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상형문자로 적힌 그르그 미리 아문 람세수
아랍어: جرجا
콥트어: ⲧⲓⲛ
영어: Girga
1. 개요
이집트 중부 소하그 주의 도시. 소하그 및 아크밈에서 남쪽으로 20km, 퀴나에서 서북쪽으로 70km 떨어진 나일 강 서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12만명이고, 1960년 소하그로 대체되기 전까지 주도였기에 기간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람세스가 건설함'이란 의미인 그르그 미리 아문 람세수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인근의 성 게오르그 (조지) 수도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시가지 동남부에는 고대 이집트 제1왕조의 첫 수도였던 티니스 유적이 있고, 남쪽으로 12km 가면 그 유명한 아비도스 유적이 있다. 기르가의 엘 시니 수도원은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가톨릭 수도원이다. 주요 산업으로는 사탕수수 정제와 도자기 제작이 있다.2. 역사 (티니스)
테베가 부상하기 이전 상이집트의 중심은 아비도스와 티니스 일대였다. 본래 아비도스가 더 중요했으나, 점차 티니스가 중시되었다. 결국 아비도스는 종교적, 티니스는 정치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기원전 4000년대 티니스는 이집트의 첫 통합 파라오 나르메르의 고향이자 본거지였다. 당시 티니스의 교외이던 기르가 도심 일대는 네크로폴리스, 즉 묘원이었다. 2왕조까지 수도이던 티니스는 3왕조 때에 통합 수도 멤피스로 천도한 후에도 상이집트 제8주의 치소로 남아 중요성을 유지하였다. 5왕조 때에는 상이집트 전역을 총괄하는 총독부가 위치하였다. 제1 중간기 당시 티니스는 상하 이집트의 경계였고, 번갈아가며 지배하다 결국 티니스 전투에서 테베군이 패하기도 하였다. 다만 테베의 명군 멘투호테프 2세는 아시유트의 도움으로 하이집트에 반기를 든 티니스를 접수, 이집트 재통일의 발판을 마련한다. 제2 중간기 때에는 아비도스 왕조가 티니스를 수도로 삼기도 하였다.다만 여러 전란을 겪으며 티니스는 점차 쇠퇴하였다. 신왕국 시대에는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건설을 맡은 사테피후, 투트모스 3세의 심복 인테프, 아멘호테프 3세의 왕자 시절 스승 민이 티니스 태수에 임명되는 등 고위 귀족들이 총독으로 부임하는 등 중시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쇠퇴를 막지는 못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도 주도이긴 했으나 별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이슬람 정복 후 티니스는 완전히 사라졌고, 그 배후지이던 기르가에 마을이 생겼다. 오스만 제국기에 기르가는 크게 성장하여 상이집트 지배의 중심이 되었고, 기르가의 주교 역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기인 1798년 12월에 프랑스 군에게 점령되기도 하였다. 이후 1960년까지 기르가 주의 주도로 남았지만, 결국 소하그로 주도가 옮겨가며 주 이름 역시 기르가 주에서 소하그 주가 되었다.
3. 참고
상이집트의 주요 도시 | ||||||||||||||
헬완 (
카이로) 멤피스 |
→ | 베니수에프 | → |
미냐 케메누 아마르나 |
→ | 아시유트 | → |
소하그 아크밈 |
→ |
기르가 티니스 아비도스 |
→ | 나그함마디 | → | |
덴데라 퀴나 |
→ |
키프트 쿠스 |
→ |
카르나크 룩소르 |
→ | 에스나 | → | 에드푸 | → | 콤옴보 | → |
아스완 아부심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