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6 17:57:58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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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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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숭례문
  1.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2.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3. 여주 고달사지 승탑
  4.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5.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6.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7.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8.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9.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10. 익산 미륵사지 석탑
  11.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12.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13. 영천 거조사 영산전
  14. 안동 봉정사 극락전
  15.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6.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17.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8. 영주 부석사 조사당
  19. 경주 불국사 다보탑
  20.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21.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22.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23. 경주 석굴암 석굴
  24.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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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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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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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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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1.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37
  2.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
  3.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4. 충주 고구려비
  5.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6.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7.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8. 보협인석탑
  9.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10.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11.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12. 금동탑
  13. 흥왕사명 청동 은입사 향완
  14.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 31
  15. 정선필 인왕제색도
  16. 정선필 금강전도
  17. 아미타삼존도
  18.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19.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2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21.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22. 경복궁 근정전
  23. 경복궁 경회루
  24. 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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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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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301~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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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靑磁 母子猿形 硯滴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 (을지로7가) DDP살림터 지하2층 간송유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수량/면적 1점
지정연도 1992년 4월 20일
제작시기 고려시대(12세기 중반)
파일:국보270호청자모자원숭이모양연적.jpg
<colbgcolor=#315288>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1. 개요2. 내용
2.1. 전형필의 손에 들어가기 까지2.2. 상세
3. 기타4. 외부 링크5. 국보 제270호

[clearfix]

1. 개요

靑磁 母子猿形 硯滴.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고려시대인 1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상형(象形) 고려청자 연적으로, 원숭이 어미와 새끼의 모양이다.

연적은 서예를 할 때 쓰는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벼루와는 다른 용도다. 벼루는 먹물을 담기 위한 용도이지만 연적은 먹물을 만들기 위한 물을 담아두는 용도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이후 간송 전형필이 거액을 주고 사와서 가까스로 지켜낸 유물이라, 안타깝지만 본 연적의 출처나 제작시기와 같은 정보는 현재로썬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제작 수준이 뛰어나며 외형도 재치있게 표현된 세련된 작품으로, 현재 여러 점 전해지는 고려의 고려청자 연적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1992년에 국보 제270호로 지정되었으며, 본래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가, DDP의 수장고에 설치된 간송유물관리실로 옮겨져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2.1. 전형필의 손에 들어가기 까지[1]

앞서 개요의 설명에서 간송 전형필이 본 연적을 거액을 주고 구매하여 지켜냈다고 했는데, 그 자세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본래 개스비 컬렉션의 일부였는데, 개스비 컬렉션이란 영국 귀족 출신의 변호사 존 개스비(John Gadsby)가 일제강점기 도쿄에 거주하면서 수집한 고려청자 수집품들을 일컫는다. 존 개스비는 일본 제국으로 25살 때 이주해와서 변호사 일을 했다고 전하는데, 그는 귀족 출신이니만큼 예술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도쿄에서 일본의 유물들을 사모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최상급 고려청자들을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헌데, 도쿄의 골동품 시장에 풀려있던 고려청자나 일본인 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고려청자들은 사실 죄다 도굴로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들이었다. 이 개스비 컬렉션의 유물들만 해도, 개스비 이전 소장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도굴로 유출된 유물들일 것이라는 정황이 확연히 드러난다. 본 유물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의 이전 소유주는 주 대한제국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였고, 현재 국보 제65호로 지정된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의 이전 주인은 경성 고등법원 검사 아유카이 후사노신이었다. 역시 국보 제66호인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의 이전 소유주는 조선총독부 재판소 고등법원장인 요코다 고로였다. 어쨌든 개스비 자신의 뛰어난 안목을 토대로 열심히 수집한 명품 유물들이니만큼 그의 고려청자 컬렉션은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일본 제국은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광기에 휩싸여 정신을 못차리며 점차 미쳐돌아가게 되고, 1936년 일본 육군 장병들이 일으킨 군부 쿠데타 시도인 2.26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고 개스비는 사태가 심상치 않으며 곧 전쟁이 터질 것을 직감하고 일본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개스비는 일본을 떠나면서 수집해온 소장품을 다 처분하고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는 1937년에 본인 소유의 유물들을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의 고려청자 컬렉션이 포함되었다. 전형필은 개스비의 고려청자 컬렉션에 이미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주목했기에, 개스비가 고려청자들을 다 처분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개스비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당시 돈으로 40만 원이라는 엄청난 거액을 주고 개스비로부터 본 유물을 포함한 고려청자 20점을 인수했다.[2]

아마 전형필의 노력이 없었다면, 귀중한 고려청자 명품들은 다시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또한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나라 문화재들의 현황을 고려해보면, 지금에 와서는 그 소재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3]

전형필이 구입한 20점의 고려청자들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총 9점으로,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2.2. 상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높이 9.8 cm, 지름 6 cm인 연적으로, 제작 시기는 아마도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을 이루었던 12세기 무렵일 것으로 추정한다. 본 연적은 일반적으로 고려청자 하면 떠오를 특유의 비색과 은은하고 맑은 광택을 전체적으로 잘 보존하였고, 형상화한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의 형체가 뚜렷하고 사실적이며 정교하다.
파일:국보270호청자모자원숭이모양연적뒷부분.jpg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뒷모습
본 연적의 사용법은 어미 원숭이 정수리 부분에 뚫려 있는 구멍(주입구)으로 물을 넣어 뱃속에 물을 담아두며, 물을 따를 때는 새끼 원숭이 머리에 작게 뚫린 배출구로 물을 따르는 방식이다. 이 구멍들을 막기 위한 마개는 따로 없는데, 원래 없던 것인지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연적의 외형은 그야말로 원숭이 모자 그 자체인데, 새끼를 가슴팍에 안은 어미 원숭이를 형상화했다. 어미 원숭이는 쭈그려 앉아 두 팔로 새끼를 품고 있고, 새끼는 어미에 안겨서 양 손으로 어미를 밀면서 보채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순간적인 장면을 해학적으로 잘 포착함과 동시에 자애롭게 새끼를 품는 어미의 모습에서 모자간의 사랑이 드러난다고 평가받는다.[4] 원숭이들의 얼굴은 눈, 코, 입, 귀를 모두 잘 만들어놨고 어미의 눈, 코, 입과 새끼의 눈에는 짙은 철사(鐵砂) 안료를 찍어서 명확히 해놔 더욱 실감나게 조형됐다.[5] 또한 몸체는 간략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 두 원숭이의 손과 발에 음각으로 골을 파놔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특히 어미의 경우, 아랫배에 있는 배꼽과 쭈그려 앉느라 발목에 살이 접혀 주름이 잡힌 모습까지도 사실적으로 잘 포착해놨다. 또한 전체적으로 원숭이의 형상이 아주 사실적인데, 본래 한반도에는 원숭이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12세기 고려에 실제로 해외에서 수입된 원숭이가 있었으며 이를 본따 본 연적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6][7]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에 대해 더 전해지는 자료는 없어 추정이지만,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과 청자합과 유약 색이 동일하여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며,[8] 또한 청자의 조형 수준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의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2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고려시대에 본 연적을 연적의 용도로 실제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장식과 감상 용도의 사치품이었을지 알 수 없지만, 높은 제작 수준과 디자인 상의 세련됨을 보아서 최소한 고려 귀족 계층의 소유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뿐만 아니라 12세기 중반경에 오리, 복숭아, 거북, 동자 등의 소형의 상형 연적이 상당히 만들어졌는데,[9] 원숭이형은 그 예가 드물고 그 중에서도 모자로 된 형태는 본 연적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10]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보존상태가 대단히 좋고, 그 높은 미적인 수준과 절정에 오른 고려의 청자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인정 받아, 1992년 4월 20일 국보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

파일:1998년발행청자모자원숭이모양연적.jpg 파일:2021년발행청자모자원숭이모양연적.jpg
170원 기념우표 380원권 기념우표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1998년 11월 20일에 발행된 170원권 '한국의 미시리즈(여덟번째 묶음)' 기념우표와 2021년 2월 26일에 발행된 380원권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의 도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4. 외부 링크

5. 국보 제270호

고려시대 만들어진 원숭이 모양의 청자 연적으로,크기는 높이 9.8㎝, 몸통 지름 6.0㎝이다.

어미 원숭이 머리 위에는 지름 1.0㎝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지름 0.3㎝인 물을 벼루에 따라내는 구멍이 각각 뚫려 있어 연적임을 알 수 있다.

두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그 사이사이를 파내어 도드라지게 표현하였고, 어미 원숭이의 눈, 코와 새끼 원숭이의 눈은 검은 색 안료로 점을 찍어 나타냈다. 어미 원숭이의 엉거주춤한 자세, 보채는 새끼의 모습을 통해 원숭이 모자의 사랑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잔잔한 기포가 전면에 있어 은은하고, 표면의 색깔은 아름다운 비취색이다.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 청자합과 유약 색이 동일하여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청자 연적 중 원숭이 모양의 연적은 드물며 더욱이 모자(母子) 모양으로서는 유일한 예이다.


[1] 본 단락은 전적으로 KBS 천상의 컬렉션 가운데 '개스비 컬렉션'의 내용을 주 텍스트로 삼아 작성되었다. 출처: KBS 천상의 컬렉션 : 개스비 컬렉션 [2] 당시 시세로 40만원은 경성 내 기와집을 400채나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원화로 환산하면 무려 약 2,4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3] 일본은 약탈문화재에 대한 공개를 극히 꺼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공립 박물관이 소장한 약탈문화재에 대한 대외 공개도 꺼리는 판인데, 개인이 소장한 약탈문화재라면 더더욱 비밀스럽게 감추려 든다. 이로 인해 일본에 넘어가 있는 우리 문화재들에 대한 실정과 실태 파악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4]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두산백과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6]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두산백과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7]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 서식하지 않은 동물인 사자를 형상화한 청자의 경우 실제 사자와는 형태가 상당히 다르게 불교적으로 도식화된 형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원숭이가 고려시대에 수입됐고 이를 본따 본 연적을 만들었으리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8]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靑磁 母子猿形 硯滴) [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10]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靑磁 母子猿形 硯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