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6:02:24

카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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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위상3. 역사
3.1. 이전의 역사3.2. 직계3.3. 방계들
4. 배출한 군주5.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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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ynastie des Capétiens

프랑스 왕국 왕조다. 서프랑크 왕국 루이 5세가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카롤루스 왕조의 혈통이 단절되자 로베르 왕조의 프랑크 대장군(Dux Franciae)[1]이자 파리 백작인 위그 카페가 987년 프랑크 왕에 선출된 것을 기원으로 한다. 카페라는 이름은 라틴어 'Caput'에서 나온 것으로 '수장'이란 의미가 있는데, 당시에는 가문이라기보단 일종의 별명이었다. 커피숍을 뜻하는 그 카페와는 철자부터 다르니 혼동하지 말자.

푸른 바탕에 노란 백합, 특히 이 백합 문양은 프랑스 대혁명 초기인 1790년 10월 21일, 삼색기가 국기로 지정되기 이전까지 프랑스 왕국의 국기로 쓰였다.[2] 다만, 발루아 왕조의 중흥의 명군이었던 '현명왕' 샤를 5세(재위: 1364~1380)때 작은 백합을 여럿 늘어놓은 것에서 큰 백합 세 개를 그려넣는 것으로 약간 바뀌었다.

2. 위상

서프랑크 왕국 시절 전신인 로베르 왕조부터 시작해서 부르봉-오를레앙 왕조까지 카페 왕조의 전체 역사는 850년으로 엄청난 수준이며, 유럽의 최대의 왕조 답게 여러 나라의 왕위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작위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나마 독일 올덴부르크 왕조[3] 정도가 카페 왕조의 위상에 그나마 맞먹는 수준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왕조들, 베틴 가문, 벨프 가문, 헤센 가문, 비텔스바흐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호엔촐레른 가문도 이 정도 위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850년 카페 왕조와 비교하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세운 프랑스의 마지막 왕조인 보나파르트 왕조는 그야말로 벼락부자 듣보잡이다. 실제로 루이 16세의 장녀이자, 카페 왕조의 직계 공주였던 마리 테레즈 드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에 작위를 받은 귀족들을 귀족으로 취급하지 않아 작위를 부르지 않고 평민처럼 불렀다.

3. 역사

3.1. 이전의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 왕조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 직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페 직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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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방계들

이후 발루아 왕조로 인계되었다. 하지만 뒤를 이은 발루아 왕조[4], 부르봉 왕조[5], 부르봉-오를레앙 왕조[6] 모두 부계 혈통으로 이어지는 카페 왕조의 방계였다.

이렇듯 987년에서 1789년까지 + 부르봉 왕정복고 이후 약간을 포함해서 800여년간 방계의 발루아, 부르봉을 포함한 카페 왕조가 유일한 (부계)왕가로서 존재했는데, 이러한 안정적인 부계 왕위 계승 덕분에 프랑스는 신성 로마 제국과는 달리 중앙집권으로 가는 길이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다. 부르봉 대의 군주들도 카페로부터 이어지는 혈통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국민들도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루이 16세의 단두대 사형 직전에 사형집행하는 혁명군 측에서 루이 16세를 거추장스러운 존칭 다 빼고 루이 카페(Louis Capet)라고 부르는 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또한 나바라의 에브뢰 왕조, 헝가리 왕국 폴란드 왕국, 시칠리아 왕국의 앙주 왕조, 포르투갈 왕국 보르고냐 왕조, 라틴 제국의 쿠르트네 왕조까지도 모두 카페 왕조의 혈통이었으며, 서자 출신 왕조들까지[7] 합하면 더 늘어난다. 따라서 보통 카페 왕조(dynastie des Capétiens)라고 하면 좁게는 이 문서처럼 위그 카페의 직계 혈통 남성이 계승한 프랑스 왕조만을 가리키지만, 넓게 보면 이런 방계 카페 가문이 즉위했던 다른 나라의 왕조까지 전부 통틀어 부르는 경우도 있다.[8]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고 사생아에게 계승권을 주지 않았던 유럽에서, 카페 가문에 이렇게나 많은 부계 계승이 유지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2023년 현재 카페 가문은[9] 스페인의 왕위와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가지고 있다.[10]

참고로 바이에른 왕국 비텔스바흐 가문하고도 부계쪽으로 먼 친척이다. 다만 이쪽은 카페 가문이 왕조로 등극하기도 이전, 프랑크 왕국의 로베르 시기에 서로 분가했으므로 아주 큰 연관성은 없다. 천 년 전 조상이 같다는 것 정도.[11]

4. 배출한 군주

카페 왕조는 방계 혈통까지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군주들을 배출하였다. 심지어 이것도 대공 이하의 작위는 생략한 것으로 유럽 최대 왕조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 카페 왕조 - 본가
    프랑스 국왕 15명
    나바라 국왕 6명

5. 계보

카페 왕조 -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 분기까지.
카페 왕조
발루아 왕조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 - 루이 9세에서 앙리 4세 사이.
부르봉 왕조
부르봉 왕조 - 앙리 4세 이후
부르봉 왕조


[1] DUX. 즉 '공작'으로 번역되는 지위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둑스'는 아직 '장군' 내지 '사령관'으로써 관직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우, 공작으로 번역해선 안된다. 위그 카페가 전 프랑크 왕국의 군권을 장악했다는 의미의 관직인 것이다. [2] 카페 왕조(직계)에서 부르봉 왕조에 이르기까지 백합의 크기나 개수 등 작은 변화는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계속 동일한 문양을 사용했다. [3] 글뤽스부르크 왕조(올덴부르크 본가가 단절되면서 글뤽스부르크 왕조가 올덴부르크 가문의 종가가 되었다. 현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실이다.), 윈저 왕조(현 영국 왕실),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전 스웨덴 왕실, 전 올덴부르크 대공가),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전 러시아 제국 황실). [4] 카페 왕조와는 필리프 3세를 공통 조상으로 하는 방계 가문이었다. 발루아 왕조의 필리프 6세가 카페 왕조의 루이 10세의 외손녀 블랑슈와 결혼하여 딸 잔을 낳았기 때문에 부계로는 카페 가문의 방계 혈통이었던 발루아의 혈통, 모계로는 카페 가문의 직계 혈통이 계승이 되었지만 잔이 요절하여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5] 이쪽은 성왕 루이 9세를 공통 조상으로 하는 방계였다.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발루아 왕조의 앙리 2세의 딸 마르그리트와 결혼하여 모계 후손으로나마 발루아 왕조를 계승할 수 있었으나, 둘 사이에선 결국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만약 후사를 남겼다면 부계로는 카페 가문의 방계 혈통이었던 부르봉의 혈통, 모계로는 카페 가문의 방계 혈통이었던 발루아의 혈통을 지닌, 더욱 강력한 정통성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이미 당대의 프랑스 왕권은 유럽 최고 수준인지라 그다지 변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6] 부르봉 본가와 함께 루이 13세를 공통 조상으로 하는, 부계로 갈라진 방계 가문이다. [7] 포르투갈 왕국의 아비스 왕조, 브라간사 왕조. [8] 프랑스어 위키백과에선 타국의 왕위까지 차지한 위그 카페의 후손들은 Capétiens 또는 Dynastie des Capétiens, 위그 카페의 후손들 중 프랑스 군주를 세습하던 카페~발루아~부르봉~부르봉-오를레앙 가문은 Maison de France, 위그 카페를 시작으로 샤를 4세에 막을 내린 카페 왕조 직계는 Capétiens directs, 또는 Maison de Capet라고 한다. [9] 정확히는 카페 가문의 분가인 부르봉 가문의 스페인계 분가 가문인 스페인 보르본 왕가와 보르본 왕가의 이탈리아계 분가인 보르보네-파르마 가문의 방계(...)인 룩셈부르크 부르봉-파름 대공가이지만.(...) [10] 다만 룩셈부르크의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은 가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부르봉 왕조의 정체성보다는 독일계 나사우 가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계승권 문제로 한번 대판 싸웠고, 화해한 지금도 앙금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 [11] 다만 학자들은 로베르 가문과 관련있는 프랑켄 바벤베르크( 로베르 1세의 5대조인 로베르에서 분가)와 비텔스바흐 가문과 연관이 있는 오스트리아 바벤베르크 사이의 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 프랑크 쪽은 단절되었지만 모계로 오토 1세의 조상이 된다. 오스트리아의 바벤베르크 가문은 대체로 바이에른 지방 출신으로 한때 바이에른 지역을 지배했던 뤼트폴딩 가문과 연관이 있을 듯하다. [12] 루이 9세의 막내아들 클레르몽 백작 로베르와 부르고뉴의 베아트리스의 아들. [13] 루이 17세, 루이 19세, 앙리 5세를 제외함. [14] 프랑스어. 마지막 파르마 공국 공작 로베르토 1세의 6남 펠릭스가 룩셈부르크 여대공 샤를로트와 결혼해 그 후손들이 룩셈부르크 대공이 되었다. , 앙리 등은 보르보네-파르마 왕조의 후손이지만 장 대공이 자녀들의 결혼을 귀천상혼이라 규정한 보르보네-파르마 본가의 카를로스 우고(Carlos Hugo de Borbón-Parma 1930~2010)와 싸워 본가와 절연했다가 뒤늦게 화해한 이력으로 공식적으로는 나사우-바일부르크 왕조를 칭한다. [15] 1801년부터 1807년까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존재했던 나폴레옹 1세의 괴뢰 국가 에트루리아 왕국. [16] 샤토됭 가문에서 비롯된 앙주 가문과는 다른 가문이다. [17] 조구 1세가 건국한 알바니아 왕국이 아닌, 중세의 알바니아 왕국을 의미한다. [18] 카를로 마르텔로의 '명목상' 헝가리-크로아티아 왕위는 제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