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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와 폴란드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근세 때부터 교류가 활발했으며 전통적으로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출신 민족, 인종별 인구 조사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추산은 불가능하지만 오늘날 약 1백만여 명 정도의 폴란드계 프랑스인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폴란드와 프랑스가 관계를 맺기 시작한 때는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야기에우워 왕조 시절부터였다.[1] 양국은 당시에 매우 우호적이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프랑스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24년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견제할 목적에서 프랑스 왕국의 프랑수아 1세와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그문트 1세 사이의 프랑스-폴란드 동맹이 체결되었다.양국은 공통적으로 천주교를 믿고 있었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활동하는 예수회 선교사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최신 과학기술과 문화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영토 각지에 보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폴란드와 프랑스 귀족들은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다. 폴란드인들이 일방적으로 프랑스 문화를 배운 것보다는 프랑스 귀족들이 폴란드 귀족들의 문화를 배워오는 경우도 있었다. 1573년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선출된 헨리크 발레지와 그를 따라온 시종들은 폴란드인들은 남자들도 향수를 쓴다는 점이나 바벨 왕궁에 다른 방들과 별도로 분리된 화장실 및 온수와 냉수가 따로 나오는 수도꼭지를 가진 욕실이 있다는 점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돌아간 헨리크 발레지는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루브르 궁전이나 다른 왕궁에도 바벨 왕궁의 화장실 및 욕실과 유사한 시설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양국 간 관계는 폴란드 분할 전까지 이어지다가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멸망하면서 잠시 끊겼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멸망으로 폴란드인들이 프랑스로 많이 이주했다.
2.2. 19세기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함께 라이프치히 전투에 참전한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폴란드는 나폴레옹의 도움으로 잠시 독립했다. 1807년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격파한 후 일시적으로 바르샤바 공국을 세워 폴란드를 독립시켜주자, 폴란드 독립 의용군들은 나폴레옹에게 죽을 힘을 다해 협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끝난 이후에는 다시 식민지배를 받았고 폴란드는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특히 1830년 11월 일어난 폴란드 독립 봉기가 이듬해 1월 실패하면서 1831~1870년 사이 폴란드 지식 계층 상당수가 프랑스로 망명하여 디아스포라 사회를 형성했다. 상술한 것처럼 프랑스는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가톨릭을 주로 믿는 국가였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감도 컸으며 역사적인 감정도 나쁘지 않았다.
2.3.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이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신생 폴란드( 폴란드 제2공화국)는 프랑스와 수교하였다. 1921년부로 폴란드와 프랑스는 군사 동맹을 체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가 나치 독일과 소련에게 침략을 당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폴란드인 군인들이 프랑스로 피신하였고, 이들은 프랑스마저 나치 독일에 함락당하자 다시 영국으로 이주하여 나치 독일군과 대치하였다.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소련이 폴란드를 장악한 결과 폴란드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내 폴란드 인민 공화국으로 제2세계 진영에 속하게 되었다. 냉전 시기 동안은 상호 교류가 드물었으나, 국민 감정은 나쁘지는 않았고 소련이 무너진 이후 프랑스와 폴란드 사이에는 다시금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2.4. 21세기
폴란드와 프랑스 양국은 현재 유럽연합, 나토 회원국이다. 그리고 폴란드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외에도 영국, 프랑스, 독일과 군사적인 교류, 협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어와 폴란드어는 유럽연합의 공용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폴란드내에도 소수의 프랑스어 학습자도 존재하며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으로 활동하고 있다.폴란드가 EU에 가입하면서 프랑스에서 일하는 폴란드인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에 영구정착하는 경우보다는 프랑스에서 일하면서 폴란드로 돈을 송금하는 경우이다. 다만 급여 수준이나 일자리 수요는 영국, 독일이 프랑스보다 더 좋은 편으로 오늘날 폴란드인들은 프랑스보다는 영국이나 독일로 많이 가는 편이다.[2] 폴란드를 대표하던 패션 모델 아냐 루비크가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9월 18일에 파리의 몽파르나스 타워 외벽을 타고 올라가던 폴란드인 남성이 체포됐다. #
마리 퀴리가 살던 프랑스 집을 폴란드 정부에서 매입하려고 하고 있다. #
2023년 1월 9일, 프랑스와 폴란드 양국이 독일의 레오파드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
2024년 3월 14일, 독일, 프랑스, 폴란드 3국 정상이 회담을 개최하면서 '바이마르 삼각동맹'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 그리고 3국 정상이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하기로 한목소리로 모았다. #
3. 여담
폴란드 국가인 Mazurek Dąbrowskiego(마주레크 돔브로프스키에고)에는 아직도 가사에 '보나파르트가 우리에게 승리의 방법을 보여주었도다'라며 나폴레옹을 칭송하는 내용이 있다.근대 폴란드의 대표적 위인으로 꼽히는 마리 퀴리, 프레데리크 쇼팽, 아담 미츠키에비츠도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마리 퀴리는 프랑스와 폴란드가 공통적으로 기리는 위인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폴란드계 프랑스인 문서 참조
4. 관련 기사
- 바이마르 삼각동맹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 세계일보
5. 관련 문서
- 폴란드/외교
- 프랑스/외교
- 유럽연합
- 프랑코포니
- 프랑스/역사
- 폴란드/역사
- 프랑스/문화
- 폴란드/문화
- 프랑스/경제
- 폴란드/경제
- 프랑스인 / 폴란드인 / 폴란드계 프랑스인
- 프랑스어 / 폴란드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1]
참고로
야기에우워 왕조는 야기에우워와 야드비가의 결혼으로 탄생하였는데,
야드비가가 프랑스
카페 왕조의 방계인 헝가리 앙주 왕조의
러요시 1세의 딸이다.
[2]
폴란드계 프랑스인 인구가 1백만여 명으로 추산된다는 통계는 조상 중에 폴란드계가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고
브렉시트 직전 영국에 체류하던 폴란드인 인구는 60~70만여 명에 달했다. 실질적으로는 폴란드계 영국인 인구가 폴란드계 프랑스인 인구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