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22c3f><colcolor=#fff> 아담 미츠키에비치
Adam Mickiewic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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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아담 베르나르트 미츠키에비치 (
폴란드어) Adam Bernard Mickiewicz |
아도마스 베르나르다스 미츠케비추스 (
리투아니아어) Adomas Bernardas Mickeviči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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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베르나르드 미츠케비치 (
우크라이나어) А́дам-Бе́рнард Міцке́ви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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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베르나르트 미츠케비치 (
벨라루스어) Ада́м Берна́рд Міцке́ві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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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98년 12월 24일 |
러시아 제국 민스크현 자보세[1] | |
사망 | 1855년 11월 26일 (향년 57세) |
오스만 제국 코스탄티니예 | |
직업 | 시인, 독립운동가, 혁명가 |
사조 | 낭만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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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리투아니아[2]의 시인, 독립운동가, 혁명가이다.2. 생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3차 분할로 무너진 직후에 태어났으며, 러시아 제국령 빌나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독립운동을 하다가 1830년에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11월 봉기가 실패하자 프랑스에 정착했다. 프랑스에서 그는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를 받아들여 시인이 되었고, 옛 연방 시절을 다룬 작품활동을 통해 폴란드의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고자 했다.이후 1848년 혁명이 일어나자 폴란드인 의용군을 조직해서 주세페 마치니의 이탈리아 혁명을 도왔고, 크림 전쟁 때는 러시아 제국에 대항할 폴란드인 의용군을 편성하려고 오스만 제국을 방문[3]했다가 콜레라로 사망했다.
사후 파리에 묻혔다가 훗날 크라쿠프의 바벨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3. 대표작
- 판 타데우시(1834): 구 연방 시기에 리투아니아에 정착한 폴란드 귀족 가문의 일대기를 다룬 서사시. 안제이 바이다 감독이 1999년에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 선조들의 밤(1823)
- 콘라트 발렌로트(1828)
- 크림 소네트(1829)
- 발라드와 로망스(1828)
4. 기타
- 현대 폴란드에서 위인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포즈난의 대학 및 폴란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문화원이 그의 이름이 붙었다.
- 국내에서는 미츠키에비츠나 미츠키에비치로 성씨가 다르게 표기되고 있다. 문화원 한국어 홈페이지는 미츠키에비츠, 한국어 위키백과 표제어는 미츠키에비치로 표기한다.
- 그가 살았던 시대는 아직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정치적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에, 연방 때 리투아니아 대공국 관할이던 벨라루스 지역에서 폴란드계로 태어나 폴란드어를 모어로 쓰고 작품 활동도 폴란드어로 한 복잡한 정체성을 가졌다.
- 프레데리크 쇼팽의 발라드 1–3번이 미츠키에비치의 시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물증이 없어 확실하지 않다.
[1]
Завоссе.
리투아니아어로는 자오세(Zaosė),
폴란드어로는 자오시에(Zaosie)로 부른다.
벨라루스
나바흐루다크 근처에 있다.
[2]
그의 정체성은 굉장히 모호한데, 현대 기준으로는
폴란드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을 뜯어보면 독립 폴란드가 아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부활을 바랐던 것을 알 수 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폴란드 문화가 주가 되었지만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유대계, 독일 등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연합국가였다. 비록 미츠키에비치가 태어나기 전
폴란드 분할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그 문화는
러시아 제국의 옛 폴란드-리투아니아령 영토 전반에 강하게 남아있었고 미츠키에비치는 연방의 부활을 꿈꿨다. 연방의 영토는 오늘날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남부에 걸쳐있었지만 이 국가들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촉발된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국민국가/민족국가로 재탄생했고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귀족 공화정 아래 공존했던 중근세 국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는 당연히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3]
오스만이 러시아의 적성국이었고,
유제프 벰처럼 1848년 혁명이 실패하자 오스만으로 망명한 폴란드인 망명객의 도움도 받을 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