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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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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년기~대장3. 로엔그람 백작4. 로엔그람 후작
4.1. 쿠데타와 내전4.2. 붕괴, 그리고 재기
5. 로엔그람 공작
5.1. 개혁5.2. 라그나뢰크 작전5.3. 로엔그람 왕조 건국
6. 신(新) 은하제국 황제
6.1. 테러와 동맹 정복6.2. 청혼6.3. 노이에란트 전역6.4. 결혼과 불치병 선고
7. 죽음8. 연보

1. 개요

은하영웅전설 은하제국측 주인공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작중 행적을 다룬 문서.

2. 유년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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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엔그람 백작

20세(제국력 487년, 우주력 796년). 여기서부터 정전(正傳).

3.1. 상급대장

제국력 487년,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은 상급대장으로 승진했다. 그와 함께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공언한 대로 성인이 되었으므로 로엔그람 백작가를 계승하여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력 487년 1월 3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슈타덴, 포겔, 엘라흐,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 함께 2만 척이 넘는 제국 원정함대를 이끌고 동맹령을 침공했다.

자유행성동맹군은 라인하르트의 침공에 맞서 아스타테 성계에 3개 함대를 전개, 제국군의 2배에 달하는 병력으로 다곤 성역 회전처럼 포위섬멸하려고 했다. 메르카츠와 슈타덴을 비롯한 휘하 제독들은 불리한 상황임을 강조하며 철군을 주장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적이 포위를 위해 분산한 지금이 적을 각개격파할 적기라고 주장하며 철군론을 일축했다. 그리고 가장 숫자가 적은 제4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진격한다.

설마 라인하르트가 전진할 줄은 몰랐던 제4함대 사령관 파스톨레 중장은 제국군의 움직임에 당황했고, 중요한 순간마다 한 박자 늦은 명령을 내려 제국군의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제4함대는 불과 4시간 만에 와해되었고, 파스톨레 중장은 기함 레오니다스가 격침될 때 사망했다. 첫 승리를 거둔 라인하르트는 함대를 돌려 제6함대의 배후를 쳤고, 아무것도 모르던 무어 중장은 제국군의 항복 권유를 거부했다가 폭사한다. 연달아 승리를 거둔 라인하르트는 마지막으로 남은 제2함대를 공격하고, 제2함대 기함 파트로클로스가 피탄당해 사령관 파에타 중장이 중상을 입으면서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는 듯 싶었다.

하지만 파에타로부터 지휘권을 양도받은 양 웬리 준장은 내 지시를 따르면 살 수 있다고 큰소리쳤고, 라인하르트는 큰소리 치는 동맹군 장수의 실력을 보자는 심정으로 방추진형을 짜 돌진했다. 예상대로 동맹군은 제국군의 공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둘로 쪼개지는 듯 싶었지만 양은 처음부터 그것을 계산에 두고 쪼개지는 척 하며 급속 전진하여 제국군의 배후를 잡았다. 전투는 철저한 소모전으로 흘러갔고, 더 이상 불필요한 손실을 보기 싫었던 라인하르트는 완승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철군을 명령했다. 그리고 양 웬리에게 훗날을 기약하는 통신을 보냈는데, 양은 다음에 만나면 박살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굳이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3.2. 제국원수

라인하르트는 아스타테 회전의 공적을 인정받아 3월 19일, 노이에 상수시 흑진주실에서 정부 고관 및 고급 군인과 귀족들이 모인 가운데 황제 프리드리히 4세로부터 제국원수장을 수여받아 제국원수로 승진하고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임명되어 제국 우주함대 절반의 지휘권을 갖게 된다. 라인하르트는 제국원수의 권한으로 원수부를 열어 볼프강 미터마이어, 오스카 폰 로이엔탈,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등 자신이 점찍어둔 젊은 인재들을 모두 부하로 삼았다.

라인하르트는 인재들을 모으는 한편 대업의 첫 동료이자 친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원수부 내 2인자로 삼고 싶어했지만 키르히아이스는 그동안 부관 또는 참모로 활약해서 함대 지휘 경력이 없었고 계급도 다른 제독들보다 1계급 낮았다. 때마침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가 반란을 일으켰고, 라인하르트는 바이츠에게 뇌물을 줘서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이 키르히아이스를 토벌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단 10일만에 반란을 진압했고, 그 공적으로 1계급 승진과 함께 타 제독들에게 2인자로 인정받는다.

제국력 487년 5월 동맹군이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함락하자 주둔함대 사령부에서 홀로 살아돌아온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령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숙청당할 처지에 놓였다. 오베르슈타인은 순순히 최후를 받아들이지 않고 라인하르트를 찾아가 "패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타입의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음 자신이 가진 골덴바움 왕조에 대한 반감을 내비쳤다. 그의 반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라인하르트는 일부러 매몰차게 대하면서 키르히아이스에게 오베르슈타인을 불경죄로 체포하라고 지시한다. 오베르슈타인은 진심으로 라인하르트에게 실망하며[1] 좁은 출세가도를 잘 열어나가라고 조롱한다음 키르히아이스에게 무기가 없는 자신을 쏠수있냐고 질문한다음 자신을 쏘지 못하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존경할만하지만 라인하르트의 패업을 도울수는 없다고 말한다음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지만 젊은 라인하르트는 그것을 모르는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총을 거두라고 손짓한 뒤 "하고 싶은 말은 솔직하게 하는 자로군"라고 평하며 흔쾌히 오베르슈타인을 자신의 원수부에 영입했다. 라인하르트에게도 정치나 모략 쪽에서 상담할 참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르론 함락의 충격이 워낙 거대했기에 제국군 3대 장관도 사표를 제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리드리히 4세는 라인하르트를 불러 세 직위 중 어느 것이 탐나느냐고 물었는데,[2] 라인하르트는 직위를 사양하고 3대 장관을 변호했다. 덕분에 3대 장관은 사직 대신 감봉으로 처벌이 마무리되었고 은혜를 입은 세 사람은 라인하르트의 요청에 따라 오베르슈타인을 면책하고 원수부로 전속시켰다.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가 오베르슈타인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를 이용하는 만큼 나 역시 오베르슈타인의 두뇌를 이용할 뿐이고, 그런 녀석 하나 못 다뤄서 우주의 패권을 쥘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제국력 487년 자유행성동맹군이 20만 척에 달하는 대병력을 이끌고 제국령을 침공하자 라인하르트는 원수부 제독들을 이끌고 요격에 나섰다. 라인하르트는 청야전술로 동맹군의 물자를 고갈시켰고, 동맹군이 지칠 때쯤 역습에 나서 동맹군 함대를 모조리 패퇴시켰다. 동맹군은 암릿처 성계에 모여 반격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신병기 지향성 제플 입자를 이용하여 동맹군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침공작전 도중 프리드리히 4세가 붕어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 손으로 복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라인하르트가 제국원수까지 출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리드리히 4세의 절대적인 총애와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후광을 잃은 라인하르트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이 외척의 두 딸 대신 에르빈 요제프를 옹립하고, 정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협력을 청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그 말대로 리히텐라데는 잽싸게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차기 황제로 낙점하고 라인하르트에게 협력을 구했다. 라인하르트도 당장은 리히텐라데가 가진 궁정 영향력과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에 손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리히텐라데에 의해 작위도 후작으로 승격되고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를 밀어내고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제국의 양대 권력자가 된다.

4. 로엔그람 후작

4.1. 쿠데타와 내전

제국의 실권자로 등극한 라인하르트는 입대한 계기이자 평생의 숙원이었던 누나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를 드디어 궁정의 족쇄로부터 해방하여 슈바르첸 관저로 거처를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 부하들과 함께 곧 일어날 문벌귀족들과의 결전에 대비하기 시작했으며, 진보파의 거두인 칼 브라케 오이겐 리히터를 불러 내전이 끝날 후 제국을 하나부터 열까지 뜯어고칠 개혁은을 입안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자신이 귀족들을 일망타진하는 사이 동맹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교정구에 갇혀 있던 아서 린치를 풀어준 뒤 동맹으로 잠입시켜 동맹의 내전을 유발하였다.

내전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마린도르프 백작가의 여식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가 라인하르트가 내전에서 이길 것이라고 보고 귀족들 중 가장 먼저 라인하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라인하르트는 힐데가르트와 대화하면서 그녀의 명석한 두뇌에 감탄했고, 힐다가 원하는 대로 마린도르프 백작가의 재산과 지위를 자신의 이름으로 보장한다는 공문서를 발행해 주었다.[3]

라인하르트의 예상대로 귀족들은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결성하여 정식으로 제국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얼마 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가신인 안톤 페르너 대령이 직속부하들과 함께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가 있는 슈바르첸 관저를 습격했다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방어로 실패했다. 브라운슈바이크는 황급히 오딘을 떠났고 라인하르트는 이를 기회로 쿠데타를 일으켜 연합파 귀족들을 체포하고 군무성과 통수본부를 습격,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원수를 몰아내고 군권을 장악했다. 라인하르트는 꼭두각시 황제를 조종하여 제국군 3대 장관을 모두 겸직하는 '제국군 최고사령관' 칭호를 얻어내어 군권을 완전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귀족군을 토벌하라는 칙명까지 얻어내어 정치적인 대의명분까지 확보했다.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에게 따로 함대를 맡겨 변경을 공략하도록 하고, 자신은 휘하 제독들과 함께 귀족연합군과 정면 대결한다.

반란 진압은 무능한 귀족들 덕분에 순조로웠다. 은하제국군은 샨타우 성역 회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조카를 죽인 영민들에게 복수한답시고 행성 베스터란트에 핵폭격을 명령했는데, 라인하르트는 탈영병을 통해 작전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즉시 부대를 보내 핵폭격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핵폭격을 방관하여 아직 향방이 정해지지 않은 제국의 민심을 자기 쪽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진언에 따라 핵폭격을 방관했다. 그리고 베스터란트 주민들은 라인하르트와 접촉하기도 전에 핵폭격에 의해 전원 사망한다.
그리고 똑같이 탈영병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된 키르히아이스는 전례없는 단호한 태도로 라인하르트를 질책하고, 라인하르트는 라인하르트대로 치기어린 고집을 부리며 키르히아이스의 조언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이로인해 자신의 반신이라 부를만큼 신임했던 키르히아이스와의 사이가 다소 벌어지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베르슈타인의 계획은 적중해 베스터란트의 학살을 계기로 제국의 모든 민심은 문벌귀족들에게서 등을 돌리게 됐고,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의 패배를 끝으로 맹주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마저 자살하면서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완전히 무너진다.

4.2. 붕괴, 그리고 재기

우주력 797년 9월 9일, 라인하르트는 승전을 축하하고 패장들을 등용 및 처벌하기 위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서 승전기념식을 열었다. 이때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와 다른 제독들을 똑같이 대우하라는 오베르슈타인의 진언에 따라 키르히아이스에게만 허용되었던 무기소지 특권을 박탈했다.

전승기념식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귀족연합에 가담했던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제독은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했고, 라인하르트는 그를 포로가 아니라 다른 제독들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었다. 그리고 주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살해한 안스바흐 준장이 공작의 시체와 함께 출두했는데, 라인하르트와 제독들은 주군을 배신한 안스바흐를 비웃었다. 그러나 안스바흐는 주군의 시체 속에 핸드 캐논을 은닉하고 있었고, 라인하르트는 순식간에 죽을 위기에 몰리게 된다. 다행히 키르히아이스가 움직여 안스바흐를 제압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지만, 키르히아이스는 안스바흐가 은닉한 레이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사실상 자신의 잘못으로 키르히아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특수 케이스에 저온 보존처리된 키르히아이스의 유체 곁에서 떠날 줄 모르고 식음을 전폐하며 재기불능에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쌓아놓은 것을 그대로 무너뜨릴 수도 없는 터. 오베르슈타인은 진퇴양난에 빠진 라인하르트 원수부 휘하 장군들에게 재상 리히텐라데 공작에게 라인하르트 암살 미수라는 반 허위 혐의를 뒤집어씌워 체포할 것을 지시한다. 또한 오베르슈타인은 안네로제에게 키르히아이스의 부고를 전해 그녀가 라인하르트에게 통신을 걸게 만드는 등, 자포자기 상태였던 라인하르트를 가까스로 다시 재기하게 만들었다.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이 안네로제에게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을 알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그에게 살기어린 반응을 드러내지만, 결국 키르히아이스의 무장해제를 진언한 오베르슈타인의 말을 받아들인 자신이야말로 근본적인 원인임을 알기에 더 말하지 않고 안네로제를 만나러 간다.

안네로제와의 통신에서 라인하르트는 자신에겐 아직 누님이 남아있다며 매달렸지만, 이미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으로 라인하르트에게 실망한 안네로제는 사실상의 의절을 선언한다.[4]

이에 라인하르트는 안네로제에게 마지막으로 "누님께서는 키르히아이스를... 사랑하셨던 겁니까?"라고 질문하고, 안네로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소리없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키르히아이스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확신케 한다. 이 모습에 라인하르트는 자신은 과거를 그리워할 자격을 잃었고 키르히아이스가 맹세를 지킨 이상, 자신도 키르히아이스에게 했던 우주를 손에 넣는다는 맹세를 지키기로 마음 먹는다. 단 둘 밖에 없는 가족이었던 키르히아이스와 안네로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라인하르트가 각오를 다잡으며 하는 독백은 보는 이의 가슴을 헤집어놓는다.
그렇다. 라인하르트는 과거를 그리워할 자격을 잃었으며, 지쳐 쉴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키르히아이스가 맹세를 지킨 이상 그도 키르히아이스에게 한 맹세를 지켜야 한다.
우주를 손에 넣는 것.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본다면, 하다못해 그 정도는 손에 넣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53

이후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의 장례를 치르며 그에게 전사 특진의 예우로 제국원수,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 우주함대 사령장관, 제국재상 고문 등 키르히아이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직책을 추서했다. 또한 키르히아이스의 묘비명에 직접 '나의 벗'(Mein Freund)이라고 새기면서 자신의 반신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이 예우에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아무리 많은 관직을 추서해줘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오베르슈타인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뭘 얼마나 많이 주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해 달리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파일:은하영웅전설 OVA.펜던트.jpg
파일:은하영웅전설 DNT.펜던트.jpg
OVA[5] DNT
키르히아이스의 머리카락을 넣어둔 펜던트
또한 키르히아이스의 사후에 라인하르트는 그의 붉은 머리카락을 담아둔 펜던트를 보물처럼 여기며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게 된다.[6]

이후에는 키르히아이스의 빈자리를 메꾸고 싶었는지 이전부터 꽤나 있던 인재 욕심이 더욱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능력이 된다 싶으면 자기 밑으로 끌어들여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수준.

5. 로엔그람 공작

5.1. 개혁

키르히아이스 사후, 작위가 공작으로 승격하고, 재상과 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은하제국의 실권을 장악한 라인하르트는 곧바로 "공정한 재판과 공평한 세금 제도"를 목표로 일대 개혁에 나섰다. 구 대귀족들이 소유하던 광대한 토지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되었으며, 농노들도 해방하여 자유를 주었다. 내전에 참여했다가 몰락한 귀족들의 저택은 복지시설이나 병원으로 용도를 바꿔 평민들에게 개방되었고,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예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으로 보내졌다. 사회질서유지국은 해체되었고 수장 하이드리히 랑은 자택에서 감시를 받게 되었으며, 사상범과 정치범도 일부 급진파 및 테러리스트를 제외하면 전부 석방되었고 발매 금지 처분을 받은 신문과 잡지도 재간이 허용되었다. 귀족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특수 금융기관은 사라지고 그 대신 해방 농노들에게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농민금고가 신설되었다.

라인하르트의 개혁으로 제국을 좀먹던 적폐는 사라지고, 불공정은 시정되었으며 부의 재분배 또한 이루어졌다. 민중들은 자연스럽게 라인하르트를 '해방자', '개혁자'라고 칭송했으며, 과거의 특권을 그리워하던 문벌귀족들을 자발적으로 감시했다. 귀족들은 바뀐 세상을 개탄하며 라인하르트를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와중에 과학기술총감 안톤 힐머 폰 샤프트 대장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이용한 동맹령 침공 작전을 제안하자, 거기에 흥미를 보여 칼 구스타프 켐프, 나이트하르트 뮐러를 사령관으로 하여 이제르론 회랑으로 파견한다. 그러나 원정군은 압도적인 우세에도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지 못했고, 사문회를 위해 수도성 하이네센으로 갔다가 돌아온 양 웬리에게 참패한다. 라인하르트는 켐프의 보고를 보고 바로 제국의 쌍벽을 구원군으로 파병했지만 그들은 패퇴하는 패잔병을 보호하고 동맹군의 추격을 격파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라인하르트는 상식 밖의 참패에 격분했지만 죽은 키르히아이스를 떠올리며 켐프와 뮐러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5.2. 라그나뢰크 작전

정치, 군사상의 실권과 민중의 지지를 얻은 라인하르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최종 목표인 옥좌를 노린다. 하지만 옥좌에는 자신이 옹립한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차지하고 있었고, 라인하르트는 에르빈 요제프를 끌어내릴 명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에 성장해서 라인하르트의 뒤통수를 노릴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자유방임적인 육아 방식으로 에르빈 요제프를 버릇없는 꼬마로 만들기는 했지만 에르빈 요제프가 폭정을 저지른 건 아니니만큼 끌어내릴 명분은 여전히 없었다.

하지만 문벌귀족 잔당과 어린 황제, 그리고 자유행성동맹을 제물로 바쳐 곧 등장할 신 은하제국으로부터 기득권을 보장받고자 한 페잔 자치령은 라인하르트에게 동맹과 귀족 잔당이 황제를 납치하도록 만들어 개전 명분을 주는 대신 페잔의 자치권 및 경제권익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라인하르트는 선선히 페잔의 제안에 응했지만, 페잔 측 교섭인 니콜라스 볼텍에게 협력의 대가로 페잔 회랑 자유항행권을 제공하라고 압박했다. 이 조건은 페잔 자치령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고, 볼텍은 실각하지 않기 위해 라인하르트에게 붙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실행조는 황제를 납치했고, 귀족 잔당들은 동맹으로 망명하여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설립한다.

정통정부가 모습을 드러내자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역사를 되돌리려는 문벌귀족 잔당과 그에 연합해 우주의 평화를 깨트리려는 동맹의 야심가들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교섭 테이블을 박차고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납치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폐위하고, 후임 황제로 골덴바움 왕실의 방계 후손인 생후 8개월짜리 갓난아기 카타린 케트헨 1세를 옹립하였다. 그리고 극비리에 휘하 제장들을 불러모아 제국 역사상 전례없는 대규모 원정 계획, '라그나뢰크 작전'을 준비했다.

모든 전쟁 준비가 끝난 라인하르트는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을 이제르론 회랑 파견군 사령관으로 임명, 전 우주의 관심을 이제르론 회랑에 쏠리게 하기 위해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게 하였다. 계획대로 로이엔탈은 요새를 좀 두들기다가 후퇴하여 요새 공략이 실패했다고 보고했고, 라인하르트는 이제르론 회랑으로 원군을 보내는 척 하면서 볼프강 미터마이어 상급대장에게 페잔 자치령을 치도록 했다. 철저하게 은밀히 접근한 제국군은 아무것도 모르는 페잔 자치정부를 단숨에 무너뜨렸고, 라인하르트는 제국군이 점령한 페잔에 와서 페잔인을 안심시키는 연설을 하고 니콜라스 볼텍을 페잔 대리총독에 임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 뒤 동맹령 공략에 집중했다.

미터마이어를 선봉으로 하여 동맹령을 침공한 라인하르트는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직접 지휘봉을 잡고 동맹군 주력부대를 섬멸하였으나,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하고 재량권 얻어 날뛰기 시작한 양 웬리가 제국군의 후방을 공격한 탓에 동맹군 완전섬멸에는 실패한다. 거기에다 양 웬리는 동맹정부로부터 재량권을 부여받고 게릴라 전술로 마구 날뛰면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헬무트 렌넨캄프,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대장을 차례차례 털어 라인하르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격분한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직접 싸워 주겠다며 자신이 양 웬리와 싸우는 사이 휘하 제독들이 돌아와 양 웬리를 포위섬멸하는 분진합격 전술로 양 함대를 섬멸하려고 했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는 겹겹이 방어진을 쳐서 양 함대의 돌격을 저지하는 기동적 종심방어 전술을 꺼내들어 양 웬리와 대등하게 겨룬다. 그러나 양 웬리의 미끼를 물어버린 결과 제국군은 동맹군에 완전포위되어 역으로 포위섬멸당했다. 그 와중에 라인하르트의 기함 브륀힐트 근처까지 동맹군의 공격이 미쳤고, 참모들은 퇴함을 권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추하게 살아남느니 여기서 죽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다행히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강행군을 감수하고 달려와서 목숨을 건졌지만, 그 뮐러도 양 함대의 함정에 걸려 똑같이 몰살당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동맹군의 함포가 기함 브륀힐트를 저격하여 라인하르트가 이승 하직을 카운트해야 할 신세가 된 와중,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가 급히 보낸 미터마이어, 로이엔탈의 바라트 성계, 하이네센 점령 소식과 욥 트뤼니히트의 쿠데타 및 항복 명령에 따라 동맹군이 항복하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정치적이나 전략적, 결과적으로는 이겼을지 몰라도, 라인하르트는 확실히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그 무조건 항복 소식을 듣고 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

그 뒤 작품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양과 라인하르트의 회담이 열렸는데, 양에게 제국원수 지위를 주겠으니 자신의 휘하로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양은 "몸에 안 맞는 물을 마시면 체한다"며 사양했지만 그 회담 뒤에도 꽤 오랫동안 자기 밑으로 끌어오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제대로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라이벌로 생각하기도 했다.

5.3. 로엔그람 왕조 건국

양 웬리와 회담을 마친 라인하르트는 하이네센으로 가서 바라트 화약을 맺어 동맹을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시키고, 이름만 남은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그리고 몇몇 부대만 동맹령에 남긴 뒤 오딘으로 귀환하여 논공행상으로 부하들을 승진시키고, 죽은 키르히아이스에게는 대공 작위를, 안네로제에게는 대공비 작위를 수여했다. 오베르슈타인이 태클을 걸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 조치로 그 누가 피해를 본단 말인가?"라며 일축했다.

이후 라인하르트는 황제의 아버지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공작에게 퇴위 후 안전을 보장하고 막대한 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선양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정치나 군사에 관심이 없었던 위르겐 오퍼는 순순히 제관을 라인하르트에게 바쳤고, 우주력 799년 6월 22일 라인하르트는 노이에 상수시에서 정식으로 은하제국 황제로 즉위하며 500년 가까이 군림했던 골덴바움 왕조를 멸망시키고 로엔그람 왕조를 창건한다.

6. 신(新) 은하제국 황제

6.1. 테러와 동맹 정복

로엔그람 왕조를 창건하고 황제로 즉위한 라인하르트는 첫 행보로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의 사촌동생 하인리히 폰 큄멜의 저택을 방문했는데, 큄멜은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지구교와 손잡고 황제 암살을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큄멜 남작은 라인하르트가 차고 다니는 팬던트에 손대려 하다가 분노한 라인하르트의 따귀에 맞아 나뒹군 뒤 죽었고, 황제 암살을 계획한 지구교 오딘지부 울리히 케슬러 상급대장의 부하들에 의해 제압당했다. 라인하르트는 지구교에 대한 응징을 천명했으며,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에게 지구 토벌을 명령했다. 지구에 있던 지구교 총본산은 바렌이 지휘한 제국군 토벌대에 의해 제압당했고, 지구교 총대주교의 자폭으로 무너진다.

라인하르트는 지구교 토벌은 물론 골덴바움 왕조사 편찬 등 황제의 직무에 충실했다. 그런데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양 웬리 퇴역원수에 대한 사적인 원한으로 동맹정부를 압박했다가 도리어 구 양 함대의 반격으로 사망하고 만다. 라인하르트는 렌넨캄프를 임명한 것이 잘못이었다며 탄식했다. 황제의 대리인이 죽었으니 동맹 정복을 정당화할 명분을 얻은 기회였지만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이 "폐하께서 이제까지 상승불패(常勝不敗)하실 수 있었던 까닭은 역사를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왜 이번에만 수수방관한 채 역사가 움직이기를 기다리신단 말입니까?"라고 진언하자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에 관한 제국의 추태와 진상을 상세히 밝힌 뒤 다시 한 번 동맹령 원정에 나선다.

제국령 침공작전 이후 이어진 패전과 바라트 화약에 명기된 함대보유 제한에 의해 동맹군의 군사력은 매우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원정은 순조로웠다. 마지막 발악으로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이끄는 동맹군 최후의 우주함대가 마르 아데타 성역에서 함대결전에 나섰지만 라인하르트는 격전 끝에 동맹군을 분쇄하는 데 성공한다. 라인하르트는 뷰코크 원수에게 투항을 권했지만 뷰코크는 " 민주주의는 대등한 친구를 만드는 사상이지 주종관계를 만드는 사상이 아니다"고 정중히 거절했고, 라인하르트는 집중포화를 퍼부어 노장의 최후를 맺어주었다. 뷰코크 원수가 전사하고 얼마 뒤 통합작전본부장 록웰 대장이 조안 레벨로 의장을 죽이고 항복하면서 라인하르트는 손쉽게 하이네센을 장악했다. 라인하르트는 죽은 레벨로의 묘지를 참배하고 그를 죽인 록웰 이하 반란장교들을 모두 총살형에 처했다. 그리고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발표하여 동맹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그러나 라인하르트가 원정에 나선 사이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한 양 웬리 함대 코르넬리우스 루츠 상급대장을 속여 이제르론 요새를 재탈취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라인하르트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 웬리를 무릎꿇리려고 했지만 하이드리히 랑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를 반역죄로 탄핵하면서 원정은 일시 중단된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전회의에서 한 번 해명을 들은 뒤 로이엔탈을 신설될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초대 총독에 임명했다. 그리고 이제르론에 머무르면서 망명자들을 받아들여 세를 불리고 있는 양 웬리 토벌을 정식 선언한다. 양 웬리도 어차피 원하는 것을 얻으려먼 라인하르트와 한 번 싸워야 했기 때문에 양측은 전쟁에 돌입한다.

회랑 전투에서 라인하르트는 양 함대의 거센 저항에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상급대장과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을 잃었지만, 우월한 물량을 살려 전황을 소모전으로 끌고 가 몇 차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때 앓은 고열이 재발하여 지휘가 불가능해졌다. 요양하는 사이 꿈속에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환상을 본 라인하르트는 마음을 바꿔 양 웬리에게 회담을 제의했다. 그런데 프란체스크 롬스키 의장과 양 웬리 원수 등 독립정부 중진들이 회담장으로 이동하다가 지구교도의 습격을 받아 암살당했다. 양의 부고를 전해들은 라인하르트는 "짐은 그 자에게 짐 이외의 사람한테 죽으라고 한 적이 없다"며 진심으로 분노했고, 양 웬리와 안면이 있던 나이트하르트 뮐러 상급대장을 조문단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양 웬리 없는 양 함대에 흥미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상중인 군은 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원정을 중지하고 페잔으로 돌아갔다.

6.2. 청혼

얼마 후 전몰자 묘역 준공식에 참석한 라인하르트는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의 사망자 유가족에게 암살당할 뻔한다. 귄터 키슬링의 빠른 대처로 몸은 무사했으나 이 사건 때문에 라인하르트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졌고, 해소할 길 없는 죄책감에 삽을 푸고 있을 때 힐다가 위로하러 찾아갔다가 그 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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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다음날 라인하르트는 손수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 힐다에게 청혼하러 갔지만, 힐다도 당황하여 직접 만나는 것을 피하는 바람에 청혼에 대한 답을 듣는 것은 후일로 미뤄졌다. 덕분에 신부보다 먼저 장인어른에게 청혼한 꼴. 장인어른, 저와 결호... 미래의 장인에게 자신이 힐다를 책임지지 않으면 골덴바움 왕조의 음탕한 황제놈들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으나, 당장은 승낙을 얻지 못하고 일단 돌아가게 된다.[7]

이후 힐다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대답을 미루자,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고 방황하는 바람에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여가 활동을 보내고 심지어 휘하 제독들을 예술 감상에 데리고 다녀서 큰 고생(?)을 시키게 된다. 시종 에밀이나 차석부관 뤼케와 함께 체스나 승마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루츠를 시 낭송회에 부르고, 뮐러를 전위 음악 공연에 대동시키고... 물론 라인하르트의 측근 장성들이 무슨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한 싸움꾼도 아니고 기본적인 교양이야 있지만, 그래도 평생 전장에서 생활하던 군인들이다 보니 이런 예술 활동에 어색해하고 지치는 건 당연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선 미스는 그 비텐펠트를 고전 발레 공연에 데리고 간 것.[8] 루츠는 이 에피소드를 농담거리로 화제에 올렸다가, 카이저에게 시 낭송회 참석 명령을 받고 머리를 쥐어뜯었다.[9] 이 때문에 바렌은 "내 차례 돌아오기 전에 제국 본토의 메크링거와 임무교대 안 되려나, 원래 이런 건 메크링거가 적임자인데"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뮐러는 "차라리 전쟁이나 내란이 일어나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라는 개드립을 치고( 훗날 자신의 발언을 참담한 심정으로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미터마이어는 영리하게도(?) 자기 대신 참석해달라는 루츠의 말에 부관 실드부관 바이어라인을 "군 이외의 분야에도 소양을 쌓아보라"며 자기 대신 보냈다.

누구 앞에서나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던 라인하르트가 수줍어하고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했던 경우는, 청혼을 위해 힐다의 집에 찾아갔을 때와 원정 후 힐다에게 결혼 승낙을 받을 때 단 두 번뿐이었다. 원정에서 돌아와 힐다와 대면했을 때, 라인하르트는 "오..오늘은 춥군."이라며 힐다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추운데 감기 걸리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감기 걸리면 복중태아에 큰일이라는 힐다의 말에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본다.[10] 한참 말없이 우물쭈물하다가, 결혼해 달라면서 한다는 소리가 "그대가 짐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이제야 알았다. 그대는 짐에게 조언을 해 주고 한 번도 그릇된 소리를 한 적이 없었으며...짐한테는 아까운 여성이야..." 따위 소리를 늘어놓으며[11] 횡설수설. 힐다가 승낙하자 안도의 미소는 덤. 누구 아이냐고 안 물어본 게 라인하르트의 정신 구조에 그나마 구제할 여지가 있다는 증거라는 서술이 소설에 나올 정도다. 20대 초반에 왕조개창, 우주정복, 인류권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고, 우르바시 사건 당시 자신을 감싸려던 뮐러를 밀쳐내고 자신을 죽이려는 병사들 앞에 서서 '짐은 하나뿐이니 황제 암살범도 한 명이 될 것이다'라며 기개를 떨친 그 당당한 남자가, 청혼할 때는 그 당당한 기개를 다 어디 두고 오기라도 했는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였다.[12]

6.3. 노이에란트 전역

한편 정식으로 노이에란트 총독 자리를 받은 로이엔탈은 열심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나갔지만, 하이드리히 랑 지구교, 아드리안 루빈스키 등이 저잣거리에 헛소문을 유포하고 로이엔탈에게 거짓 정보를 보내는 등 황제와 로이엔탈의 갈등을 조장했다. 결국 로이엔탈은 정말 라인하르트가 소문에 의해 자신을 의심하는지 아닌지를 떠보기 위해 라인하르트를 노이에란트에 초청하고, 라인하르트는 흔쾌히 응한다. 일부 중신들은 노이에란트 순방을 반대하거나 1개 함대를 대동할 것을 권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모두 물리치고 루츠, 뮐러와 함께 노이에란트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 경유지인 우르바시에서 주둔군이 반란을 일으켜 라인하르트 일행을 습격했고, 라인하르트는 루츠, 뮐러와 함께 황급히 우르바시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추격자들을 막기 위해 루츠가 뒤에 남아있다가 추격자들에게 살해당했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로이엔탈은 자포자기한 나머지 황제 곁에서 호가호위하는 하이드리히 랑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같은 간신들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라인하르트는 루츠를 제국원수에 서임한 뒤 볼프강 미터마이어에게 토벌을 명했다.

미터마이어와 뮐러는 로이엔탈에게 관용을 보이라고 요청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를 격렬하게 거부했다. 은하제국 황제이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꼴사납게 도망친 것도 모자라 중신 하나를 잃었으니 그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특히 로이엔탈은 소명 한 번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으니, 황제의 권위와 국가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토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이유 속에는 명색이 신하이면서 반역을 일으켰다는 배신감과 "내개 고게를 숙이는 것이 그렇게나 싫단 말인가"는 기분이 자리하고 있었다.[13]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의 친정을 바랬고 라인하르트도 내심 그랬지만 황제가 친정하면 황제에게 충성하는 병사를 황제 자신이 살해하는 꼴이 되므로 로이엔탈이 페잔으로 쇄도하지 않는 이상 황제 친정은 불가능했다. 결국 미터마이어를 필두로 바렌, 메크링거, 비텐펠트가 나서 로이엔탈을 상대했고, 미터마이어가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로이엔탈을 붙잡아두는 사이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협조를 얻은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이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여 하이네센으로 진격하면서 전세는 로이엔탈에게 불리해졌다. 그럼에도 로이엔탈은 추격하는 미터마이어 군과 나름 대등하게 맞붙었지만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이 배신하면서 노이에란트 치안군은 와해되고 로이엔탈은 치명상을 입어 하이네센에서 숨을 거두었다.

반란이 진압되자 라인하르트는 추하게 배신한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을 제외한 나머지 반란군 장병들에게 관용을 보여, 전투에서 죽은 반란군 장병들의 계급을 박탈하지 않았고 로이엔탈의 원수 칭호도 복원시켰다. 그를 노이에란트 총독에 앉힌 것은 잘못이라 해도 원수에 서임한 것까지 잘못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루츠의 약혼녀에게 10만 제국마르크의 연금을 하사했지만 본인이 고사했고 힐다의 제의로 연금을 종군간호사 육성비와 공로금으로 돌려 썼다. 그리고 이때 힐데가르트의 임신 소식을 처음 듣자 여전히 세련되지 못한 멘트로 다시 청혼했고, 힐다는 이를 받아들였다.

6.4. 결혼과 불치병 선고

신제국력 3년, 우주력 801년 1월 1일 1시, 라인하르트는 총본영에 모인 신하들에게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를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공표했다. 무수한 신하들이 호프 카이저린!(황후 만세!)을 외치며 환호했고, 그녀가 임신했으며 6월에 아이를 낳을 거라는 소식이 퍼지자 더더욱 환호했다. 국무상서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은 결혼 발표 이후 국무상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후임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국무상서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며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키르히아이스의 죽음 이후 잠시 갈라섰던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도 오딘을 떠나 페잔에 와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주었다.

1월 29일,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문무백관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나[14]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하이네센에서 반정부 폭동이 발생했다고 라인하르트에게 보고했다. 사람들은 때와 장소도 못 가리는 오베르슈타인의 행태에 질타했지만 오베르슈타인은 의연하게 맞섰고, 라인하르트는 당분간은 하이네센에 체류하고 있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에게 일임했지만 제독들에게 출정 준비를 태만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하이네센의 폭동은 가라앉지 않고, 모든 사태를 배후조종한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마수는 페잔에까지 이르렀다. 결혼식 다음 날 밤 페잔 항로국에서 보관하던 항로 데이터가 모조리 삭제된 것이다. 라인하르트는 격분하여 항로국 장관을 질책하려고 했지만 오베르슈타인이 항로국 데이터를 군무성에 백업해 두었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떠난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의 공을 칭찬하고 울리히 케슬러 상급대장에게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케슬러는 이틀 뒤 범인을 체포하고 다섯 시간 동안 심문한 끝에 배후가 아드리안 루빈스키임을 밝혀냈다. 하지만 사태는 가라앉지 않고, 엉뚱하게 이제르론 공화정부와의 군사 충돌로 발전했다.

신제국력 3년 2월, 이제르론 혁명군 함대와 제국군 바겐자일 함대, 바렌 함대가 충돌했다. 제국군은 혁명군의 전술에 두 번이나 말려들어 40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냈고, 혁명군은 '카이저의 정강이를 걷어차 주고 왔다!'고 환호하며 열심히 선전했다. 구 동맹 시민들은 혁명군의 승리에 열광했고, 라인하르트는 친정을 선언했지만 다음 날 발열 증세 때문에 친정은 취소되었고 대신 오베르슈타인 원수가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하이네센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오베르슈타인은 구 동맹의 명사들을 모조리 라그풀 교도소에 집어넣고 이들을 인질로 삼아 공화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강경한 술책을 썼고, 이는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누군가의 공작으로 라그풀 교도소에 폭동이 발생하여 실패했다.

그 소식을 들은 라인하르트는 식겁해서 하이네센으로 직행했고 라그풀 교도소의 수감자들을 석방한 뒤, 자기 이름으로 이제르론에 초청장을 보냈다. 협상 자체는 잘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신세기호' 문제로 양군이 교전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혁명군이 노이에란트를 침공하면서 시바 성역 회전이 벌어졌다. 라인하르트는 제독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친정을 선언했다. 그러나 교전 도중 원인불명의 열병이 악화되어 기함 브륀힐트의 함교에서 혼절해버렸다. 분노한 제독들의 질타를 받은 어의들은 '변의성 극중 교원병(変異性劇症膠原病)'라고 진단했지만, 연구를 하지 않고서는 치료법을 알 수 없다고 대답하여 제독들을 분노케 했다.

깨어난 라인하르트는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에게 병권을 위임하고 숙면을 취했다. 존경하는 황제가 쓰러졌다는 사실은 제국군 수뇌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실을 적에게 알릴 수 없었기에 통신이 일부 봉쇄되었고,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혁명군을 확실히 끝낼 수 있음에도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뮐러 함대의 투입은 이루어지지 않아 뮐러는 뒤에서 밥이나 먹어야 했다. 비텐펠트는 혁명군을 끝장내기 위해 예비대 투입을 요청했지만 메크링거는 후퇴를 지시했고 그것 때문에 둘이 싸우기도 했다. 이러한 제국군의 불협화음 덕에 혁명군은 5:1이라는 전력차에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올리비에 포플랭 중령이 스파르타니안을 타고 공중전을 벌이다 '카이저 혼절'을 전하는 적의 통신을 감청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기함 율리시스에 모인 율리안 이하 간부들은 적 기함 브륀힐트에 올라타 황제와 담판을 벌이는 데 동의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비텐펠트는 후퇴하는 혁명군을 쫓았다가 무인함대에 낚여 시간을 허비했고, 제국군 선두부대는 아텐보로와 메르카츠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진형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 사이 율리안 민츠 로젠리터 연대가 탑승한 강습양륙함 이스트리아가 브륀힐트와 접현했고, 통로가 열리자 무수한 혁명군 장병들이 브륀힐트에 들이닥쳤다. 라인하르트는 들어온 적병 중 율리안 민츠의 모습을 확인하고 율리안이 아군을 뚫고 자신 앞까지 온다면 그의 용기를 인정하여 대등한 처지에서 요구를 수락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어떠한 요구도 할 자격이 없다고 미터마이어와 뮐러에게 지시했다.

브륀힐트에 침입한 혁명군은 제국군의 분단전술에 휘말려 위기에 처했지만, 로젠리터와 루이 마솅고, 올리비에 포플랭의 도움으로 율리안은 몇 번이나 적의 방어선을 뚫고 라인하르트 앞에 도달했다. 라인하르트는 율리안의 이름을 물었고 율리안은 라인하르트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로엔그람 왕조가 병들었을 때 치료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한 뒤 기절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율리안에게 군의관을 불러 준 뒤 전투를 중지시켰다. 이렇게 하여 혁명군과 제국군의 강화가 성립되었다.

이 때 페잔에서는 호랑가시나무관 습격사건이 벌어졌고, 무사히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이 태어난다. 아이도 무사했고, 키르히아이스가 죽었을 때 사실상 이별을 고했던 안네로제와도 화해하게 됐으니 감개무량했을 듯. 아들의 이름은 벗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아들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면서 수없이 종이를 구겨 던지는 장면이 상당히 개그.

7. 죽음

시바 성역 회전에서 강화를 택한 라인하르트는 공화정부 요인들과 함께 하이네센으로 돌아왔지만, 입원한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사망하는 그 순간 뇌와 연동되어 있던 폭탄이 폭발, 하이네센폴리스를 잿더미로 만든 루빈스키의 불 축제가 터진다. 시가지에서 발생한 화재는 라인하르트가 기거하는 구 동맹 국립미술관 임시 총본영까지 들이닥치지만 퇴거를 권하는 비텐펠트에게 자신은 피난민처럼 도망칠 바에 여기서 죽겠다며 거부한다. 이를 보다못한 비텐펠트는 황후 마마와 황자 전하께서 기다리신다며 라인하르트를 의자째로 들어 불타는 미술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15]

이렇게 목숨을 건진 라인하르트는 6월 20일, 정식으로 이제르론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 중위와 회견을 가졌다. 율리안은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을 통한 민주화를 주장했고,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제국을 통치할 황후 힐다에게 율리안의 견해를 들려달라며 페잔으로 가는 길에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율리안은 수락했고 6월 27일 황제와 공화정부 사절단은 전함 브륀힐트를 타고 페잔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페잔에 돌아오고 일주일 뒤 라인하르트의 병세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40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었고 종종 의식을 잃었으며 심지어 7월 26일에는 잠시나마 호흡이 멈출 정도였다. 그리고 오베르슈타인은 왕조의 존속을 위해 곧 죽을 황제를 미끼로 페잔에 잠입한 지구교도들을 소탕하려고 했다.[16] 황제의 병환은 회복세이며, 병이 나으면 지구교의 총본산인 지구를 파괴하겠다는 헛소문을 유포했는데 여기에 낚인 지구교도들이 마지막까지 남은 행동대원들을 모아 임시 황궁을 습격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제독들은 신하 된 도리로 황제를 미끼로 쓰냐며 격분하여 서로 싸우기 직전까지 갔지만,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중재로 일단 지구교도 소탕에 집중했다. 벨제데 임시 황궁에 침입한 지구교도들은 제국군 헌병대와 율리안 일행에 의해 소탕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베르슈타인이 지구교도가 투척한 사제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17]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죽어가던 라인하르트는 죽기 직전 몇몇 조치를 내렸다. 우선 상급대장 6명을 제국원수에 서임했으며, 원래 원수였던 미터마이어는 제국수석원수라는 칭호를 내렸다. 단, 이 조치는 라인하르트가 죽은 뒤 힐다의 명의로 하라고 지시했다. 라인하르트의 이러한 조치로 원수에 오른 이들은 훗날 ' 뢰벤브룬 칠원수'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키르히아이스의 머리카락이 담긴 팬던트를 안네로제에게 주었으며, 미터마이어에게는 처자식을 임시 황궁에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제국의 모든 중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인하르트는 아들 알렉산더 지크프리트에게 대등한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알렉산더와 펠릭스 미터마이어가 만나도록 했다. 두 아이는 서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떨어지려 하지 않으며 울음을 터트렸고, 라인하르트는 펠릭스에게 황자와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오베르슈타인의 행방을 물었는데, 힐다가 오베르슈타인은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돌려서 설명하자 라인하르트는 "그자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으니"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유언으로 모든 일을 힐다에게 맡기며, 입헌체제로 바꾸고 싶다면 그래도 좋고 알렉산더 지크프리트에게 역량이 없다면 로엔그람 왕조는 남겨둘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병세가 더 악화된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잠에 빠졌다가, 마침내 살짝 눈을 뜨고 힐다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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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손에 넣으면...모두 함께..."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김완, 이타카(2011), p.333
그 말을 남긴 라인하르트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알렉산더 지크프리트가 울 때까지 방에는 침묵이 감돌았고, 힐다는 라인하르트는 병환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천수를 누렸다고 말한 뒤 눈물을 흘렸다.

신 제국력 3년, 우주력 801년 7월 26일 23시 29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그렇게 쓰러졌다. 향년 25세였고, 그의 치세는 겨우 2년이었다.[18][19][20] 너무나도 젊고 찬란히 빛날 시기에 그는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사후에도 그의 검소함을 드러내듯이 라인하르트의 묘비에는 거창한 묘비명같은 건 없었다. 오직 조촐하게 생몰년도 및 즉위 날짜와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라고만 새겨졌다. 텅 빈 은하제국의 옥좌에는 장남 알렉 대공이 국장이 치러진 이후 즉위했으며, 힐다가 섭정황태후를 맡아 로엔그람 왕조를 더욱 발전시켰다.

8. 연보

연도[21] 사건
776. 3. 14. 탄생
779. ?. 어머니 클라리벨 폰 뮈젤이 사망함
785. ?.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 인연을 맺음
786. ?. 누이 안네로제 폰 뮈젤이 황제의 총희가 됨. 은하제국 유년학교에 입학함
791. 7. 유년학교 졸업, 소위로 임관함, 라인하르트 폰 뮈젤 1차 암살미수사건
792. 5.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참전, 라인하르트 폰 뮈젤 3차 암살미수사건
793. 4. 28. 아버지 세바스티안 폰 뮈젤이 사망함
794. 3. 반플리트 성역 회전 참전
794. 6. 7. 소장 승진
794. 12.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 참전
795?. ?. 중장 승진
795. 2. 제3차 티아마트 회전 참전
795. ?. 대장 승진
795. 9.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 제4차 티아마트 회전 참전
795. ?. 상급대장 승진, 로엔그람 백작가를 계승하여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이 됨
796. 2. 아스타테 회전 참전
796. 3. 19. 제국원수로 승진, 제국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취임함
796. ?. 라인하르트 원수부 개설
796. 8~10. 제국령 침공작전, 암릿처 회전 참전
796. ?. 후작으로 승격, 제국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취임함
797. 4. 6. 쿠데타를 일으켜 오딘을 장악함. '제국군 최고사령관' 칭호를 받음
797. 4~9 립슈타트 전역 참전
797. 9.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1차 암살미수사건
797. 10. 공작으로 승격, 제국재상 취임
798. 3~5. 이제르론 요새 공략작전을 추진함
798. 7. 페잔과 거래하여 황제 납치를 방조함
798. 9.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발령
798. 12. ~ 799. 5.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지휘
799. 6. 22. 황제로 즉위함
799. 7. 큄멜 사건
799. 11. 바라트 화약을 파기하고 동맹에 선전포고함
799. 12. ~ 800. 6.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지휘
800. 8.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
800. 10. 우르바시 사건
801. 1. 29.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와 결혼함
801. 5~6. 시바 성역 회전 참전
801. 6. 루빈스키의 불 축제
801. 6. 20.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와 회동함
801. 7. 26.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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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사람을 가려보지 못한 자신의 눈에 실망한 것이다. 소설판에서 언급된다. [2] 참고로 작가의 모국인 일본에선 전국시대를 거의 끝낸 위인인 오다 노부나가가 이것과 마찬가지로 조정으로부터 당대 최고위 직위인 쇼군, 관백, 태정대신 셋 중 하나를 줄테니 골라보라는 제안을 받은 바 있는데(삼관추임문제) 노부나가 또한 셋 중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무래도 이 일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3] 소설 상으로는 이 때부터 플래그가 세워진 듯. 라인하르트가 힐다를 처음 봤을 때 그의 푸른 눈동자가 빛나며 힐다의 귀족 답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던가, 대화를 나눈 후에 그녀의 정치적 감각에 혀를 내두름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던가 등의 서술이 나온다. 또한 힐다를 보낼 때 라인하르트로서는 보기 드물게 여성에게 언제 한 번 식사나 하자는 멘트도 던졌으며 이에 칼 구스타프 켐프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4] 다만 이후 안네로제가 힐데가르트에게 한 "키르히아이스의 인생과 생명,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을 빼앗은 죄 많은 여자"라는 말을 보면, 라인하르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5] 원작과 DNT에서는 그저 은으로 만들어진 펜던트에 키르히아이스의 머리카락만 넣어두고 다니지만, OVA에서는 머리카락과 더불어 과거 안네로제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어린 시절의 사진도 넣어뒀다. [6] 라인하르트가 이 펜던트를 어찌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큄멜 사건 당시 큄멜 남작이 무엇인지 보여달라고 하자 단번에 거절하고, 이에 큄멜 남작이 펜던트를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자 자신을 죽이겠다던 협박에도 꿈쩍하지 않던 라인하르트가 친히 주먹질을 하였다. [7] 이때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밑에 나오는 힐데가르트에게 한 청혼 장면과 마찬가지로 어쩔줄 몰라한다. 당사자가 아닌 예비장인(?)에게도 이 모양이었다. [8] OVA에서는 공연 끝날 때까지 잘 참고 박수까지 쳤는데 끝나고 나서 눈물나게 하품했고, 소설 일러스트에서는 머리 주변에 발레리나들이 빙빙 돌고 비텐펠트 본인은 완전히 멘붕 상태. [9] OVA판에서는 부하에게 이 보고를 받고 무슨 전쟁이라도 난 마냥 "뭐야?!"라며 경악한다. [10] 힐다가 임신 사실을 철저히 숨겼기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그 때까지 알지 못했는데, 이미 노이에란트 전역 시점에서 자신의 임신을 알았지만 때가 때인지라 알리지 않았고, 아버지인 프란츠에게만 알렸다. [11] 재상 비서관 시절부터 힐다의 조언이 틀린 적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하는 말 치고는 지극히 센스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사람을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라인하르트이기에 힐데가르트가 자신에게 있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어필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청 아름답다" 같은 말이라도 하겠지만 라인하르트는 빈말로도 사람의 외모를 가치있게 여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르고 자르다 보니 저런 멋 없는 청혼멘트가 나올 수 밖에. [12] 공인 라인하르트는 흠 잡을 곳 없는 지휘관이자 위정자였으나, 개인 라인하르트는 미숙하거나 부족한 면을 많이 드러낸다. 라인하르트의 인생사를 보면, 아직 어렸던 때부터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나 여유가 많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13] 라인하르트에게 반기를 든 것은 양 웬리도 마찬가지지만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도 인정하는 성품과 더불어 단 한 번도 라인하르트의 신하가 아니었다는 점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마음속으로 양을 아랫사람이 아니라 대등한 지위에 둘 수 있었다. [14] 이 와중에 주례를 맡은 궁내상서 베른하임이 하필 신랑이 황제라 부담감에 벌벌 떨어서 라인하르트가 "경이 결혼하는 것도 아니잖나"며 핀잔을 주는 촌극아 있었다. [15] 이 과정에서 미술관에 전시된 수많은 예술품들이 그대로 불타 없어졌는데, 비텐펠트가 하필이면 예술에 무지한 인물이었던지라, 훗날 메크링거는 당시의 사건을 '비텐펠트가 예술에 무지하였기에 일이 무가히 처리됐다'라고 기록했다. [16] 이미 지구교단은 붕괴 직전이었지만 로엔그람 왕조가 세워졌을 때부터 황제의 목숨을, 거기다 황후와 (그 때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황태자인 알렉의 목숨까지 노렸으니 절대로 존속을 허락할 수 없었다. 어차피 지구교단 말살은 제국에서 다들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고 다만 소멸 직전인 지구교단이라 해도 이들 조직원 전부를 잡아내는건 어려운 문젠데 이를 위해 오베르슈타인은 큰 미끼를 내건 것이다. [17] 그러나 지구교단이 이 때 황제를 죽인 줄 알고 기뻐해서 오베르슈타인의 죽음이 운이 나쁜건지 의도적인 일이었는지 후세에 논란으로 남았다. [18] 실질적으로 황제처럼 행동했던 기간까지 다 합쳐도 3년 9개월 정도. [19] 우연인지 그와 대척점에 서 있던 민주공화주의 진영의 수장이었던 욥 트뤼니히트가 최고평의회 의장직으로 재직한 기간도 2년이었다. 실질적인 통치기간은 3년이지만 이중 1년은 권한대행 격이었다. [20] 재위기간을 보면 알겠지만 라인하르트의 재위기간은 성공적인 창업군주 치고 굉장히 짧다. [21] 연도는 전부 우주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