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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래된 땅에서 온 한 여행자를 만난 적 있었지, 그가 나에게 말해주길: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두 다리가, 사막 한가운데 서있었소. 몸통 따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 그 주변에는 모래에 반쯤 묻힌 풍화된 두상이 하나 있었다오." 하지만 아직까지도 조각의 얼굴에는 찌푸린 표정, 주름진 입술, 그리고 그 이의 차갑고 조롱 섞인 웃음이 보였지. 열정들이 살아있도다. 그를 만든 조각가가 그 남자의 심상을 얼마나 잘 표현했던가, 그 손으로 죽어있는 돌에 조소한(彫塑/嘲笑)(mocked) 그 생명의 덕으로 아직까지도 살아있구나. 백성을 조소하던 그 남자의 손짓, 그리고 지배된 자들 위에 군림하던 그 남자의 심정이 아직까지 상상이 되더군. 조각의 좌대에는 이런 말들이 새겨져 있었다오: 나의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나의 위업을 보라, 위대하다는 이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외에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었소. 오직 그 거대한 조각만이 침식되며 남은 뭉툭한 잔해 그 주위로 쓸쓸하고 활기를 잃은 모래 벌판만이 끝없이 넓직하게 펼쳐져 있었을 뿐이었지." - 오지만디아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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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 룩소르의 나일 강 서안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름은 '아몬의 땅에서 도시 테베와 결합하는 우세르마아트라-세테펜라의 백만년의 집'이다. '우세르마아트라-세테펜라'는 람세스 2세의 즉위명(prenomen) 즉 '라의 정의는 강하다 - 라가 선택한 자'라는 뜻이다.2. 역사
라메세움은 람세스 2세의 장례 신전으로 지어졌다. 자신의 장례신전이었던만큼 람세스 2세가 유난히 공을 들인 신전이기도 했는데, 람세스 2세가 즉위한 직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약 2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지어진 기념비적인 건물이었다. 한때는 이집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신전이었던 것. 그러나 람세스 2세 사후 신왕국의 쇠퇴와 함께 라메세움도 천천히 쇠락했다. 특히 라메세움은 나일 강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강의 지류가 바뀌며 범람할 때마다 신전이 잠겨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 게다가 이집트가 쇠락하고 기독교, 이슬람교가 연달아 포교되며 유적 위에 교회나 모스크를 짓기도 하면서 훼손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나중에는 아예 사람이 쓰지 않는 폐허로 전락해 모래더미에 묻혀있다가, 18세기 이래 조금씩 발굴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는 룩소르의 대표적인 관광지다.전성기 시절의 라메세움 복원도.
라메세움 자체는 전형적인 신왕국 시대의 이집트 신전을 규모만 거대하게 잡아늘린 형태에 불과하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주축을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가장 앞에는 너비 약 60m에 달하는 탑문 2개가 서있다. 탑문에는 전차에 서서 화살을 쏘며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 군대를 물리치는 파라오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흥미롭게도 람세스 2세가 재위 8년차에 '살렘'이라는 도시를 약탈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도시가 예루살렘인지는 불명. 탑문을 지나면 2개의 안뜰을 거쳐 다열주홀, 그리고 그 안의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다.
첫 번째 안뜰에는 거대한 파라오의 좌상 2개가 버티고 있었으며 왼쪽에는 왕궁이 있었다. 이 섬장암 좌상은 높이가 19m, 무게가 1,000톤에 달했지만 현재는 무너져서 몸통과 발치 부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유명한 오지만디아스의 모티브가 되었던 조각상이 바로 이 좌상이다. 두 번째 안뜰은 첫 번째 안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존이 더 잘된 상태다. 오시리스의 형상이 새겨진 기둥들이 몇여개 남아서 서있으며 간신히 보존된 상반부에는 풍요의 신 민을 기리는 벽화가 있다. 한때 2번째 안뜰에 세워져 있던 좌상 2개의 잔해도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분홍색 화강암으로, 하나는 검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다만 개중 분홍색 화강암으로 만든 건 영국인들이 대영박물관으로 반출해가서 현재는 영국으로 가야 볼 수가 있다.
두 번째 안뜰 뒤에 있는 다열주홀은 총 48개의 기둥들 중 39개가 보존되어 있는 상태다. 다양한 신들에게 경배를 드리는 람세스 2세의 모습들이 새겨졌다. 파란색 바탕에 금빛 별이 새겨진 천장 일부도 남아있다. 맨 끝에 있어야할 지성소는 8개의 기둥과 3개의 연속된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약탈과 쇠락 때문에 죄다 무너져서 첫 번째 방의 일부와 두 번째 방의 잔해만이 남아있는 상태. 가장 안쪽에 신상이 안치되어있던 세 번째 방은 아예 흔적도 없다.[1] 다열주홀 북쪽에는 람세스 2세의 어머니 투야 왕비, 그리고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고, 그 남쪽에는 관리인들이 쓰던 창고와 곡창, 작업장 및 숙소가 있었다. 그리고 다열주홀 오른쪽에는 전대 세티 1세가 세운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그래도 다열주홀과 안뜰도 다 갖춘 그럴듯한 신전이 하나 있었지만 현재는 유구만 남았다.
3. 오지만디아스의 배경
자세한 내용은 오지만디아스 문서 참고하십시오.당시 퍼시 비시 셸리가 보았을 19세기의 라메세움.
사실상 라메세움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이유.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가 지은 오지만디아스의 배경이 바로 이 곳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셀리[2](1792 ~ 1822)가 쓴 소네트 오지만디아스는 1818년에 주간지 <The Examiner>를 통해 공개되었다. 1년 전인 1817년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였던 지오반니 벨조니가 이집트 테베의 라메세움에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을 잉글랜드로 가져오는데 성공한 것에 모티브를 얻었다.
그 전에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셸리가 보았던 람세스 2세의 거상을 가져와 프랑스를 위해 위대한 명성을 획득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바 있었다. '오지만디아스'가 쓰였을 무렵, 세인트 헬레나 섬에 수감되어 있던 나폴레옹에게서, 한때 무한한 것처럼 보였던 권력이 유한하다는걸 보았고, 셸리는 문구를 인용함으로써 오지만디아스의 허풍이 부족함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고 있다.[3]
낭만주의 시인으로써 셸리는 자연의 어마어마한 힘과 인간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오지만디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지배자라도 언젠가는 절망에 몰리고 결국 완전히 잊히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막과 세월이 고대 왕들의 헛된 자만심을 삼켜버렸고, 동일한 운명이 현재의 강력한 지배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때 권력과 통제의 상징이었던 이 조각상은 이제 어쩌다 발견되는 이름없는 사막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조각상이 부서져 있다는 사실은, 권력을 위해 투쟁했었고 인간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자의 절망을 부각시킨다.
반면 다소 우울한 아이러니로, 셸리는 오지만디아스의 거만함과 생색내는 태도를 전달하는 비웃음을 완벽하게 포착함으로써, 오지만디아스의 영광이 아니라 오지만디아스의 주제넘은 교만에 영원한 불멸성을 부여했던 조각가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4] 다시 말해 오지만디아스가 그토록 드러내고 싶어했던 위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조각가의 혼을 담아 새긴 오만함만이 남았다는 뜻. 결국엔 자신을 새긴 이름 없는 조각가[5]조차 넘지 못했고, 거만한 조소만 남아 자신의 비극을 자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I met a traveler from an antique land
Who said: Two vast and trunkless legs of stone
Stand in the desert. Near them, on the sand,
Half sunk, a shattered visage lies, whose frown,
And wrinkled lip, and sneer of cold command,
Tell that its sculptor well those passions read
Which yet survive, stamped on these lifeless things,
The hand that mocked them and the heart that fed:
And on the pedestal these words appear: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
후술하겠지만 원문을 자세히 보면 불규칙적이긴 하나 각운이 살아 있다.Who said: Two vast and trunkless legs of stone
Stand in the desert. Near them, on the sand,
Half sunk, a shattered visage lies, whose frown,
And wrinkled lip, and sneer of cold command,
Tell that its sculptor well those passions read
Which yet survive, stamped on these lifeless things,
The hand that mocked them and the heart that fed:
And on the pedestal these words appear: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
고대 지역에서 온 여행자에게 들은 얘기일세. 돌로 만들어 거대하지만 몸통은 없던 두 다리가 사막에 서 있었네. 그 옆의 모래밭에 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었는데, 찌푸린 얼굴과 입술에 차디찬 조소를 띠고 있었네. 그 조각가에게 말하더군, 죽은 돌덩이임에도 그가 자신의 손과 마음을 바쳐 조소한(彫塑/嘲笑)(mocked) 열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드러난다고. 그리고 그 주춧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이 몸의 위업을 보라, 강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곁엔 아무것도 없었네. 무너져 닳아버린 그 거상의 곁에는 외롭고 한결같은 모래밭이 그저 머나먼 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
[1]
지성소 아래에서는
중왕국 시대 사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마 신왕국 시절 모르고 그 위에 새로 신전을 지어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무덤에서는 사자 가면을 쓰고 2개의 청동 뱀 지팡이를 든 여자의 조각상, 상아 클래퍼, 청동
코브라 지팡이, 여러 제례의식이 기록된
파피루스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2]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셸리의 남편이기도 하다.
[3]
Stephen Bygrave, University of Southampton
[4]
Wesley, Owl Eyes Editor
[5]
his나 her가 아닌 those라는 단어를 택했는데,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는 기본적으로 복수형인 they를 단수형으로 쓴다. 즉 조각가의 성별조차 알 수 없는 걸로 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