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본프레레호/2004 AFC 아시안컵 중국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555555,#aaaaaa |
성인 2004~2005
|
전체 | 2004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5 | |
}}}}}}}}}}}}}}} |
1. 개요
본프레레호의 2004년 경기 기록을 다루는 문서.2. 과정과 결과
2.1. 아시안컵 대비 평가전
언론에게 공개된 아시안컵 대비 훈련에서는 이관우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호통을 치며 피지컬 중심으로 고강도 훈련을 했다. 다음의 24인의 명단은 바레인전과 트리니다드 토바고전 소집 명단이며, 해당 경기 이후 아시안컵 최종 명단 22인이 확정되었다. 전임 감독이 중용했던 이관우는 후임 감독이 지휘한 아시안컵 명단에서 결국 제외되었다.[1] 또한, 유망주로 승선한 박주영도 당시 쟁쟁했던 공격진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이관우와 함께 제외되었다.[2]등번호 | 포지션 | 성명 | 소속팀 |
1 | GK | 이운재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3 | 김용대 | 부산 아이콘스 | |
30 | 차기석 | 서울체육고등학교 | |
3 | DF | 박재홍 | 전북 현대 모터스 |
4 | 최진철 | 전북 현대 모터스 | |
7 | 김태영 | 전남 드래곤즈 | |
15 | 이민성 | 포항 스틸러스 | |
25 | 박요셉 | FC 서울 | |
28 | 김진규 | 전남 드래곤즈 | |
2 | MF | 박진섭 | 울산 현대 |
5 | 김남일 | 전남 드래곤즈 | |
8 | 이관우 | 대전 시티즌 | |
10 | 현영민 | 울산 현대 | |
12 | 이영표 | PSV 에인트호번 | |
13 | 이을용 | FC 서울 | |
14 | 정경호 | 울산 현대 | |
17 | 김정겸 | 전남 드래곤즈 | |
21 | 박지성 | PSV 에인트호번 | |
9 | FW | 설기현 | RSC 안데를레흐트 |
16 | 차두리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
18 | 김은중 | FC 서울 | |
19 | 안정환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
20 | 이동국 | 광주 상무 불사조 | |
29 | 박주영 | 고려대학교 | |
감독: 조 본프레레 # |
2.1.1. 바레인전
A매치 7월 친선경기 2004. 07. 10.(토) 19:00(UTC+9) |
||
광주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광주) | ||
주심: 퐁 야우 팟 (홍콩)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김정일 | 해설: 신문선 | ||
|
2 : 0 | |
바레인 | ||
2'
이동국 40' 최진철 |
- | |
경기 영상 |
대한민국 선발명단 (4-4-2)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F 20. 이동국 2' |
CF 18. 김은중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M 9. 설기현 |
CM 13. 이을용 45' 17. |
CM 25. 박요셉 78' 3. 박재홍 78' |
RM 14. 정경호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B 10. 현영민 41' |
CB 15. 이민성 |
CB 4. 최진철 40' |
RB 12. 이영표 82' |
}}} |
GK 1. 이운재 |
2.1.2. 트리니다드 토바고전
A매치 7월 친선경기 2004. 07. 14.(수) 19:00(UTC+9) |
||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마쓰무라 (일본)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서기철 | 해설: 이용수 | ||
|
1 : 1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
52' 차두리 | 77' 스코틀랜드 | |
경기 영상 |
대한민국 선발명단 (3-5-2)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F 20. 이동국 |
CF 19. 안정환 45' 14. 정경호 45'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AM 9. 설기현 28' 45' 16. 차두리 45' 52' |
CAM 21. 박지성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B 10. 현영민 |
CDM 5. 김남일 |
RWB 12. 이영표 78' 2. 박진섭 78'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B 7. 김태영 66' 3. 박재홍 66' |
CB 15. 이민성 |
CB 4. 최진철 74' 28 김진규 74' |
}}} |
GK 1. 이운재 |
2.2.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본선
자세한 내용은 본프레레호/2004 AFC 아시안컵 중국 문서 참고하십시오.2.3. 2006 FIFA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3.1. 베트남전
2004년 8월 26일에 베트남전(9월 8일)에 출전할 20명의 선수 명단이 발표되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 멤버 중에서 9명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 명단에 뽑힌 유상철이 9월 4일 J리그 경기를 뛰다가 부상을 입어 대표팀 소집에서 제외되었으며, 대체 선수 없이 19명으로 베트남전을 치르게 되었다. #
GK(2명) :
이운재(
수원),
김영광(
전남) DF(5명) : MF(7명) : 이영표( PSV), 박지성( PSV), 송종국( 페예노르트), 이천수( 누만시아), 김동진( 서울), 김정우( 울산), 김두현( 수원) FW(6명) : 안정환( 요코하마), 이동국( 광주), 설기현( 안더레흐트), 차두리( 프랑크푸르트), 조재진( 시미즈), |
2006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2라운드 7조 4차전 2004년 9월 8일 19:00(UTC+7) |
||
통낫 경기장 (베트남, 호치민) | ||
주심: 요시다 (일본)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전인석 | 해설: 이용수 | ||
1 : 2 |
|
|
베트남 | ||
49' (OG) 박재홍 | 득점 |
63'
이동국 75' 이천수 |
경기 영상 |
대한민국 선발명단 (3-5-2)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F 20. 이동국 63' 73' 10. |
CF 19. 안정환 86' 15. 김정우 86'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M 9. 설기현 |
CAM 14. 이천수 75' |
RWM 11. 차두리 42'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DM 12. 이영표 |
CDM 22. 송종국 90'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B 3. 박재홍 49' |
CB 2. 이민성 |
CB 4. 최진철 |
}}} |
GK 1. 이운재 |
2.3.2. 레바논전
2004년 9월 24일에 레바논전(10월 13일)에 출전할 21명의 선수 명단이 발표되었다. # 부상으로 지난 경기에 뽑히지 못한 유상철은 회복 경과에 따라 21명에 추가로 합류하게 된다. 이후 회복이 되어 엔트리는 22명으로 늘어났다.
GK(2명) :
이운재(
수원),
김영광(
전남) DF(6명) : 유상철( 요코하마), 최진철( 전북), 박재홍( 전북), 박동혁( 전북), 이민성( 포항), 조병국( 수원) MF(9명) : 이을용( 서울), 이영표( PSV), FW(5명) : 안정환( 요코하마), 설기현( 안더레흐트), 이동국( 광주), 최성국( 울산), 조재진( 시미즈)[추가합류] |
2006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2라운드 7조 5차전 2004년 10월 13일 18:00(UTC+3) |
||
뮤니시펄 경기장 (레바논, 베이루트) | ||
주심: 이르하토프 (우즈베키스탄)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송인득 | 해설: 김주성 | ||
1 : 1 |
|
|
레바논 | ||
27' 알리 | 득점 | 7' 최진철 |
경기 영상 |
대한민국 선발명단 (3-5-2)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F 19. 안정환 |
CF 20. 이동국 45' 9. 설기현 45' |
}}} | ||
CAM 14. 이천수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B 12. 이영표 77' |
CDM 2. 이민성 56' |
CDM 8. 김두현 26' 15. 김정우 26' |
RWB 22. 송종국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B 3. 박재홍 |
CB 6. 유상철 |
CB 4. 최진철 7' |
}}} | |
GK 1. 이운재 |
운명의 킥 오프 후 서로 탐색을 하던 전반 초반, 대한민국은 수비수 최진철의 절묘한 슈팅으로 선취골을 뽑아냈다. 우측 구석에서 최진철이 공을 잡았는데 이를 패스할 것으로 예상한 골키퍼가 반대편으로 치우쳐 있었고 이를 노려 골문 구석으로 때린 중거리슛이 그대로 들어간 것. 뒤늦게 상대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 구석을 약간 건드렸을뿐이었다. 예상보다 선제골이 일찍 터져 쉬운 경기가 예상된 상황.
그러나 전반 중반에 이운재와 유상철의 사인 미스로 어이없이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으며, 이후 답답한 경기를 보여주다가 결국 1-1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후반전 중반에 안정환이 1:1 찬스를 맞이했으나, 바로 때리지 않고 곁에 있던 선수에게 뜬금없이 흘려주다가 상대 수비수가 잡아채 걷어낸 상황이 아쉬웠다.
이날 경기 도중 레바논의 한 팬이 난입했다. # 이어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단체로 난입하기도 했다.
2.3.3. 몰디브전
11월, 홈에서 열린 몰디브와의 월드컵 2차예선 최종전.[11] 우리로서는 치욕을 안겨준 몰디브에게 복수의 날을 선사할 기회이기도 했다.[12] 반면 상대가 전원 철벽수비 모드로 돌입하여 홈경기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상대 수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이 경기를 앞두고 2006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7조의 중간 순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순위 | 국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1 | 대한민국 | 11 | 5 | 3 | 2 | 0 | 7 | 2 | +5 |
2 | 레바논 | 10 | 5 | 3 | 1 | 1 | 11 | 5 | +6 |
3 | 몰디브 | 4 | 5 | 1 | 1 | 3 | 5 | 12 | -7 |
4 | 베트남 | 3 | 5 | 1 | 0 | 4 | 5 | 9 | -4 |
대한민국이 이기면, 자력으로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비기고 레바논이 무승부 이하를 거둬야,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지고 레바논도 져야,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2004년 11월 8일에 몰디브전(11월 17일)에 출전할 20명의 선수 명단이 발표되었다.
#대한민국이 비기고 레바논이 무승부 이하를 거둬야,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지고 레바논도 져야,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GK(2명) :
이운재(
수원),
김영광(
전남) DF(5명) : 유상철( 요코하마), 최진철( 전북), 박재홍( 전북), 김진규( 전남), 김치곤( 서울) MF(8명) : 이영표( PSV), 박지성( PSV), 송종국( 페예노르트), 이천수( 누만시아), 김동진( 서울), 김두현( 수원), 김정우( 울산), 김상식( 광주) FW(5명) : 안정환( 요코하마), 설기현( 울버햄튼), 이동국( 광주), 최성국( 울산), 조재진( 시미즈) |
2006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2라운드 7조 6차전 2004년 11월 17일 20:00(UTC+9) |
||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수바쉬 나자르 (싱가포르)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송인득 | 해설: 김주성 | ||
|
2 : 0 | |
몰디브 | ||
65'
김두현 79' 이동국 |
득점 | - |
경기 영상 |
대한민국 선발명단 (3-4-3)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F 14. 이천수 |
CF 20. 이동국 79' |
CF 19. 안정환 26' 18. 조재진 26'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B 12. 이영표 |
CDM 8. 김두현 65' |
CDM 21. 박지성 |
RWB 22. 송종국 71' 9. 설기현 71'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B 3. 박재홍 |
CB 6. 유상철 |
CB 4. 최진철 |
}}} | |
GK 1. 이운재 |
다행스럽게도 후반 중반에 이르러 김두현이 벼락같이 때린 중거리골로 선취득점을 하고, 이어 상대 수비가 실점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이동국이 쐐기골을 박아넣으며 2-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렇게도 어렵게, 최종예선에 진출한다.[13] 몰디브전 무승부 하나로, 월드컵 본선 1라운드도 아니고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도 아닌 2차 예선에서 애를 먹은 전무후무한 사태였다.[14] 경기가 끝난 후 본프레레 감독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행복하다. 1차전 0:0 무승부의 아쉬움도 덜었고 월드컵 최종예선에도 진출했다."라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이후 허정무 수석코치가 사퇴했다. 전남 드래곤즈 감독 자리가 공석이자 그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한 듯. 사실 허정무가 수석코치가 된 것도, 오만 쇼크 등으로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자 높으신 분들이 일종의 군기반장 역으로 떠맡긴 것이었다. 본프레레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선 허정무가 하등 미련을 품을 자리가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15]
한편 몰디브전 한달 뒤인 2004년 12월 9일,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와 한 조에 편성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2.4. 전설로 남은 충격과 공포의 독일전
2004년 12월 7일에 독일전(12월 19일)에 출전할 20명의 선수 명단이 발표되었다. # 명단 발표 이후에 상무로 입대가 확정된 박요셉은 기초군사훈련 문제로 유경렬로 대체되었다. #
GK(2명) :
이운재(
수원),
김영광(
전남) DF(8명) : 이민성( 포항), 최진철( 전북), 조병국( 수원), 김치곤( 서울), 박재홍( 전북), 박동혁( 전북), 김진규( 전남), 유경렬( 울산)[추가합류] MF(5명) : 김정우( 울산), 김동진( 서울), FW(5명) : 이동국( 광주), 조재진( 시미즈), 김동현( 울산), 차두리( 프랑크푸르트), 남궁도( 전북) |
A매치 12월 친선경기 2004. 12. 19.(일) 19:00(UTC+9) |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대한민국, 부산) | ||
주심: 숩키딘 모드 살레 (말레이시아)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송재익 | 해설: 신문선, 홍명보 | ||
|
3 : 1 |
|
16'
김동진 71' 이동국 87' 조재진 |
25' 발락 | |
경기 영상 |
대한민국 선발명단 (3-4-3)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 21. 김동현 62' 19. 남궁도 62' |
CF 20. 이동국 71' 81' 18. 조재진 81' 87' |
RW 11. 차두리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LWB 13. 김동진 16' |
CDM 8. 김두현 45' 15. 김정우 45' |
CDM 14. 김상식 59' |
RWB 12. 박규선 89' 6. 유경렬 89'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CB 3. 박재홍 |
CB 23. 박동혁 |
CB 5. 김진규 |
}}} | |
GK 1. 이운재 88' 31. 김영광 88' |
대한민국 축구 근현대사 최대 미스테리로 남을 사건이었다.[18]
독일 선발 명단 및 교체기록
올리버 칸(골키퍼), 안드레아스 힌켈(하프타임 교체-파트리크 오보모옐라), 아르네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뵈른스(86분 교체-토마스 브르다리치), 필립 람, 베른트 슈나이더, 미하엘 발락, 파비안 에른스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63분 교체- 루카스 포돌스키), 케빈 쿠라니(76분 교체- 게랄트 아사모아), 미로슬라프 클로제
한국이 베스트 멤버를 총동원했어도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마당에, 독일 최정예 1군 VS 한국 1.5군 + 유망주[19]가 붙어서 한국이 이긴 것이다!
독일 명단은 해외파 없이 전원 국내파이긴 하지만 그 국내리그가 세계 4대 리그 중 하나인 분데스리가이다(...). 독일 대표팀은 2년 전 월드컵 골든볼-야신상의 주인공 올리버 칸, 2년 전 월드컵 4강전에서 골을 넣은 장본인 미하엘 발락, 2002년 월드컵 실버슈(5점으로 히바우두와 동점), 2년 뒤인 2006년 월드컵 골든슈를 받는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비롯해 끗발 날리는 선수들로 가득 찬 독일의 최정예 1군이었다.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차두리를 제외하고는 전원 국내파 위주인데다,[20] 이운재와 이동국을 제외하면 K리그에서 성장 중인 루키가 대부분인 2군 수준이었으니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독일의 최정예 선수들을 대한민국의 루키+국내파들이 격파한, 말 그대로 기적의 승리를 기록한 것이다. 더 쇼킹한 것은 바로 이 경기가 독일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 패배한 기록이자[21]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독일전 승리 기록이라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전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경기 내용면에서도 우연 혹은 운빨로 이긴 것도 아니었다. 전반 초반, 이동국이 독일 문전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크로스한 것을 독일 수비가 걷어내자 김동진이 논스톱으로 중거리슛을 때렸고, 골문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박재홍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을 발락이 차 넣으며 전반을 1-1로 마쳤다.[22] 그리고 후반 중반 무렵 독일 진영에 공이 떨어진 것을 이동국이 골대 방향을 등지고 잡아 방향을 돌리며 한 발리슛[23]이 그대로 들어갔다! 올리버 칸은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손도 쓰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며 막아내지 못했고, 이 골 하나로 이동국은 본프레레호의 황태자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박재홍이 또 한 번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 킥을 내주었고, 키커로는 앞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발락이 나섰다. 그리고 발락이 때린 슈팅을 PK 마스터 이운재가 쳐냈다.[24] 2년 전 월드컵에서 발락에게 아쉽게 결승골을 내주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이운재로서는 발락에게 완벽한 복수를 한 셈. 2-1로 한국이 앞서나가기 시작고 PK 득점까지 실패하자 당황한 독일은 제대로 공세를 펴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 막판, 역습 상황에서 남궁도의 패스를 받은 차두리가 수비수 사이로 크로스한 것을 조재진이 가볍게 득점으로 성공시키며 3-1 완승을 거두었다. 그 와중에 조재진이 득점하는 순간 허둥대다가 중심을 잃은 필립 람이 골대를 들이박고 쓰러졌다(...). 사실 역습 상황에서 크로스가 제대로 올라가질 않고 조재진도 빈 골대에 디딤발로 골을 넣는 등 굉장히 투박하고 부산스러운 공격이었지만 독일도 독일답지 않게 수비가 붕괴되어 어수선하게 이루어져 골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독일은 아시아 투어 일정상 일본과 먼저 평가전을 치르고 온 상태였는데, 이 때 주전을 대거 뺀 2진급을 내보내 일본을 상대로 3-0의 대승을 거뒀다. 당연히 한국전에 출전한 멤버들은 시차적응도 끝났고 휴식도 충분해 체력과 컨디션이 최상인 상황이었는데, 그걸 한국 2군이 개발살낸 격이다 보니 일본의 네티즌들은 열폭했다. 이때의 독일 대표팀이 암흑기였던 것은 맞지만,[25] 어디까지나 독일의 기준에서 암흑기였던 것이고 유럽 최상급 전력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클로제와 발락 외에 이렇다할 스타 필드 플레이어가 없던 2002년 대표팀에 당시 브라질 국대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던 독일 최고의 신성 케빈 쿠라니까지 가세한 상태였다.
그리고 경기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이 경기 이후 독일 선수들의 굴욕(?) 짤방이 퍼지기도 했다. 경기 전 독일 대표팀 선수들은 부산 시내를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는데, 독일 선수들을 알아본 사람이 없어서 해운대에서 화보급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방해를 받지 않았을 정도. 그저 덩치 큰 외국인 관광객이었을 뿐.
저 당시 한국 축구를 관심 있게 봤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당시 출전 멤버 중 이동국, 김동진, 김상식, 김두현과 골키퍼 이운재 외에는 한국 프로축구에서도 탑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거나, 한때 유망주로 불리다가 폭망한 선수 뿐이다. 차두리는 2006년부터 윙과 풀백을 오가며 수비수 전업을 시도했던 것이고, 이땐 그냥 최고의 피지컬과 둔탁한 기술을 가진 애매한 선수였다.
본프레레가 이런 멤버를 택한 이유는 그의 추구하는 팀 컬러를 만족시키는 자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프로축구에서 최고의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만 모아놨다. 차범근과 함께 한국 축구 역대 최강의 스피드와 파워를 자랑하는 차두리, 장신 떡대 유망주로 촉망받던 김동현, 몸싸움을 즐기진 않았지만 큰 키의 이동국, 떠오르는 K리그 최고의 스피드레이서 박규선,[26] 심지어 리그에서 특출난 활약을 한 것도 아닌 그냥 떡대 남궁도, 별명이 독사였던 터프한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 듬직한 체격을 바탕으로 측면과 중앙을 오가던 멀티 플레이어 김동진, 센터백은 최진철 급의 네임드도 없이 두꺼운 허벅지로 유명한 김진규 포함 3떡대로 도배를 해놨다. 독일이 역사적으로 강력한 신체적 능력으로 유명한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경기에선 그 신체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정도. 오히려 차두리에게 스피드로 몇차례 털리기까지 했다. 특히 체구가 작은 람은 그 유명한 차두리의 3단 부스터를 따라잡지 못해 낑낑대기도 했다. 저 라인업의 평균 신장이 한국은 183.4 cm였고, 독일은 182.5 cm였으니 신장에서는 오히려 한국 선수들에게 밀렸다.[27]
13년 6개월 후 두 팀은 러시아 카잔에서 재회했다. 이번엔 월드컵 본선 F조 3차전이었는데 여기서도 대한민국이 김영권과 손흥민이 득점, 2:0으로 승리하며 아시아 최초로 FIFA 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을 2:0으로 승리 및 탈락시킨 팀으로 기록되었다. 심지어 독일은 비교적 온전한 전력이었지만 한국은 1.5군급 라인업이었던 것도 똑같다.[28] 이 두 번의 승리로 대한민국은 A매치에서 독일에게 2점 이상 차로 연승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친선경기겸 평가전인 이때와 달리 러시아 카잔은 국제 대회인 월드컵에서 승리한 것이다. 카잔의 기적 이후 일본 역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처음으로 독일에게 이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9월 9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4대1 이란 대승을 거두면서 독일은 공한증과 공일증에 빠지게 될 상황이 되어버렸다.[29]
그리고 이 날로부터 19년 뒤, 이 경기의 적장이었던 감독이 2023년 2월 27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30] 그리고 6개월여 뒤, 그의 목불인견을 본 한국 팬들은 왜 그 막강한 독일 대표팀이 이때 한국 대표팀에게 참패했는지 몸소 느끼게 된다.
[1]
아시안컵을 앞두고 치른 2번의 평가전에 모두 결장한 것으로 보면 이때 본프레레 감독의 구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듯 하다.
[2]
이 때 유망주로서 박주영과 같이 뽑힌
청소년 대표팀 동료로는 골키퍼
차기석과 수비수
김진규가 있다. 박주영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드는 데 성공하였다. 차기석은 세컨드 키퍼 김영광이 올림픽에 출전하느라 발생한 빈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김진규는 아시안컵에서 경기에 나서는 데 까지 성공하였으며 이후로
김태영,
최진철,
유상철 등이 은퇴하며 자연스레 중앙 수비 쪽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독일 월드컵까지 준주전으로 활약하게 된다.
[3]
워낙 코엘류 감독 체제에서 골 결정력이
시망이다 보니 네이버 문자 중계는 대부분 "코엘류보단 나아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
[4]
A매치로 인정되지 않은 2005년 남북통일축구 경기 포함
[5]
이날은 김태영의 A매치 100번째 경기다. 하프타임에 이를 기념한 행사도 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는 역대 5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6]
참고로 이 때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태국에도 지고,
고려대학교와의 연습경기에서도 진 팀이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2006 독일 월드컵에 진출했었는데, 월드컵 명단에 이 날 경기 멤버는 골을 넣은
제이슨 스코틀랜드와
켄와인 존스, 그리고 골키퍼
캘빈 잭 단 세명 뿐이었고, 그것도 켄와인 존스를 제외하면 후보들이였다. 원래 캘빈 잭이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이 유력했으나 부상을 당해
샤카 히슬롭이 스웨덴전에 선발로 나섰다가 선방을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차전 잉글랜드전에서도 히슬롭에게 밀렸다. 비록 3차전 파라과이전 때는 선발로 나왔다가 두 골을 헌납하며 탈락했지만... 사실 샤카 히슬롭이
EPL 경험도 있고, 더 유명한 선수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이자 팀 엠버서더인
드와이트 요크도 잉글랜드 복수국적을 가지고 있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선수이다. 요크도 트리니다드 토바고 대표 선수로서 2006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봤다.
[소집해제]
[8]
여담으로 이 날은 차두리가 국가대표팀에서 아버지
차범근의 현역 시절 등번호 11번을 처음달고 뛴 경기다. 아버지의 등번호를 대를 이어 국가대표팀에서 달고 뛰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경기였겠지만, 본인은 비신사적 플레이로 퇴장당하고 팀은 패배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역전해 이겼으니 악몽으로 남은 경기였다.
[소집해제]
[추가합류]
[11]
참고로 이 날은 다름아닌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12]
아래 중간 순위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몰디브는 베트남에 딱 승점 1점 차이로 앞서 있는데 이 승점 1점이 대한민국과의 홈 경기에서 따낸 승점이다(...) 반면 베트남은 홈-원정 모두 대한민국에게 졌다.
[13]
다음날 열린 레바논-베트남 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국-몰디브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더라도 한국이 조1위 최종예선 진출할 수 있었다지만, 한국-몰디브 경기가 먼저 열렸고 한국의 승리로 최종예선 진출국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레바논이 굳이 베트남을 잡기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은 결과였다. 한국과 레바논은 최종전을 앞둔 시점에서 승점 1점차였기 때문에 만약 한국이 몰디브를 이기지 못했다면 레바논이 베트남을 잡아서 승점만으로 한국을 누르고 조1위 최종예선 진출을 할 수 있었다.
[14]
당시 이 경기를 해설했던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김두현의 골이 터지는 순간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질렀다. 게다가 김두현의 골은 2004년 당시 가장 값진 골로 회자될 정도로 몰디브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축구의 운명을 가른 경기였다. 한동안 몰디브의 골망을 가른 김두현의 중거리슛이 스포츠뉴스 오프닝에 나올 정도였다. 지속적으로 언급하지만 몰디브와의 1차전 무승부 때문에, 레바논에 쫓기는 신세가 된지라(...)...
[15]
이 수석코치 자리는 본프레레호 마지막 순간에도 맡을 사람이 오지 않고 공석으로 쭉 남았다. 본프레레가 나중에 수석코치의 영입을 부탁했고 후보까지 제안했다고 하나 이뤄지지 않았다. 본프레레의 인맥과 영향력,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했다는 뜻. 협회에서는
핌 베어벡을 추천하여 영입제의를 했다고 밝혔으나, 이미 본프레레가 감독직을 그만 뒀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베어백이 본프레레와 함께 일하는 것을 과연 수락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수석코치 역할까지 맡은 건 이춘석 코치[31]였고, 본프레레와 궁합이 잘 맞았는지 통역보다도 본프레레와 가까이 있었고, 본프레레가 사퇴하여 한국을 떠날 때 출국장에서 포옹까지 했는데 정기동 골키퍼 코치와는 달리
아드보카트호에는 잔류하지 못하고 아드보카트가 직접 경질했고, 그 이후로는 무슨 이유인지 성인 축구 지도자로 활동하지 않고 중학교 감독, 고등학교 감독, 유소년 클럽 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추가합류]
[소집해제]
[18]
이 날 경기에 대한 스포츠토토 적중자가 682명에 불과했고, 배당률도 205배나 되었다.
[19]
선발 멤버들만 둘러보면 불과 2년전의
2002 월드컵 황금 멤버는
이운재,
차두리 고작 둘 뿐이었고 그나마도
차두리는 수비수로 전업하기 전이라 그냥 피지컬만 좋은 애매한 선수였다. 그외 본프레레 이후로 주전급으로 낙점받은
이동국,
조재진,
김두현,
김상식,
김진규,
김동진 정도가 주요 멤버라 할 수 있다.(실제로 부상으로 낙마한 이동국만 제외하면 언급한 선수들 전부
2006 월드컵 멤버로 안착하던 선수들이었다.)
[20]
차두리는 앞선 월드컵 2차예선 베트남전의 퇴장으로 출장이 불가능했으나,
FIFA에서 월드컵 예선전 퇴장의 출전금지는 예선전에만 한하는 것으로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친선경기인 독일전에는 출장할 수 있었다.
[21]
이후 같은
AFC 소속이 된
호주가 독일을 격파하긴 했으나, 호주는 소속만 AFC일 뿐 실질적으론
아시아라고 보기 어렵다.
[22]
이 시기 코엘류가 발탁했던 수비수 박재홍은 잔실수를 연발했다. 앞서 베트남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자책골을 기록, 독일전에서도 또 프리킥 헌납... 프리킥 상황에서도 수비벽이 헐겁자 이운재가 다그치는 장면이 잡혔는데, 하필이면 박재홍이 서 있던 방향에서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을 통해 발락의 프리킥 슈팅이 날아들어오며 한 골을 먹여주었다.
[23]
일명 육군병장슛, 혹은 점호열외슛, 혹은 이동국의 한풀이. 당시 이동국은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24]
이에 대한 뒷이야기가 있는데, 독일 선수들이 위치를 말로 주고 받던 것을 차두리가 수신호로 이운재에게 알려줬다. 하지만 본인이 집중 중이어서 못 봤다고 한다.
[25]
당시 독일은
유로 2004 2무 1패로 탈락(12등)하면서 2시즌 연속 1승도 없이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 2무 중에는 처음 진출한 라트비아와 0:0으로 비겼다.
[26]
J리그서도 주목받을 만큼 촉망받던 유망주였지만 상무 시절 당한 심한 발목 부상과 잘못된 수술이 겹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비운의 유망주다. 이후 학창시절 은사인 고 이상래 감독이 이끌던 한남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전업해서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27]
사실 독일은 2002년 경기를 보면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경기를 했다. 대진운도 좋아서 조별리그 통과한 후 네임드가 떨어지던 팀들을 만나서 겨우겨우 신승하며 결승에 올라가 준우승을 한것이였는데, 이번에도 이런 투박한 스타일로 밑어붙여 경기를 풀어나가려하니 오히려 한국이 본인들보다 앞서는 피지컬과 키가 되는 선수들을 내세우는바람에 전술적으로 밀렸고 골 기회를 놓치는 실수와 결정적일때 수비가 붕괴되는 실수등으로 자멸했다.
[28]
당시 독일은
제롬 보아텡이 전 경기 퇴장 징계로 불참하던 점만 빼면 전력 풀가동이나 다름 없었다. 심지어
유리몸
마르코 로이스까지 정상 참여 가능할 정도 반면 한국은 월드컵 입성 전부터
이근호,
권창훈,
김진수,
김민재 등 핵심 선수들이 줄낙마하고
기성용과
박주호마저 월드컵 진행 중 부상당하는 불상사로 이탈하여 1.5군이나 다름없는 라인업이었다.
[29]
이 "볼프스부르크 참사"로 인하여 당시 독일 국대 감독이었던
한지 플릭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경질된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그것도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에.
[30]
클린스만 뿐만 아니라 코치로 대동했던
안드레아스 쾨프케 또한 당시 독일의 코치진으로서 한국을 상대했다.