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6:20:19

자클린 뒤 프레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tablebgcolor=#FFF,#1f2023>파일:D8FE539D-CCB2-44DA-9D5B-B6EEC0E8759F.png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은 예술적 탁월함, 혁신, 혹은 상상력을 통해 클래식 음악 녹음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는 첫 발표(2012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는 두번째 발표(2013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wiki style="margin:0 -10px -5px"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지휘자 부문 헌액자 ]
{{{#!wiki style="margin:-5px 0 -5px"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게오르그 솔티 | 클라우디오 아바도 | 존 바비롤리 | 다니엘 바렌보임 | 토머스 비첨 | 레너드 번스타인 | 피에르 불레즈 | 존 엘리엇 가디너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카를로스 클라이버 | 오토 클렘퍼러 | 사이먼 래틀
카를 뵘 | 에이드리언 볼트 | 세르주 첼리비다케 | 콜린 데이비스 |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 마리스 얀손스 | 라파엘 쿠벨릭 | 제임스 리바인 | 찰스 매케러스 | 주빈 메타 | 조지 셀 | 브루노 발터 | 구스타보 두다멜
벤저민 브리튼 | 리카르도 샤이 |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 네빌 마리너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 유진 오르만디 | 안토니오 파파노 | 트레버 피노크 | 프리츠 라이너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 마이클 틸슨 토머스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성악가 부문 헌액자 ]
{{{#!wiki style="margin:-5px 0 -5px"
루치아노 파바로티 | 플라시도 도밍고 | 마리아 칼라스 | 유시 비욜링 | 자네트 베이커 | 안젤라 게오르기우 | 체칠리아 바르톨리 | 엔리코 카루소 |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 비르기트 닐손 |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 조안 서덜랜드 | 조이스 디도나토
몽세라 카바예 | 르네 플레밍 | 토머스 햄프슨 | 안나 네트렙코 | 레온타인 프라이스 | 브린 터펠 | 프리츠 분더리히
토머스 앨렌 |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 호세 카레라스 | 표도르 샬리아핀 | 캐슬린 페리어 | 시르스텐 플라그스타 | 니콜라이 갸로프 | 티토 고비 | 마릴린 혼 | 한스 호터 |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 군둘라 야노비츠 | 요나스 카우프만 | 사이먼 킨리사이드 | 엠마 커크비 | 제시 노먼 | 안네 소피 폰 오터 | 레나타 테발디 | 키리 테 카나와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피아니스트 & 오르가니스트 부문 헌액자 ]
{{{#!wiki style="margin:-5px 0 -5px"
글렌 굴드 | 마르타 아르헤리치 | 클라우디오 아라우 | 알프레드 브렌델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머리 페라이어 | 마우리치오 폴리니 |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 다니엘 바렌보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 에밀 길렐스 | 빌헬름 켐프 |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그리고리 소콜로프 |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프리드리히 굴다 |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 | 안젤라 휴이트 | 스테판 허프 | 예브게니 키신 |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 디누 리파티 | 라두 루푸 | 안드라스 쉬프 | 아르투르 슈나벨 | 우치다 미츠코 | 랑랑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현악기 & 관악기 부문 헌액자 ]
{{{#!wiki style="margin:-5px 0 -10px"
파블로 카잘스 | 자클린 뒤 프레 | 야샤 하이페츠 | 예후디 메뉴인 |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 이작 펄만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모리스 앙드레 | 줄리안 브림 | 제임스 골웨이 | 하인츠 홀리거 | 스티븐 이설리스 | 요요마 | 윈튼 마살리스 | 알브레흐트 마이어 | 안네 소피 무터 | 엠마누엘 파후드 | 장 피에르 랑팔 | 조르디 사발 | 안드레스 세고비아
데니스 브레인 | 정경화 | 아르튀르 그뤼미오 | 프리츠 크라이슬러 | 기돈 크레머 | 나탄 밀스타인 | 존 윌리엄스 }}}}}}}}}
}}}
}}}}}}}}} ||
<colbgcolor=#000><colcolor=#fff> OBE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é
파일:269c48e37f5843f1acb961e849d64078.webp
본명 자클린 메리 뒤 프레
Jacqueline Mary du Pré
출생 1945년 1월 26일
영국 옥스퍼드셔 옥스퍼드
사망 1987년 10월 19일 (향년 42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첼리스트
장르 클래식
활동 1961년 ~ 1973년
가족 부모님
배우자 다니엘 바렌보임

1. 개요2. 생애3. 연주

[clearfix]

1. 개요

자클린 뒤 프레는 영국의 첼리스트며, 대영제국 4등훈장 수훈자(OBE)다.

2. 생애

뒤 프레(Du Pré)는 대대로 내려오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인데, 아버지는 물론 모두 순수 영국인이다. 그래서 간혹가다 자클린이 프랑스인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 있다. 5살 때 런던 첼로 학교에 입학해 첼로를 수학하고, 1960년에 들어서는 첼로의 성인이라 일컫는 파블로 카잘스나, 냉전시기인 1966년에는 직접 소련으로 들어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하기도 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첼리스트에게 모두 가르침을 받은 자클린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1962년 영국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자클린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고, 이것이 평론가와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뒤프레 자신을 대표하는 불멸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후 1965년 이 곡을 EMI와 작업하면서, 그는 음반시장계 대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미국 데뷔 무대에서 그는 또 한번 청중을 휘어잡는다. 이 때 66년 새해전에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1년 만에 결혼하게 된다. 지휘자와 첼리스트의 결합으로 둘은 협연 공연을 위해 전 세계를 다녔으며, 둘이 연주한 곡은 어떤 곡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1년, 갑자기 전신의 통증과 이상을 호소하던 자클린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영국에서 1973년 2월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정리했고, 며칠 뒤에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2중 협주곡을 연주하며 세계 투어의 모든 활동을 끝마쳤다. 1975년에는 전신이 마비되었고, 결국 1987년 숨을 거두었다.

둘의 결혼 생활은 엉망이어서 뒤 프레는 1971년경부터 형부인 크리스토퍼 키퍼 핀지[1]와 내연관계가 되었고, 남편인 바렌보임은 투병중이던 그녀를 버리고 엘레나 바쉬키로바(Elena Bashkirova)라는 피아니스트와 외도했다. 바렌보임은 그녀가 죽자마자 재혼했다는 좋지 못한 추문에 얽히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엄청난 기억력으로 대부분의 공연을 암보로 소화할 정도의 수재였지만, 가혹한 완벽주의와 인성 문제로 마냥 좋게 보진 못하는 연주가였기 때문. 건강이 악화되던 자클린이 실수가 잦자 바렌보임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닦달했다고 한다. 그녀는 몸이 아파도 바렌보임에게 사실대로 고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묘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사랑했던 아내'(Beloved Wife of Daniel Barenboim)라는 묘비명이 적혀 있다.

3. 연주


자클린이 연주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지휘자는 바렌보임이며, 당시에는 아직 두 사람이 결혼 전이었다.


신혼인 바렌보임과 함께 1968년 런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이 곡은 드보르작의 작곡사에서 후기 명작으로 손꼽히며, 자클린에 의해 재조명된 곡이다.

동영상은 당시 BBC 실황 중계인데, 3악장 초반(본 영상의 29분 38초)에 그녀의 첼로 스트링이 이기지 못하고 박살 나는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 그대로 녹화되었다. 곧바로 "현을 바꾸게 2분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청중들도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이 나온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협연자의 줄이 끊어질 경우 협연자 옆의 악장이 자신의 악기를 건네기는 하지만, 첼로는 현이 아예 끊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드물다. 영상에서는 1번 스트링(A현)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주를 다 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연주는 마치 첼로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은 힘으로 연주를 소화하고 있다.


1969년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 연주 실황을 담은 영상. 뒤 프레가 첼로, 남편인 바렌보임이 피아노, 바이올린은 이작 펄만, 비올라에 핀카스 주커만, 그리고 더블베이스는 이후 지휘자로 명성을 날린 주빈 메타가 맡았다. 모두 현재까지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거장들로 인정받는 인물들이며, 이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있는 영상. 아울러 너무도 빨리 음악계를 떠난 뒤 프레의 재능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켜지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1] 상당한 호색한이라 뒤 프레 외에도 내연녀가 몇 있었고, 사생아를 여럿 두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