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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紙墨書妙法蓮華經
1.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제211호)
대한민국 국보 제211호 | |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白紙墨書 妙法蓮華經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사경 |
수량/면적 | 7권7첩 |
지정연도 | 1984년 5월 30일 |
제작시기 | 고려 우왕 3년(1377) |
1.1. 개요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에 하덕란(河德蘭)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과 살아계신 아버지의 장수를 위하여 제작한 한국의 묘법연화경. 총 7권 7첩. 현재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11호로 지정되어 있다.1.2. 내용
가로 10.9㎝, 세로 31.8㎝, 총 7첩.1377년에 하덕란(河德蘭)이 그의 죽은 어머니 철성군 부인 이씨(鐵城郡夫人李氏)의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빌고 동시에 그의 아버지인 중대광진성군(重大匡晉城君)의 장수를 빌기 위하여 발원한 고려시대의 불경이다.
각 권마다 금가루(金泥)로 정려(精麗)하게 설법변상도(說法變相圖)를 그렸고, 안의 경문(經文)은 묵서(墨書)로 정성들여 쓰였다. 변상도의 크기는 22.7×43.1㎝이다. 변상도의 테두리를 모두 금강저(金剛杵)를 연속으로 돌렸으며, 화면의 오른쪽에는 설법장면, 왼쪽에는 각 권의 설화적인 변상장면이 그려져 있다.
원래는 조선 전기인 세종 25년, 1443년에 세종대왕이 한국을 찾아온 일본인에게 그냥 던져줘버렸던 것이다. 이후 일본의 광대원(廣大院)이란 사찰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8·15광복을 즈음하여 한국으로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불경으로, 고려시대 사경 및 변상도의 제작 경향과 양식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1984년 5월 30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1.3. 외부 링크
1.4. 국보 제211호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삼국시대이래 가장 많이 유통된 불교경전이다.
이 책은 후진의 구마라습이 번역한『법화경』 7권을, 고려 우왕 3년(1377)에 하덕란이 죽은 어머니의 명복과 아버지의 장수를 빌기 위해 정성들여 옮겨 쓴 것이다. 하얀 닥종이에 먹으로 썼으며, 각 권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8㎝, 가로 10.9㎝이다.
각 권의 표지에는 금·은색의 화려한 꽃무늬가 장식되였고, 금색으로 제목이 쓰여져 있다. 또한 각 권의 첫머리에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책 끝부분에 있는 일본인이 쓴 기록을 통해, 세종 25년(1443)에 일본으로 유출되었으며, 선조 38년(1605)에는 광대원(廣大院)에 소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책을 쓰게 된 경위를 적은 글과 변상도를 모두 갖추고 있고, 보존상태도 양호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되찾아온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은 후진의 구마라습이 번역한『법화경』 7권을, 고려 우왕 3년(1377)에 하덕란이 죽은 어머니의 명복과 아버지의 장수를 빌기 위해 정성들여 옮겨 쓴 것이다. 하얀 닥종이에 먹으로 썼으며, 각 권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8㎝, 가로 10.9㎝이다.
각 권의 표지에는 금·은색의 화려한 꽃무늬가 장식되였고, 금색으로 제목이 쓰여져 있다. 또한 각 권의 첫머리에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책 끝부분에 있는 일본인이 쓴 기록을 통해, 세종 25년(1443)에 일본으로 유출되었으며, 선조 38년(1605)에는 광대원(廣大院)에 소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책을 쓰게 된 경위를 적은 글과 변상도를 모두 갖추고 있고, 보존상태도 양호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되찾아온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제278호)
2.1. 개요
조선 태종 15년인 1415년에 이씨 부인이 남편 유근(柳謹)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한 조선 전기 한국의 묘법연화경. 총 7권 7첩.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278호로 지정되어 있다.2.2. 내용
가로 14㎝, 세로 36㎝, 총 7첩.1415년에 만들어진 조선 전기의 불경으로, 60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7권 전체가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표지나 내용이 조금도 훼손되거나 탈락되지 않았다.
표지는 금으로 보상화문(寶相華紋)을 그려 장식하고 있으며, 첫 장에는 똑깉이 금가루로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다. 완전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보기 드문 일품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석포리 내소사(來蘇寺)에서 600여년간 소장하고 있던 불경으로 현재는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2.3. 외부 링크
2.4. 보물 제278호
법화경의 원래 명칭은 묘법연화경으로,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이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은 법화경 내용을 흰 종이에 먹으로 옮겨 쓴 것으로, 모두 7권으로 되어 있다. 각 권은 마치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6㎝, 가로 14㎝이다. 권7의 끝에 있는 기록에 의하여, 조선 태종 15년(1415)에 이씨부인이 남편 유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지에는 책의 명칭을 중심으로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책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다.
완전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보기드문 작품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에 비하여 글씨 솜씨는 떨어지지만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다.
이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은 법화경 내용을 흰 종이에 먹으로 옮겨 쓴 것으로, 모두 7권으로 되어 있다. 각 권은 마치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6㎝, 가로 14㎝이다. 권7의 끝에 있는 기록에 의하여, 조선 태종 15년(1415)에 이씨부인이 남편 유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지에는 책의 명칭을 중심으로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책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다.
완전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보기드문 작품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에 비하여 글씨 솜씨는 떨어지지만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다.
3.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제315호)
3.1. 개요
고려 창왕 1년인 1389년에 장씨(張氏)부인 묘우(妙愚)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중생들을 위해 제작한 한국의 묘법연화경. 총 2첩. 현재 안동 광흥사 복장유물,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등으로 유명한 광흥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315호로 지정되어 있다.3.2. 내용
가로 13.5㎝, 세로 37.5㎝, 총 2첩.한국의 민간인이 1389년에 제작한 불경으로, 개인용 공덕경(功德經)이다. 현재 권1과 권3이 남아 있으며 흰 종이에 먹으로 직접 글씨를 썼다. 각 권의 표지에는 금가루(金泥)를 개어 그린 꽃무늬와 함께 쌍줄로 두른 네모난 테두리 안에 경전의 제목을 금으로 써 놓았으며, 권3의 책머리에는 똑같이 금가루로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있다.
고려 말에 개인이 발원하여 완성한 불교 경전으로,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3. 외부 링크
3.4. 보물 제315호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종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1, 3(白紙墨書妙法蓮華經 卷一, 三)은 흰종이에 먹으로 직접 글씨를 쓴 것으로, 전체 권1∼7중에서 권1과 권3이 남아있다. 각 권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권1이 세로 37.5㎝, 가로 13.5㎝ 이고 권3이 세로 34.7㎝, 가로 12.5㎝이다. 각 권의 크기와 글씨체가 다른 점으로 보아 오랜 시간동안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 권의 겉표지에는 금색으로 된 화려한 꽃무늬와 제목이 적혀 있고, 권3의 앞부분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다. 권3의 끝부분에는 이 책을 만들게 된 경위를 적은 기록이 있는데, 고려 창왕 1년(1389) 장씨부인 묘우(妙愚)가 돌아가신 부모와 모든 중생들을 위해 책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서 개인공덕을 기리기 위해 불경을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1, 3(白紙墨書妙法蓮華經 卷一, 三)은 흰종이에 먹으로 직접 글씨를 쓴 것으로, 전체 권1∼7중에서 권1과 권3이 남아있다. 각 권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권1이 세로 37.5㎝, 가로 13.5㎝ 이고 권3이 세로 34.7㎝, 가로 12.5㎝이다. 각 권의 크기와 글씨체가 다른 점으로 보아 오랜 시간동안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 권의 겉표지에는 금색으로 된 화려한 꽃무늬와 제목이 적혀 있고, 권3의 앞부분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다. 권3의 끝부분에는 이 책을 만들게 된 경위를 적은 기록이 있는데, 고려 창왕 1년(1389) 장씨부인 묘우(妙愚)가 돌아가신 부모와 모든 중생들을 위해 책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서 개인공덕을 기리기 위해 불경을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제1139호)
4.1. 개요
조선 태종 5년인 1405년에 도인(道人) 신운(信雲)이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부디 속세에서 벗어나 윤회(輪廻)가 없는 열반에 이르기를 기원하며 제작한 한국의 묘법연화경.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139호로 지정되어 있다.4.2. 내용
가로 139cm, 세로 35.6cm.1405년 6월 15일에 도인 신운(信雲)이 돌아가신 부모님 이씨와 김씨가 고해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기원하면서 눈물로 쓴 불경으로, 재상 한상환(韓尙桓)의 부인 윤씨와 그녀의 딸이자 여성군 민무질(閔無疾)의 부인인 한씨도 함께 발원한 것이다.
조선 건국 초기에 고위 관료의 부인들이 함께 발원하고 시주하여 완성한 대표적인 사경이다. 1992년 7월 28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4.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7
- 두산백과 : 백지묵서묘법연화경(권제7)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제7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백지묵서묘법연화경권7 변상도
4.4. 보물 제1139호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요사상으로 하고있다.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흰 종이에 먹으로 쓴 것인데 법화경 7권 가운데 마지막권이며,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첩장의 형태이며, 크기는 세로 35.6㎝, 가로 139㎝이다. 책 맨 뒤의 조선 태종 5년(1405)에 각지(角之)가 쓴 기록을 보면, 도인(道人) 신운(信雲)이 돌아가신 부모님이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기원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때 법화경 이외에도 법망경, 금강경, 보현행원품을 함께 만들면서 본문 글씨를 먹으로 쓰고, 표지를 금·은색으로 정교하게 장식하였다고 하나 표지가 없어져 본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책의 첫머리에 약간의 누락이 있지만 조선 초기의 사경(寫經: 정성들여 경문을 쓰고 장엄하게 꾸민 불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흰 종이에 먹으로 쓴 것인데 법화경 7권 가운데 마지막권이며,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첩장의 형태이며, 크기는 세로 35.6㎝, 가로 139㎝이다. 책 맨 뒤의 조선 태종 5년(1405)에 각지(角之)가 쓴 기록을 보면, 도인(道人) 신운(信雲)이 돌아가신 부모님이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기원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때 법화경 이외에도 법망경, 금강경, 보현행원품을 함께 만들면서 본문 글씨를 먹으로 쓰고, 표지를 금·은색으로 정교하게 장식하였다고 하나 표지가 없어져 본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책의 첫머리에 약간의 누락이 있지만 조선 초기의 사경(寫經: 정성들여 경문을 쓰고 장엄하게 꾸민 불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5. 백지묵서묘법연화경(언해)(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1호)
5.1. 내용
가로 32.5cm, 세로 22.7cm, 7권 7책.조선 말기인 1909년에 한국의 여성 5인이 제작한 한글 불경. 총 7권 7책. 현재 단양군의 구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었다.
경전을 제작한 여성 5인은 방의경(17세), 방정덕화(65세), 이만법행(45세), 은인귀(23세), 이씨(24세)이다.
5.2. 외부 링크
5.3.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 제251호
충북 단양군에 있는 구인사에서 소장, 관리하는 백지묵서(白紙墨書) 《묘법연화경》은 조선시대에 5명의 여성 불자가 각자 권을 나누어 한글로 베껴 쓴 불교 경전이다. 일명 '먹글씨 묘법연화경' 또는 '법화경'이라고도 한다. 7권 7책으로 이루어졌으며, 책의 크기는 가로 32.5cm, 세로 22.7cm이다.
《묘법연화경》 필사(筆寫) 작업은 1909년 9월에 시작해 약 3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25일 마지막 7권의 필사를 마쳤다. 경전을 필사한 불자는 방의경(17세), 방정덕화(65세), 이만법행(45세), 은인귀(23세), 이씨(24세)로 이들은 모두 한가족으로 보인다.
7권 끝부분에는 사경(寫經), 즉 경전을 필사하는 일을 마치고 쓴 “아미타불 사십팔원 도중생불공덕으로 아등도 제도를 이루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나무일체청정제회중보살마하살. 각각등심중소원성취발원”이라는 발원문이 있다. 이로 보아 필사자들은 1909년 조선왕조의 몰락이 가까운 혼란한 시국 속에서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으로 모든 중생이 제도되고 자신들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공덕을 쌓는 수행의 하나로 이 법화경을 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방의경이 베껴 쓴 권이 필체가 가장 고른 궁서체로 정성을 다해 필사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필사 과정이나 독송할 때 침을 묻히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짧은 비단 조각을 책의 각 장마다 한 장 한 장 붙여놓은 것이 특징이다.
구인사의 《묘법연화경》은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었다.
《묘법연화경》 필사(筆寫) 작업은 1909년 9월에 시작해 약 3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25일 마지막 7권의 필사를 마쳤다. 경전을 필사한 불자는 방의경(17세), 방정덕화(65세), 이만법행(45세), 은인귀(23세), 이씨(24세)로 이들은 모두 한가족으로 보인다.
7권 끝부분에는 사경(寫經), 즉 경전을 필사하는 일을 마치고 쓴 “아미타불 사십팔원 도중생불공덕으로 아등도 제도를 이루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나무일체청정제회중보살마하살. 각각등심중소원성취발원”이라는 발원문이 있다. 이로 보아 필사자들은 1909년 조선왕조의 몰락이 가까운 혼란한 시국 속에서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으로 모든 중생이 제도되고 자신들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공덕을 쌓는 수행의 하나로 이 법화경을 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방의경이 베껴 쓴 권이 필체가 가장 고른 궁서체로 정성을 다해 필사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필사 과정이나 독송할 때 침을 묻히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짧은 비단 조각을 책의 각 장마다 한 장 한 장 붙여놓은 것이 특징이다.
구인사의 《묘법연화경》은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