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02:17:32

노이에란트 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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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립 배경3. 구조4. 역사
4.1. 노이에란트 통치4.2. 노이에란트 전역
5. 여담6. 소속 인물

1. 개요

은하영웅전설에서 등장하는 행정조직. 자유행성동맹 멸망 이후 노이에란트(새 영토)로 제국령에 편입된 구 동맹령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나 우주력 800년 말에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서 해체되었다.

존속기간은 우주력 800년 6월 20일 ~ 12월 16일. 총독부 소재지는 바라트 성계 제4행성 하이네센에 있는 고급 호텔 '유포니아'.

2. 설립 배경

우주력 799년 12월부터 개시된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자유행성동맹에게는 사형집행과도 같았다. 동맹정부 및 군부는 모조리 마비되었고, 오직 우주함대 사령부만이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의 지휘 아래 제국군에 맞섰으나 패배했다. 제국군이 하이네센으로 진공하자 록웰 대장을 위시한 일부 장교들은 조안 레벨로 의장을 살해하고 제국군에 무조건 항복했으며 하이네센에 온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발표, 자유행성동맹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동맹이 멸망한 이후 구 동맹령은 노이에란트라는 이름으로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노이에란트의 특수성이 있어 구 제국령처럼 내무성 주도로 지배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과도적인 조치로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 노이에란트를 통치해야 했으며, 이에 라인하르트는 노이에란트의 정치와 군사를 총괄하는 '노이에란트 총독부'를 고안했다.

우주력 800년 3월 19일, 라인하르트는 겨울장미원에 설치된 임시 총본영에서 어전회의를 열어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를 통수본부총장에서 해임함과 동시에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했다. 그러나 정식 임명은 이제르론 요새에 버티고 있는 양 웬리 일당과 결판을 낸 뒤로 미루었다.

회랑 전투 양 웬리 암살사건으로 종결되자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일명 '대친정'은 제국군의 회군으로 끝이 났다. 로이엔탈은 우주력 800년 6월 20일 정식으로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되어 하이네센에 잔류하였고, 제국 정부는 1만 명의 문관을 파견하여 로이엔탈을 보좌케 했다.

3. 구조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수장인 노이에란트 총독은 하이네센에 주재하면서 노이에란트의 정치, 군사 양면을 총괄한다. 그 지위와 대우는 제국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상서(장관)의 것과 동일하며, 오로지 황제에게만 책임을 진다. 거기에다 독자적인 무력까지 보유하고 있는, 제국의 2인자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자리이다.그냥 우주의 반을 가진 부제(副帝)다.

총독 밑에는 군사적인 부문을 보좌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 통칭 '로이엔탈 군'이 있다. 이 군대는 로이엔탈이 통수본부총장 취임 전 지휘하던 함대에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대장과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의 함대를 합한 것으로, 그 전력은 함정 35,800척, 장병 522만 6400명에 달했다. 이는 제국 총병력의 2할에 약간 못 미치며, 동시에 구 자유행성동맹군 말기[1]의 총 병력 규모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제국에서는 카이저 다음 가는 무력집단이었다.

그리고 정치, 민생 부문을 총괄하는 민사정부가 있다. 치안군에 비해 이쪽은 별다른 묘사가 없지만 노이에란트 총독부가 해체된 뒤에도 조직이 유지됐다.

초대 총독 로이엔탈은 총독의 권한을 둘로 나누어 자신을 보좌할 사람을 임명했는데, 군사사열감 겸 총독 대리로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대장, 사열부총감으로 리츨 중장을 임명했다. 그릴파르처와 크납슈타인은 이 인사에 다소 불만을 표했으나, 로이엔탈은 이들을 다독여 불만을 가라앉혔다.

한편 정치 쪽에서는 민사장관으로 율리우스 엘스하이머가, 고등참사관으로 욥 트뤼니히트가 임명되었다. 이 인사는 다소 의문스러운 것이었는데, 트뤼니히트가 고등참사관에 임명된 것은 겉으로는 구 동맹령에 정통한 행정관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으나 실상은 라인하르트가 트뤼니히트를 골탕먹이려다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로이엔탈 역시 트뤼니히트를 경멸해서 그의 재능만 이용하고 여차하면 제거하기 위해 철저히 그를 감시하고 경계했다.

4. 역사

4.1. 노이에란트 통치

우주력 800년 6월 20일, 로이엔탈이 하이네센에 오면서 노이에란트 총독부가 탄생했다. 로이엔탈은 총독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사를 행하는 한편 노이에란트에 산적한 과제를 해결했다.

우선 로이엔탈은 구 동맹령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구 동맹의 치안과 민생경제는 그 전에 비해 악화되지는 않았으며, 노이에란트 치안군도 군기가 엄정하여 대민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통제를 잃은 구 동맹군 이탈자들이 문제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엘 파실 독립정부가 무너지면서 100만 명에 달하는 이탈자들이 하이네센으로 돌아와 총독부에 거주권을 요청했다. 리츨 중장은 이탈자라는 이유로 한때 카이저에게 반기를 든 자를 면죄할 수는 없다 주장했지만,[2] 로이엔탈은 100만 명도 넘는 이탈자들을 모두 구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구 동맹 시민들의 인심도 생각해야 한다며 다른 조치를 취했다. 로이엔탈은 이탈자들을 태운 우주선이 하이네센 제2군용우주항에 착륙하는 것을 허가했으며, 이탈자들의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처분을 내렸다.

로이엔탈은 민간인 및 비전투원은 완전한 자유를 주고 올해 안으로 제국 공민권을 부여하도록 지시했으며, 부사관 및 병사들은 성명을 등록한 뒤에 귀가하도록 했다. 위관급 이상 장교와 엘 파실 독립정부에서 공직을 역임한 자들은 이름, 주소, 지문을 등록한 뒤 제국 정부의 공식 조치가 있을 때까지 한 달에 한 번 출두하여 등록 카드를 갱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이탈자 중에는 엘 파실 혁명군에서 양 웬리의 참모장으로 활약한 무라이 중장도 있었는데, 로이엔탈은 3년 전 안스바흐 준장이 라인하르트 측의 경호가 소홀해진 때를 노려 암살을 꾀했던 일을 떠올려 특별히 감시를 붙였다.

이후 로이엔탈은 양 웬리 제독을 기리는 추모식을 후원했으며 양을 칭송했는데, 이는 구 동맹 시민들이 보낼 비판의 화살을 이탈자들에게 돌리기 위해서였다. 한편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대응하여 치안군 함정들이 함부로 이제르론 회랑에 진입하지 않도록 엄명을 내렸고(이 덕에 무력충돌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회랑 출구를 봉쇄하여 공화정부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폈다.

다음으로 로이엔탈이 착수한 일은 구 동맹을 갉아먹은 부패 정치가와 기업인들을 일소하는 것이었다. 로이엔탈은 이것조차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이용했는데, 민주주의의 치밀하지만 느린 처리와 전제주의의 빠르지만 거친 처리를 대비시켜 민주주의의 결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총독부는 총독이 서명한 영장 하나로 강제 수사와 구속을 자유롭게 행했으며, 그로 인해 약 600명에 달하는 부패 정치가와 기업인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일망타진되었다. 로이엔탈이 선정을 펼치자 구 동맹 시민들도 총독부의 통치에 순응하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제국군의 착각이었음이 밝혀진다.

아무리 로이엔탈이 정치를 잘한다고 해도 무려 160년에 이르는 기나긴 전쟁을 치른 제국군에게 동맹 시민들이 대하여 감정이 없다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아무리 선정을 해도 결국은 침략자일 뿐이다.

우주력 800년 9월 1일, 구 동맹정부 및 군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모여 합동 위령제를 개최했다. 로이엔탈은 집회를 허가했으나 출석하지도, 축사를 보내지도 않았으며 율리우스 엘스하이머는 집회가 평화롭게 끝나도록 계획했다. 위령제에는 2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였고 베르겐그륀은 총독의 뜻에 따라 2만 명의 장병과 함께 식전을 경비했다. 그런데 누군가 "양 웬리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더니 구 동맹의 국가까지 울려퍼지며 반제국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20만 시민들은 제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견디다 못한 제국군 병사들의 발포를 기점으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터져 버렸다. 이 사건은 구 동맹의 반 제국 감정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수면 밑으로 들어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제국군에게 각인시켰다. 로이엔탈도 씁쓸하게 아무리 선정을 해고 침략자일뿐이라는 건가? 하긴 그들에겐 그럴지도 모르겠지...라며 씁쓸해했다.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이른바 9.1 사건 이후 노이에란트 각지에서는 폭동과 사고가 빈발했으나 총독부는 교통 및 통신체계를 보호하는 등 기민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로이엔탈의 몰락을 바라는 하이드리히 랑과 제국을 무너뜨리기를 원하는 페잔 자치령 전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 지구교가 본격적으로 준동하기 시작한다.

4.2. 노이에란트 전역

로엔그람 왕조의 수도 페잔에서는 우주력 800년 9월부터 기묘한 소문이 흐르고 있었다(세세한 부분은 달랐지만, 모든 내용은 로이엔탈 원수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로이엔탈은 페잔에 심어 둔 사람을 통해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와 하이드리히 랑이 황제의 병환을 기회로 삼아 마치 재상 또는 내무상서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며 로이엔탈을 음해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이 정보는 랑이 조작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로이엔탈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가 자신에게 가진 감정을 시험하기 위해 초청장을 보냈다. 제국 수뇌부 내부에 반대 여론이 일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를 일축한 뒤 순방을 강행했다. 그러나 중간 기착지인 간다르바 성계 제2행성 우르바시에서 치안군 소속 우르바시 주둔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라인하르트는 추격을 뿌리치고 간신히 전함 브륀힐트를 타고 우르바시를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코르넬리우스 루츠 상급대장이 전사했다. 로이엔탈도 반란 소식을 듣고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을 파견하여 사태 수습을 시도하지만 루츠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 사태가 돌이킬 길이 없음을 직감했다. 여기에 그릴파르처 대장은 사건의 진범이 지구교라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아 사태를 더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로이엔탈은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여 반란을 일으켰고, 520만이 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은 고스란히 반란군이 되었다. 제국 정부는 11월 16일 황제의 이름으로 로이엔탈의 원수 칭호와 총독직을 박탈했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를 사령관으로 임명한 진압군을 파견했다. 로이엔탈은 황제가 병환을 앓는 사이 국정을 농단하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하이드리히 랑과 같은 간신들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로이엔탈은 치안군 전 병력을 동원하여 제국군을 요격하는 한편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끌어들이고자 했으나 공화정부는 로이엔탈이 실패할 거라고 보고 제국 쪽에 붙어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의 회랑 통과를 허가했다. 로이엔탈은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과 맞붙었으나 결판을 내지 못했고, 메크링거 상급대장이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여 노이에란트에 진입하자 근거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후퇴했다. 그러나 그릴파르처 대장의 배신으로 로이엔탈은 중상을 입고 노이에란트 치안군도 와해되어 하이네센으로 돌아온 병력은 전체의 1할을 조금 넘었다.

로이엔탈은 죽기 직전 제국을 갉아먹을 위험이 있는 트뤼니히트를 총살했으며, 민사장관 엘스하이머에게 전권을 넘기고 사망했다. 이후 제국은 노이에란트 총독부를 해체시키고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이 노이에란트에 주둔하여 현지의 치안을 담당하도록 했다.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과 함께 반기를 들었다가 스러져간 총독부 병사들에게 관대한 처우를 내려 그들의 계급을 박탈하지 않았고, 로이엔탈의 총독 칭호는 반환하지 않았지만 원수 칭호는 반환하였다. 그러나 온갖 추태를 보인 그릴파르처는 대장 계급을 박탈하고 자결을 명령했다.

5. 여담

  • 한 역사가는 제국 행정 시스템의 불균형을 초래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노이에란트 총독부에 로이엔탈을 앉힌 것은 그의 야심을 끌어낸 행위였다고 라인하르트를 비판했다.

6. 소속 인물


[1] 시기를 보면 제2치 라그나로크 작전 시기로 보인다. 이 때 동맹군은 20,000~22,000척의 규모였다. [2] 여기에는 리츨 중장의 상관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이 회랑 전투에서 전사한 기억이 생생해서 옛 적에 대해 호의적일 수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