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17:07:20

이제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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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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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숭례문
  1.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2.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3. 여주 고달사지 승탑
  4.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5.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6.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7.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8.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9.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10. 익산 미륵사지 석탑
  11.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12.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13. 영천 거조사 영산전
  14. 안동 봉정사 극락전
  15.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6.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17.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8. 영주 부석사 조사당
  19. 경주 불국사 다보탑
  20.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21.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22.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23. 경주 석굴암 석굴
  24.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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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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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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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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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1.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37
  2.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
  3.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4. 충주 고구려비
  5.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6.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7.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8. 보협인석탑
  9.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10.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11.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12. 금동탑
  13. 흥왕사명 청동 은입사 향완
  14.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 31
  15. 정선필 인왕제색도
  16. 정선필 금강전도
  17. 아미타삼존도
  18.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19.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2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21.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22. 경복궁 근정전
  23. 경복궁 경회루
  24. 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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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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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110호
이제현 초상
李齊賢 肖像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 충숙왕 6년 ( 1319년)
파일:이제현 초상(수정본).jpg
<colbgcolor=#bf1400> 국보 제110호 이제현 초상[1]

1. 개요2. 상세3. 외부 링크4. 국보 제110호5. 그외 이제현의 초상화들

[clearfix]

1. 개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이다. 고려시대에 그려진 초상화의 원본은 2점이 현재까지 내려오는데, 이제현의 초상화는 전신을 그린 것으로 보존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 현재 동일한 양식의 이제현의 초상화 4점이 전해지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현 초상은 1962년 국보 제110호로 지정됐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상세

화폭 상단에 적힌 제문(題文)을 통하여 그 제작 시기 및 필자를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초상화는 이제현이 33세 때인 1319년( 충숙왕 6)에 충선왕을 시종하여 중국의 강호(江湖)를 유람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충선왕은 당시 중국의 최고 화백인 진감여를 불러 이제현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화폭 상단을 보면 당시의 원나라 석학인 탕병룡이 찬(贊)을 지었다는 것도 아울러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이제현은 다시 고려로 돌아올 때에 이 영정을 가지고 오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33년 후 다시 원나라에 건너갔을 때 우연히 그 영정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 감회를 40자의 시로 읊고 있다. 자찬시(自贊詩)는 『익재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 이제현이 남긴 제문
연우 기미, 내 나이 33살이 되던 때에 절강에 충선왕을 따라 갔다. 왕은 고항(古杭) 출신의 초상화 화가인 진감여(陳鑑如)를 불러 나의 얼굴을 그리게 하였으며, 그리고 문장가인 북촌(北村) 탕병룡(湯炳龍)에게는 찬문을 짓도록 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오자 남이 본다고 빌려가 소재지를 모르게 되었다. 21년 후에 나라의 국서를 받들어 원나라 수도 연경에 가게 되어 다시 초상화를 찾았다. 지금의 노년 모습과 초상화를 그릴 장년의 모습이 달랐음에 놀랐으며, 헤어짐과 만남에도 때가 있음을 느꼈다. 한□운(韓□雲)으로 하여금 붓을 잡게 하고, 나는 아래의 시를 지어 감회를 기록한다.

延祐己未, 余年三十三, 從於忠宣王. 降香江浙. 王召古杭陳鑑如, 寫陋容, 而湯北村爲之贊. 北歸爲人借觀, 因失所在. 後二十一年, 奉國表如京師, 復得之. 驚老壯之異貌, 感離合之有時. 使韓□雲把筆口, 題四十字爲識.
  • 이제현이 남긴 자찬
내가 예전에 나의 모습을 남길 적에는 / 양쪽 귀밑머리는 파란 봄이었다 // 이 초상화가 많은 세월동안 떠돌아 다니다가 / 우연히 다시 만나니 그림 속에 남은 정신은 여전하다 // 초상화 속의 인물은 다른 인물이 아니고 나이며 / 예전의 내 몸이 바로 후일의 내 몸이라네 // 손자들은 완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 초상화의 인물이 누구냐고 묻네 // 익재

我昔留形影 靑靑兩鬢春 流傳幾歲月 邂逅尙精神 此物非他物 前身定後身 兒孫渾不識 相問是何人 益齋
  • 탕병룡이 남긴 찬문
수레와 문자를 같이 사용하고 / 예악(禮樂)은 동쪽에서 왔다 // 산의 정기로 태어난 그대는 / 사람들의 으뜸이요 / 세상의 영웅이요 / 유학에 달통한 사람이다 // 기상은 공명정대하고 크며 / 모습은 의젓하고 공손하며 / 언사는 신중하고 조용하다 // 여유 있는 모습 /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격에 / 굳센 마음을 가졌다 // 학문은 꽉 찼고 / 도덕심은 높고 / 문장은 풍부하다 // 마음가짐은 진실 되게 / 행정을 할 때는 공정하게 / 나라를 도와 공을 세웠다 // 명을 받아 나라에 등용 되었으며 /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며 그들의 마음을 화목하게 하나로 묶었으니 / 태평성대가 기다리네 // 연우(延祐) 기미(己未, 1319년) 9월 보름에 북촌노민(北村老) 탕병룡(湯炳龍)이 전당(錢塘)의 보화독역재(保和讀易齋)에서 쓰다. 이때 나이 79세이다.

車書其同 禮樂其同 光岳其鍾 爲人之宗 爲世之雄 爲儒之通 氣正而洪 貌儼而恭 言愼而從 恢恢乎容 溫溫乎融 挺鋌乎中 於學則充 於道則隆 於文則豐 存心而忠 臨政以公 輔國以功 命而登庸 瞻而和衷 徯而時雍 延祐己未鞠月望日, 北村老民湯炳龍, 書于錢塘保和讀易齋. 峕 年七十有九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비해 왼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비단 테를 두른 흰 베로 짠 옷을 걸치고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마주 잡고 있다. 선생의 왼편 뒤쪽에는 몇권의 책이 놓인 탁자가 있고, 오른편 앞쪽으로는 의자의 손잡이가 있어 앉은 모습이 안정되어 보이며, 화면구성도 짜임새 있다. 채색은 색을 칠한 다음 얼굴과 옷의 윤곽을 선으로 다시 그렸는데 부분적으로 표현을 달리 하여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 보인다. 그림의 색감은 오랜 세월이 지나 변색된 듯하나 차분한 느낌을 준다.

얼굴과 의복을 선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시대 다른 초상화들과 비슷하며, 조선시대 초상화가 인물이 오른쪽을 향하고 배경이 되는 바탕에 아무런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은 것에 비해 빈틈없는 구성과 왼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고려 초상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원나라 화가인 진감여가 그린 것이지만, 구도가 안정되고 인물 묘사가 뛰어난 우수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10호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는 익재·역옹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가로 93㎝, 세로 177.3㎝로 의자에 앉은 모습을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그림 위쪽에는 원나라 문장가인 탕병룡이 쓴 찬(贊)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 그림을 33년 만에 다시 보고 감회를 적은 익재의 글이 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비해 왼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비단 테를 두른 흰 베로 짠 옷을 걸치고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마주 잡고 있다. 선생의 왼편 뒤쪽에는 몇권의 책이 놓인 탁자가 있고, 오른편 앞쪽으로는 의자의 손잡이가 있어 앉은 모습이 안정되어 보이며, 화면구성도 짜임새 있다. 채색은 색을 칠한 다음 얼굴과 옷의 윤곽을 선으로 다시 그렸는데 부분적으로 표현을 달리 하여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 보인다. 그림의 색감은 오랜 세월이 지나 변색된 듯하나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충숙왕 6년(1319) 이제현이 왕과 함께 원나라에 갔을 때 당시 최고의 화가인 진감여가 그린 그림으로, 전해오는 고려시대 초상화가 대부분 다시 그려진 이모본인데 비해 직접 그린 원본으로, 안향의 반신상과 함께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초상화의 원본 2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전신을 그린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얼굴과 의복을 선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시대 다른 초상화들과 비슷하며, 조선시대 초상화가 인물이 오른쪽을 향하고 배경이 되는 바탕에 아무런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은 것에 비해 빈틈없는 구성과 왼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고려 초상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원나라 화가가 그린 것이지만 구도가 안정되고 인물 묘사가 뛰어난 우수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동일한 양식의 익재 이제현의 초상화 4점이 전해지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5. 그외 이제현의 초상화들


전술했듯,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가장 뛰어난 이제현의 초상화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본이다.


[1] 자세히 보면 엄지손가락이 삐져나와 있기도 하다. [2] 반신과 전신의 구별은 있으나, 동일한 상용 형식을 지닌 화상이 소장되어 있다. [3] 작자는 알 수 없으며, 전하는 바로는 조선 숙종 13년(1688)에 제작하여 구강서원에 보관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그려놓은 국립중앙박물관본이나 가산서원본을 옮겨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