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5:56:17

립슈타트 귀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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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슈타트 귀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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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A[2] DNT }}}
<colbgcolor=#ddd,#222> 단체 개괄
단체명 립슈타트 귀족연합
맹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
실전 총사령관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
근거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참가 귀족수 3,740명(원작)
3,786명(OVA)
병력 2,560만명(정규군 + 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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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222> 단체
존속기간
서기(A.D.): 3597. 2. ~ 3597. 9?[3]
우주력(SE): 797. 2. ~ 797. 9?.
제국력(RC): 488. 2. ??. ~ 488. 9?.
주요 사건[4] · RC 488. 2. 립슈타트 맹약 체결, 립슈타트 귀족연합 발족
· RC 488. ?.~ 4. 6. 슈바르첸 관저 습격사건
· RC 488. 4. 19. ~ ?? 알테너 회전
· RC 488. ?.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
· RC 488. 7. 키포이저 성역 회전
· RC 488. ?. ~ 7. 9. 샨타우 성역 회전
· RC 488. 7. ~ 8. 15.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 RC 488. 8.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 RC 488. 9?.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립슈타트 귀족연합 와해
설립 이전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멸망 이후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
1. 소개2. 명칭3. 구조 및 명단4. 군사력5. 창설 배경6. 활동
6.1. 결성과 도주6.2. 내전6.3. 멸망과 그 이후
7. 영향8. 패전 원인9. 기타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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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은하영웅전설에 존재했던 조직. 은하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과 제국재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비롯한 '추축파'들이 야합으로[5]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자, 이를 반대하는 문벌귀족들이 결성한 연합 군사조직.

2. 명칭

공식 명칭은 립슈타트 귀족연합으로, 맹약을 맺은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별장이 있는 립슈타트 숲에서 유래했다. 립슈타트(Lippstadt)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소도시 립슈타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은 스스로를 '정의파 제후군(正義派 諸候軍)'[6]으로 불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주장에 불과했고, 제국 정부 입장에서는 동맹과 똑같은 반란군이었다. 그런데 제국은 이미 자유행성동맹을 ' 반란군'이라 기록하고 있었기에 구분을 위해 다른 명칭으로 기재할 필요가 있었고, 군무성 서기관으로부터 새 공식 명칭을 지어줄 것을 요청받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적군(賊軍)[7]이라고 공식 명칭을 붙여 제국 전토에 널리 퍼트렸다.

명칭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제국 전토에 쫙 퍼지자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가담한 귀족들은 "우리더러 도적 군대라고?!"라고 분노하며 술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하지만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는 대귀족도 똑같이 라인하르트를 욕하니 피장파장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적군'은 한국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인데다가 적군(敵軍)과 오인될 우려 때문인지 한국판에서는 매체마다 표기가 달라졌다.

을지서적판에서는 '반적군(叛賊軍)', 서울문화사판은 '도적떼'(...), 이타카판에서는 '적도군(賊盜軍)'이라고 번역했다. 만화책의 표기도 서로 달라서 미츠하라 카츠미 코믹스판은 시공사판에서는 도적군, 대원씨아이 발매판과 후지사키 류 코믹스는 적도군이지만 DNT 챔프TV 자막은 '역적군(逆賊軍)'이라고 번역했다. 유일하게 우일에서 발매한 미치하라 카츠미 해적판 코믹스만 원어 표기를 그대로 써서 '적군'이라고 번역했는데, 이쪽은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군에 속하는 다른 의미와 혼동되기 쉽다.

3. 구조 및 명단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제국 내 필두의 대귀족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의 동맹에 수많은 귀족들이 동참한 연합의 형태를 이루었다.[8] 지도자이자 맹주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부맹주는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취임했으며 실전부대를 지휘할 총사령관으로는 은하제국군의 숙장(宿將)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 취임했다. 그 이외에도 제국 정규군과 귀족들의 사병이 집결했고 은하제국의 장군들 중에서도 귀족연합에 가담한 자가 있었다.[9]

아래는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가한 주요 귀족들 명단이다. 리히텐라데나 라인하르트에 반발하여 연합 결성에 참여했거나, 이들과 뜻이 같아 나중에 가담하거나, 귀족들 이외에도 자신의 상관이나 주군이 연합에 참여하며 덩달아 끌려가게 된 경우부터 참여를 종용 받거나 협박받아 어쩔 수 없이 가담한 경우까지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다양한 이유로 연합에 참가하였다.[10] ★가 붙은 인물은 OVA 오리지널 등장인물이다.

태생 자체가 대귀족들의 이합집산에, 오만방자한 귀족들의 모임이다보니 전체적인 조직 기강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1개 함대를 출정하는데도 하나의 사령관 아래 각기 자신들만의 부대를 지휘하는 중소규모 귀족들을 짝지어 내보낸 탓에 지시를 듣지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에 실전부대 최고사령관에는 맹주 브라운슈바이크가 직접 메르카츠 상급대장을 영입했음에도 휘하 귀족들이 지시를 거부하는 일은 당연한 것처럼 일어났다. 연합의 맹주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추대되어있음에도 부맹주 리텐하임 후작은 가르미슈 요새에서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만을 데리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귀족연합에 가담한 문벌귀족들 전부가 지도자인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처럼 사욕이나 명예욕때문에 가담한 것은 아니고, 진심으로 권신으로부터 제국을 지키기 위해 가담하거나 다른 귀족들의 협박이나 주위 분위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4. 군사력

급속도로 몰락해서 그렇지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군사력은 명단만 놓고 보면 강력한 수준이다. 가히 1개 국가의 군대에 필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 규모와 훈련도: 함대가 15만 척 이상, 병력이 2560만명인데 이 정도면 자유행성동맹군 전체 병력의 절반에 달한다. 거기에다 이 중에 제국 정규군도 합류해서 숫적으로는 라인하르트가 지휘하는 제국 중앙군을 능가했다.
  • 인재: 숙장으로 이름 높은 메르카츠, '다진고기 제조자'로 불리는 백병전 최강자 오프레서, 훗날 로엔그람 왕조에서 출세한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안톤 페르너, 레오폴트 슈마허, 콘라트 린저 등의 우수한 인재들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오프레서만 빼고 자기가 넘어간 곳에서 아주 잘 써먹어졌음을 감안하면, 하다못해 그나마 뛰어나지 않은 콘라트 린저도 지구교 총본산에서 세운 군공을 감안하면 결코 실력이 없는건 아니다.[14] 이 정도면 최소한 2개 함대[15] 정도는 문제없이 굴릴 수 있다.
  • 보급: 귀족들은 제국 전역에 영지가 널려 있었으며 이 영지들에 사는 영지민들로부터 물자를 얻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끝까지 보급난에 시달리지 않은 것으로 봐서 물자 문제에서는 끝까지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 자금: 당연히 문벌귀족들의 개인재산은 엄청나다. 그것도 그냥 대단한게 아니라 여기 참가한 이들의 상당수를 제외한 이들의 재산을 몰수한 것만으로도 제국재정이 꽉찼을 정도.
  • 사기(?):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문벌귀족의 특성상 사기가 매우 높았다.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몰락하기 직전 무렵, 귀족들이 처음에는 여기의 분위기가 노이에 상수시를 그대로 옮겨온듯 했다고 한탄했을 정도.

이렇게 장점들만 모아놓고 보면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제국군과 꽤 해 볼만한 수준으로, 라인하르트도 귀족들을 비웃으면서도 정작 진압에는 1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때문에 만약 귀족들이 저 병력들을 적절한 인재들에게 몰아주어 그들이 일을 잘 하는지만 관리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라인하르트의 말은 현실이 되거나 그보다 더 버텼을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순 없다. 변수 요소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16] 그러나 이들은 하술할 문제점들 때문에 고작 7개월, 첫 교전을 기준으로 5개월 만에 패망했다.

5. 창설 배경

우주력 796년 자유행성동맹의 대규모 침공 당시, 은하제국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급성 심장질환으로 붕어(崩御)하였다. 프리드리히 4세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었으므로, 제국에서는 제위 계승자를 두고 첨예한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당시 유력한 후보자는 문벌귀족의 거두이자 황제의 사위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딸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의 딸 자비네 폰 리텐하임이었다. 이 두 가문은 오래 전부터 수많은 귀족들을 구워삶으면서 제위계승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국무상서이자 제국재상 대리를 맡고 있던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제국의 앞날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문벌귀족들의 전횡을 더 이상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선제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와 빛나는 무훈을 등에 업고 유례없는 속도로 출세한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과 동맹을 맺고, 프리드리히 4세의 손자인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17]제국 재상직에 취임하며 공작 작위를 받고, 로엔그람 백작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임명하고 후작 작위를 내렸다. 궁정은 두 사람의 동맹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두 사람을 기둥으로 새로운 체제가 새워졌다. 이 두 사람의 동맹을 '추축파'라고 부른다.

한편 이 체제에서 소외된 문벌귀족들, 특히 제위 계승에서 패배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크게 분노했다. 그들 입장에서 리히텐라데 공작은 '선제 프리드리히 4세의 붕어와 함께 역할을 마치고 국정에서 물러나야 할 퇴물'이었고, 로엔그람 후작은 '허울만 귀족인 빈민가 태생에, 그의 누이에 대한 선제의 총애를 이용해 영달한 하극상의 전형 같은 애송이'였다.[18] 새 질서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새 체제가 무너지기를 바랐으나, 문벌귀족이라는 공통된 적을 둔 추축파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자 오랜 세월 서로 암투를 벌였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공통된 적을 두고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새 질서에 불만이 많은 귀족들은 서서히 이 둘의 동맹에 모이기 시작했다.

6. 활동

6.1. 결성과 도주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의 횡포를 용서할 수 없다. 우리들 귀족계급은 '선택받은 자'의 신성한 사명을 띠고 골덴바움 왕조를 수호해야 한다. 오딘 신이여! 우리를 수호하소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6권 발췌[19]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2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을 비롯한 반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 추축파 귀족들, 다시 말해 '연합파' 귀족들이 은하제국 수도성 오딘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소유의 별장이 있는 립슈타트 숲에 모였다. 명목은 고대 명화 경매와 원유회(園遊會)[20]였지만, 별장 지하에서는 추축파에 반대하는 '애국서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서명이 훗날 '립슈타트 맹약'이라고 불리는 서명이며,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모인 귀족은 총 3,740명,[21]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병력은 정규군과 사병(私兵)을 합쳐 모두 2,560만에 달했다. 귀족연합을 이끌 맹주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부맹주는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으로 결정되었다.

립슈타트 맹약 아래 뭉친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무력을 조직화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초빙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비며 군공을 쌓은 숙장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 브라운슈바이크의 초빙을 받아 실전부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그 외에도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중장, 슈타덴 대장, 장갑척탄병 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 등 뛰어나거나 최소한 기본은 하는 장군들이 귀족연합에 합류했다.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준장과 안톤 페르너 대령이 로엔그람 후작을 암살하자고 주장했으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대군을 이끌고 당당히 나가 '금발 애송이'를 격파해야 한다며 기각했다. 그러자 페르너 대령이 직속부하 300명을 이끌고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가 있는 슈바르첸 관저를 습격하려 했으나,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자 로엔그람 후작의 죽마고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이 5000명에 달하는 장병들과 함께 관저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고 실패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부하 안스바흐 준장의 계획대로 황제를 초청해 원유회를 연다고 소문을 내고 비밀리에 가족과 몇몇 부하들과 함께 수도성 오딘을 탈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로엔그람 후작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사령관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중장이 직접 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군무성과 통수본부를 점거하고, 군무상서 에렌베르크 원수와 통수본부총장 슈타인호프 원수를 구금했다.

그제야 수도성 오딘이 추축파에 제압당한 걸 알게 된 연합파 귀족들은 탈출을 꾀했다. 하지만 우주항은 '질풍 볼프' 볼프강 미터마이어 대장이 점령했고, 오딘의 위성궤도에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의 함대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그 바깥 공역에는 칼 구스타프 켐프 중장과 '금은요동(金銀妖瞳)' 오스카 폰 로이엔탈 대장이 함대를 이끌고 탈출하는 귀족들을 족족 체포했다.[22] 일부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와 연줄을 만들 생각으로 마린도르프 백작가를 찾아가기도 했다.

수도성 오딘은 추축파에게 점거당했으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은 4월 6일 '제국군 최고사령관'의 칭호를 받고 제국군 3대 장관을 모두 겸직하여 군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동시에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칙명에 따라 국적(國賊)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6.2. 내전

비록 슈바르첸 관저 습격사건에서 수많은 귀족들이 체포되었으나,[23] 아직 2560만이 넘는 병력과 9개 군사거점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은 제국군 총 병력에 맞먹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귀족은 군 계급은 있어도 군재는 없었고, 본래 추축파에 대항하기 위해 급조한 연합이다보니 제대로 단합하지 못했다.[24] 거기에다 로엔그람 후작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끌어들인 사이 별동대를 조직하여 제도 오딘을 치자는 슈타덴 제독의 주장은, 안 그래도 허약한 연합의 단결력을 더 약화시켰다.[25]

이후 한 번 싸워 적의 역량을 가늠해야 한다는 슈타덴 대장의 의견대로 귀족연합군은 알테너(Altener) 성역에서 볼프강 미터마이어 대장이 이끄는 제국군과 맞붙었지만, 히르데스하임 백작을 비롯한 성질 급한 청년 귀족 장교들의 요구로 함대를 반으로 나눠야 했고 미터마이어의 속공에 각개격파 당하여 참패했다. 슈타덴 제독은 렌텐베르크 요새로 도망쳤고 히르데스하임 백작은 여기서 전사해 귀족 전사자 1호가 되었다.( 알테너 회전)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제국군은 슈타덴 제독을 뒤쫓아 렌텐베르크 요새로 몰려왔다. 그러자 장갑척탄병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이 직접 나서 휴식 없이 무려 8시간 동안 분투하여 제국군의 침공을 저지했지만,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가 판 함정에 빠져 생포당했다. 지휘관을 잃은 귀족연합군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린텐베르크 요새는 함락당했으며 슈타덴 대장을 비롯한 비롯한 다수의 장병들이 포로가 되었다. 이후 오프레서는 라인하르트의 호의로 석방되어 귀족연합군으로 돌아갔지만, 우주함대 총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장의 모략으로 배신자로 의심받아 총살당했다.(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

7월,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의 불화 끝에 5만 척의 함대를 이끌고 변경성역을 탈환하겠다는 명목으로 연합을 사실상 탈퇴했다.[26] 하지만 본래 군재가 없던 리텐하임 후작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이 이끄는 제국군 별동대에 패배하고, 퇴각하면서 길을 가로막는 아군 수송함대를 격침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이후 리텐하임 후작은 가르미슈 요새로 도망쳤으나, 라우디츠 중령의 테러로 요새의 25%와 함께 목숨을 잃었으며 그의 함대는 와해되었다. 이 전투의 패배로 귀족연합군은 전력의 30%를 상실하였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

한편 샨타우 성역을 점령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 대장의 함대는 귀족연합군 실전부대 총사령관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부대와 마주쳤고, 메르카츠와 맞서 싸워 큰 희생까지 내면서 차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조금 싸우다가 퇴각했다. 귀족연합군은 샨타우 성역을 점령했으며, 내전 이래 첫 승리를 기록했다.( 샨타우 성역 회전)

7월 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도전장을 보내 귀족들을 도발했다. 귀족들은 분노했으며, 마침 미터마이어 대장의 함대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주포 사정거리 밖에 거슬리게 돌아다니자 더 격분했다. 사령관 메르카츠 상급대장은 출격을 금지했지만 참지 못한 젊은 귀족들이 명령을 어기고 출격하여 미터마이어 함대를 무찌르고 함정과 군수물자를 노획해 돌아왔다. 메르카츠 상급대장은 이들을 처벌하려 했지만 플레겔 소장을 비롯한 젊은 귀족들이 이 자리에서 자결하겠다고 난리를 피웠고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젊은 귀족들을 치하하자 포기했다.

8월 15일, 미터마이어 함대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공격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총사령관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명령도 무시하고 제멋대로 출동했다. 미터마이어 함대가 도망치자 귀족연합군은 승리를 확신하며 미터마이어 함대를 추격했다. 미터마이어 함대는 연합군이 추격을 늦추면 공격하고 반격하면 후퇴하는 식으로 귀족연합군을 도발했으며, 마침내 그들이 종심진(縱深陳) 안쪽으로 유인당했을 무렵 전광석화처럼 돌진하여 귀족연합군을 분쇄하였다. 패주하는 귀족연합군은 대기하고 있던 제국군 제독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했으며,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기함마저 피탄당했다. 그때 메르카츠 제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귀족연합군을 추격하느라 전열이 흐트러진 제국군을 일제포격으로 제압하고 근접전으로 함렬을 무너뜨리자 미터마이어 대장과 로이엔탈 대장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그 와중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영지인 베스터란트를 관리하던 공작의 조카 샤이트 남작이 오랜 수탈과 폭압으로 분노한 주민들의 폭동에 중상을 입고 가이에스부르크에서 숨을 거두었다. 분노한 공작은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베스터란트에 핵폭격을 가해 주민 200만 명을 학살했으며, 추축파는 이를 방관하는 걸 넘어 이를 전 제국에 생중계해 제국의 민심을 일거에 추축파로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완전히 돌아선 민심과 계속된 패전으로 인해, 귀족연합군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고립되었다.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인망과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절망한 귀족들은 자살하거나 각자 살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투지를 잃지 않은 플레겔 남작을 비롯한 젊은 귀족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설득하여 남은 병력을 이끌고 제국군을 쳤다. 하지만 6번의 파상공세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면서 귀족연합군은 지쳤고, 그 틈을 노려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의 고속순항함대가 연합군을 역습하고 제국군 제독들이 일제히 공격하면서 연합군은 붕괴한다.

붕괴하는 귀족연합군에서는 살육전이 벌어졌다. 전원 자결을 주장하는 귀족 출신의 고급장교와 평민 출신인 하급장교 및 병사들이 유혈충돌한 것이다. 수많은 고급장교들이 하극상을 당해 목숨을 잃었고, 함선들은 병사들에게 제압되어 제국군에 항복했다.

겨우 요새로 돌아온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부하 안스바흐에게 자살을 '당했고', 이후 제국군이 요새로 진입하자 연합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벌였지만 금방 제압당했다. 이후 가담한 귀족들은 포로가 되었으며, 귀족연합은 해체되었다.(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6.3. 멸망과 그 이후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몰락하면서 5세기 동안 민중 위에 군림한 문벌귀족들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반역자로 몰려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고, 그나마 남은 재산도 약점을 잡혀서 헐값에 팔아치워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소유했던 건물들은 평민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사용되었다. 몇몇 귀족들은 부조리한(?) 현실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귀족체제에서 해방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귀족 잔당들을 감시했기 때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고 해봐야 일기장에 라인하르트를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처럼 일부 귀족들은 전장을 빠져나와 페잔 자치령이나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했다. 그들은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꼬임에 넘어가 라인하르트 손에 있는 황제를 구출하고, 페잔 자치령 자유행성동맹의 원조를 받아 동맹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망명 귀족들은 두 세력의 도움을 받아 언젠가 로엔그람 독재체제를 타도하고 제국으로 귀환하여 잃어버린 특권을 되찾는다는 몽상에 빠졌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루빈스키와 라인하르트 손 위에서 놀아나는 광대에 불과했으므로 그들이 세운 은하제국 정통정부는 제국군의 공격이 가해지자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한편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처럼 라인하르트파로 전향하여 죄를 용서받은 이들이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전향자들을 중용했고 이들은 라인하르트의 호의에 화답하듯이 라인하르트를 성실히 보좌하여 신 제국 건국에 공헌을 세웠다. 그 결과 이들은 골덴바움 왕조 밑에 있을 때보다 더 출세했다.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한 메르카츠 제독 역시 양 웬리 제독의 참모가 되어 나름 중용받았지만, 은하제국 정통정부 때문에 정작 중요할 때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한편, 립슈타트 전역이 끝나고 라인하르트는 제국 전반에 대한 개혁이 추진시켰는데 그 내용을 살펴 보자면 우선 공평한 형법 및 민법을 제정하고 세제를 개혁하며 문벌귀족들이 보유하던 광대한 정원을 농민에게 무상으로 지급하고 농노를 해방했다. 수많은 귀족들의 저택이 병원이나 복지시설로 평민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귀족들이 쌓아놓은 예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급진 공화주의자나 테러범들을 제외한 사상범들은 모두 석방되었고 발매금지 처분을 받은 몇몇 신문이나 잡지의 재간도 허용되었다. 귀족을 대상으로 한 특수 금융기관이 사라지고 대신 농노에게 영농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농민금고'가 신설되었다. 이 개혁 정책에 제국 민중들은 라인하르트를 개혁자이자 해방자로 칭송했으며,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적폐가 청산되면서 은하제국의 국력은 끝없이 성장했다. 그리고 문벌귀족들에게서 압수한 재산이 무려 10조 제국 마르크에 달하면서 라인하르트의 개혁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로엔그람 왕조가 계속 전쟁이 이어짐에 불구하고 재정이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벌대귀족들이 몰락하기 전만 해도 은하제국은 군웅할거가 예상되는 상황까지 몰려져 있었을 정도로 중앙의 지방통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사실상 연맹연방국가나 다름없는 수준까지 떨어진 마당이니 세수가 제대로 걷히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립슈타트 전역이 끝나고 전역에 가담한 문벌귀족의 재산을 몰수하고, 살아남은 귀족들에 대한 면세특권도 없애고 지방통제력이 강화됨으로써 세수가 제대로 걷혀지니 재정이 부유해지게 된 것이다.

DNT에서는 개혁 추진 이후의 평민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이 생겼는데, 그 동안의 억압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야외 식당에서 맥주를 들고 라인하르트를 칭송하고, 한 여성 작가는 검열 정책이 폐지됨으로써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던 창작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민생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나라 전체가 아주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골방에 틀어박힌 한 구 문벌귀족파의 한 사람은 이 광경이 하루뿐인 환상이라며 중얼거리고는 라인하르트의 개혁을 부정하는 사실상 폐인 상태가 되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7. 영향

문벌귀족들로 뭉친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활약(?)은, 이들이 지키려고 했던 골덴바움 왕조 체제의 은하제국을 오히려 자신들이 끝장내는 아이러니로 끝났다.

프리드리히 4세의 사망 당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몇 년에 걸쳐 쌓은 군공으로 제국원수에 서임되어 라인하르트 원수부를 개창, 신분은 낮지만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모아 자신의 세력을 형성하였고,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 되어 제국 우주함대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군 내부에는 여전히 라인하르트를 싫어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파벌이 꽤 남아 있어서 완전히 군부를 장악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를 위시한 관료들과 협력하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물론 라인하르트에게는 군사력이 있었으므로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의 여력은 되었겠지만, 이 때까지 황제의 곁에서 명분을 쥐고 있었던 쪽은 어디까지나 리히텐라데였기 때문에[27] 라인하르트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자칫 잘못하면 반역자로 몰려 쫒겨나는 꼴이 될 수 있었다. 그보다 애시당초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에게는 그런 짓을 할 만한 명분도 없었고 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단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에게 높을 값을 매긴 쪽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 때는 그게 리히텐라데이었을 뿐. 무력이 있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명분이 있는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가 손을 잡았고 그 파괴력은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조차도 당장 건드릴 수 없었다. 라인하르트는 리히텐라데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 거라는 사실을 뻔히 짐작하고 있었으면서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어차피 시간이든 인내심이든 없기는 리히텐라데가 더했으니까.

문제는 은하제국의 주적인 자유행성동맹은 150여 년에 걸친 제국과의 전쟁과 최근의 패전으로 국력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제국에 공세를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동맹이 싸우러 나오지 않으면 라인하르트가 군공을 더 쌓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먼저 쳐들어가자니 이제르론 요새에는 명장 양 웬리가 지키고 있어서 힘으로 뚫으려면 과거 동맹군 이상으로 막대한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섣불리 자리를 비웠다가는 문벌귀족들이 들고일어날 게 뻔했기 때문에 함부로 수도를 떠날 수도 없었다. 동맹&제국 포로교환 때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직접 오지 않고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대신 보냈을 정도였다.

제국과 동맹을 잇는 또 하나의 통로를 소유하고 있는 페잔 자치령은 일단 제국으로 내정자치권을 인정받은 속령이므로, 아무리 라인하르트라고 해도 귀족들과 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페잔의 독립을 짓밟고 페잔 회랑으로 침공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다가 립슈타트 전역으로 문벌귀족들이 패망하면서 부담이 없어지게 된 라인하르트는 철저한 준비 끝에 페잔을 침공해버린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는 제국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이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에는 딱히 좋은 건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즉 라인하르트에게 썩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골덴바움 왕조의 존속을 목표로 하는 리히텐라데에게는 문벌귀족들이 군부의 라인하르트를 견제해줄 것이므로 일단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장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반란은, 군권을 쥐고 있는 라인하르트의 정치적 영향력과 운신의 폭을 크게 넓혀주었다. 일단 반란이 크게 일어났으므로 라인하르트는 반란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28] 라인하르트는 반란에 가담한 문벌귀족들을 자신이 이끄는 제국군으로 짓밟아버리고, 반란 진압을 끝내자마자 쿠데타를 일으켜서 손쉽게 리히텐라데를 제거했다.[29] 립슈타트 전역이 끝난 후, 반란에 가담했다가 살아남은 문벌대귀족들은 모조리 한꺼번에 싸잡아 "반역자"라는 명분으로 손쉽게 정리해버릴 수 있었다. 그나마 남은 소수의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했으므로, 립슈타트 전역은 라인하르트가 문벌귀족 계급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문벌귀족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라인하르트도 이렇게까지 쾌도난마 파죽지세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최소한 얼마 동안은 문벌귀족들과 지지부진한 정쟁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제멋대로 반란을 일으킨 덕분에 라인하르트 파벌은 반대파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문벌귀족은 '정치판의 권모술수'라는 자기들의 싸움터를 스스로 버리고, '전쟁터'라는 라인하르트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뛰쳐나와 스스로 패망한 셈이다.

단 이는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고, 엄밀히 말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나 리텐하임 후작 역시 라인하르트처럼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나 리텐하임 후작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부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자식을 황제로 옹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에르빈 요제프 황제가 옹립된 이후로 계속 시간만 지나게 되면 당연히 리히텐라데-로엔그람 라인은 안정권에 들어가게 될 테고[30],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은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암살 역시 마찬가지로, 설령 리히텐라데 공작과 라인하르트를 동시에 암살하는게 가능했다고 치더라도 그 뒤로 상대를 압도하여 황제를 세울 만한 권위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리히텐라데 공작과 라인하르트를 암살하고 신 황제를 옹립하게 될 경우 리텐하임 역시 선례를 따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며,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군인 황제 시대의 로마처럼 개나 소나 황제를 자처하는 시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31]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시간을 끌면 불리한 것은 라인하르트 쪽이 맞다. 시간이 지나면 라인하르트는 정리되지 못한 문벌귀족 세력을 흡수하게 될 리히텐라데 공작의 정치적 공세에 부딪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영지나 귀족간 인맥이 없어서 밑바탕이 탄탄하지 못한 라인하르트 쪽이 더 불리하게 될 것이다. 또, 문벌귀족 측에서는 시간을 끌어서 불리한 것은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 뿐이고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봤자 그냥 현상유지를 하게 될 뿐 딱히 불리하게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문벌대귀족에게는 브라운슈바이크/리텐하임을 버리고 리히텐라데로 갈아탄다는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8. 패전 원인

"귀족 연합군은 전의는 과다하나 전략은 과소하다."
- 오스카 폰 로이엔탈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500년 가까이 골덴바움 왕조를 지배한 문벌귀족 대부분이 뭉쳤기 때문에 때문에 어마어마한 전력을 자랑했다. 2560만에 달하는 병력,[32] 그 병력을 먹여살리는 막강한 경제력,[33] 이제르론 요새를 제외한 제국 최강의 요새인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비롯한 9개 군사거점, 메르카츠나 파렌하이트처럼 우수한 제독까지. 말 그대로 은하제국군과 1대 1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1년을 넘길 거라는 라인하르트와 오베르슈타인의 예상을 깨고, 겨우 7개월 만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지, 패배한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 부족한 명분
    일단 명분부터가 애매했다. 문벌귀족들은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가 결탁하여 멋대로 새 황제를 옹립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며 비난했지만 두 사람은 군부와 정부를 대표하는 중진이며 모친의 신분이 낮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에르빈 요제프 2세 역시 선제의 손자로서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었다. 그리고 전제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은하제국 특성상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는 대놓고 불복하는 문벌귀족들을 "황제에게 등을 돌린 자를 황제의 명령을 받아 토벌한다"는 정당한 대의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귀족들은 졸지에 제국의 지배층에서 반란분자로 위상이 추락했다.
  • 허약한 결속력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주축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는 본래 제위를 두고 반목하던 사이였다.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가 황제를 기습 옹립하자 눈앞의 적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손을 잡았을 뿐, 진정으로 협력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당장 눈앞의 문제인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를 타도한다는 목적에 귀족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하지만, 이 내전에서 승리한다 해도 누구를 황제 자리에 올리는가를 두고 또 한번 내전을 벌여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정통성 면에서 문제가 없고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는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를 선택하는 소수의 귀족도 존재했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한참 전쟁 중인 상황에 브라운슈바이크-리텐하임의 사실상 결별이라는 형태로 터져버렸다.
그 결과 벌어진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부맹주 리텐하임이 사망하고 전 병력의 1/3을 상실하는 대참패를 겪었다. 하다못해 상대인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의 연합이 귀족들처럼 불안정했다면 모를까 둘은 언젠가는 서로를 쳐야 할 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당장의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의 협력이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고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의 대다수가 라인하르트 덕분에 이만큼 출세할 수 있던 평민이나 하급 귀족 출신 장성들이었기에 이런 분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34]
  • 안톤 페르너의 삽질
    라인하르트 측도 귀족들이 결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손을 댈 수 없었다.[35] 브라운슈바이크의 부하 페르너는 안네로제를 납치하거나 라인하르트를 암살해 사태를 전쟁 없이 끝낼 것을 종용했는데, 브라운슈바이크는 이를 무시했으나[36] 페르너가 단독으로 결행했다가 실패하고 만다. 그 덕분에 라인하르트 측에는 귀족 세력을 잡아들일 명분이 생겼고, 곧 오딘에 있던 연합파 귀족들을 체포하면서 오딘을 장악했다.
또한 페르너는 브라운슈바이크 앞에서 훈련받은 병사 3백만 있으면 라인하르트의 목을 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에게 5천 병력으로 관저를 철통 경호하게끔 했기에 페르너가 단독으로 라인하르트를 암살하려던 시점에서 이미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체제의 안정을 위해 라인하르트를 암살해야 한다는 판단은 옳았지만 너무 얕봤던 게 문제. 여기에 페르너는 자신의 실패로 귀족들이 싹 갈려나가자 바로 라인하르트파로 전향한다.
  • 지휘부의 무능과 군기문란
    귀족연합군에도 인재가 없지는 않았다. 귀족연합군의 총사령관은 메르카츠로, 라인하르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무훈을 쌓아온 명장이었다. 그러나 귀족연합군은 이 명장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해놓고 실제로는 권한을 행사하게 두지 않았으며,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 등 제멋대로 굴었다.[37] 안 그래도 라인하르트 쪽은 본인 뿐만 아니라 키르히아이스,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등 유능한 함대 지휘관들이 수두룩했는데 이들과 맞서야 하는 귀족연합군은 저들이 가진 최고의 지휘관인 메르카츠에게 지휘권을 위임하기는 커녕 사사건건 어깃장만 놓았다. 메르카츠 본인도 이게 염려되어서 귀족군에 참여하는 대신 지휘권을 달라고 했고 브라운슈바이크도 이에 동의했지만,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브라운슈바이크 본인부터 청년 귀족들이 메르카츠의 명령을 무시하는 걸 대놓고 옹호했으며, 심지어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메르카츠에게 왜 빨리 구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기까지 했다.
  • 청년 귀족 장교들의 문제점
    이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명장이라기에는 부족하지만 많은 실전을 겪어왔고 최소한 군인으로 기본은 하는 슈타덴 대장의 지휘에 불만을 가지고, 군 계급도 없는 주제에 사령관인 슈타덴에게 대놓고 덤벼들며 어거지로 정면돌격하는 형편없는 전투를 벌이게 한다. 슈타덴은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나중에는 귀족이랍시며 멋대로 쫓아내고 자기들이 지휘하려고 드니 기획했던 작전을 무르고 그들이 원하던 대로 정면으로 싸워야 했다. 그래도 슈타덴은 함대를 절반으로 나누어 그 절반을 히르데스하임 백작에게 지휘하게 하고 최소한 사령관인 자신의 지시를 따르게끔 했으며 마침 미터마이어가 살포해놓은 기뢰군을 이용해서 미터마이어 함대를 자신이 본대를 이끌고 앞을 히르데스하임 백작이 기뢰군을 우회해 뒤로 포위하여 기뢰군으로 밀어넣는 작전을 세워서 전달했으나, 그마저도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히르데스하임은 기함과 같이 우주의 먼지가 되고, 슈타덴은 렌텐베르크 요새까지 후퇴해야 했다.
이렇게 도저히 이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무모함에 지고도 정신승리나 하고,[38] 총사령관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데다 이를 처벌하려는 메르카츠에게 오히려 대드는 등 추태만 거듭했는데, 끝내는 라인하르트의 도발에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나가 싸우다가 참패했다. 심지어 맹주라는 브라운슈바이크가 출격 금지 명령을 위반한 귀족들을 옹호하는 걸 보고[39] 메르카츠는 완전히 체념하고 이들을 방치했다.
강직한 군인인 메르카츠 제독마저 포기할 정도면 말할 필요도 없는 막장 중의 막장이다. 더 심한건 아랫것들까지도 똑같이 막장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들을 섬겨야 하는 부하들은 유능한 이들이 많았다. 즉, 해야할 일과 지휘권은 부하들에게 다 맡겨두고 자기네들은 지휘관석에 앉아있기만 하는 걸로도 충분하게 여겼다는 것. 문제는 이들은 계급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능력도 없어서 부하들에게 이것저것 간섭해 일을 망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카드놀이와 전쟁도 구분 못한다는 말을 들은 헤르베르트 한 명이 패배를 불러왔는데, 귀족연합에는 헤르베르트 수준의 인간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두룩 빽빽했으니 지는 게 당연한 일. 그마저도 헤르베르트는 처음엔 부하들에게 맡기고 놀았으니[40] 헤르베르트보다도 더하다.
  • 생명 경시
    수백년간 귀족 계급으로 평민들 위에 군림하던 탓인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다. 리텐하임은 아군 수송선이 자기 도주로를 가로막는다며 그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그 결과로 해당 수송선단에 있다가 부상당한 콘라트 린저 대위는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했고, 라우디츠 중령은 제플입자를 가지고 들어가 사령부와 함께 자폭해 가르미슈 요새 함락에 큰 공헌을 했다. 급기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베스터란트의 시민들이 자신의 조카 샤이트 남작을 죽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베스터란트 행성 전체에 핵폭격을 가했다.
이는 베스터란트가 자신의 영지라는 이유만으로 그곳 사람들의 목숨까지 자기 소유물이라고 여기고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브라운슈바이크 최대 최악의 만행이었다. 당연히 이는 전략적으로도 아무 의미없는 행위일 뿐더러, 같은 귀족들조차 이 사건에 경악해 라인하르트 측에 투항하거나 자살했다. 후술하겠지만 이 사건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재기불능으로 망했고, 가해자인 브라운슈바이크 또한 그 후폭풍과 대가를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야 했다.
  • 능력의 차이
    귀족들은 라인하르트 휘하의 지휘관들에 비해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상술한 대로 귀족연합군 지휘부와 청년 장교들은 하나같이 총체적 난국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그들의 적인 라인하르트 군의 지휘관들은 숱한 실전을 겪으며, 전투에서 잔뼈가 굵을대로 굵은 베테랑 군인이자 지휘관이였다.[41]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반란을 일으킨 클롭슈톡 후작을 진압하는 데 무려 한 달이나 소모했고,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도 미터마이어의 도발에 낚여 출격했다가 죽을 뻔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무능했다.[42] 빌헬름 폰 리텐하임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5만 척의 대함대를 가지고도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제국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도주하다 아군 수송함대를 공격할 정도로 무능했으며, 히르데스하임은 무질서하게 전장으로 향하다가 미터마이어 함대의 공격에 전사하는 등, 귀족들의 군사적 무능은 상상을 초월했다.
  • 귀족들의 오만함
    실전 경험, 전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전투에 있어서 무조건 정면승부를 고집했는데, 이는 귀족들의 태생적으로 뿌리 깊은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는 슈트라이트는 라인하르트와 정면대결을 하는 것은 무리란 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라인하르트의 군사적 재능을 감안할 때 전면전을 벌인다고 해서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여 암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는 정면에서 맞붙어 라인하르트를 무릎 꿇리고 개선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었고, 슈트라이트의 의견에 오히려 불같이 성을 냈다. 뮈켄베르거는 라인하르트의 재능을 진작부터 알고 귀족들에게 충고를 했지만, 브라운슈바이크를 비롯한 귀족들은 라인하르트를 금발의 애송이라 하면서 이를 무시하였다. 그리고 메르카츠는 "귀족사회의 특권에 푹 절어 인내심을 상실한 정신병 환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귀족연합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귀족과 평민 간의 괴리
    이 전쟁에서 귀족들은 국정을 농단한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 공작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평민들은 어느 쪽이 이기든 별 상관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벌귀족이든 라인하르트 일파든 별 차이가 없었고 사실상 돈이나 지위 등을 위해, 혹은 그냥 관성적으로 참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평민들은 아직까지는 귀족들을 자신들의 상전으로 모시고 있었지만[43] 문벌귀족 체제 하의 모순 때문에 속에서 불만이 커져오던 참이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든 이를 터뜨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베스터란트 학살 사건으로 크게 터져나왔다.
  •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립슈타트 전역의 승패를 결정하고 골덴바움 왕조를 사실상 무너뜨린 사건. 이 만행을 저지른 브라운슈바이크조차도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자체는 우연히 일어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사실상 문벌귀족의 모든 병폐가 집약되어 나타난 것으로 설령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비슷한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44]
브라운슈바이크가 연전연패하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히긴 했지만, 라인하르트 측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니었다. 라인하르트가 당면한 적은 귀족연합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후에는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동맹인 리히텐라데 공작이 있었고, 이제르론 회랑 너머에는 라인하르트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게 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구국군사회의의 쿠데타를 유도한 것도 혼란을 통해 동맹이 개입하는 걸 막기 위한 라인하르트의 의도가 있었다.[45] 즉, 군사적으로는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리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시간이었다. 너무 시간을 끌면 리히텐라데는 뒤통수를 치려 할 것이고, 동맹은 동란을 마무리짓고 명장 양 웬리를 내세워 제국의 내란에 끼어들거나 라인하르트 진영에 보복을 가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라인하르트의 목적은 문벌대귀족 전체의 숙청이었지만, 리히텐라데 공작의 목적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의 힘을 꺾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리텐하임 후작은 죽었고 남은 건 야코가 죽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뿐이니, 이 시점에서 리히텐라데 공작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해서 귀족연합 일부가 바라는 대로 브라운슈바이크의 목을 대가로 남은 귀족들을 사면하거나 혹은 라인하르트와 브라운슈바이크 간 화해라도 주선하게 되면 라인하르트는 정치적으로 패배하게 되는 것이며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문벌귀족들은 명실상부한 제국의 공적이 되었고 평민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증오를 받게 되었으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문벌귀족을 타도하여 제국을 수호한다는 굳건한 명분을 손에 쥐게 되었다. 반대로 귀족연합군의 평민 병사들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자신들이 귀족들의 변덕에 따라 얼마든지 소모품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귀족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 심지어 몇몇 귀족들조차 이 사건으로 더이상 귀족연합은 회생할 수 없을 거라고 예측했다. 결국 귀족과 평민 간의 틈새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고 귀족연합군이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 결말을 낳았다.

9. 기타

자유행성동맹의 제독 양 웬리는 양자 율리안 민츠와의 대화에서 대귀족들의 승리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1. 동맹군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서 공수맹약(攻守盟約)을 맺는다. 이를테면 상호불가침, 제국령 일부 양도, 사상범 석방 등등.
2. 가급적 전력을 아끼면서 제국군과 동맹군을 격돌시킨다.
3. 양측 다 기진맥진할 때 멀쩡한 전력으로 로엔그람 후작과 동맹군을 쫓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하지만 양 웬리가 말했듯이 이 전략은 애초에 라인하르트를 '금발 애송이'로 멸시하고 과소평가하던 대귀족들이 수용할 수 없는 전략이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제국 내에서는 동맹에 대한 인식은 '반란군'에 불과했기 때문에 선민의식과 라인하르트에 대한 방심에 눈이 멀어 온갖 삽질이나 벌이던 문벌귀족들이 '반란군'의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딱히 언급이 없지만, DNT 등 미디어믹스에서는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무능한 모습을 보인 이유로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 제국군에서 군사 경험이 있는 군사귀족들은 정작 귀족연합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그 사례로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는 원작에서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미디어믹스에서는 대놓고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참가를 거절하고 자택에서 무사히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10. 관련 문서


[1] 공모, 음모 등의 뜻을 가리키는 단어. 립슈타트 작당질 [2] 립슈타트 맹약이 맺어지는 순간. 이 장면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 < 테니스 코트의 선서>를 패러디했다. 귀족과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니스 코트의 선서와 문벌귀족과 구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중앙에 서서 오른손을 든 인물은 맹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 옆에 뒷짐 지고 서 있는 사람은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다. [3]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의 정확한 날짜가 불명확하다. [4] 제국 연호인 제국력 (RC)으로 표기함. [5] 하지만 이건 문벌귀족들의 표현일 뿐, 실제로는 엄연히 정당한 즉위였다. 어쨌거나 에르빈 요제프 2세가 가장 왕위계승권이 높았기 때문. 에르빈 요제프 2세는 프리드리히 4세의 유일한 친손자이자 이미 사망한 황태자의 아들이었다. [6] 을지판에서는 '정의파 귀족연합군'으로 번역했다. [7] 일본에서는 정부의 군대인 관군(官軍)의 반의어로 쓰이는 단어인데, 역적의 군대를 칭하는 표현. 다만 후술하겠지만 도적이라는 뜻도 있어서 중의적임과 동시에 더 립슈타트 군을 얕보는 듯한 뉘앙스도 지녔다. [8] 헌데 이렇다 보니 결속력이 영 시망이었다. 사실 두 세력이 연합한 것은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도 마찬가지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분야가 달라서 일단 일이 끝날때까지는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다만 라인하르트보다는 리히텐라데가 더 그 필요성이 컸다. 아무래도 라인하르트는 제국군의 전권을 쥐고 있었던 만큼 변수가 있었기에 흔들리기는 했어도 일단 라인하르트 세력에서 먼저 움직이자 꼼짝도 못하고 당했다.)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은 서로 분야가 다르지도 않다 보니 딱히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지도 않아 결국 중반 무렵, 두 사람은 사실상 결별한다. [9] 제국군 내부에 귀족을 지지하거나, 본인이 귀족인 경우가 해당. 사실 적당한 지위를 가진 귀족들은 하나같이 군 계급을 가지고 있다. 다만 마린도르프 백작처럼 아예 군 계급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10] 전체 귀족의 뜻이 이렇다면 자신도 참가해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경우까지 있다. 정치에도 무관심하고 개인적인 원한도 없던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이나 란즈베르크 백작이 그 예시. [11]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합류하지 않고, 베스터란트에 머물면서 브라운슈바이크를 지원한 듯하다. [12] 거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세트로 등장한다는 점을 보면, 단순한 군인 신분이 아니라 브라운슈바이크의 비서나 집사, 고문 역할을 겸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브라운슈바이크가 제국군 예비역 원수이니 안스바흐도 준장을 받았을 것이다. [13] 그러나 립슈타트 전역 중 라인하르트파로 전향하여 귀족연합군 내부에서 라인하르트파의 첩자로 활약한다. [14] 심지어 계급도 립슈타트 귀족연합 시절 대위였던 것이 중령까지 올라갔다. [15] 메르카츠와 파렌하이트에게 각각 함대를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경우 [16] 일단 손을 잡았지만 통수칠 기회를 노리는 리히텐라데와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제르론 회랑의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언제든지 침공할 수 있는 자유행성동맹. 그리고 이익에 따라서 누구에게 줄설지 간볼 수 있는 페잔도 있다. [17] 오토프리트 3세가 황태자 시절 제국 재상을 역임한 적이 있어, 그 후로는 신하가 이를 따르지 않도록 예우 차원에서 제국 재상 자리를 비워두고 국무상서가 그 대리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8] 물론 이는 이들만의 생각이다. 에르빈 요제프 2세는 적장손으로 가장 황위계승서열이 높았고,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는 에르빈 요제프가 제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각각 국무상서와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라는 공식 직위가 있는 몸이었다. [19] 켐프의 보고로 이 말에 대하여 전해듣은 라인하르트는 "오딘이 과연 저들을 수호해줄까?" 하는 투로 휘하 장수들 앞에서 비아냥거린다. 미터마이어나 로이엔탈 등은 "아리따운 여자라도 바치지 않을까요?" 라고 같이 농담조로 비웃는데 "아름다운 여자라면 되려 신에게 안 바치고 저 귀족들이 가로챌 것이라 신의 차례도 없을 것."이라며 하하하하 웃고 다들 아주 느긋하게 대했다. [20] 여러 사람이 정원이나 산·들에 나가서 노는 모임. [21] OVA에서는 3,786명. [22] 여기에서 소설과 OVA의 묘사가 다른데, 소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탈출 직후 추축파가 오딘을 점거하고 반대파를 몰아내지만, OVA에서는 슈바르첸 관저 습격 직후 라인하르트가 쿠데타를 지시하며, 브라운슈바이크는 오딘을 탈출하다가 바렌 함대와 마주치지만 민간선박 사이에 끼어들어가 무사히 탈출한다. [23] 원작에는 이때 체포된 귀족의 수가 언급되지 않지만, OVA에서는 625명이라고 언급된다. [24] 귀족 사병에 일부 정규군이 있었으며 용병들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라인하르트는 정규군을 이끄는데다 자기가 이끄는 이들이 전부 자기 부하들이다보니 단결력에서는 월등하게 뛰어날 수밖에 없다. [25] 별동대를 이끌어 오딘을 점령하고 황제를 옹립하는 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고, 한때의 이해관계 때문에 모인 귀족연합에 분열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오딘에 필요최저한의 병사만 남겨두었고, 메르카츠는 저 작전을 진언하지 않았던 것이다. [26] 하지만 사실 진짜 목적은 오딘을 탈환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직전에 슈타텐의 (본의는 아니지만)트롤링도 있었고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이나 둘 다 자기 딸이 제위에 오르도록 후원하는 입장이라 더 큰 공을 원하고 있었는데 오딘을 탈환해 황제를 옹위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기 때문. 이에 비해 변경성역 탈환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다지 티나는 공적은 아니다. 다만 브라운슈바이크의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해 명목상으로만 변경성역 탈환을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27] 사실 라인하르트도 리히텐라데와 함께 에르빈 요제프를 황제로 세웠기 때문에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28]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귀족연합에 붙인 공식명칭인 '적도군'. 라인하르트는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황제에게 반기를 든 역적으로 몰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치가 명분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적을 반역자로 몰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메리트다. 또 하나는 자신의 본 무대인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29] 단, 쿠데타의 경우에는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으로 정신줄을 놓은 사이에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이 대신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키르히아이스가 죽지 않았더라도, 아니 죽지 않았으면 리히텐라데는 훨씬 쉽게 제거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30] 당장에야 브라운슈바이크-리텐하임 쪽이 세력이 크니까 그쪽에 붙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황권이 안정되면 결국 권력을 쥐는 건 리히텐라데-로엔그람이 되므로 언제든지 이득을 좇아 반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에르빈 요제프 즉위에 아무런 공이 없는 이상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의 권력도 서서히 사그러갔을 것이다. 애시당초 이 둘의 권력의 기반은 선제 프리드리히 3세의 사위였다는 점에 있는데 에르빈 요제프가 즉위한 이상 이 둘은 이제 더이상 프리드리히 시절의 권력을 누릴 수는 없었기 때문. 그리고 끈 떨어진 뒤웅박이 어떻게 되는 지는 외전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는 만큼 똥줄이 타기는 이쪽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31] 물론 이 둘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고 그저 암살로 끝내면 서로에 대해 우월적 지위에 서서 상대를 내려보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둘은 사실 로엔그람이나 리히텐라데보다는 서로를 더 적수로 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괜히 슈트라이트나 페르너가 암살을 진언하고 브라운슈바이크가 그걸 물리친 게 아니다. [32] 참고로 동맹이 제국령 침공작전에 동원한 병력은 3022만 명, 제국이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 동원한 병력은 2000만 명, 회랑 전투에 동원한 병력은 1791만 명이었다. 이 문벌귀족들이 동원한 병력이 1개국가의 규모에 맞먹는다는 말이 된다. [33] 전 제국령에 영지가 널려 있었으며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전까지만 해도 평민들을 쥐어짜서 평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기는 했지만(이게 또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의 원인이 되었지만)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힌 상태에서도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34] 이는 힐다가 지적한 마린도르프 가문이 라인하르트에게 붙어야 한다는 4가지 근거에서도 나와 있다. [35] 귀족들도 여기에서만은 아주 바보인 것은 아니었던지 명화 감상, 야유회 등의 명목으로 모여서 불만을 토로하고 결집했기에 이것만으로는 잡아들일 근거도 처벌할 근거도 없었다. [36] 이는 명분상 암살을 시도하면 향후 리텐하임과의 제위다툼에서 불리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7] 그나마 리텐하임 생전에는 샨타우 성역 회전이라는 최초이자 최후의 승리라도 거두었는데 리텐하임 사후부터는 폭주한다. 사실 메르카츠를 영입한 것부터가 사실 리텐하임의 브라운슈바이크 견제 차원에서 나온 걸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진즉에 예고되어 있던 셈. [38] 리텐하임 사후 라인하르트가 보낸 도발문에 샨타우에서 진건 잊었냐며 분통을 터뜨렸는데 샨타우 성역 회전을 보면 알겠지만 로이엔탈은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음에도 이해득실을 따진 결과 후퇴를 결정한 것이다. 그나마도 이게 가능했던게 지휘관이 메르카츠고 그래도 이 때는 휘하가 메르카츠의 말은 좀 들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메르카츠도 승전을 하고도 오히려 적이 포기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군은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졌지만 알테너 회전-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별동대처럼 활동하던 키르히아이스 역시도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리텐하임을 가루로 만들었다. 즉, 완전히 정신승리인 셈. 덧붙여 라인하르트군은 샨터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전투들에서 승리했다. [39] 그래도 브라운슈바이크는 양심이 아주 조금은 있었는지 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래도 얘네들 사기가 이렇게 높은데 가만히만 있기에는 좀 뭣하지 않나" 라는 식으로 다독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잘못이 잘못이 아닌 것으로 되는건 아니다. [40] 그래서 헤르베르트의 경우 전투 초기까지만 해도 부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건 현지 시찰이었지 말도 안 되는 명령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때는 바르트바펠 후작의 몰락도 있었지만 오히려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아제끼는게 권한을 내세워 말도 안 되는 명령질을 하는 것보단 나았기에 놀아제끼든 말든 무시했다. [41] 라인하르트 군부의 면면을 보면 전부 청년 장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분도 모두 평민~하급 귀족인데다가, 더 정확히는 진짜 하급 귀족은 오베르슈타인과 로이엔탈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평민이었다. 즉, 라인하르트 휘하의 장성들은 전공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는 평민 내지 하급 귀족 출신이며 그렇다고 경력이 긴 것도 아닌데, 다들 아직 앞날이 창창한 20~30대의 젊은 나이에 장성이 될 정도니 얼마나 큰 공훈을 세운 명장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42] 다만 브라운슈바이크는 그래도 귀족들 중에서 가장 유능한 축에 속한다. 클롭슈톡 사건 진압에 애는 먹었지만 그나마 실전 경험은 있었고, 향후 대전략을 수립할 때도 메르카츠 외에는 유일하게 9개의 거점지를 각기 공격하려고 병력이 분산된 금발 애송이의 병력을 각개격파하자는 쓸데없는 작전이라도 내놓았고, 가이에스부르크까지 오느라 라인하르트의 병력을 지치게 한다는 메르카츠가 내놓은 작전의 목적도 정확히 짚었고,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도 늦기는 했지만 누가 알려주었는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이는 함정이라는 진언을 올리자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며 후퇴를 지시하는 등, 다른 귀족들과 비교해보면 이 인간은 유능해보일 지경이다. 이에 비해 명색에 부맹주인 리텐하임은 이보다 추태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43] 의외로 립슈타트 귀족연합측에 가담한 평민 출신 장병들은 귀족들이 아무리 무능하고 자신들을 학대해도 최소한의 상관 취급을 해줬는지,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이전과 이후에도 자폭만큼은 저지르지 않았지만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 그 원한이 한꺼번에 폭발한다. 다만 너무나 오랫동안 참았기 때문인지 일단 그 원한이 폭발하자 귀족을 산채로 핵융합로에 처넣거나, 데스매치를 벌이게 해 한쪽이 한쪽을 죽인 후에도 살아남은 쪽은 우주공간으로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귀족들에 대한 보복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라인하르트 군에게 항복 의사를 밝히는 걸 잊어 격침당한 사례도 있을 정도. 귀족이 소유한 영지의 시민들도 베스터란트 사건 이전까지는 불만은 많았지만 일단 참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딱 하나 빼고는... [44] 실제 역사에서 사라예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으로도 얼마든지 제1차 세계 대전은 일어났을 것이라는 점에서 베스터란트 학살사건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라예보 사건의 범인조차 세계 대전이 터질 줄은 알았지만 자신 때문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했을 정도. 사실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의 화약고라는 말의 원조가 발칸 반도다.) 갈등과 반목이 심한 지역이었다. 수많은 국가와 민족의 난립 및 그에 따른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국가간, 민족간 갈등과 분쟁(그 유명한 꼬챙이공 블라드 3세가 있던 곳이다), 범 슬라브주의와 범 게르만주의의 충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내분, 러시아와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 전통적인 러시아와 투르크 간 분쟁 등으로 바람잘 날이 없던 곳이 발칸 반도였기 때문. [45] 은하영웅전설 외전 율리안의 일기 편을 보면 양 웬리는 평소에도 어떻게든 제국 내전에 끼어들어 동맹에 이득이 될 만한 조치를 취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제르론 요새는 믿을 만한 인물(아마도 카젤느 소장)에게 맡겨놓고 비밀리에 가이에스부르크에 갇혀 있는 문벌귀족들에게 연락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빼내 수도 오딘으로 진격한다면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악몽에 가까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베스타란트 사건에 대해 왜 눈을 돌렸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