힘들어 하는 구간인데[10] 폭발적인 스피드와 힘, 완벽한 강약조절을 보여준다.

3.1. 독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57 (rec. 1963) 슈베르트, 즉흥곡 D. 899 No.4 (rec. 1973)
슈만, 카니발 Op.9 (rec. 1963) 멘델스존, 무언가 Op.67 No.4 (rec. 1950)
쇼팽, 왈츠 Op.34 No.1 (rec. 1963) 쇼팽, 마주르카 Op.50 No.2 (rec. 1952)
쇼팽, 폴로네즈, Op.53 (rec. 1950) 쇼팽, 뱃노래, Op.60 (rec. 1962)
리스트, 사랑의 꿈 3번 (rec. 1950) 브람스, 카프리치오 Op.76 No.2 (rec. 1970)
시마노프스키, 마주르카, Op.50 No.2 (rec. 1961) 그라다노스, 스페인 무곡 Op.37 No.5 (rec. 1954)
프로코피예프,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중 행진곡 (rec. 1961) 빌라-로보스, 아기의 가족 모음곡 중 2, 6, 7번 (rec. 1941)
플랑, 간주곡 FP 118 (rec. 1963) 샤브리에, 스케르초-왈츠 (rec. 1963)

3.2. 협주

생전에 '협주곡의 왕'이라 불렸을 만큼 다양한 레퍼토리의 협주곡 녹음을 남겼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K.466 (rec. 1961)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Op.58 (rec. 1947)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Op.37 (rec. 1973)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Op.11 (rec. 1953)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Op.18 (rec. 1956)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Op.22 (rec. 1975)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Op.83 (rec. 1952)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Op.16 (rec. 1975)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Op.23 (rec. 1963) 슈만, 피아노 협주곡, Op.54 (rec. 1967)

4. 이모저모

4.1. 연주에 대해서

  • 곡에 대한 신선함을 잃지 않도록 연습은 하루에 3시간만 하라고(...)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조언했다 (이는 루빈스타인의 라이벌인 호로비츠도 하루에 3시간만 연습했다고 한다).[11][12] 이에 대한 본인曰: "저는 그냥 태생이 굉장히, 굉장히 게으릅니다. 그래서 늘 아주 길게 연습을 하지 않습니다. 연습을 지나치게 하는 건 좋지 않아요. 그러면 준비한 곡이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처럼 나오거든요. "아, 난 이걸 알아!"라는 마음으로 연주하면 곡에서 신선한 피가 돌지 않고, 또 청중들은 그걸 바로 알아요." "저는 연주회마다 많은 것을 그 순간에 맡겨요. 반드시 제가 예상 못한 무언가가 나와야 해요. 저는 모험과 도전이 좋아요. 예상치 못한 것들로 스스로를 놀래켜주고 싶고, 그걸 청중보다도 더 즐기고 싶어요. 그런 방식으로 음악은 새로 피어납니다. 마치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아요. 행동[13] 자체는 언제나 같지만, 매번 색다른 경험인 것이죠."[14][15]
  • 시그니처로 팔을 들고 건반을 내려찍는 동작이 있다.[16] 마누엘 데 파야 불의 춤 47년 카네기 홀 실황 2분 20초, 영웅 폴로네즈 3분 44초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저렇게 높은 지점에서 내리찍는데 건반에 손을 붙인 것 마냥 정확한 음을 낸다.
  • 쇼팽 연주의 권위자로 유명하고 기술이 발달할 때마다 전곡에 가까운 쇼팽의 작품을 녹음했으나, '3개의 새로운 연습곡'을 제외하고 Op.10과 Op.25의 어떤 곡도 사후 발매된 실황 녹음을 제외하고는 정식으로 녹음을 남기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까지도 쇼팽 애호가들 사이에서 틈틈히 나오는 토론 주제다. Op. 10의 1번을 연주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은 수리를 맡긴 피아노를 치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는 있다. 이 영상에서(21:10부터) 마찬가지로 전곡 녹음을 하지 않은 호로비츠는 워낙 레퍼토리가 좁은 것으로 유명하다 보니(...) 딱히 놀라울 것이 없다는 반응이 다수지만, 루빈스타인같이 쇼팽에 진심이었던 대가가 왜 스튜디오 레코딩을 하지 않았는지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17] 루빈스타인의 명반이라 불리는 녹음도 어느 정도 사소한 미스 터치가 들리고, 루빈스타인 본인도 글렌 굴드와의 인터뷰에서 틀린 음을 편집하면서까지 녹음을 남기지 않고 싶다고 했으나, 페라이어의 쇼팽 연습곡 음반의 라이너 노트에는 1962년 루빈스타인이 "죽을 만큼 두렵다(scared to death of them)"고 언급한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습곡 특성상 기교적으로 완벽하고 실수가 없는 모범이 될 연주를 남기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4.2. 루빈스타인 개인에 대해서

워낙 천재였기 때문에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하는 여담이 많다.
  •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내가 젊었을때 와인, 여자, 일(피아노)에 시간을 공정하게 배분했다고 하죠. 이건 완벽한 오해예요. 난 내 시간의 90%를 여자에 썼어요." (...)[18]
  • 완전기억능력의 소유자로, 자기가 본 악보의 커피자국까지(...) 기억했다고 한다. 좋은 예시로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적 변주곡(1885)을 연주하게 되었을 때, 이전에는 이 곡의 악보를 본 적도 없었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악보를 펴고 무릎을 손가락으로 치면서 완성했다(...). [19]
  • 8개 국어를 아주 능숙하게 구사했다.
  • 차이코프스키의 선배인 19세기 러시아 음악계의 거장 안톤 루빈스타인과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형제와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처음 일본에 연주 여행을 갔을 때 갓 결혼한 아내와 같이 전통 다도를 체험하는데 시중을 드는 일본 여성들이 입을 벌리니 이가 전부 새까맣게 썩어 있었다며 기겁을 한 경험을 자서전에 썼다. 그 이후로 다른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누가 제대로 말도 안 해 줘서 평생 그렇게 알고 살다 간 모양(...).
  • 생활고로 인해 20세인 1907년에 베를린의 한 호텔 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벨트에 목을 매었는데, 다행히 벨트가 끊어지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미국의 폴란드계 작곡가인 프레데릭 제프스키(Frederic Rzewski, 1938-2021)가 이 자서전의 내용을 기반으로 "베를린의 루빈스타인(Rubinstein in Berlin)"이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동시에 나레이션을 하는 굉장히 독특한 형식의 곡이다. # 제프스키가 추가하지 않은 원본 녹턴은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영화)의 주인공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한 것으로 유명한 녹턴 제20번 올림다 단조(KK IVa, No. 16)이다.

5. 어록

  • 기자: "연주회에서 항상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가 원곡인) 바흐를 연주하면서 왜 녹음은 안하죠?" 루빈스타인曰: "평론가들이 왜 '원곡대로 치지 않냐'고 뭐라잖습니까. 애시당초 바흐의 오리지널 피아노 악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가 원작인데 피아노로 연주하면 당연히 완전히 다른 페달링과 울림이 필요하죠.[20] 출처 (인터뷰 후반부)


[1] 폴란드어식으로는 Artur Rubinstein [2] Order of Saint James of the Sword. [3] 연습곡은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가 최고로 평가되듯이, 특히 녹턴 음반이 거의 이견이 없을 정도로 최고로 평가된다. [4] 당시 폴란드는 무자비하게 찢겨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에게 분할 지배당하고 있었다. [5] 루빈스타인 본인은 꽤나 부정적으로 회고하지만 바르트에게 배운 켐프의 증언에 따르면 루빈스타인의 연주 자세, 음악적 태도 등이 완전히 바르트가 가르치는 그대로였다고. [6] 아니엘라는 폴란드의 유명 지휘자 에밀 무이나르스키의 딸 [7] 시력을 거의 잃어서 많은 부분을 구술해야 했다 [8] 그래도 레퍼토리는 미친듯이 방대했다. 뭐, 이 레벨끼리 따지는 거지 루빈스타인도 충분히 괴물이니 그가 연주할 수 없는 곡들은 기량 문제라기보다 취향 문제인 것도 있고. [9] 도 ~ 솔까지. 라흐마니노프가 13도인 걸 감안하면 정말 거대한 수치다. 단, 루빈스타인은 그의 오른손 조형을 보면 손이 딱히 크거나 그냥 손가락이 다 길거나 한 건 아니지만 손가락 비율상 애지가 일반인과 비교하자면 압도적으로 길다. [10] 쇼팽 콩쿠르를 봐도 이 구간에서 꼬이거나 힘들어 하는 파이널리스트들이 대다수다. 리스크를 줄이려고 일부러 템포를 줄이는데도 대부분 불안정하다. [11] 요컨대 매너리즘을 경계하는 동시에 고도의 집중력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짧고 굵게 연습하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이 양반은 기교적 어려움을 피하기 위한 얄팍한 루바토를 하는 적이 없다고 봐고 무방한데, 그러한 거침없는 기교는 얄팍한 깊이의 연습으로 얻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단, 피아니스트들 중에 자신의 연습시간을 낮잡아 보고하는 경우가 완전 없는 건 아니니 진실은 저 너머에. [12] 본인의 아이들에게 2류 피아니스트로 기억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1934년의 여름부터 한동안 하루에 6, 8, 9시간 연습을 하며 그 곡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맛봤다고 회고했지만, 이것 또한 그가 이미 보유한 레퍼토리를 다시 공부하는 시간이었기에 '새로운 곡들을 마스터하기 위한 연습시간'이 아니다. [13] 악보 [14] "Arthur Rubinstein Dies in Geneva at 95". The New York Times. November 21, 1982.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November 14, 2013. Retrieved November 6, 2011. [15] "UALR Public Radio – KLRE Classical 90.5 – Pianist Arthur Rubinstein". Klre.org. Retrieved January 7, 2012. [16] 루빈스타인 스스로는 Swan dive라 불렀다. [17] 오늘날의 클래식 피아노계가 워낙 좁다보니, 영미권 클래식 포럼 등지에 가보면 꽤 신빙성 있어 보이는 카더라통신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출처가 없으니 공신력이 없다. [18] "Arthur Rubinstein Dies in Geneva at 95". The New York Times. November 21, 1982 [19]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피아노에 앉아서 저 때 완성한 운지법을 정확히 기억해내는 것이 또 함정이다. [20] 즉, 하프시코드로는 불가능한 폭 넓은 강약과 페달링에 대한 비난인데, 오늘날에도 상당한 논쟁거리다. 루빈스타인 본인의 바흐 연주에 대한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