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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드 크라우추크 | 레오니드 쿠치마 | 빅토르 유셴코 | 빅토르 야누코비치 | |
<rowcolor=#ffcc00> 제5대 | 제6대 | |||
페트로 포로셴코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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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f3f60><colcolor=#ffd500> | |||
본명 |
레오니드 다닐로비치 쿠치마 Леоні́д Дани́лович Ку́чма Leonid Danilovich Kuchma |
||
출생 | 1938년 8월 9일 ([age(1938-08-09)]세) | ||
소련 우크라이나 SSR 체르니고프주 노브고로드세베르스키군 차이키노[1] | |||
재임기간 | 제2대 대통령 | ||
1994년 7월 19일 ~ 2005년 1월 23일 | |||
서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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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f3f60><colcolor=#ffd500> 부모 |
아버지
다닐로 프로코피예비치 쿠치마 어머니 파라스카 트로피모브나 쿠치마 |
|
형제자매 |
형
올렉산드르 쿠치마[2] 자매 비라 티모셴코 |
||
배우자 | 류드밀라 쿠치마[3] | ||
자녀 | 올레나 핀추크[4] | ||
학력 | 드네프르페트롭스크 주립대학교[5] ( 기계공학 / 준석사) | ||
신체 | 176cm, 88kg |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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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제2대 대통령.2. 약력
- 1992.10. 제2대 총리 (1992.10.13.~1993.9.21.)
- 1994.7. 제2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 2003.1. 제3대 독립국가연합 국가원수협회장 (2003.1.29.~2004.9.16.)
3. 생애
1938년 우크라이나 SSR 북부 체르니고프주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드네프로페트롭스크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위를 따냈고 이후로 유즈마시에서 우주항공공학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공산당에 입당하였다.1980년대 후반부터 소련 공산당을 비판하면서 당시에는 당내 개혁파로 거물급 인사가 되었으며 소련 붕괴 직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대통령 치하에서 총리가 되었지만 1년만에 사임했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는 정치 불안정, 중앙정부의 경제통제 와해, 구소련 구성국들과의 협조 붕괴, 과중한 에너지 수입부담 등으로 인해 엄청난 물가상승과 사회복지 붕괴, 지하경제 창궐로 몸살을 앓았다.
또한 당시 대통령 크라우추크는 더 이상 먹히지도 않는 통제경제정책을 고수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경제혼란을 가중시켰다. 쿠치마는 크라우추크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여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표를 쓸어담아 199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52%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쿠치마는 통화안정을 위하여 통화발행을 억제했으며 이를 통해 물가상승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하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고, 경제성장률도 낮았던데다가 무엇보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쿠치마의 경제운용 능력에 대해 의문점이 생기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 그러나 199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 올라온 후보가 공산당 후보였던 페트로 시모넨코(Петро Симоненко)였기 때문에 서부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얻어 재선되었고,[6] 빅토르 유셴코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부작용이 있기는 했어도 어쨌든 이때부터 우크라이나의 경제가 성장기조로 돌아서며 우크라이나 경제의 완전 정상화에 성공을 거두었고 1990년대 말부터 7%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올렉산드르 모로즈에 의해 쿠치마가 영화감독이자 기자였던 조지아계 우크라이나인 헤오르히 곤가제(Георгій Ґонґадзе, 1969–2000) 암살을 명령했다는 테이프가 공개되는 카세트 게이트가 터지고[7] 쿠치마가 10억 달러 가량의 거액을 빼돌렸다는 것이 폭로되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 결국 2002년 총선에서 득표율 3위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이후 올렉산드르 모로즈, 빅토르 유셴코 등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의 야당들과 개혁파들이 '쿠치마 없는 우크라이나'라는 운동을 벌이며 반대시위를 벌인 탓에 레임덕이 가속화되었으나 탄핵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레임덕에 시달리던 상황이라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밀어주었다.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지지를 얻으며 순항할 것 같았지만 우크라이나 개혁파와 우크라이나 사회당을 비롯한 중도좌파 세력의 지지를 얻은 유셴코와 경합이던 상황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유셴코를 대상으로 한 암살시도 사건이 벌어지는 등 선거과정에서 의문스러운 상황이 계속 벌어졌고, 결국 동부지역에서 중복투표 사례가 대규모로 적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선거가 번복되는 사태가 벌어졌다(일명 오렌지 혁명). 그 결과 정적으로 돌변한 유셴코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마지막까지 나라가 난장판이 되는 것을 지켜보며 임기를 마쳤다.
이후 전직 대통령으로서 오렌지 혁명과 관련된 사건이나 헤오르히 곤가제 사건을 어찌어찌 넘어가며 실질적으로 처벌받지 않았고, 유로마이단 이후로는 우크라이나 측 외교대표를 맡고 있다. 즉, 구린 일은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어느정도 평가가 다시 올라가면서 명예가 회복된 셈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러시아를 비판하고 저주하는 성명을 냈다. #
4. 평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유럽연합과 미국,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전임 크라우추크 대통령이 말아먹었던 경제분야를 개혁하고 발전시켰다. 그와 동시에 비밀경찰을 운용하면서 정적과 언론을 탄압하는 폭압적인 권위주의 통치를 하며 민심을 잃었지만, 막장이었던 자국 경제를 어느 정도 복귀시켜 놓은 공은 부정할 수 없다.자기 임기가 끝나자 미련없이 지위에서 내려왔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역사상 연임한 대통령은 아직까지 이 사람이 유일하다. 또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 및 대통령으로서 우크라이나를 이끌어간 율리야 티모셴코, 빅토르 유셴코, 빅토르 야누코비치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정치인을 양성했다는 점에서 인재발굴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셋 다 평판이 안 좋고 말아먹기는 했지만...
물론 2기 임기 중후반기의 정국혼란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나, 개혁파와 친러파 양쪽에게 미움 살 행동을 했다는 점 때문에[8] 한동안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티모셴코, 유셴코, 야누코비치가 그러한 쿠치마만도 못한 정치력을 선보인 데다가 경제위기 해결에도 무능한 모습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쿠치마의 평가가 올라갔다. 특히 2013년 유로마이단 이후로는 우크라이나 측 대표를 맡으면서 외교전선에서 활동을 재개했고, 그 덕분에 가장 평가가 높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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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ee449> 초대 | 권한대행 | 제2대 | 권한대행 | ||||
비톨드 포킨 | 발렌틴 시모넨코 | 레오니드 쿠치마 | 유힘 즈뱌힐스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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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리 마솔 | 예우헨 마르추크 | 파블로 라자렌코 | 바실 두르디네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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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푸스토보이넨코 | 빅토르 유셴코 | 아나톨리 키나흐 | 미콜라 아자로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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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야누코비치 | 율리야 티모셴코 | 유리 예하누로프 | 빅토르 야누코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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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야 티모셴코 |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 미콜라 아자로우 | 세르히 아르부조프 | |||||
<rowcolor=#fee449> 권한대행 | 제15대 | 제16대 | 제17대 | |||||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 아르세니 야체뉴크 | 볼로디미르 흐로이스만 | 올렉시 혼차루크 | |||||
<rowcolor=#fee449> 제18대 | ||||||||
데니스 시미할 | }}}}}}}}}}}} |
독립국가연합 국가원수협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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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e400>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보리스 옐친 |
블라디미르 푸틴 |
레오니드 쿠치마 |
블라디미르 푸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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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e400>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
블라디미르 보로닌 |
미하이 김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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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에모말리 라흐몬 |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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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e400>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빅토르 야누코비치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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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e400>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블라디미르 푸틴 |
에모말리 라흐몬 |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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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e400>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
사디르 자파로프 |
블라디미르 푸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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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대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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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1949년 | 8월 15일 | 이승만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0년 | 8월 13일 | 윤보선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3년 | 12월 5일 | 12월 17일 | 박정희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7년 | 6월 23일 | 육영수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79년 | 12월 7일 | 최규하 | 대통령 | 대한민국 |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 ||
1979년 | 12월 7일 | 홍기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80년 | 8월 29일 | 8월 29일 | 전두환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1980년 | 8월 29일 | 8월 29일 | 이순자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노태우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김옥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김영삼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손명순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김대중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이희호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08년 | 1월 28일 | 노무현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08년 | 1월 28일 | 권양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2일 | 이명박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2일 | 김윤옥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9일 | 박근혜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22년 | 5월 3일 | 문재인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22년 | 5월 3일 | 김정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하인리히 뤼프케 | 대통령 | 서독 | 외국인 최초 상훈자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빌헬미네 뤼브케 | 영부인 | 서독 | 외국인 최초 상훈자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이스마일 나시루딘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틍쿠 인탄 자하라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푸미폰 아둔야뎃 | 국왕 | 태국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시리낏 끼띠야콘 | 왕비 | 태국 | ||
1966년 | 2월 1일 | 2월 15일 | 장제스 | 총통 | 중화민국 | ||
1968년 | 5월 10일 | 5월 18일 | 하일레 셀라시에 | 황제 | 에티오피아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반티에우 | 총통 | 남베트남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티마이아인 | 제1부인 | 남베트남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하마니 디오리 | 대통령 | 니제르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아이샤 디오리 | 영부인 | 니제르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 대통령 | 엘살바도르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 영부인 | 엘살바도르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오마르 봉고 | 대통령 | 가봉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조세핀 봉고 | 영부인 | 가봉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 대통령 | 세네갈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 영부인 | 세네갈 | ||
1980년 | 5월 11일 |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 국왕 | 사우디아라비아 | |||
1980년 | 5월 14일 |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1981년 | 6월 25일 | 수하르토 | 대통령 | 인도네시아 | |||
1981년 | 6월 25일 | 시티 하티나 | 영부인 | 인도네시아 | |||
1981년 | 6월 29일 |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81년 | 6월 29일 | 틍쿠 아프잔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81년 | 7월 6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대통령 | 필리핀 | |||
1981년 | 7월 6일 | 이멜다 마르코스 | 영부인 | 필리핀 | |||
1981년 | 10월 13일 | 로드리고 카라소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1981년 | 10월 13일 |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 영부인 | 코스타리카 | |||
1982년 | 5월 10일 | 사무엘 도 | 대통령 | 라이베리아 | |||
1982년 | 6월 7일 | 모부투 세세 세코 | 대통령 | 자이르 | |||
1982년 | 6월 7일 | 보비 라다와 | 영부인 | 자이르 | |||
1982년 | 8월 25일 | 압두 디우프 | 대통령 | 세네갈 | |||
1982년 | 12월 21일 | 케난 에브렌 | 대통령 | 튀르키예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 대통령 | 수단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 영부인 | 수단 | ||
1983년 | 9월 10일 | 후세인 1세 | 국왕 | 요르단 | |||
1983년 | 9월 10일 | 누르 | 왕비 | 요르단 | |||
1984년 | 4월 9일 | 하사날 볼키아 | 국왕 | 브루나이 | |||
1984년 | 4월 21일 |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 국왕 | 카타르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다우다 자와라 | 대통령 | 감비아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치렐 자와라 | 영부인 | 감비아 | ||
1985년 | 5월 17일 |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 대통령 | 파키스탄 | |||
1985년 | 5월 20일 |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1986년 | 9월 4일 | 4월 10일 | 엘리자베스 2세 | 국왕 | 영국 | ||
1986년 | 9월 4일 | 4월 16일 | 보두앵 | 국왕 | 벨기에 | ||
1987년 | 4월 7일 | 아메드 압달라 | 대통령 | 코모로 | |||
1988년 | 11월 3일 | 이스칸다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88년 | 11월 3일 | 자나리아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20일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 대통령 | 서독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프랑수아 미테랑 | 대통령 | 프랑스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다니엘 미테랑 | 영부인 | 프랑스 | ||
1990년 | 6월 21일 |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대통령 | 파라과이 | |||
1990년 | 11월 5일 | 괸츠 아르파드 | 대통령 | 헝가리 | |||
1991년 | 9월 13일 | 아즐란 샤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91년 | 9월 13일 | 투안쿠 바이눈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91년 | 9월 25일 |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 대통령 | 멕시코 | |||
1992년 | 8월 13일 |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 대통령 | 과테말라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피델 라모스 | 대통령 | 필리핀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 영부인 | 필리핀 | ||
1994년 | 11월 7일 | 11월 21일 |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 대통령 | 칠레 | ||
1994년 | 12월 5일 | 12월 9일 | 레흐 바웬사 | 대통령 | 폴란드 | ||
1995년 | 2월 7일 | 2월 16일 | 이슬람 카리모프 | 대통령 | 우즈베키스탄 | ||
1995년 | 2월 21일 | 3월 6일 | 로만 헤어초크 | 대통령 | 독일 | ||
1995년 | 3월 28일 | 4월 3일 | 젤류 젤레프 | 대통령 | 불가리아 | ||
1995년 | 6월 26일 | 7월 7일 | 넬슨 만델라 | 대통령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1995년 | 9월 26일 | 9월 29일 | 카를로스 메넴 | 대통령 | 아르헨티나 | ||
1996년 | 7월 23일 | 9월 4일 | 알바로 아르수 | 대통령 | 과테말라 | ||
1996년 | 7월 23일 | 페르난두 카르도주 | 대통령 | 브라질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후안 카를로스 1세 | 국왕 | 스페인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 왕비 | 스페인 | ||
1996년 | 11월 26일 |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96년 | 12월 10일 | 12월 15일 | 레오니드 쿠치마 | 대통령 | 우크라이나 | ||
2000년 | 2월 22일 | 3월 3일 |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 대통령 | 이탈리아 | ||
2000년 | 2월 22일 | 3월 6일 | 자크 시라크 | 대통령 | 프랑스 | ||
2006년 | 3월 12일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 대통령 | 알제리 | |||
2007년 | 3월 26일 |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2007년 | 3월 28일 |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2009년 | 5월 13일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대통령 | 카자흐스탄 | |||
2009년 | 11월 12일 | 알란 가르시아 | 대통령 | 페루 | |||
2012년 | 5월 30일 | 칼 16세 구스타프 | 국왕 | 스웨덴 | |||
2012년 | 11월 21일 |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 | |||
2018년 | 10월 8일 | 에마뉘엘 마크롱 | 대통령 | 프랑스 | |||
2019년 | 하랄 5세 | 국왕 | 노르웨이 | ||||
2021년 | 6월 14일 |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 대통령 | 오스트리아 | |||
2021년 | 6월 16일 | 펠리페 6세 | 국왕 | 스페인 | |||
2021년 | 6월 16일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왕비 | 스페인 | |||
2021년 | 8월 25일 | 이반 두케 | 대통령 | 콜롬비아 | |||
2021년 | 9월 21일 | 보루트 파호르 | 대통령 | 슬로베니아 | |||
2023년 | 7월 13일 | 안제이 두다 | 대통령 | 폴란드 | |||
2023년 | 11월 21일 | 찰스 3세 | 국왕 | 영국 | |||
2024년 | 11월 16일 | 디나 볼루아르테 | 대통령 | 페루 | }}}}}}}}} |
[1]
Чайкино. 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주 노우호로드시베르스키군 차이키네(Чайкине).
[2]
광부였으며 1984년 사망.
[3]
혼전성은 '탈랄라예바(Талалаєва)'.
[4]
우크라이나 철강 재벌인
빅토르 핀추크의 아내이다. 클린턴 재단과 관계가 깊다. 이혼 후에 재혼했다고 한다.
[5]
현 올레스 혼차르 드니프로 국립대학교.
[6]
1991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서 동서구도가 무의미했던 대선이다. 정확하게는 서부에서 비아체슬라우 초르노빌(В'ячеслав Чорновіл) 후보가 서부 3개주에서만 1등을 달렸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크라우추크가 압승을 거두어서 동서 구도가 별의미가 없었던 것.
[7]
헤오르히 곤가제는 조지아 출신으로 반정부 성향의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의 공동 창립자였다. 2000년 9월 16일 실종되었는데 2달 뒤인 11월 3일 키이우 근교의 한 숲에서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8]
전자는 부정선거 사례 때문에, 후자는 야누코비치의 당선을 막히게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